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8화, 세상 밖으로.
“그런데?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나?”
“예…. 다름이 아니라 반돌프 백작 측에서 밀크 족장님과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족장님께 이리 찾아온 겁니다.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나와 만남을? 난 반돌프 백작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왜 나와 만나겠다는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밀크는 그의 이름을 들은 것도 처음인데 다짜고짜 만나고 싶다니 말이다.
거기에 아인을 사냥하여 그 아인들을 파는 것으로 돈을 버는 상인이 홀스타우로스의 족장을 만나고 싶다니 말만 들어서는 그냥 악어 입에 머리를 들이밀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밀크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자 퍼슨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이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예. 족장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다만 이야기는 끝까지 듣고 결정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반돌프 백작 측에서 만남을 주선한 쪽은 백작의 자제인 반돌프 남작입니다.”
“남작? 아…. 그러니까 반돌프 백작 그자가 날 보자고 한 게 아니고 반돌프 백작의 자제인 남작이 날 보자고한 거라 이건가?”
“예. 참고로 반돌프 남작은 백작과 다르게아인거래를 하지 않는 순수한 상단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상인 지식도 풍부하여 장차 백작의 자리와더불어 반돌프 상단까지 물려받을 수 있을 인재라 알려졌지요,”
여기까지 설명한 그는 목이 메는지 옆에 서 있는 밀 리가 내민 홀스타우로스의 젖으로 목을 축인 뒤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남작은 이번 일을 직접 사죄하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자는 뜻에서 모쪼록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만….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로는 뭔가 노리는 것이 있어 보입니다. 가령 돈이 될만한 거래라든지 말입니다. 물론 거래는 저희가 독점으로 하고 있으니 따로 건드릴 여지가 없지만, 족장님과 저의 중간에서 살짝 끼어들어서 떨어지는 이익을 노리는 듯합니다.”
“중간 이익을 노린다고? 뭐. 나랑 퍼슨이 거래한 물건을 남작측이 중간에 조금 더 웃돈을 주고 가져가서 따로 팔겠다. 이런 말인가?”
“정확합니다. 그렇게만 하여도 홀스타우로스의 젖과, 홀스타 주는 그 수요가 넘쳐나는 물건이라 엄청난 이익을 볼수 있지요. 저희도 중간에 거래할 대상이 있다면 마진은 덜 나와도 안전하고 빠르게 적당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테고요. 여기에 저희와 반돌프 백작의 거래지역은 완전히 다르니 물품이 겹쳐서 경쟁이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그렇군, 상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와서…. 남작과 만나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건…. 제게 물어보셔도 드릴 조언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족장님께서 만나길 꺼리시면 반돌프 남작을 잘 설득하여 밀크님께 다시는 손이 닿지 않게 하는 것과 만약 만나시겠다고 하시면 반돌프 남작을 이곳 인근에 있는 렘톤 마을로 안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족장님의 마을로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저희가 알아서 통제하지요.결정만 해주시면 족장님께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겠습니다.”
밀크가 원하는 대로 도움을 주겠다는 그의 믿음직한 말에 밀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남작을 만나 보도록 하지 우리 쪽 전사를 10명 대동할 테니 그쪽은 20명의 호위를 대동하고 렘톤에서 만나기로 하지. 언제가 좋을 거 같나?”
단순 계산으로 홀스타우로스 여전사 1인을 인간 2인으로 계산한 것이다. 다만 무장을 하고 투창까지 겸비한 여전사는 인간 3인에서 4인으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그래도 남작과 만난다고 하니 안도의 숨을 내쉬며 퍼슨이 대답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도 밀크가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족장님 그럼 일주일 후까지 렘톤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남작 측에도 이같이 전달을 하지요. 만나 보시면 알겠지만, 반돌프 남작은 말이 잘 통하는 인물입니다. 이번 일로 백작과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될 뻔한 것을 중간에서 중재해준 것도 남작입니다. 아마 좋은 대화가 될 거로 생각합니다.”
“그거야 상대를 만나봐야 알 일이지. 일단 알겠어. 그리고 바쁜데 이렇게 왔다 갔다 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군. 갈 때 젖이랑 술을 챙겨가라고 내 개인적인 선물이니까.”
“감사합니다. 족장님. 하하하~ 이렇게 챙겨 주시는데 어찌 수고를 마다하겠습니까”
호탕하게 웃은 퍼슨이 족장의 방을 나섰다. 밀크는 부족 전사 몇과 그를 배웅해준 뒤 다시 족장의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
“왜 그러니 우리 아들.”
