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화, 체계 변화.
“대장장이들은 내가 어제 직접 확인해 보았으니 따로 보고 받을 내용은 없고. 간단하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걸 말해봐.”
“예~ 대장간 내부 시설에는 문제가 없지만, 역시 영양 관련해서 인간 여자는 더욱 다양한 식료품을 섭취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야 워낙 건강하지만, 그녀들을 그렇지 못하니까요.”
홀스타우로스야 과일만 있어도 생활할 수 있다. 잡식이기에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주변에 있으면 그것을 주 식량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한 영양을 섭취해야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영양 균형이 깨지면 그것이 바로 몸에 나타나는 아주 민감한 생물이다.
“그것 말고는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음. 다양한 식품이란 말이지. 알았어 그 부분은 내가 따로 정리해서 발렌에게 말을해둘게. 대장장이들은 앞으로도 실력을 키우는데 정진하도록 하고 인간 노예들과 잘 지내서 그녀들의 기술을 전수하라고. 할당량은 앞으로 좀 더 늘어나게 될 거야. 요즘 전사들이 질 좋은 무기 때문에 사냥에 신이 난 모양인지 무기를 좀 험하게 쓰더라고.”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수량은 전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메어리의 당당한 말에 린다는 괜히 미안했는지 그녀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미안한 감정을 표시했다.
“다음은 유리로군. 채집 조는 어떻지?”
메어리가 자리로 돌아가고 유리가 앞으로 나와서 밀크에게 인사한 뒤 채집 조의 상황을 보고 올렸다.
“유크가 빠져나간 자리는 새로 보내주신 아이들이 잘 적응하였어요. 어린아이들이지만 훈련만 잘 시키면 충분히 제 몫을 해줄 거라 생각되네요. 다만, 뒷산의 채집 장소가 슬슬 휴식기에 들어가려는 모양입니다.”
“과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나?”
“예. 앞으로 채집 장소를 새로 물색하거나 아니면 부족의 양식을 외부에 잠시 의탁을 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뒷산의 과일이 다시 풍족해지려면 적어도 3개월에서 4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듯 보여요.”
“음…. 채집을 위한 인간 노예를 좀 구해봐야 하나….”
“네?”
“우리는 몸이 무거워서 높은 곳에 있는 과일을 채집할 수 없지만, 인간들은 다르지. 나무도 잘 타고 몸이 가벼운 노예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생각해?”
“부족의 일을 너무 인간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게 아닌지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 알았어 이 이야기는 없던 거로 하지.”
인간의 문화를 받아들여 편리를 추구하는 것도 어느 수준까지여야지 인간 자체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은 홀스타우로스로서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파티마들은 귀중한 대장장이였고 여성들이라 별문제가 없었지만,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채집에까지 인간 노예를 들여와 일을 돕게만드는 것은 불필요한 모양이었다.
“아직 봄이니 농기구와 텃밭용 모종들을 들여와 농사에 힘써보는 것도 방법이겠군. 채집도 물론 중요하지만, 운에 기대야 하는 채집을 대신할 확실한 식량 체계가 필요한 시기야.”
밀크와 더불어 그와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이 많이 열리게 된 그녀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유리 또한 그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확실히 이젠 저희 부족의 수는 물경 700명에 달합니다. 이 많은 수의 인원이 사냥과 채집으로만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지극히 위험하지요. 저희가 농사에 큰 지식은 없어 언제나 죽을 쑤기 일쑤였지만, 인간들의 지식의 도움을 받으면 분명 좋은 효과를 볼 겁니다.”
홀스타우로스 일족이 농자를 안 짓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농사를 지어도 그 결과가 시원치 않아서 지금까지 주요 식량 수급 원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뒷산의 식량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더욱 확실 식량 수급을 위한 농사체계 도입은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농사 지식을 위한 책자를 추가로 들여오는 것으로 하지. 아무래도 노예를 더 늘리는 것은좀 그렇겠지?”
“이견 없습니다.”
“저 역시.”
“예. 노예보다는차라리 책자를 가져와 저희가 지식을 깨우치는 것이 낫지요.”
농사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홀스타우로스, 즉 지구에 기준으로 따르면 소다(젖소에 가깝지만 어쨌든 힘 좋은 소 인간들이다).
