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화, 목걸이의 주인 (62/177)



〈 62화 〉62화, 목걸이의 주인

“…….”

밀크의 말에 레이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갑옷 안에서 그녀는 조용히 소리를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살아오면서 그녀를 위해 죽어간 아인들의 말은 아니었지만, 밀크가  말은 지금까지 그녀가 해왔던 일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조용히 흐느끼던 그녀는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수건을 들고는 투구의 입 부분을 살짝 들어 올려 볼까지 흐른 눈물을 닦아냈다.

‘구릿빛이네.’

투구 안쪽으로 보인 그녀의 입과 턱 부분의 살은 잘 태워진 구릿빛이었다. 강제로 만들어낸 구릿빛이 아닌 건강한 살결을 가진 아름다운 구릿빛으로 반돌프 백작가의 피를 이은 특징이었다.

눈물을 닦아내자마자 들어 올린 투구의  부분을 내려서 드러난 살결을 가린그녀, 밀크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온몸을 가리는 거야? 목숨을 위협받는다는 말은 그냥 핑계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눈치 빠른 밀크의 질문, 레이나는 또 정곡이 찔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를   이상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고 또 눈앞의 밀크와 편하게 말을 할 정도로 점점 마음을 열어가던 그녀였던 지라 이내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아인의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그들의 분노와 원한이 섞인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 그 때문에 난 이 갑옷 안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어. 도저히 얼굴을, 그리고맨몸을 들어내고  수가 없던 내 도피처가 바로 이 갑옷이야…. 저택을 나와서도 난 그 저주와도 같은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결국 심신을 안정케 해주는 블랙 볼 광석으로 만든 갑옷을 온몸에 걸치는 것으로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이걸 입은 뒤에는 그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고. 난  후로 씻을 때 빼고는 이 갑옷을 벗지 않아.”

블랙 볼 광석이란 탄광에서 석탄과 같이 발견되는 작은 공 형태의 검은 광석이다. 석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표면이 매끈하고 둥글게 생겨서 빛을 반사하는 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제련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치면 그 강도는 물론이고 가벼운 광석이라 여러 공예품에 장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 효과도 탁월한데 정신 이상 계의 저주나. 심신 미약한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보이는 광석이며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대부분 배제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

다만 광석 자체는 비싸지 않아도 제련에는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필요하기에 이처럼 전신 형태의 갑옷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갑옷은  공방에서 일하는 드워프 아저씨가 만들어 주셨어. 그분은 다리를 다치셔서 인간에게 잡혀 혹사를 당하다가 내가 처음으로 구출한 분이거든, 그 후로는 내 옆에서 날 도와주면서 공방장으로 일해주고 계셔.”

드워프, 작달막한 키를 가진 이 종족은 손재주가 탁월하고 호쾌하며 산에서 주로 생활하는채광의 종족이다.

채광에 익숙한 만큼 광석과 광물에도 익숙하여 그들의 손을 거치면 대부분 안 좋은 재료도 좋은 물건이 된다고  정도로 그들의 손재주는 대단했다.

엘프와는 앙숙이라 잘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부풀려낸  가지 속설에 불과했다.

여하튼 드워프의 실력이라면저 갑옷도 이해가 갔다. 이음세 부분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착용자가 줄을 느슨하게 풀면 펑퍼짐하게 넓어지면서 공간이 벌어져 안쪽에 공기가 차올라 환기도 시켜주는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다.

음식을 먹기 쉽게 입 부분이 따로 올라가는 형태로 만들어  배려도 엿보였고 겉으로 보기에는 칠흑으로 덥혀서 남성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몸매도 나름 신경 써서 만들었는지 꽤 풍만감이 있었다.

덕분에 레이나는 고통의 세월을 청산함과 동시에 전신에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럼…. 투구만 따로 착용해도 되지 않아? 아니 그냥 머리 장식으로 만든다거나 말이야.”

“머리 장식은 소용이 없었어. 그래서 투구를 제작해 보았는데 이건 큰 효과를 보긴 했어. 그런데…. 투구만 쓰면 남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워 보이잖아…. 그래서 하는  없이 갑옷까지 제작해 달라고 한 거야….”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아…. 그렇긴 하지라고 생각을 하며 그녀가 투구만 쓰고 아래쪽에는 귀족가 여인들이 입는 드레스를 입은 상상을 하고는 바로 고개를 테이블에 붙이고 들썩이기 시작하는 밀크, 아무리 생각해도 웃긴 조합이었다.

