소설리스트

〈 78화 〉78화, 판 족장 크로울리 (78/177)



〈 78화 〉78화, 판 족장 크로울리

이후 제사장 카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는 무려 이틀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급한 일이 있는 종족은 달의 날과 불의 날에 각자의 터전으로 귀환을 했고 밀크와 그 일행은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지키며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리고 물의 날 아침이 밝았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종족의 족장들과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파하고 터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밀크와 일행이 이곳에 오래 남아 있던 이유는 종족 간의 좋은 관계 유지를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망가진 마차를 수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이어울프들의 공격으로 손상된 마차 바퀴 축을 임시로 수리하긴 했지만, 돌아가는 길을 버텨줄  만무했고 확실한 수리가 필요했다. 거기에 다른 마차도 심하진 않지만 조금 손을 보긴 해야 했기에 2일에 걸친 위도레빗들의 도움과 시종과 전사들의 노력으로 수리를 끝마칠  있었다.

물론 전면에 나서서 일을 처리한 사람은 밀크였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힘을 쓰는 일은 가능해도 손재주가 부족한 전사들과 손재주는 조금 있어도 기술이 부족한 시종들이었기에 손재주, 기술이 모두 뛰어난 밀크가 진두지휘를 해야 했다.

수리된 마차에 돌아갈  사용한 식량을 담고 있는 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위도레빗들이 사냥한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선물로 받으며 그 고기는 자신들에게 주었기에 2일간 시종들이 육포를 만들어 잘 말려두었기에 돌아갈 때 사용할 양식으로 충분하였다.

그가 돌아간다는 말에 아직 준비가  끝난 족장과 위도레빗의 3축을 담당하는 세 여인이 마을 밖까지 나와서 그를 배웅했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카린이 그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 마을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또 찾아와 주시길 빌겠습니다. 밀크님.”

“자주는 올 수 없으니 시간이 날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그녀의 다음으로는 라파니와 필리아가 앞으로 나서서 그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밀크 다음에 또 보자고.”

“다, 다음에는 꼭…. 아, 아니 또 보자 밀크”

쿨하게 인사를 끝내는 라파니와 달리 필리아는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고 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보였다.

다음으로 나선 것은 엘프족의 윈디아와 켄타우로스 족의 크리스티나였다. 그녀들은 족장인 아비를 대신하여 그를 배웅하러 나왔다.

“얼마 시간도  보냈는데 이렇게 해어져야 한다니  아쉽네요.”

“하아….  짜증 나는 녀석만 아니었어도….”

아쉬운 듯 배웅하는 윈디아와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화가 치미는지 고운 미간을 찌푸리는 크리스티나의 모습, 짜증 나는 녀석은 말할 필요도 없이 크로울리였다.

그는 첫날 잔치에서는 비교적 종족들과 함께 조용히 지내었다. 미리 잔치 장을 둘로 나눈 것이 신의 한 수였는지 아주 조용하게 넘어갔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 녀석들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니 여자만보면 일단 다가와서 말을 걸고 은근히 자신의 숙소로 초빙을 하려는 듯 그야말로 성욕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날은 잔치보다는 사교장과 가까운 느낌으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같이 마시고 즐기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광장에 펼쳐진 음식들을 자유로이 먹으며 마음에  상대와 대화를 나누거나 우정을 또는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날 만큼은 종족 간의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밀크와 시종, 그리고 전사들도 자유롭게 참석하여 즐길 수 있었다.

밀크를 호위할 유크와 벨만 그의 곁에 남고 나머지는 이 사교장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돌아다니면서 가끔 얼굴을 볼 정도였다.

아쉽게도 이날 급한 일정이 있던 바토리는 휘하들을 데리고 아침에 먼저 떠났기에 그녀를   없었지만, 조만간 자신의 부족을 찾아오겠다는 그녀의 말에 얼마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을 하며 해어졌다.

활발히 움직이며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고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켄타우로스의 올펀 족장과도 술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음하하하하! 밀크 자네는 작은 체구에 비하여 정말 호탕하군. 앞으로도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주게나.”

“이를 말인가요. 저보다 연륜도 많으시니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음하하하하- 좋군! 좋아!”