대장기술이야 정교한 손놀림에 이어 계속 온 힘을 다한 정진의 정진을 통하여 쌓인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지만, 농사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 이전에 농사할 인력이다.
그리고 홀스타우로스에게 그런 인력은 차고 넘친다. 부족 내의 모든 여성이 힘이 넘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밀크의 경우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의 지식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기에 농사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았다.
‘병충해를 막으면 농사의 반은 성공하는 셈이지.’
관련된 전문 지식은 없을지라도 주워들은 것은 있는 법, 같이 막노동에 전념하던 동료 중에는 농사일하던 이씨라는 남자가 있었다.
공사판이다 보니 본명은 들을 수 없었지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공사판에 나와 품삯을 벌어가곤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밭이 하나 있던 남자는 담배를 피우거나 쉬는 시간이 있을 때면 친하게 지내던 그에게 자주 농사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즐겁게 미소 짓곤 했다.
다만 과거의 밀크는 농사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기억이 모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잘 들어주는 건데 하고 후회를 해보지만 이지 과거의 일, 돌이켜봐도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기억을 하는 내용이 바로 병충해와 인력, 그리고 마르지 않는 수원 등등 당장에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필요한 건 다 있네. 병충해 관련해서는 인간들의 기구의 도움을 받고 수원이야 마을의 가까이에 있는 강에서 얻을 수 있고 인력이야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이 충분하니 말이야.’
“그럼 유리는 채집조의 수를 줄이고 그 줄어든 인원들을 농사 조에 편입시켜, 그리고 앞으로는 유리가 농사조의 인원들도 모두 관리하도록 해. 농기구와 관련 서적, 그리고 모종들을 가져오면 그것들을 이용하여 가을까지 최대한 성과를 만들어 봐.”
“예 족장님.”
농사조라고 했지만, 그쪽에는 따로 조장이 없었다. 그저 마을에서 아직 할 일이 마땅히 정해지지 않은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이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사용되는 곳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이처럼 유리를 통하여 그녀들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해둔 것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린다. 여전사들은 어때?”
“예! 족장님께서 지원해 주시는 각종 질 좋은 무기,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도구들 덕분에 피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데빌베어 사냥에 경상자와 중상자가 많이 줄었고 사망자는 아예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군. 앞으로도 노력해 주길 바랄게.”
“물론입니다!”
부족의 모든 여전사를 이끄는 대전사, 즉 여전사들의 장은 얼마 전에 몸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고 은퇴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촉망받고 있던 부족 최고 전사인 린다가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다.
밀크의 호위에 유크가 추가된 것은 이런 이유였다. 린다가 그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었으니 그만큼 믿을만한 전사를 추가한 것이다.
훈련이 부족하여 벨보다 실력이 부족한 그녀였지만, 곧잘 따라오며 무시무시하게 그녀를 따라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부족의 여전사들은 새로이 대전사가 된 린다, 그리고 밀크가 제공하는 각종 질 좋은 무기와 도구로 인하여 그 전투력은 하루가 다르게 매일매일 높아지는 중이었다.
“참! 린다.”
“예. 족장님.”
“우리도 이제 여전사들의 지휘 체계를 추가하는 게 어떨까?”
“예를 들자면…. 어떻게 말씀이신가요?”
“마을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고 전사들의 수도 이제 200명이나 되잖아. 그런데 아직도 지휘하는 사람은 린다 혼자지. 린다를 한 단계 윗자리에 올리고 대전사의 직위를 세 명 늘릴까 하는데 어때?”
“기쁘게 받아들일 일이지만…. 제가 그런 큰 자리에 오를 실력이 있는지….”
“실력이나 차고 넘친다고. 그보다는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을 해주었으니 그 노력에 보상을 해주어야지. 앞으로 이런 식으로 다른 부분 역시 체계화를 시켜 나갈 거야. 대장장이들과 오늘은 참여하지 못한 가죽 공방, 그리고 천 공방 등등 모두”
“아, 알겠습니다.”
