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45화, 노예 경합. (45/177)



〈 45화 〉45화, 노예 경합.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마을 어귀의 건물 공사 현장에 뷰렌이 도착하여 그곳의 관리 감독을하는 발렌에게 밀크의 말을 전하였다.

“족장님께서 오늘 밤에 상단 책임자님께 술을 대접하신다고 하십니다.”

“술? 고마운 말입니다만…. 제가 일이 있어서.”

솔직한 마음은 그저 한시라도  썩을 꼬맹이와 같은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할 수 없어서 돌려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뷰렌은 꼭 참석해 달라는 밀크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왔다. 그렇기에 단호한 음성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예 족장님이 술을 대접하는 영광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꼭 참여해 주길바랄게요. 혹시 불참하신다면 족장님께서 많이 서운해하실 거예요.”

뷰렌 역시 그녀처럼 돌려서 말을 했다. 혹시 참석하지 않았다간 이후에 화가 나신 족장님이 거래에 큰 차질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얼굴이 찌푸려질 뻔한 것을 겨우 참은 발렌은 겨우겨우 웃는 낯으로 뷰렌에게 대답을 했다.

“일이 바쁘지만 그런 영광된 일에 빠질 수는 없으니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호호호 역시 말이 아~   통하시는군요. 그럼 전 이만”

밀크가 부르는데 감히 거절하려고 했던 그녀가 고까웠는지 뷰렌은 마지막에 그녀의 신경을  번 긁은 뒤 등을 돌려 돌아갔다.

그녀의 등을 보며 같이 등을 돌린 발렌, 그녀는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열불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 썩을 아인족이 감히  오라 가라 해?! 내가 무슨 자기들 부하인  알아!!! 개자식들!’

“어억!”

그때 노예 인부 하나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들고 있던 자제들이 땅으로 널브러졌다. 그리고 그것은 뭐 하나 걸리기만 해보란 식으로 인부들을 바라보던 발렌의 눈에 포착되었다.

무시무시한 안광과 악귀나찰과도 같은 얼굴을  그녀는 쓰러진 인부에게 다가가 옆구리에 매어둔 채찍을 풀어 그것으로 인부를 마구 내려쳤다.

“어디서 농땡이를 피워! 당장 일어나! 일해! 일하라고! 이 썩을 노예 놈! 죽어! 죽엇!”

“악! 아윽! 아악!!!”

촤악! 촤악! 촤악!

발렌의 눈에 비치는 그의 모습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채찍을 맞고 있는 남자 본인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실신 직전까지 채찍을 흠씬 맞은 인부는 상단원 둘에게 실려 가 응급조치를 받아야 했다.

서슬 퍼런 발렌의 모습에 노예 인부와 상단원들은 모두 살얼음이라도 걷는 심정으로 더 조심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씩! 씩! 씩!

아직 분이 덜 풀렸던 걸까? 발렌은 얼굴까지 붉어진 상태로 거친 숨을 내쉬며 화를 다스리고 있었다.

탁!

채찍을 바닥을 향해 거칠게 내팽개쳐버린 그녀는 일하는 인부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안광을 쏘아내다가 몸을  돌리고는 자신의 임시 거처로 들어가 버렸다.

‘술? 그래 마셔주지. 백번이고  번이고 마셔주나 이 꼬맹이! 그리고 이 수모는 절대 잊지 않겠다. 이 야만스러운 아인놈!’

바락바락 속으로 밀크를 욕하는 발렌, 그리고 그녀의  현상은 호감도 변화라는 바로  수 있는 표를 통하여 밀크에게 전해지는 중이었다.

태양의 날이었지만, 밀크는 현재 족장의 집을 나와 대장간을 방문하고 있었다. 메어리는 쉬는 중이라 이곳에 없지만, 이미 사용을 하겠다고 말은 해놓아 상관없었다.

물론 족장인 밀크가 대장간을 사용한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메어리를 존중해 주기 위하여 대장간의 주인인 그녀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노예로 끌려온 대장장이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들의 실력을 한번 보고 싶었던 그는 어차피 쉬는 날이고 하니 일도 시켜볼 겸 그녀들을 소집한 것이다.

“이리로 와.”

그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반응하는 노예들, 가장 선두에 선 미모의 대장장이 파티마의 뒤로겁에 질린 노예들이 줄을 섰다.

파티마 역시 겁에 질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들 중에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이며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지라 고개는 숙였어도 당당하게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기개가 조금 보이는 파티마의 모습, 서류를 확인해 보았을 때 그녀는 다른 귀족가에서 팔려온 귀족 자제였다.

