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72화, 속속들이 도착하는 손님들. (72/177)



〈 72화 〉72화, 속속들이 도착하는 손님들.

조용히 앉아 명상하고 있는지 말은 없었지만, 마치 루피카를 보고 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가 만연한 여인이다.

얼굴이 심장 떨리게 아름답긴 했지만, 그것은 뭐랄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아름다움이라  수 있었다.

곱게 닫혀 있던 그녀의 입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 뒤 눈을 감은 상태로 정확하게 밀크가 있는 위치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손님이군요.”

“응?”

 말에 밀크가 들어왔는지 모르고 그녀와 같이 명상을 하고 있던 라파니는 그 말에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밀크를 발견한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일찍 왔어? 잔칫날까지는 아직 2일이나 남았다고”

“원래는 오늘 오후나 내일 아침에 도착하리라 생각했는데 전사들이 직접 짐 마차를 몰고 도중에 여기 있는 필리아님의 도움을 받아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어.”

“그렇구나. 피곤하지? 이리 와서 앉아 그리고 나랑 필리아는 같은 항렬인데 뭘 존재하고 그래? 편하게 말해도 돼”

라파니의 말에 밀크의 뒤에 있던 필리아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지만, 바로 다음 밀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무룩해져 버렸다.

“너랑 나랑은 편한 사이지만 여기 있는 필리아님 하고는 그렇지 않잖아. 예의 없게 그럴 수는 없지.”

“아, 아니 그냥….”

“그렇죠 필리아님?”

필리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 먼저 말을 끝낸 밀크, 그러나 필리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 모습에 밀크는 장난이었다는 듯 짧게 웃은 뒤에 필리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불러 필리아, 앞으로 잘 부탁해.”

“아!”

그제야 필리아는 시무룩해진 얼굴을 풀고 밀크의 손을 붙잡았다. 그 모습에 눈을 감은 신비안 여인이 쿡쿡거리며 작게 웃은  밀크에게 말을걸었다.

“라파니가 저리 살갑게 굴고 기가 강한 필리아조차 얌전하니 정말 놀라워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카린이라고 합니다. 이 위도레빗 부족의 제사장을 맞은 몸이지요. 라파니에게 들은 대로 참으로 큰 분이군요.”

“크다니…. 전 그렇게 크지 않은….”

“풍채에 관한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엄청난 기운을 말하는 거지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느껴지는 밀크님의 모습은 산처럼 거대합니다. 이런 귀한 손님이찾아오셨는데 이렇게 앉아 있으면 예가 아니지요. 제 인사를 먼저 받으시지요.”

그리말한 카린은 정중한 자세로 그의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경건하기가 이를 때 없는 것이 마치 선조의 영혼이라도 뵌 양 깍듯했다.

큰절을 받아 송구스러웠는지 밀크 또한 그녀의 앞에 마주 절을 하며 인사를 하였고 그렇게 두 사람의 통성명이 끝났다.

밀크가 라파니의 옆에 앉으니 그 옆으로 필리아가 앉았다. 그러자 세 사람이 카린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는 카린 앉은 그녀는 바로 밀크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상당히 많은 가호를 받고 있네요. 신께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당신을 두고 말하는 걸 겁니다. 병에 강하고 운이 좋아 여간해서는 몸이 상하지도 않을 거 같네요. 그리고 여복도 좋아서 주변에 여성들이 넘쳐나게 될 겁니다. 그중에 일부는 이미 옆에 있고요.”

“이, 일부요?”

“수많은 여복이 있습니다. 수까지는 알  없어요. 그것은 병에 들어가는 물처럼 일정 수준치 차올랐음을 알  있지만, 수를알 수는 없답니다. 당신의 여복 병은  3분의 1이 차올랐을 뿐입니다.”

약간 질릴 정도로 많은 수였다. 지금까지 만나온 인연 중에도 여성들이 많은데그보다 더 많은 수의 여성이 옆에 온다니 말이다.

이미 아내만50이 넘고 몸을 섞기만 하는 인원도 다섯이 넘어간다,그런데 여기서 더 늘어날 것이란 예언 비슷한 말을 들으니 괜히 몸이 떨려왔다.

“호호 긴장하시는 건가요?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복은 있어도 여난은 없어 보이니까요. 오히려 여성이 모이면 모일수록 당신에게 무한한 영광만이 펼쳐지게 겁니다.”

위안이 되는 카린의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리는 밀크였다. 루피카와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녀 또 한 대단한 능력을 갖춘 거 같았다.

