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7화, 노출되다.
그렇게 라파니가 밀크의 마을을 떠나고 위비는 그곳에 남아 홀스타우로스들의 치료를 받아 점점 건강해 지고 있었다.
얼마 뒷면 예전처럼 활발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 제사장이 말해주었고 위비는 다시 한번 밀크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위비를 구하여 위도레빗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일 때문에 밀크 부족의 마을 인근의 숲에서 점차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비를 구조할 당시 여전사들이 보았다던 인간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그들은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 뭔가를 감시하듯 바라보다가 물러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한 번은 다섯 명 이상 몰려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이 목격되어 전사들이 놀라 경계 태세를 취하자 인간들이 바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을 친 일도 있었다.
그렇게 인간들이 홀스타우로스의 영역으로 들어와 그녀들을 감시하거나 마음껏 활보하자 부족의 여전사들은 신경을 쓰느라 예민해져 갔다. 그리고 이상 현상은 그뿐이 아니었다.
“뒤를 밟혔다고?”
발렌의 보고, 그녀는 밖에서 들여오는 식량과 지원품을 가져오는 수송대가 수상한 자의 추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발렌은 밀크의 부족 마을에 남아서 그의 부하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때마다 서신을 보내 마을로 필요한 물건을 수송하게 했는데 그 수송대의 뒤를 누군가가 따라오다가 상단에서 고용한 사냥꾼이 활을 쏘자 도망을 쳤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합니다. 추격하던 자는 저희의 공격을 받아 도주해서 마을까지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저희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을 인근에서 여전사들이 수상한 인간을 보았다지 않나. 이번에는 우리와 거래하는 상단의 뒤를 밟았다? 예사로운 일이 아닌데….”
“전사들의 수색 반경을 더 넓게 늘릴까요?”
린다의 말에 밀크는 난색을 보였다.
“이미 지금도 수색에 30명이나 되는 여전사를 투입했는데 이보다 더 수색의 반경을 늘리면 전사들을 더 많이 차출해야 해. 그렇게 되면 여차하는 순간에 방어할 병력이 부족해지고 말 거야.”
“그건 그렇지만…. 마을의 위치가 인간들에게 알려지면 분명히 접촉을 해오는 자들이 생길 겁니다.”
“우린 에스타 상단의 퍼슨 대 행수의 보호와 독점 거래를 하고 있어. 그러니 에스타 상단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되지. 인간들은 자신들이 상대하는 자가 누군지 알면 그 뒷배를 보고 꼬리를 내리곤 하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에스타 상단은 이 첼슨 왕국에서 알아주는 상단이 아닌가?”
그 말에 발렌이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저희상단은 이 첼슨 왕국에서 가장 뛰어난 상단입니다. 백작 이상이 아니고서야 우릴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지요.”
“음? 그렇다면 후작급이 되면 쉽게 건드릴 수 있다는 건가?”
“예? 아…. 그건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저희가 후작 가와 싸운다면 양측의 피해가 모두 클 겁니다. 그걸 알고 있는 이상 후작 가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테지요. 다만 공작 정도로 거대한 귀족 집안과 싸운다면 저희가 필패입니다.”
“즉, 공작, 후작, 정도가 아니면 괜찮다는 거로군. 이런 변방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그런 대단한 귀족가일리는 없겠지만…. 운이 나쁜 상황도 고려는 해 두어야겠어. 린다.”
“예 족장님.”
“혹시 인간들과 시비가 붙게 되면 공격을 하되 살생은 금하고 최대한 우리 마을로 데려와 연금하라고 해. 인명피해가 생기면 그걸 빌미로 우리에게 협박하는 수가 생기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사들에게 그리 전달하지요.”
그렇게 별일 없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결국,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으니 경계를 나갔던 홀스타우로스들이 무기를 들고 위협을 가하는 인간들과 시비가 생겨 그들과 교전을 한 뒤 기절한 자들을 데리고 마을에 온 것이었다.
모두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라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알지 못하는 상태지만 적대 행위를 인간이라는 점에서 밀크는 그자들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일단 발렌을 비롯한 너희 에스타 상단의 인간들은 모두 몸을 숨겨두도록 일단 녀석들의 정체를 알기 전엔 너희가 나서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족장님이 직접 저들을 상대하실 생각인가요?”