대장장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였으니 미모만 살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노예의 말로는 그저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창관 노예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어떻게 해서든 대장 기술을 배운 그녀는 차츰 성과를 내기 시작하여 끝내 대장장이 노예가 되었다.덕분에 다른 최하급 노예들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았었다.

물론 말을 안 듣거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엄한 벌을 받는 것은 같았지만, 식사, 그리고 휴식 공간의 질이 다르기에 노예이지만 버틸 만하던 세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력이 좋다는 이유로 아인에게 팔려와서 그들의 노예가 되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서러웠지만,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땅을 기라면 기고, 또 죽은 척하라면 죽은 척을  정도로 이곳에서 적응하기로 했다.

자신들을 위해 집을 따로 지어준다고 한 것과 밥은 잘 주고 또 다른 인간들처럼 심하게 굴지도 않아서 오히려 잘 생각해 보면 이곳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의 앞에 선 밀크가 모두가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좀 키워서 말을 시작했다.

“대장간이 좀 구식이겠지만, 우리 홀스타우로스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지, 혹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대장간 주인인 메어리에게 말해. 그럼 인간들과 거래할  내가 구해다 주마.”

“예, 옛!”

“떨  없어. 내가 약속했잖아. 일만 열심히 하면 절대 너희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자!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철을 나누어 주지. 지금 이곳에서 너희 실력을 좀 보여줘.”

“실력…. 말인가요?”

“그래. 바늘, 농기구, 가위, 그것도 아니면 무기를 만들어도 좋아. 가장 자신 있는 물건을 하나 만들어서 나에게 보여봐. 실력이 가장 좋은 사람을 노예 대장장이들을 이끄는 장으로 삼을 테니까. 예전에 누가 무슨 위치에 있었건 난 그런 건 신경 안 써. 지금부터는 오로지 실력, 실력으로만 대우해줄 거야. 그러니 나에게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서 보이길 바란다.”

인간들에게 받은 물건으로 대장간도 증축하여 이제는 10개의 모루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홉 명의 대장장이 노예들과 메어리의 자리까지 고려한 수였다.

용광로의 수는 늘어나지 않았지만, 크기를 좀 더 키워 한 번에 3개의 철을 녹일 수 있도록 만들어 두어서 작업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밀크가 멀찍이 떨어져 그녀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대장장이들은 쭈뼛쭈뼛하기만 할 뿐 누가 먼저 나서지는 않고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들 중에 파티마가 앞으로 나서서 철광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홀스타우로스들이 사용하던 단가가 싸고 질이 떨어지는 쇳덩어리가 아닌  좋은 철광석이었다.

이번에 상단 거래를 통하여 좋은 철광석을 많이 구해 놓은지라, 밀크는 이참에 그녀들을 통하여 무슨 물건을 만들 수 있는지 시험도 해볼 생각이었다.

파티마는 철광석과 망치를 들자 눈이 변하였다. 그곳에는 이제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노예가 아닌 한 명의 대장장이만 존재하고 있었다.

광석을 집게로 집어 용광로에 녹인 그녀는 모루로 가져와 망치로 철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몸은 작고 또 연약해 보여도 확실히 대장장이 실력이 좋은지 그녀가 철을 두드릴 때마다 팔에서 근육이 솟아오른다.

밀크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초집중 상태에 돌입하여 철을 두드리는 파티마, 그녀가 두드리는 철은 점점 그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용광로, 그리고 모루를 왔다 갔다 하며 철을 데우고 두들기고를 반복하는 그녀, 그리고 철은 이제 검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메어리나 밀크가 만들어낸 검날보다 더 정교하고 단단한, 그리고 어디 하나 흠집이 없는 최상의 품질을 가진 검 날이 완성되었다.

마지막 순간 검의 온도를 낮춰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파티마에게 밀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동이에 담긴 젖으로 식혀.”

뜨악! 하는 얼굴로 밀크를 바라보는 파티마와 이하 대장장이들, 양동이를 들여다보니 질은 좀 떨어져 보이지만 시원한 온도의 젖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이걸 사용한다고요?”