방에 둘만 남게 되자 바로 그의 어미인 밀리에게 친근하게 구는 밀크, 밀리 역시 그런 그의 어리광을 받아 주며 따듯하게 그의 얼굴을 가슴으로 안아 주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인간들하고 만나는 거.”
“엄마는 밀크가 위험한 일은 반대하지만…. 이번 일은 우리 아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했으면 하는구나.”
“응?”
의외의 말이었다. 밀리는 단박에 그의 걱정을 하며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니? 하고 말릴 줄 알았는데 그의 뜻을 존중하고 있었다.
“내 아들이기 이전에 이제는 우리가 따르는 족장이잖니. 족장님께서 그리 결정을 하는데 엄마가 돼서 그 뜻에 따라주질 못할망정 아들의 길을 막다니 그건 잘못된 일이란다.”
“엄마….”
밀크와 눈높이를 맞춘 그녀는 그의 이마에 살짝 키스한 뒤 떨어졌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미소를 보이며 그를 격려했다.
“여전사들이 함께하니까 꼭 그 아이들 주변에 있으렴, 위험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단다. 알았지?”
“아까는 족장이라면서 갑자기 걱정하고 그래-”
“족장으로서 밖에 나가는 것은 나가는 거지만 아들이 걱정되는 건 모든 엄마가 다 공통적이란다. 호호호-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은 밖에 나가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지?”
“그렇지. 세상으로 나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네 아버지인 전 족장님도 밀크의 나이 때에 한번 렘톤 마을에 나가보곤 했었단다. 물론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인간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나가본 것이었지만. 가서 마을의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또 인간 여자랑 밤도 보내고 오셔서 그때 당시족장이셨던 아버님께 엄청 혼나셨지.”
“아이고 아빠….”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된 뒤 부끄러워하는 것은 모든 아들의 공통적인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밀크 또한 부끄러워하면서도 인간 세상에 처음으로 나가 본다는 생각에 뭔가 알 수 없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오르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여기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왜 그러니?”
“인간들 하고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내 대장장이로서의 가치를입증해 보고 싶어서!”
“그, 그래?”
하긴 그가 빠져있는 곳은 다른 것도 아닌 대장장이였다. 셰이크, 그리고 투창 이후로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던 그인지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물건을 하나 만들어서 이름을 뽐내보고 싶었다.
물론…. 이번에 만나게 될반돌프 남작에게 선물할 물건이지만 말이다. 거래하는 퍼슨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그의 작품은 되도록 그를 통하여 유통할 생각이었다.
다만 난생처음 만나는 귀족인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쪽에서도 분명 뭔가 선물을 하나 준비해 올 테니 자신도 괜찮은 물건 하나 정도는 준비해야 성이 찰 것이다.
그렇게 대장간으로향한 밀크는 대장간에 용광로를 달구고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들여온 질 좋은 광석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간 대장장이들과 교류를 하며 쌓아 올린 그의 기술은 그 광석들을 정교하게 제련하였고 광석들은 그의 손에 의해 빛이라도 나는 듯 점점 모습을 바꿔갔다.
제련하면서 광석에는 홈이 만들어졌다. 마치 보석을 끼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는 옆에 놓아둔 보석함에서 각종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중에서 루비, 그리고 붉은 크림슨 크리스털을 꺼내 들고는 작은 루비를 촘촘하게 홈에 끼워 넣고는 마지막으로 중앙에 크림슨 크리스털을 끼워 넣는 것으로 장식을 끝냈다.
크림슨 크리스털은 모몰이라고 불리는 검은색 두더쥐 같이 생긴 마수의 이마에 박혀 있는 보석이다.
죽는 순간 모몰의 생명력이 모두 이 보석으로 들어가서 새빨갛게 빛이 나기에 크림슨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다만 모몰들은 모두 지하에 서식하기에 얻기 힘든 보석 중의 하나다.
배가 고파서 야생동물을 사냥하기위해 밖으로 나오는 녀석들을 운 좋게 사냥하여 얻을 수 있기에 그만큼 더 고가를 자랑했다.
그렇게 루비와 크림슨 크리스털로 장식이 완료된 광석은 그대로 유광 처리가 시작되었다. 미리 자지에서 짜둔 싱싱한 젖을 이용한 유광 처리까지 끝나자 이제 그 본 모습을 드러낸 광석 그것은 잘 만들어진 목걸이 장식이었다.
밀리가 자주 만들던 목걸이 끈을 이용하여 완성된 목걸이는 유광 처리와 더불어 촘촘하게 박힌 루비들이 중앙에 있는 크림슨 크리스털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이라 더욱 아름다웠다.
[멋진 작품이 탄생하였군요. 이름을 지어 주시겠습니까?]
