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73화, 아인들과 교류.
하피와 버드맨에 관한 설명은 이쯤에서 마치고 다시 족장의 방으로 돌아와 보면 카벙클의 보석을 선물로 준 바토리는 입가에 소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슬쩍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밀크와 눈이 마주쳤다. 밀크를 발견한 그녀는 싱긋 웃으며 눈웃음을 먼저 보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는 거로 봐선 라파니가 먼저 나서서 소개를 해주기 전에는 먼저 나서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바토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던 라파니가 밀크를 바라보면서 소개를 시작한다.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이 바로 밀크 족장입니다. 전날 제가 소개해 드렸던 그분이지요.”
“아! 이분이 바로 그 밀크 족장님이시군요.”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그와 그녀는 사절을 통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약조한 부족 동맹 사이였다.
라파니와 카린에게 했던 것처럼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바토리, 밀크 또한 그런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여 인사를 올렸다.
“바토리입니다. 이렇게 족장님을 직접 보니 영광이네요.”
“밀크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하피 퀸”
“바토리면 됩니다. 저도 편하게 밀크님이라 부르지요.”
“예. 저 역시 바토리님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펄럭이며 밀크에게 다가가기 시작하는 바토리, 그 움직임에 잠시 당황하는 밀크였지만, 다음 순간 그녀가 자리에 멈추며 밀크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 역시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마주 잡으려고 하였다.
“어머- 그런 게 아니랍니다.”
밀크의 손을 살짝 피한 그녀는 손을 그의 볼에 올려 두고는 가볍게 터치하듯이 매만지고 다시 손을 내렸다.
“후후후~ 부드러워요.”
“네, 네?”
당황해 버린 밀크, 라파니와 카린은 익숙한 모양인지 고개를 숙이고는 쿡쿡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장난기 많은 누나가 남동생을 향해 장난을 치는 듯한 분위기, 그렇게 밀크를 한번 놀린 바토리는 그에게서 멀어져 원래 자기 자리인 듯 한쪽에 서서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입구가 열리며 도착한 손님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체가 말이고 상체가 인간인 켄타우로스의 족장 올펀과 그 수석 부하이자 저번에 밀크를 찾아 왔던 가리온이 들어왔고 뒤이어 위도레빗 부족들이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청아한 분위기의 가녀린 미의 상징인 엘프들이 들어 왔으며 호탕하기가 이를 때 없는 드워프가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키가 작은 아인인 코볼트와 켓트시는 뭔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와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는 카린의 생일을 축하했고 뒤이어 등장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인간의 상체, 양의 하체를 가진 판 부족이 들어와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거기에 뜻밖에도 밀크와 다른 홀스타우로스 부족이 하나 더 들어와 카린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리고는 손님들의 자리로 들어갔다.
족장으로 보이는 홀스타우로스 남자가 병약해 보였는데 그는 다리도 좋지 않은 모양인지 여성 홀스타우로스의 등에 업혀 있었다.
그 남자와 밀크가 눈이 마주쳤다. 홀스타우로스 특성상 많이 봐줘야 열넷, 열셋 정도로 보이는 두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같은 종족임을 알아보고 반가운 나머지 눈인사를 하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등에 업혀 있던 남자 족장은 괜찮으니 내려달라고 한 뒤 천천히 내려주는 여성의 등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섰다.
그리고는 힘든 기색은 보이지만,그럭저럭 버티면서 밀크에게 홀스타우로스 전통 인사를 시작했고 밀크 또한 그가 힘들지 않도록 마주 받아 주면서 서로의 목의 향기를 맡았다.
같은 부족이 아니라 그런지 이쪽은 밀크의 부족과는 다르게 진한 고소한 향은 다소 부족했지만, 상쾌한 향이 강한 들판의 향이 강하게 묻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 동포를 만날 줄 몰랐네요. 부족의 족장을 맡은 버터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아…. 여기도 또….’
저 족장의 부모는 왜 또 이 남자의 이름을 유제품으로 지었을까…. 이 정도 되면 거의 노렸다고밖에 볼 수가 없는 현상들이었다.