카린의 말이 끝나자 뒤이어 라파니가 밀크에게 살갑게 굴며 설명을 시작했다.

“제사장은 두루뭉술하게나마 미래를 내다볼 수 있거든, 그리고 대상의 기운도 볼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평을 받은 이는 없었어. 처음 봤을 때도느꼈지만, 밀크는 참 범상치 않다니까.”

“그, 그런 거야?”

“물론이지.”

라파니의 말에 세 여자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크의 뒤에 서 있던 유크와 벨도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밀크 혼자만 이 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웃음을 멈춘 라파니, 그녀는 계속해서 이후의 일들을 설명했다.

“일찍 왔으니 오늘을 따로  일이 없고그냥 마을 구경하면서 남은 시간 편히 쉬어. 손님들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올 테니 그때부터는 각 부족의 족장들과 인사를 하게 될거야. 초대한 부족이 스무 곳이나 되거든,뭐 그중 대부분이 같은 위도레빗들이라 내일부터 이곳은 그야말로 위도레빗 천지가 될 테니 구경하고 싶은 게 있으면 오늘  보도록 해. 내일은 마을이 북적거려서 편히 움직이기힘들 테니까.”

한 마을에 손님이라고는 해도 20개의 부족이 모여든다면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왕 축하를 위해 온   마을의 특징을 한번 보고 싶었던 밀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비! 들어오렴!”

다음 순간 라파니가 밖을 향해 외치며 위비를 불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수전사 위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나요. 족장님?”

“그래.밀크 족장님이 우리 마을을 구경하고 싶으시다니까 네가 안내를 해드리렴, 전사들의 수련장은 위험하니 되도록 가까이 가지 말고 다른 곳은 모두 보여 드리렴.”

“예 족장님! 알겠습니다. 불편함 없이 제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라파니에게 대답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앉아 있는 밀크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상냥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족장님~ 제가 마을을 소개해 드릴게요. 다만 라파니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 전사들의 수련장을 찾아가는 건 조금 위험하니까 그곳은 가지 않을게요.”

“왜?”

“음…. 그러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위비가 아닌 필리아에게서 들려왔다.

“발정을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게 된 공전사들이 그곳에서 몸을 움직이거든, 성격도 날카로워져 있을 거고 남자를 보게 되면 족장이고 뭐고  가릴 상태라서 그래….”

“아….”

밀크는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이 되어 몸을 움츠렸고 그런 밀크의 양옆을 죽어도 지키겠다는 진지한 표정의 벨과 유크가 지키고 섰다.

준비가 끝난 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 위비, 그녀는 우선 위도레빗들이 사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개해 주었고 그 뒤로는 위도레빗들의 작업장으로 이동하였다.

“저희는 대장 기술은 뛰어나지 않아도 손재주가 있어서  이어 붙이고 만드는 것은  한답니다. 저곳에서는 각종 생필품을 만들고요. 그리고 저곳은 무기를 만드는 곳이에요. 철을 잘  다루기에 나무를 깎아서 만든 죽창이나 투석을 위한 슬링을 만들어요. 가끔 활도 만들어요. 화살은 모두 인간들에게 구매해야 하므로 활도 정말 가끔 재고품이 손실되었을 때만 만들고요.”

확실히 밀크의 홀스타우로스 부족보다는 집의 크기들도 작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만연했다. 작고 귀여운 토끼를 연상시키는 그녀들다운 모습이었다.

작업장마저도 그러하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녀들의 성향이 그런 듯싶었다. 그런데도 어제 적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냉정함까지 잠재해 있으니 마냥 순박한 종족까지는 아닌 듯하다.

어쨌든 위비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한  돌아보고 구경할 것은 모두 구경한 뒤 다시위도레빗 족장의 집으로 이동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밤이 되어 위도 레빗들 중에 그나마 저택에 사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해 임시숙소로 정한 뒤 그곳으로 향하였다.

당장은 손님맞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숙소에 따로 식사를 차려 주었고 그녀들이 주로 사냥하는 동물들로 만든 고기 스튜의 맛을 보았더니 생각 이상으로 입에 맞았다.

양도 홀스타우로스들을 위해 풍족하게 준비해 주었기에 노숙으로 먹던 육포보다 더욱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위도레빗들의 환대를 받으며 숙소에서 잠을 청한 밀크, 다만 오늘 족장에 방에서 만났을 때도 은근히 눈치를 주고 있던 라파니가 숙소로 찾아왔고 이미 대충 짐작을 하고 있던 밀크는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를 바라보고는 침대에 들였다.

