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3화, 귀한 손이 오다.
“뭐, 뭐야!”
“이건 창이잖아?!”
“헨슨!헨슨!!!”
모오오오!!!
마아아앙!!!
동료의 죽음에 깜짝 놀라며 슬퍼할 시간도 없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하울링 소리에 괴한들은 긴장해야 했다.
“호, 홀스타우로스.”
“서, 설마 녀석들의 생활권이란 말인가!”
“제길….”
토끼귀를 한여인의 발을 자르려고 했던 남자는 회수했다. 그리고는다른 괴한들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지시를 내렸다.
“천천히 후퇴한다. 절대 놈들을 자극하지 마라.”
“대, 대장?!”
“가, 갑자기 저놈들이 왜 저러는 거요?!”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나? 아인을 공격하여 신체를 회손하려고 했다.”
“그, 그게 왜….”
“홀스타우로스는 그 어떤 종족과도 척을 지지 않지만, 같은 아인종이 공격당하는 것은 절대 두고 보지 않는다. 헨슨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이건 경고야. 어서 물러나야 해!”
“헨슨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 멍청한 놈!”
대장의 일갈에 복수 운운하던 괴한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의 조용해지자 대장이 이어서 말했다.
“내가 분명 경고라고 말했을 텐데? 저투창을 잘 봐라.”
“네?”
그들이 확인한 투창,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에스타 상단이 주력으로 밀고 있는 무기였다. 가볍고 단단하고 또 멀리서 던지기 쉽게 만들어진 아주 위력적인 무기, 바로 대장장이 밀크가 만든 투창이었다.
끝이 거대한 화살촉과도 같이 생긴 그것을 확인한 괴한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저 무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이 대륙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홀스타우로스들은 원래 원거리 공격을 잘 하지 않아. 그것은 근접전에 매우 탁월하기 때문도 있지만, 신체적으로 활을 잘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런데 이 부족은 인간과 거래를 하는 모양이다. 밀크제 투창이라면 저놈들도 사용할 수 있겠지. 홀스타우로스의 힘으로 저 투창을 던져 우릴 상대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이길 수 있겠나?”
“그,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밀크가 홀스타우로스를 위해 만들어낸 투창이니 말이다. 인간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원래는 홀스타우로스의 주 무기라고 해야하지만, 설명이 인간들 관점이긴 해도 얼추 맞는 설명이었다.
“못 이긴다. 어서 후퇴할 준비나 해. 이 이상 해를 끼치지 않으면 저놈들도 더는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 그걸 어떻게 그리 잘 아시나요?”
“너는 아인 사냥꾼이라는 놈이 아인에 대한 공부도 안 하나!!!”
“아….”
멍청한 그의 질문에 어이가없다는 듯 대답을 하는 대장의 말, 그리고 그런 멍청한 질문을 던진 아인 사냥꾼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천천히 토끼 귀 여성을 놔주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않게 되었을 때 홀스타우로스 여전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물러났나?”
“갔어.”
“흠….”
“이 여자 위도레빗 아니야?”
“그러게…. 그런데 어쩌지? 족장님이 즉결처분하지 말고 무조건 경계만 하라고 하셨는데.”
“이 여자가 공격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면 뭐라 안 하시겠지. 그보다는 어서 마을로 가자 이 여자 점점 체온이 떨어지고 있어.”
“알았어. 모두 후퇴! 마을로 이동한다!”
모오오오!!!
남자를 관통한 창을 챙긴 홀스타우로스 전사들은 땅에 누워있는 기절한 위도레빗 여성을 둘러업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남아있는 것은 차디찬 숲속에 혼자 남은 남자의 시체였고 그 시체는 곧 자연의 이치에 따라 다른 야생동물의 먹이가 될 것이다.
잠시 후 돌아온 여전사들이 숲에서 경계중에 공격을 받던 위도레빗 종족의 여성을 구했다는 것을 전달받은 밀크는 바로 그녀가 치료를 받는 치료소로 향하였다.
그곳에 먼저가서 그녀의 상태를 보고 있던 제사장 루피카는 마침 들어온 밀크를 본 뒤 설명하였다.
“영양 상태도 엉망이고 몸 곳곳에 피멍도 들어 있어요. 거기에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어둔 것인지 쇳독도 올랐고요. 치료하면 나아지겠지만,기일이 좀 걸릴 거예요.”
“의식은?”
“아마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예요. 아인들은 모두 튼튼하거든요.”