어쨌든 이름을 밝히고 먼저 인사를 청했으니 받아 주어야 했다. 밀크 또한 그에게 살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밀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버터님.”
인사를 받아 주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나 바로 몸이 좋지 않아졌는지 여성 홀스타우로스의 부축을 받으며 등에 올라갔다.
“여행길에 몸이 상한 모양입니다.”
“예. 도중에 습격을 좀 받아서 그렇습니다. 별거 아니니 조금만 쉬면 금방 괜찮아 질 거예요.”
“그쪽도 다이어울프의 공격을 받았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저희는다이어 울프가아니라 데빌베어의 공격을 받았어요. 저희 부족과 위도레빗 부족 사이에는 큰 산길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아니면 위도레빗 부족 마을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산길이 있는 산에는 데빌베어놈들이 터전으로 삼아 완전히 눌러앉아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동 중에 놈들의 기습을 받고 조금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도중에 구원을 와준 위도레빗 분들의 도움이아니었다면 큰 피해를 보았을 거예요.”
“그랬군요.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지금은 손님들이 계속 들어오니 제가 나중에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요.”
“아. 그렇게 해주실 건가요? 살갑게 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밀크님.”
“아니에요. 여기서 동족을 보니 정말 기쁜걸요.”
상황상 한 사람을 계속 붙들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 밀크와 버터는 이쯤에서 대화를 중지하고 들어오고 있는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차례가 늦어지긴 했지만, 바토리와 마찬가지로 밀크와 긴밀한 부족 동맹을 맺은 켄타우로스 부족의 족장 올펀이 거대한 말의 하반신을 이끌고 다가와 밀크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신가! 이렇게 동맹 부족의 족장을 보다니 영광이로군, 내가 바로 올펀이라 하오.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 밀크님.”
“올펀님이시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가리온도 또 보는군요,”
“예 족장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이분은….”
밀크가 바라본 곳에는 황금색 머리카락과 말꼬리 그리고 흰색 말 하반신을 가진 올펀과 똑같이 황금색 머리카락과 말꼬리 그리고 흰색 말의 하반신을 가진 여성 켄타우로스가 도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작고 예쁜 얼굴에는 오밀조밀 자리 잡은 눈코입이 고집쟁이 공주님을 연상시키는 듯한 도도함과 귀여움이 함께 하고 있었다. 거기에 가슴을 가리듯이 팔짱까지 끼고 있어서 더욱이 그녀의 도도함을 한층 돋보여 주고 있었다.
코를 한껏 치켜세우고는 눈을 감은 그녀는 마치 밀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집의 극치를 보이며 서 있으니 그런 그녀를 돌아보고 확인한 올펀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녀를 밀크에게 소개 올렸다.
“이쪽은 제 딸인 크리스티나라 하오. 크리스티나! 인사 올리거라 이분이 바로 밀크 족장님이시다. 앞으로 우리와 긴밀한 동맹 관계를 구축할 분이니 예의를 다 하여 인사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필시 밀크를 업신여기며 아까까지 인사를 해오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 취급할 것이 뻔하기에 올펀이 미리 나서서 그녀에게 귀띔해줄 겸 그를 띄워주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였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에 비하여 약삭빠른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올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도도함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녀가 이렇게 커버린 것은 잘못 키워버린 올펀의 잘못인 것을
올펀의 말을 들은 크리스티나는 또 어디서 어중이떠중이 족장과 동맹을 맺은 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 아버지의 모습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그래도 아버지의 명이니 얼굴이나 한번 보고 대충 인사를 한 뒤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뜬 그녀는 밀크의 모습을 슬쩍 보고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눈을 치켜뜬 뒤 그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작고 귀여운 홀스타우로스 족장, 물론 키는 다른 족장보다 조금 큰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런데도 순수해 보이는 큼직한 눈망울이나 촉촉한 입술 등등 때 묻지 않아보이는 귀여운 남자아이의 모습에 크리스티나는 심장에 들어오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큭!”
그녀가 지른 외마디 비명, 올펀은 혹시 이동 중에 그녀가 피로함을 느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질문했다.