“으읏…. 아무리 웃겨도 그렇지 숙녀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웃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아하하. 미안해. 미안해 레이나. 그런데 정말 투구만 쓰고 드레스를 입은 레이나의 모습은 상상이 안 가서 말이야. 정말 미안해.”

“너무해!”

방금까지 무거웠던 기운이 소강 되기 시작한다.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밀크는 방금의 웃음으로 방 안의 공기를 환기한 것이다.

화를 내는 듯하던 레이나도 밀크의 웃음소리에 잠시  마주 웃으며 한동안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아….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네. 이야기했더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어.”

“원래 그런 일은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공유하고 사람이 있는 편이 좋다고 했어.”

“밀크는 인간도 아니면서 그런 말은 어떻게 알아?”

“아!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간처럼 말하다가 레이나에게 의심을  뻔했지만, 얼버무리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그녀.

더욱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더욱 그녀가 마음에 든 그는, 들고 왔던 보석함을 그녀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거…. 선물한 대상이 욕정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괜찮으려나.’

상대가 남자이면 넌지시 이 목걸이의 효과를 알려주고 대충 선물용으로 넘겨준 뒤 이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건만 어쩌다 보니 선물할 대상이 여자가 되어 버려서 목걸이의 효과가 걸리게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가 입고 있는 블랙 볼로 만들어진 갑옷이기에 정신계에 효과를 일으키는 이 목걸이가 효능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명작이고 처음으로 마음에 든 귀족 여인이기에 그는 꼭 이것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목걸이의 효능을 미리 알려주고 그녀가 받아주겠다 하면 그때 선물하는 것이었다.

“레이나.”

“응? 왜 그래?”

“너에게 선물을 하나주고 싶어서. 내가 직접 만든 목걸이야.”

밀크가 테이블 위에 목걸이가 들어 있는 보석함을 올리고 그 뚜껑을 열자 붉은빛이 찬란하게 흘러나와 레이나의 갑옷 안의 눈을 요사스럽게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크림슨 크리스털을 호위하는 듯  대형으로 지키고 선 오밀조밀한 크기의 루비들이 잘 세공된 목걸이였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레이나는 난생처음으로 보석이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허!”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목걸이에서 시선을 뗀 뒤 밀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그가 연 보석함의 뚜껑을 자신의 속으로 살며시 닫았다.

“이런 대단한 물건은 받을 수 없어. 나중에 밀크가 정말 주고 싶은 대상에게 선물해 주도록 해.”

그러나 밀크는 그런 그녀의 말에 똑같이 고개를 저으며 보석함의 뚜껑을 열었다. 그런 뒤  목걸이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거 내가 만든 명작 목걸이인데 이름은여왕과 여기사야. 정말 대단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함부로 선물 할 수 없는 목걸이거든, 그래서 블랙 볼 광석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레이나가 받아주었으면 해.”

“명작이라고? 거기에 능력까지 붙은 목걸이라니…. 이런 대단한 물건을 왜 하필 나 같이 아인들의 피로 살아온 여자에게 줄 생각인 거야?”

“선대가 저지른 일로 네가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고 봐. 그리고 넌 너 나름대로 아인들을 구조하고 보살피고 있어. 난 선대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노력해온 네 모습이 마음에 들어. 이 목걸이에는 선물한 여성의 호감을 받고, 또  여성이 선물한남성에게 욕정을 느끼게 되는 능력이 있어. 이 두 효과야 블랙 볼 광석을 입은 레이나에게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 이 목걸이의 주인은 바로 레이나야.”

“밀크….”

다시 열려있는 보석함의 안쪽에서 마치 자신을 어서 목에 걸라는  빛을 내는 여왕과 여기사의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레이나.

잠시의 고민을 끝낸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이걸 받으면…. 구원을 받을 거 같네….”

“걸어봐.”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거절의 뜻을 내비치는 레이나, 밀크는 아쉬워했지만, 그녀가 받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수는 없었다.

다시 보석함의 뚜껑을 닫으려고 하는 찰나 레이나의 두 손이 밀크의 손을 감싼 뒤 보석함을 돌려 그에게 향하도록 만든다.

“밀크가 걸어줘.”