올펀은 밀크가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으며 그와 술잔을 나누었다. 그는 내친김에 버터 족장도 불러와 올펀과 같은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게 하고 그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썼고 유약해 보이지만 심성은 고운 버터 족장도 마음에 들었는지 올펀은 그와도 긴밀한 관계를 약속하였다.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미노타우로스의 족장과 대면했다. 밀크의 종족과 비슷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종족인 그들, 그러나 결국 뿌리는 같은 곳에서 나온 듯 얼마 안 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남자다운 풍채와 근육이 튀어나온 쾌남 이미지인 미노타우로스 족장 도칸, 동생인 트루칸과 함께 밀크와 술잔을 기울이며 호쾌하게 웃었다.

“으하하핫- 그랬다고? 이야 이거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이 화끈한 줄 몰랐네. 이거 부러운데 그렇지 않냐 동생아?”

“그렇습니다. 하하~ 이참에 밀크님이 부족 여성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희도 부족에 고운 여인들이 많이 있으니 다음에 시간이 나면 한번 만나서 술이라도 나누는  어떨까요?”

“이야! 그거 좋은데? 어떻게 생각해 밀크?”

나이를 떠나서 동질감을 느낀 세 사람은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져있었다. 밀크는 두 사람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직  아내가 되지 못한 부족의 여성들이 많이 있으니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볼까? 그런데 우리 두 종족이 결합이 될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여기 있는 트루칸이 내 배다른 형제인데 이 트루칸의 어머니가 바로 홀스타우로스 거든, 2세 생산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들었어. 다만 우리 씨가 좀 강하다 보니 미노타우로스가 좀 더 많이 태어나긴 하지만.”

“많이 태어난다고?”

“아~ 우리 미노타우로스는 한 번에 다섯에서 여섯의 자식이 태어난다고. 만약 남자가 미노타우로스고 여자가 홀스타우로스라면 태중의 아이는 4명이 미노타우로스 1명이 홀스타우로스가 태어나지. 남자 홀스타우로스가 태어난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럴 테지. 우리도 남자는 정말  태어나는데 미노타우로스와 피가 섞이니 오죽할까…. 그래도 대단하네….  번에 자식이 다섯이라니.”

“많이 태어나도 대부분 죽어. 우리 종족은 선천적으로 아기들이 약하거든. 나와 트루칸은 작은어머니, 그러니까 여기 있는 트루칸의 어머니가 젖을먹여 키웠기 때문에 정말 튼튼하게 자랐지만, 다른 아이들은 미노타우로스의 영양 없는 젖을 먹고 커서 정말 유약해 빠졌지. 성체가 되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다섯  중에 하나 정도야. 그때부터는 고기고 뭐고 다 소화를 시키니까 급격하게 강력해지지. 우리처럼 말이야.~”

라고 말하며 근육을 드러내 보이는 도칸, 그의 모습이 꼴사나웠는지 트루칸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술만 홀짝였다.

“열두 살이 성인인 건 우리와 같구나. 이거 참…. 그쪽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아이들이 다 약하다니…. 지금의 모습을 봐서는 정말 상상이 안 가는 말이야.”

“뭐…. 그런  자주 듣곤 해. 그래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인들은 젖이 영양가가 없다는 거야. 우리 몸이 이렇게 튼튼한데 여자들은 다 밀크 너처럼 작고 연약하거든.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서 맛은 좋은데 말이야.”

“야 이….  나가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냐?”

“하하하! 농담  해본 거야. 하여튼 그렇게 연약하다 보니까 젖도 영양가가 없어. 우리 여자들 젖은 켄타우로스보다 영양가가 없다 이 말이지. 그렇다 보니까 아이들 성장도 느리고  뭣 같아.”

“미노타우로스는 뭐가 자랑이야?”

“우리? 우리로 말할 거 같으면  단단한 뿔이지. 커가면서 뿔이 1년마다 빠지고 자라고를 반복하다가 성체가 되면 단단한 뿔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이 뿔이야. 그 전에 나온 것들은 반쪽짜리지만  강도는 단단하고 무엇보다. 제련하기가 아주 간편한 재료라고 정평이 나 있지. 그래서 우리는 유아들의 뿔을 잘 모아 두었다가 어느 정도 물품이 쌓이면 그걸로 다른 부족과 거래를 하곤 하지. 아~ 그리고 우리 여인들 젖이 영양은 없어도 맛은 좋거든. 그래서 맛을 따지는 인간들과는 값이 싸도 거래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물품이라 할 수 있지.”

“그렇군. 좋은 정보를 알았네. 괜찮다면 너희도 우리와 거래를 하면 어떨까?”

“거래?”