“그래. 일단은 그게 나아. 저들의 뒷배가 누군지 알아낸 후 다시 상의를 해보자고. 우리끼리 해결이 가능하면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즉시 이 일을 대행수에게 알려줘. 우리 선에서 정리가 안 되면 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테니까.”
“그렇게 할게요. 그럼!”
발렌이 밖으로 나가자 린다가 밀크에게 질문했다.
“뭐 하는 놈들일까요.”
“위비를 공격한 아인 사냥꾼 놈들이 아닐까 예상 중이야.”
“간이 부은 것도 아니고. 감히 부족을 이룬 우리 홀스타우로스를 공격한다고요?”
“발렌이 말해준 건데. 위도레빗보다 우리 홀스타우로스가 더 비싸다는 거 알고 있어?”
“네?”
“아인 사냥꾼 녀석들에게도 사냥하는 아인을 가격으로 책정하는 단계가 있다더군. 위도레빗이 B급 중상급의 물품이고 우리 홀스타우로스는 A급 상급 물품이야.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은 힘도 좋고 질 좋은 젖까지 생산할 수 있으니 귀족가 높으신 양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애완동물이라고 하더군.”
“그, 그런….”
“아마도 위비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놓아준 인간들이 우리 여전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것을 자기 동료들에게 말해준 모양이야. 그래서 인근에 홀스타우로스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고 사냥을 할 생각이었겠지. 다만. 우리가 부족 단위로 많은 인원이 있는 줄은 모르고 소수가 찾아와서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럼 저놈들은 우릴 사냥하러 온 자식들이라는 말이군요!”
밀크의 말을 끝까지 들은 린다가 분노를 일으키며 화를 내려가 하자 밀크는 애써 그녀를 말렸다.
“일단 진정해. 우선 놈들의 뒷배를 알아보고 나서 처리해도 늦지 않아. 인간 놈들의 왕이나 귀족이 뒤에 있으면 우리끼리 해결하기 골치가 아파. 그러니 흥분해서 사람들 죽이지 말고 내 호위에나 신경 써. 알았지?”
“으! 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밀크와 린다는수상한 인간들이 잡혀 있는 가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흉흉한 눈빛의 인간들이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한 곳에 묶여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는 밀크를 발견하고는 옆자리에 있는 남자를 툭툭 쳐서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대장. 저기 비싼 놈이 옵니다.”
“씁…. 비싼 놈이면 뭐하냐. 족장이 있다는 건 이 홀스타우로스가 부족을 이루었다는 거다. 에이…. 오래간만에 좋은 벌이 하나 했더니 죽만 쒔군,”
밀크를 보자마자 비싼 놈이라 칭하는 남자. 그리고 그런 밀크를 바라보고 그가 족장임을 눈치채고 부족을 이루었다는 것까지 지레짐작한 남자. 아무래도 이들은 홀스타우로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비싼 놈, 그리고 벌이, 여기에 아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직업은 아인 사냥꾼이 확실했다.
“어찌할 거요?”
“뭘 어째? 우리 뒤에 있는 분 이름 말하고 이 무지한 것들이 풀어주기를 바라야지.”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니오?”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홀스타우로스가 덜떨어지는 아인이라고 해도 인간 귀족의 위대함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이름만 좀 대면 지레겁을 먹고 풀어줄 거야.”
“알겠수.”
밀크의 린다가 가까이 오자 모두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밀크는 남자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여긴 우리 부족의영역이다. 허락 없이 우리 영역에 들어온 연유가 무엇이냐!”
그 말에 대장이라 불린 남자가 대답했다.
“우린 몰랐소. 이 산중에 홀스타우로스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소. 우린 모두 사냥꾼들이오. 산중을 뒤져서 귀족가에 진상할 진귀한 동물을 사냥하는 일이 우리들의 일이지. 당신네 영역에 들어온 것은 내 사과를 하겠으니 우릴 풀어주길 바라오. 혹시나 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의 뒤에는 대 첼슨 왕국의 자랑스러운 귀족이신 반돌프 백작님이 계신다오. 우리에게 해를 가하면 그분의 분노를 받게 될 테니 그리 아시오.”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런지 여유로우면서도 은근히 밀크를 협박하는 자세가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다른 인물들이 적잖이 겁먹은 표정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반돌프 백작이라, 밀크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발렌은 알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처분을 일단 연금으로 선택하였다.