루피카의 설명을 들은 밀크는 침대 위에 누워서 고른 숨을 쉬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귀엽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앙증맞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오밀조밀한 얼굴 그러나 아래에 펼쳐진 몸은 성인 인간 여성의 몸과 완전히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귀는 머리 위에 돋아난 토끼의 귀와 같았으며 엉덩이 뒤에 짧고 동그란 토끼 꼬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발부터 무릎 아랫부분이 토끼의 발처럼 생겼고 하얀 털로 뒤덮여 있었다. 확실히 인간이 아닌 아인이었다.
‘아인들은 다 이렇게 육감적인 건가….’
지금까지 본 것이 홀스타우로스 그리고 이번에 처음 보는 위도레빗 종족뿐이었지만, 어째 두 종족 모두성인 여성의상징인 가슴 그리고 엉덩이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위도레빗인 이 여자의 경우 허리라든지 골반 쪽에 살이 찌지 않아서 육감적인 몸매이면서도 그리 살이 쪄 보이지 않는 위험한 몸매였다.
[밀크의 예전 세상에도 이 종족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아니, 아니 그거 종족이 아니고 술집 아르바이트 들이라고.’
물론 그냥 술집은 아니고 좀 더 하드한 술집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굳이 비교하자면 지구의 아르바이트바니걸은 이 위도레빗 종족에게 명함도 못 내민다. 일단 가슴부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농담이었습니다. 확실히 아인들은 밀크의 말을 빌려서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많이 있지요. 워낙 인간보다 튼튼한 종족들이기 때문에그만큼 호르몬 작용도 잘 일어나서 그런 겁니다. 그렇지 못한 아인들은 다른 쪽으로 특출난 예도 있고요]
‘예를 들면?’
[잘 알고 계시는 드워프와 엘프가 있겠네요. 두 종족은 모두 각각 작은 키, 그리고 큰 키가 특징입니다. 드워프는 땅딸막한 키를 가졌지만, 그것은 산지에 특화된 튼튼한 하반신이 발달하여 그런 것이고 엘프의 경우 숲에서 생활하기에 호리호리하고 키가 큽니다. 표현을 다시 빌리면 드워프 여성은 빵빵한 체형, 그리고 엘프 여성은 쭉쭉한 체형이라 할 수 있지요.]
‘그 표현 정말 이해가 잘 가는걸….’
왠지 보지도 않았는데 눈앞에 두 종족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해서 참 난감했다. 이렇게 루에게 다른 아인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앞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윽….”
위도레빗 여성이 정신을 차리려는 모양인지 몸을 뒤척이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먼저 바라본 대상은 밀크였다.
“누, 누구….”
“환영하지. 여긴 홀스타우로스 마을이고 난 그 마을의 족장인 밀크야.”
“조, 족장? 여, 여기가 정말 홀스타우로스 마을인가요?!”
“그래. 그런데 몸은 괜찮아? 괜찮다면 소개를 좀 부탁하고 싶군.”
“겨, 결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위비, 위도레빗 종족이고 라파니 족장님을 따르는 수전사에요.”
“수전사?”
“아…. 저희는 부족 수비를 하는 전사를 수전사, 그리고 공격을 나서는 전사를 공전사라고 칭합니다. 전 그중에 족장님의 곁을 지키는 수전사랍니다.”
“그렇군. 그런데 어쩌다가 인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거지? 우리 전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상처도 잔뜩 입었고 또 영양실조 직전이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밀크의 물음에위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뭔가를 찾는 것 같더니 다행히 몸에 잘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밀크를 바라보며 목숨을 살려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족장님. 저는 인근에 있는 다른 위도레빗 부족에게 족장님이 전하는 친서를 들고 방문하던 중이었어요. 원래 이런 일은 발이 빠르고 몸을 지킬 수 있는 전사들, 그중에 마을을 지키는 수전사들이 자주 하곤 하거든요. 그런데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아인사냥꾼을 만나서 잡히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곧 추격당해서 이런 꼴이 되었고요.”
“아인 사냥꾼이라?”
그 물음에 루피카가 뒤에서 귓속말하며 알려 주었다.
“아인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추악한 인간들입니다. 인간의 귀족들은 저희 같은 아인들을 애완동물인 양 키우곤 하거든요.”
“전문적으로 우릴 사냥하는 인간도 있다는 말이야? 이런….”
루가 알려줘서 인간 귀족들이 아인을 애완동물처럼 소유하고 키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문적인 사냥꾼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그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위비는 다시한번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족장님. 족장님과 전사분들이 아니었다면 전 그곳에서 죽었을 거예요.”