‘어? 이거 혹시!’
[예 드디어 오래간만에 명작을 탄생시키셨군요. 다만 이번에는 재료도 재료지만 크림슨 크리스털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련 성공률과 보석의 배열, 그리고 유광 처리 모두 수준급이지만, 역시나 중앙에서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표시하는 그 보석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보석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셰이크에 이어서 두 번째 명작을 만들었다는 기쁨에 밀크는 뛸 듯이 기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길었다. 길었어. 아…. 그보다 이름인가? 흠…. 목걸이의 이름이라.’
이름을 지어 보라는루의 말에 고민에 빠진 밀크, 목걸이를 찬찬히 살피니 루비가 크림슨 크리스털을 호위하듯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마치 기사와 여왕 같아서 문득 떠오른 이름을 속으로 말했다.
‘여왕과 여기사.’
[괜찮은 이름이군요. 루비가 여기사, 그리고 크림슨 크리스털이 여왕이라니 제법 잘 어울립니다. 당신의 두 번째 명작으로 여왕과 여기사가 등록되었습니다. 목걸이에 특수한 효과가 생겼는데 확인하시겠나요?]
‘효과? 셰이크는 그런 게 없었는데?’
[셰이크는 밀크의 실력이 낮아 특수한 효과가 생성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검들과 다르게 강한 강도와 높은 절삭력 등 그 자체의 능력이 높은 검이 되었지요. 이번 작품은 밀크의 숙련도가 높아서 능력까지 붙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이 목걸이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 거야?’
[선물 받은 여성이 선물한 대상에게 큰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더불어 욕정도 하게 되고요.]
‘아니….’
나쁜 건 아닌데 나빴다. 그러니까 밀크 입장에서 나쁜 건 없지만, 효과가 그게 다라니 그 점은 나빴다.
‘이건 선물용 말고는 거의 소용이 없잖아. 거기에 여자가 아니면 그야말로 쓸모가 없고 말이야.’
[그래도 아름다운 광채와 그 모습에 선물을 받는 대부분이 좋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소유하는 것 만으로도 이 정도의 명작을 소유했다는 허영을 채울 수 있을뿐더러 이것을 가진 남자는 다른 여성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선물까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넌지시 선물 효과도 말해주시지요?]
‘그게 좋을 거 같아. 참나…. 이거 명작을 만든 건 좋은데 효과가 영….’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명작을 만들어 업적 포인트가 쌓여 신체 강화 포인트가 50점 주어졌습니다. 바로 분배를 해 두겠습니다.]
‘부탁할게.’
그 말과 함께 루는 다시 조용해졌다. 요즘 들어 그녀의 등장 횟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밀크가 이 세계에 점점 적응해 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의 역할은 가이드, 그러니 가이드가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딱히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좀 서운하네. 그녀도 따지고 보면 내 엄마나 다름없는데,’
태어난 순간부터 같이 했으니 밀리처럼 그녀 역시 그에겐 엄마와 다름없었다. 물론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존재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작에 성공한 명작 여왕과 여기사를 선물 함에 잘 넣어 밀봉한 뒤 족장의 방으로 돌아간 그는 그것을 자신의 짐에 잘 넣어 두었다.
일주일 후 그는 마중하러 온 발렌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인근 마을인 렘튼으로 향하였다. 가는 동안 마차가 참 덜컹덜컹 난리를 피워서 엉덩이가 아파 혼이 나게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꾹 참았다.
“죄송합니다…. 하필 차출할 수 있는 마차가 전부 하급 짐 마차뿐이라….”
딱 봐도 빠르게 보수 공사를 하고 엉덩이 부분에 깔개를 깔아 그나마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만들어둔 티가 팍팍 들었다.
그래도 밖에서 걸어오는 인원도 있는데 앉아서 가는 정도면 감지덕지했다. 그는 애써 괜찮다고 말하며 덜컹거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결국에는 적응이 되었다. 엉덩이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니 잠잠해졌고 깔개 덕분에 폭신하니 앉을 만했다.
“행수님 도착했습니다.”
“알았다! 내리시죠. 족장님,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알았어.”
발렌의 안내를 받아 오늘의 약속 장소로 이동한 밀크, 그는 난생처음으로 보는 인간의 마을을 보며 조금 충격을 받았다.
‘역시 변방은 변방이구나…. 우리 부족의 마을과 별반 다른 바가 없어.’
가난한 변방의 마을은 인간의 문화를 이제 막 들이기 시작한 밀크의 부족보다 많이 못살았으면 못살았지 잘살지는 못하였다.
그들의 현실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며 약속이 잡힌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여관에 당도한 그는 발렌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