“응. 그걸로 식히면 돼.”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양동이에 담겨 있는 젖으로 검 온도를 낮춘 그녀는 치이이!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고소한 향기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대장간의 질이 떨어져도  홀스타우로스의 젖이 있는 한 여기서 작업을 하면 최상급의 물건이 완성될 거야. 이건 어찌 보면 정말 대단한 기회야. 대장장이로서 명예를 높일 수 있는…. 명검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희망에 차오른 파티마의미소, 그녀는 식어서 차가워진 검을 들고 한편에 설치된 숫돌로 향했다. 그러자 밀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파티마는 혹시 자신이 뭔가 실수를 한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지만, 밀크는 그저 숫돌의 손잡이를 돌려주려고 온 것뿐이었다.

“인간들은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숫돌을 쓴다지?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없어. 누군가 한 명이 이 손잡이를 돌려줘야 숫돌이 돌아가. 그러니까 숫돌로 날을 세울 때는 무조건 2인 1조가 되어 행동해야 해.  돌려줄 테니까 날을 갈아 봐.”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행동, 노예가 쇠붙이를 들고 그것에 날을 세울 때 옆에서 무방비하게 숫돌을 돌려주겠다니 어찌 보면 정신 나간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예들이 괜히 노예겠는가? 그녀들에게 걸려있는 마법적인 저주, 노예 각인의 저주는 주인 된 자에게 절대 해코지를 할  없는 저주이다.

조금이라도 주인에게 못된 마음을 먹으면 각인이 움직여 마치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노예를 반죽음 상태까지 몰고 간다.

그러나 죽지도 그렇다고 미치지도 못하고 다시 깨어난 노예는 다음에 이어질 주인의 몽둥이찜질로 번째 고통을 당한 뒤 더 심해진 괴롭힘과 일 더미에 쌓여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내야 한다.

처음 노예가 되면 말을 안 듣는 노예를 이용하여 본보기로  번씩 노예들에게 절망과 공포를 심어주는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 덕분에 노예들은  고통스러운 본보기 노예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 공포가 각인된다.

그렇기에 그녀가 절대로 딴마음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밀크는 자신 있게 그녀의 앞에서 숫돌을 돌리는 것이었다.

파티마야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믿어주는 밀크의 모습에 조금 감동했는지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다른 노예들도 인간이 아닌 아인인데 자신들에게 자상한 그의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을 열고 있었다.

숫돌이 돌아가자 파티마는 그곳에 자신이 만든 검을 갈았다. 완전히 날이 선 날카로운 검의 모습을 본 밀크는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바구니에서 검의 손잡이는 하나 꺼내어 파티마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홀스타우로스는 이 데빌배어의 가죽으로 만든 손잡이를 사용하지, 뭐 다른 손잡이를 만들 능력이 된다면 상관없지만, 우리 전사들이 사용할 검은 이 손잡이를 사용해야 해 손에 익은 재료라서 전사들이 안정감을 가지거든.”

“알겠습니다. 주인님….”

대답한 파티마가 밀크에게 받은 손잡이와 검을 결합한 뒤 쇳물을 부어 결합부를 단단히 고정했다.

완성된 검을 보고는 당당히 그것을 제출하려는 그녀에게 밀크가 제지를 하며 깨끗한 젖이 가득 들어 있는 항아리를 건내 주었다.

“유광 내야지.”

“네엣?!”

“아~ 인간들은  안 하는 작업이지? 그런데 여긴 홀스타우로스 마을이잖아? 모두 잘 기억해. 모든 작업의 마지막은 유광이야. 그렇지 않으면 완성품으로 봐주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에는 꼭 유광을 하도록 해.”

인간들에게 있어선 충격 그 자체였다. 유광을 하라. 그녀들이라고 유광을 하면 무기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을 모를까?

그러나 홀스타우로스의 젖은 비싸서 또는 없어서 못 구하는 사치품이다. 애초에 귀족들이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 소모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무기에 사용한단 말인가….

그런데 별천지도 이런 별천지가 없었다. 홀스타우로스 마을에서는 널린 것이 그들의 젖이니 이렇게 무기에 마음껏 유광을 내도 상관이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항아리를 받아 든 파티마는 마치 거룩한 신전의 성수라도 보는 얼굴로 경건하게 그것을 한 동이 떠올렸다.

그리고는 용광로로 다가가 검을 아주 약간 데운 뒤 꺼내어 그 위에 젖을 뿌리며 광을 내기 시작했다.

두  세 번 그렇게 반복하니 검에서는 반들반들한 유광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도와 날카로움 또  늘어났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눈에서 눈물이라도 흘릴 듯 바라보고 있는 파티마의 모습을 본 다른 대장장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빨리 안 하면 파티마가 1등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향한 밀크의 이어지는 말에 그녀들은 후다닥 작업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