밤사이 살과살이 얽히고설키는 야릇한 소리와 더불어 남녀의 강렬한 소리가 숙소 내부에 울려 퍼졌고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다른 위도레빗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 그날 밤 침대를 적셔버린 위도레빗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위도레빗 마을 입구로 초대받은 손님들이 하나둘씩 입장해 들어오고 있었다.

밀크가 일어난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족장의 집에 도착하여 인사를 하는 종족이 있었다.

하늘을 날아 빠르게 도착한 부지런한 종족인 하피들이었다. 저번에 봤던 붉은 깃털의 화려한 여성 하피인 레티와 몇몇 화려한 색의 하피들이 더 있었고 그녀들의 중앙에는 호위를 받는 덩치가 조금 더  하피가 보였다.

다른 하피들과 달리 눈화장 같은 붉은 아이라인이있었으며 검은색의 머리카락도 생기가 넘치고 부드러워 조금의 움직임에도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거친 새의 다리를 하는 다른 하피들과 다르게 매끄럽고 우아한 다리 선과 잘 정리된 발톱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남성을 유혹하는 듯한  바른 피부가 예술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우아하게 손을 움직이니 그녀의 깃털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더니 이내 몸을 가리는 우아한 드레스로 변화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예전에 레티가 말한 퀸이라는 존재인 모양이다.

다른 하피들이 인사를 하고 양옆으로 물러나 길을 만들자 그 열린 길을 정말 우아함이 뭔지 보여주는 걸음걸이로 이동하는 그녀.

아무래도 하피들의 몸에 뵈어 있는 것은 이 같은 우아함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끌고 온 이들 중에는 남자가 전혀 없었다. 하피와 비슷한 버드맨이라 불리는 남자 쪽 아인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피 퀸 바토리가 인사 올립니다. 그간 별고 없었지요?”

“바토리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 이렇게 마을을 방문하여 저희 제사장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신 것이 더 영광이지요. 우선 저희가 준비한 선물을 먼저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얘들아-”

그녀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른 하피들을 부르자 그중 둘, 레티와 다른 한 명의 하피가 들고 있던 궤짝을 내려두고는 궤짝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녹색의 보석들이었다. 마치 에메랄드를 닮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에메랄드보다는 좀 저 연두색에 가까웠고 무엇보다스스로 빛을 내뿜는지 빛나고 있었다.

“그린 카벙클의 보석이랍니다. 수량은 약 200개 정도라 약소하지만, 부디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카벙클의 보석이라니 예물에 힘을 쓰셨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보이지 않지만, 그 기운은 느껴지는군요.”

카벙클이라는 작은 소동물이 있다. 놈들은 개체 수도 많고 번식도 빠른 동물이다. 그리고 녀석들의 이마에는 하나같이 보석이 박혀 있는데  보석에 색깔에 따라 놈들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달라진다.

붉은색이라면 레드, 노랑이면 옐로우, 파랑이면 블루 등등 일곱까지 색을 가진 보석을 박고 있는 동물이다.

놈들을 사냥하면 이마에 박혀 있는 보석을 뽑아 비싼 값에 팔  있지만, 워낙 잽싼 녀석들이라 활이나 돌로는 맞추기 어렵고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쌩! 달아나버리는 민첩한 녀석들이라 사냥이 쉽지 않았다.

그런 카벙클을 버드맨이 사냥하기 편한데 빠른 속도로 공중에서 내려와 낚아챈 뒤 발톱을 사용해 죽여 버린  마을로 가져가 보석을 빼버리는 것이다.

버드맨은 설명했다시피 하피의 남성 버전인 자들이다. 어쩌다가 명칭이 하피와 버드맨으로 나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피의 특징은 화려함과 우아함, 그리고 날카로운 공격이라고  수 있다.

그 반대로 버드맨의 특징은 칙칙함과 어두움 그리고 재빠른 몸놀림이다. 두 종족은 같은 마을에 같이 살지만 버드맨의 이름을 딴 부족이 없는 이유는 하피가  공중전에서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족장도 하피이며 그런 족장을 다스리는 존재 또한 하피퀸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하피와 버드맨이 자손을 낳으면 무조건 쌍둥이가 태어나는데 한쪽은 하피, 그리고한쪽은 버드맨으로 남녀가  쌍으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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