“그럼 대전사 세 명을 뽑는 일은 린다 너에게 일임하지. 그리고 이 시간부터 린다는 전사장에 임명하지. 지금 막 지은 이름이지만 어감상 제사장과 비슷하여 지휘 체계에 혼동은 오지 않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물론 그녀의 직위가 제사장과 동급이 된 것은 아니지만 직위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에서 오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제사장 역시 이 이름에 딱히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사들의 수가 많아진 만큼 그 지휘 체계의 변화는 필연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럼 태양의 날 오전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지. 모두 다음 달 회의가 있기 전까지 지시한 부분을 잘 이행해 주기 바랄게.”
알겠습니다!
모두가 대답한 뒤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유독 제사장인 루피카만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제사장?”
“족장님. 계시가 있었습니다.”
“계시?”
이른바 선조의 계시. 제사장은 그녀는 가끔 선조 제사장의 계시를 받기도 한다. 죽어서 영혼의 상태로 남아 이 부족을 수호해주는 수호신으로 남은 선조 제사장은 큰 길흉이 일어날 때마다 그녀에게 귀띔을 해주기도 했다.
“귀한 손이 방문할 거라고 합니다.”
“귀한 손이라…. 혹시 종족? 아니 인상착의라든지 이야기는 없었나?”
“아시겠지만, 영혼은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한계가 있습니다. 귀한 손이 올 것이다. 이말 뿐이었어요.”
이렇게 계시라도 줄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어차피 선조 제사장이 전달해 주는 길, 그리고 흉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에 맞게 준비를 하면 될 일이었다.
“린다!”
“예!”
밖에서 그의 방 입구를 지키고 있던 린다는 밀크의 부름에 응답하며 바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사들을 경계태세로 대기시키고 무슨 일이 벌어지면 바로 보고를올리라고 전달해라. 모든 일은 내 허락 없이 즉결처분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루피카가 받은 계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이것이 길이 될 것인지 흉이 될 것인지는 아직 더 봐야 했지만 말이다.
얼마 후 밀크의 부족이 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누군가가 숲속을 해치며 쫓아오는 인간을 피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나 빠르게 뛰어온 것인지 작은 발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며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할딱거리면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땅을 박차며 빠르게 질주했고 그녀가 지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나 그곳을 인간들이 달려와 그녀의 뒤를 쫓았다.
“헉! 헉! 헉!”
“잡아라!”
“놓치면 안 돼!”
“포획이 힘들면 죽여도 좋다! 절대 놓치지만 마라!”
팡!
뒤를 쫓던 괴한 중 하나가 활을 발사했다. 다행히 날아간 화살은 나무에 틀어박혔지만, 그 위치는 도망을 치고 있는 여인의 얼굴 바로 옆이었다.
“아악!”
깜짝 놀란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발을 더 빨리하여 그들과 거리를 벌리려고 하였지만, 처음 보는 숲에서 빠르게 도망치기란 힘든 일이었다.
용을 쓰며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는 순간 앞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지 못해 그가 휘두른 몽둥이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아 뒤로 쓰러졌다.
“악!!!”
몸이 튼튼한지 그녀는 코피를 흘리는 것이 다였지만, 충격은 큰지 그대로 일어나지는 못하였다.
누워있는 여성에게 다가온 남자들이 그녀의 머리 위에 쫑긋 솟아 오른 토끼귀를 잡아 그녀의 몸을 끌어 올렸다.
“아악! 살려줘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목숨에 위협을 느낀 그녀는 최후의 발악으로 목청껏 숲속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메아리치는 자신의 목소리와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찌검뿐이었다.
짜악!
“입 닥쳐 이년아! 상품 주제에 감히 도망을 쳐? 너 잘 걸렸다. 여기서 죽여버릴 테….”
퍽!
흥분한 남자를 말리기 위함인지 한 남자가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충격을 받은 남자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고는 자신보다 직급이 위였는지 바로 고개를 숙였다.
“흥분하지 마라.”
“예, 예…. 죄송합니다.”
방금 토끼 귀를 가진 여성의 앞을 막아선 남자였다. 그는 얼굴이 부어올라 거의 혼절한 듯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죽은 직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 있는 편이 더 좋다고. 그러니 애써 잡은 생포한 상품을 망가트리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오려고 하는 그녀의 발을 단단히 잡고는 발목 부분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그때
화앙!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투창이 한 남자의 배를 관통한 뒤 앞에 있는 나무에 틀어박혔다. 그리고는 창대를 파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