“괜찮으냐? 혹시 피곤한 거면 가서 쉬는 게 어떠냐?”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괜히 큰 몸동작으로 유난을 떤 그녀는 다시금 밀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있었다. 운명의 상대, 자신의 가슴을 이렇게나 강하게 움켜쥐어버린 운명의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이건 반칙이야.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어떻게 세상에 있는 거지? 아아! 아아!!! 저 얼굴 좀 봐 마치 작은 인형 같아. 기대도 안 하고 왔는데 이런 분이 계실 줄이야!’
크리스티나의열정적인 시선을 느낀 밀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모습마저도 그녀의 심장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큭! 흠흠…. 크리스티나예요. 밀크 족장님.”
그녀는 도도함을 버렸다. 그 대신 눈앞에 있는 상대를 취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를 보이며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런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본 올펀, 가리온은 입까지 벌리며 놀라 버렸다. 지금까지 인사를 하면서 툴툴거리기 바빴고 때론 불평까지 하던 그녀가 이렇게 예를 보이며 인사를 올리니 말이다. 딱 봐도 뭔가 흑심이 풀풀 풍기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이년이 미쳐서….”
올펀은 크리스티나를 정말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그녀의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이자 올펀의 첫 번째 아내가 죽어 그녀가 사랑을 다른 아이들 보다 덜 받을까 봐 자신이 두 배 이상의 사랑을 주며 애지중지 키워왔다.
그러다 보니 성격이 삐뚤어진 것은 아닌 데 매우 도도하고 고집스러워졌다. 일단 사랑을 듬뿍 받아 커서 그런지 아버지 말이라면 껌벅 죽지만, 자신이 족장의 딸이란 것은 또 잘 이용하는 그야말로 약은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올펀이 애지중지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미쳤다 대 놓고 말해버릴 정도였으니 그 놀라움이 얼마나 컸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든 크리스티나는 싹 다 무시하고는 조마조마한 심장을 다스리며 밀크의 대답을 기다렸다.
밀크는 그녀가 인사를 해오니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를 청했다. 그녀가 수줍게 손을 내밀자 밀크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손도 부드러워. 남자아이의 손이 이렇게 부드러울 리가 없는데…. 홀스타우로스들은 다 이런가?’
그녀가 밀크의 손을 잡고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밀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밀크라고 해요. 초면에실례지만, 정말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앞으로 좋은 관계를 부탁해요. 크리스티나”
밀크의 말이 귀로 다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귀를 때릴 때마다 마치 온몸에서 열불이 나는 듯 심장이 제멋대로 펌프질 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귀에 들려온 단어는 이 정도였다,
아름다운 분, 좋은 관계, 오해하기 딱 좋은 단어이지만 그 단어만을 빼서 들은 그녀는 얼굴까지 붉히며 혼자만의 상상에빠져 버렸다.
‘아, 아름다워?! 관계!!! 나하고 하고 싶은 거야! 그래. 이분도 나를 원하는 거로구나! 역시 내 운명의 상대였어. 밀크님! 아아~ 이름마저감미로운 밀크님!’
그렇게 밀크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한 그녀는 당장이라도 밀크가 가자고 하면 홀라당 반해 따라갈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올펀은 어이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크리스티나의 모습을 점잖은 목소리로 끼어 들어온 한 여성에 의해 차단되었다. 쫑긋 솟아오른 귀와 호리호리한 몸매, 유약해 보이지만 표정은 살아 있는 숲의 종족 엘프였다.
인간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인들과는 더불어 살며 낮은 산지나 숲속에서 터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나무에게 부탁하여 만들어진 거주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 활의 명수라고 알려져 있을 만큼 활을 잘 다루는 종족이다.
인간들에게 엘프가 만든 엘프궁이란 물건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대단한 무기이며 엘프들이 키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나뭇가지를 사용하여 만들기에 인간들을 엘프궁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크리스티나의 뒤에서 나타난 엘프는그녀와 잘 아는 사이였는지 헬렐레하는 그녀의 등을 살살 어루만지며 다가와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안 보러 오고 여기서 이러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