거절이 아니었다. 그저 밀크가 직접 걸어 주었으면 했었다. 여기에 하나  자신을 놀라게 한 벌로 밀크를 잠시 골려주려고 뜸을 들였던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목걸이를 들어 올린 밀크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상의 갑옷의 이음새 부분을 늘려서 앞가슴 부분만 따로 분리를 시켰다.

그러자 구릿빛을 가진 목과 속이 조금 비치는 천으로 가려진 그녀의 가슴이 보였다. 갑옷에 쌓여 있어서 몰랐지만, 그녀는 제법 큼직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밀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의 뒤로 가서 목걸이를 넓게 펼친 후 그녀의 목에 걸어 주며 뒷부분에 매듭을 지었다.

그녀는 옆에 마련되어 있던 청동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한번비춰 보고는 마음에  것인지 갑옷 안쪽에서 소녀답게 기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어울리는데?”

“정말? 기뻐! 그리고 선물도 너무 고마워. 나,이것 소중히 간직할게. 밀크가 나에게 준 이 목걸이를 정말 소중히 간직할 거야.”

처음은 다소 낯설었다 하여도 같은 나잇대의 두 남녀는 결국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목걸이를 소중하게 감싸며 다시 상의 갑옷을 연결해 장착한 그녀, 밀크는 그녀가 아무런 느낌이 없는지 궁금해하며 질문했다.

“어때?”

“문제없는 거 같아. 밀크가  좋아지긴 했는데 이건 이 목걸이 효과랑은 전혀 상관없는 현상일걸?”

“야…. 대놓고 그렇게 말하니까 쑥스럽잖아.”

“어머? 나보다 한 살이나 더 많으면서 부끄러워하긴. 홀스타우로스들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전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거야?”

“그런  아니지만, 나랑  종족이 틀리잖아. 그렇다 보니까 뭔가 느낌이 달라서 그래. 간지러운 기분이 든달까?”

“그, 그런가…. 말하고 보니까 나도 볼이  뜨거워지는  같기도 하고.”

어색해지는 공기에 밀크와 레이나 둘 다 하하, 호호거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져서 고개를 숙이고는 침묵을 유지했다.

‘가, 갑자기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좀 당황스럽다.’

‘나, 나 미쳤나 봐….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하는 소리가 없어!’

마음속에 있던 말까지 모조리 꺼낸 상대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뒤늦게 목걸이의 효과가 발휘된 것일까?

뭐가 되었던 밀크를 향해 레이나가 느끼고 있는 마음은 분명 사랑의 감정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위로해준 이 남자에게 점점 마음이 끌려버린 것이다.

침묵을 도저히 참기 힘들었던지 레이나가 횡설수설하면서 화두를 하나 던졌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화두를 던지고 말았다.

“호, 홀스타우로스 남자는 워, 원래 그렇게 커?!”

“뭐, 뭐?!”

크냐는 그녀의 질문에 밀크는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가 특정 생식기 부위를 가르쳐 질문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말았다.

‘이, 이게 아닌데! 왜 이런 질문을 으아!!!’

‘이, 인간 여자는 원래 이렇게 화끈한 건가? 내가 알고 있던 지구의 여자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질문을 던진 레이나도 질문을 받은 밀크도 모두 당황한  화두, 그러나 밀크는 이대로 대답을 하지 않아도 문제라고 생각을 하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으, 응! 크지. 우리 홀스타우로스 자지가…. 음…. 그러니까.”

“꽤 괜찮아. 자지라고 해도 돼. 귀족이기 이전에 상인이라고 자지고 보지고 하는 상스러운 말도  알고 있으니까 편하게 사용해도 좋아!”

또 두 사람은 침묵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대화는 뭔가 이상했다.

‘아악!!!뭐래, 뭐래! 나 왜 이렇게 상스럽게 말한 거야! 으으…. 밀크가 오해하는 거 아니야?   이상한여자라고 생각하는  아니야?!’

‘아, 하하….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하는구나. 굉장히 편하긴 한데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결국 참지 못한 밀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리를 뜨기 위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 하하! 바, 밤이 깊었으니까 이제 슬슬 우리도 자자. 응? 남은 이야기는 내일 다시하는 거로….”

“악! 안돼! 도망치지 마! 해,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육성으로 터져 나온 레이나의 말과 함께 밀크에게 달려든 그녀가 그의 위로 쓰러지듯 안겨들면서 덮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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