“그냥 풀어줄 수는 없지. 네 말대로 너희의 뒤에 반돌프라는 백작이 있다면 우리에게 성의를 보이고 너희를 찾아갈 테니 한동안은 너희를 여기에 연금하도록 하겠다.”
“이거 족장님은 아인치곤 머리가 좋으신 분이군요. 그럼 우리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그 성의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아시겠지요?”
“말할 필요도 없지. 삼시 세끼는 꼭 챙겨줄 테니 얌전히 소식을 기다려라.”
전사들에게 그들을 묶어 잘 감시하라고 한 밀크는 놈들에게 들은 것을 발렌에게 말해주며 대화를 나누었다.
“반돌프라고 했다고요?”
“그래 아는 인물인가?”
“상인 중에 반돌프를 모르는 자는 없을 겁니다. 그 역시 귀족이면서 상단을 이끌고 있으니까요.”
“상단을 운영하는 귀족이라….”
밀크가 예상외라는 듯 표정을 짓자 발렌이 이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저들이 아인 사냥꾼이라는 것이 확실하군요. 동물을 사냥해서 귀족들에게 진상한다는것은 바로 아인들을 사냥해서 귀족에게 팔아넘긴다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입니다. 반돌프 백작은 첼슨 왕국에서 알아주는 아인 거래 상인입니다. 그자의 손을 탄 아인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지요. 그자들도 분명 반돌프가 기르는 사냥꾼 집단일 겁니다.”
“에스타 상단과의 사이는?”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적대하는 위치도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돌프와 저희 상단은 나아가는 길 자체가 달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저희도 인간 노예를 취급하긴 하지만, 아인들을 잡아들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로 인하여 그와 어떤 문제가 발생할 거 같아?”
“일단 부족을 이루고 있는 한 홀스타우로스는 함부로 사냥할 수 없습니다. 동족을 유린당한 분노로 홀스타우로스가 전쟁을 일으켜 인근 마을을 공격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왕국으로서도 참 위험한 일이니까요. 거기에 밀크님은 저희 상단과 거래를 하는 이른바 고객입니다. 그자가 귀족이라 하지만 상단 일에도 한 발을 걸치고 있으니 이를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왕국 법에서 걸리고 상인법에도 걸리니 반돌프에게 승산은 전혀 없지요.”
“즉 우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거로군. 그렇다면 발렌과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
“원래라면 그렇지만, 상대는 백작이니 저 같은 초보 행수가 상대할 위치가 아닌지라 퍼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퍼슨에게 여기 잡아둔 놈들의 목숨값을 톡톡히 받아내라고 전달해줘. 나와 퍼슨이 목숨값으로 받아낸 반돌프 백작의 성의를 반씩 나누는 거로 하자고. 물론 우린 인간의 돈이 필요 없으니까 값에 해당하는 물품으로 대체하는 거로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밀크의 부족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발렌의 편지를 통하여 일에 바쁜 퍼슨에게 전달 되었고 그는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반돌프 백작과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금 의외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밀크의 마을을 직접 찾아온 퍼슨은 이번에 반돌프와 만난 일을 밀크에게 소상히 전달했다.
“거래는 잘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반돌프 백작이 키운 아인 사냥꾼이 맞고 그의명령으로 아인을 사냥하기 위해 그 산에 잠입해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있던 위도레빗 사냥 건으로 사사로이 밀크님의 마을에 침입했던 것도 사과했고 그것까지 모두 사죄하는 의미에서 200골드라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그중 100골드에 해당하는 금액을 식량과 각종 건축 자재로 바꾸어 가져왔으니 요긴하게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골드, 1골드가 일반 가정에서 2달 생활할 수 있는 돈이라 하였으니 사람 다섯의 목숨값치고는 확실히 성의를 보인 것이었다.
바로 내치지 않고 목숨값을 보낸 것을 보니 그자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인 사냥꾼이었던 모양이다. 밀크가 퍼슨을 칭찬하며 가져온 물품 품목을 확인하려 할 때 퍼슨이 아직 뭔가 남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