“그래 뿔을 제공해 주면 우리도 젖을 제공해 줄게. 우리야 여자들이 넘쳐나니까 젖은 짜면 바로 생산할 수 있어. 다만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일 이내에 섭취해야 하고 늦어도 20일 안에는 다 소모해야 해 20일이 지나면 슬슬 상하기 시작하니까.”

“그 정도가 어디야. 우리 젖은 7일이 지나면 상하기 시작한다고. 역시 영양가가 높은 젖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런데 뿔? 굳이 우리 뿔을 받아서 뭘 하려는 거야?”

“부끄럽게도 난 대장장이 일을 하거든, 그렇게 좋은 소재를 보면 참을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한번사용해 보고 싶고 그걸 사용해서 새로운 무기도 만들어볼 생각이야.”

“호오~ 무기라?”

밀크가 생각하는 뿔은 바로 각궁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뿔은 과거 그가 살던 시대의 물소뿔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물론 크기는 미노타우로스 쪽이 훨씬 거대했지만 말이다.

못해도 그 길이가 80cm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의 뿔. 성인이 저 정도라면 성인이 다 되어가는 아이들의 뿔도 생각 이상으로 길 것이다.

저 뿔을 이용하여 각궁을 만든다면 모르긴 몰라도 제법 괜찮은 무기가 나오리라, 물론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이 사용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이 있지만, 만들어 두었다가 나중에 에스타 상단과 거래를 해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이거 놓으세요!”

여기까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밀크의  뒤에서는 찢어지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익히 들어온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저와 같이 시간을 좀 보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전 족장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정조를 받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희 종족의 법이에요!”

느끼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사람은 당연히 크로울리였으며 그 상대는 처음 보는 홀스타우로스 여인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밀크가 아닌 버터의 부족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분명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지만, 크로울리는 느물거리는 말투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손으로 그녀의 팔을 살살 쓰다듬으며 추근거렸다.

“딱딱하시기는, 오늘은 사교의 장입니다. 그런 딱딱한 종족의 굴레를 벗어나도 좋다는 것이지요. 보아하니 서열에서 밀려나서 족장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모양이신데 오늘 제가 그 외로움을 잘 달래 드리겠습니다.”

“당장 놓으라니까요! 여전사들을 부를 거예요!”

“하하하~ 여기서 싸움이 나면 오히려  족장님께 화가 미칠지도 모르는데요? 정말 그럴 겁니까?”

“이게 무슨 짓인가요!”

올펀과 술을 기울이고 있던 버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크로울리와 여성의 중간에 끼어 들어가 그녀를 그의 시야에서 숨기려 하였다.

잘 되어 가는 와중에 방해꾼이 등장하자 크로울리의 표정이 썩어들어갔지만, 상대가 외소하고 유약해 보이는 버터임을 확인한 그는 다시 느끼한 표정으로 느물거렸다.

“이거야- 족장님이 아닙니까? 하하하- 거기 계시는 분이 하도 아름다워서 제가 결례를 좀 범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오늘 하루 그분과 제가 오붓하게 보내고 싶은데 허락을  해주시겠습니까?”

여인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버터 또한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말에 자존심이 상하는 듯 버럭 화를 냈다.

“이 여자는 제 아내입니다. 감히 나에게 아내를 넘겨 달라고 청하는 겁니까?! 비록 받아들인 지 얼마  되어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아 처녀의 몸을 유지하고 있으나 족장의 아내를 탐하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 말에 크로울리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 순간 눈에서 성욕을 불태우며 얼굴에서도 그 욕망을 마음껏 분출시켰다. 유부녀라는 말이 더 그를 끌리게 만든 것일까? 말 그대로 상종도 하기 싫은 남자의 표본이었다.

“그런가요? 이거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부인이라면 곁에 두셨어야지,  이렇게 혼자 두고 쏘다니게 만드셨습니까? 일부 잘못은 족장님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만 잘못이 있다는 듯 이렇게 몰아세우시니 모욕을 받은 기분이군요. 이거 이렇게 모욕을 받아서야 그냥 넘어갈 수야 없겠네요.”

“뭘…. 어쩌자는 겁니까.”

“모욕의 대라고 오늘 하루 이 아름다운 분을 제가 품을  있게 해주시지요. 어떠신가요?”

“뭐 뭐가 어째?!”

버터가 더 심하게 화를 내었다. 유약하지만 내면에서는 그 역시 족장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잠제되 있기에 상상 이상으로  기세가 흉흉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잔치를 열었던 위도레빗 종족의 세 여성이 혼란을 뚫고 등장하여 자초지종을 살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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