“죽어? 애완동물처럼 키운다며?”
“예…. 일부 아인들은 그렇게 키워지기도 하지만, 저희 위도레빗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포획당하기도 해요.”
자신의 발을 잠시 손으로 만진 그녀는 밀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저희 위도레빗의 발은 숲이고 산이고 어디서든 빠르게달리고 또 여간해서는 상처도 나지 않아요. 그래서…. 이 발의 털가죽을 원하는 자들이 많이 있답니다. 살아 있는 위도레빗의 발 털가죽을 그대로 벗겨내면 그 생명력이 남아서 더 좋은 소재가 된다고도 하고요,”
“개 같은….”
즉 신발의 소재였다. 위도레빗의 털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을 신으면 위도레빗들처럼 산이고 들이고 어디서든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고 그 강도도 높아서이 종족의 털가죽으로 만든 물건은 고가로 거래되곤 했다.
“그렇다면 놈들은 그 자리에서 네 털가죽을 벗기려 했다는 거야?”
“예…. 만약 전사분들이 조금만 늦으셨으면 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저희 종족은 다른 건 몰라도 복수심은 남다르거든요. 만약 죽은 자가 발견되면 다른 부족일지라도 복수를 한답니다. 그 시체로부터 사방팔방으로 수색대를있는 대로 펼쳐서 범인을 찾아낼 정도로 저희는 복수에 민감해요. 만약 털가죽을 벋기도 살려둔다면 그 후환이 두려웠을 테니 무조건 목숨을 끊어서 찾기 힘든 곳에 매장해 버렸을 거예요.”
확실히이 세계의 인간들은 밀크의 기억 속 인간들이 아니었다. 아인을 멸시하거나 죽이거나, 또 상품의 재료로 쓰거나 애완동물처럼 부리거나….
하긴 같은 인간조차 노예로 부리는 자들이니 뭘 못할까? 지금 그의 마을에 있는 인간 대장장이들도 노예 출신이었다. 지금이야 아인들의 틈에서 사람처럼은 살고 있지만, 만약 이곳이 아니었다면 그녀들 중 몇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일단 인간의 악행은 악행이고 중요한 것은 그녀의 처치였다. 밀크는 일단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녀가 전달하려던 편지에 관한 내용을 물어보았다.
“혹시 문제가 없다면 그 편지 내용을 알 수 있을까?”
“저희 족장님께서 가까운 마을에 보내는 친서예요. 별로 큰 내용은 없고 안부를 물어보는 내용이랍니다.”
“그런가….”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폐를 끼치지 않고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거야?”
“괜찮아요. 조금 아프긴 하지만…. 이 편지를 다른 부족마을에 전달하는 일은끝내야 하니까요.”
“애써 살려줬는데 다시 죽으러 가겠다는 말처럼 들리네…. 그만둬. 네 임무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네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넌 여기서 상처나 치료하라고.”
“도, 도와주신다니요?”
“마을의 위치, 그리고 이 편지를 전하려 했던 마을의 위치를 알려줘 우리 전사들을 그쪽으로 보내서 네 상황과 처지를 알리고 편지도 전달해 줄게.”
“그, 그럴 수가!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민폐는 무슨…. 지금 나가서 어디 야산에서 죽는 게 더 민폐라고. 그런 줄 알고 넌 몸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린다!”
“예 족장님.”
“위비에게 부족 마을 위치랑 편지 전달할 마을 위치 듣고 그곳에 발 빠른 전사들을 다섯씩 파견해. 방금 들었겠지만, 이 주변에 아인사냥꾼들이 있다고 하니까. 절대 혼자 보내지 말고. 그리고 전사들에게 전달해. 내가 허락할 테니 에스타 상단원이 아닌 수상한 자가 마을인근으로 접근하면 가차 없이 척살해”
“예. 족장님. 그리 처리하겠어요.”
밀크의 명령을 받은 린다가 움직였고 그녀의 압박에 위비는 질린듯한 얼굴로 마을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이 일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밀크 부족 족장의 집에는루피카가 말한 그 귀한 손이 도착하여 밀크에게 인사를 올렸다.
자리에 앉아 있는 밀크가위로 올려다봐야 할 풍채가 좋은여인, 다른 위도레빗 여인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토끼 귀의 여인이었다.
밝은 에메랄드빛의 머리를 가진 그 여인은 가슴도, 그리고 엉덩이도 다른 위도레빗 여인들을 압도하였고 그 미모 또한 대단하였다.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 밀크에게 인사를 한 그녀는 당당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