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39화, 투창 시범.
퍼슨과 가까이 지내는 실력 있는 행수 발파르, 퍼슨이 부 행수로 있을 때 그를 교육한 선배 행수이며 그 역시 이번 상행에서 입지가 밀려 오지에 파견된인사였다.
그런데 같이 오지로 파견된 퍼슨이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구해서 왕국 곳곳에 팔아 큰 이문을 가지고 나타나니 마치 자기 일인 양 기뻐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허! 홀스타우로스의 젖이라니. 자네 어디 노다지라도 다녀온 건가? 이렇게 귀한 젖을 다섯 항아리나 구해 오다니. 이거 다른 행수들은 고개를 들 면목도 없겠구먼! 으허허헛!”
자신들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좋은 거래 지역으로 파견 갔던 행수들은 이익을 얻긴 하였지만, 다른 나라라는 점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이곳 왕국에서 한 대로 장사를 하다가 대부분 낭패를 당했다.
“선배님도 항아리 하나 챙겨 가시지요. 다른 마을에 조금씩 풀어 이문을 남기고 아직 두 병이 남았습니다.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에이! 그럴 수는 없지. 그건 온전히 자네 공이니 자네가 보고하게.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젖을 구한 것인가?”
“유목하는 큰 홀스타우로스 부족과 거래를 하였지요. 그리고 그들이 절 좋게 봐준 모양인지 자신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중의 하나를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앞으로 시기가 맞으면 고정적으로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퍼슨은 약속대로 밀크의 부족과의 거래 사실을 교묘하게 숨겼다. 유목하던 홀스타우로스 부족이라면 만나는 일이 희박하기에 퍼슨이 운이 좋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좋게 보아서 거래할 수 있는 포인트 하나를 받아 왔다는 것으로 앞으로의 상행에 의심의 여부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못까지 박아두는 치밀함까지 보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발파르는 놀라워하는 얼굴로 퍼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허헛! 이제야 자네에게도 기회가 오려나 보는군, 그런데….”
그가 거래해 온 물품을 살피던 발파르는 한 곳에 시선을 두고는 의아한 표정이 되어 그에게 질문하였다.
“이 기이한 무기는 뭔가? 창 같은데 길이가 이렇게 짧고…. 끝은 무슨 화살 같아 보이기도 하고…. 혹시 투창인가?”
밀크와 거래를 해 온 투창이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생소한 형태이긴 했다. 오랜 상했을 해온 선배 행수 발파르가 이렇게 물어볼 정도이니 말이다.
퍼슨은 이렇다 할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그에게 대답했다.
“어찌 보면 이 무기야말로 오늘 보고할 중요 물건이라 할 수 있지요. 새로운 대단한 대장장이의 작품인데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아서 제사 독점 계약을 따냈습니다.”
“음~ 그래 자네가 물건 보는 안목은 대단하지. 이렇게 보니 데빌베어의 가죽도 쓰였고 이건 뭐야? 설마 유광인가?! 허허! 홀스타우로스의 젖으로 유광을 내었군. 이거 물건이야 물건…. 그런데 왜 이렇게 짧은 건지가 참 의문이군….”
“하하하! 그건 차차 보고하면서 설명할 테니 기대하고 계셔도 좋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상단의 일꾼이 다가와 상단주가 행수들을 부른다는 것을 전달해 주었다.
“가시죠 발파르 행수님.”
“그러세.”
모든 행수가 모여 있는 곳으로 불려간 퍼슨은 준비해 온 물품 목록을 들고 당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다른 행수들은 그리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지 못했는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나마 입지만큼이나 실력도 좋은 몇몇 행수들은 얼굴이 펴져 있었지만, 그들 역시 조금의 이문을 남겼을 뿐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행수들이 모두 모인 상단주의 방문이 닫히는 것으로 이 안에서는 이제 그들만이 공유하는 상단의 중요한 내용이 오고 가게 된다.
*****
그로부터 얼마 뒤 밀크의 홀스타우로스 부족으로는 다시금 퍼슨이 방문하였다. 그는 이제 행수가 아닌 대 행수의 자격을 띠고 왔다.
“대 행수가 되었다고? 축하할 일이로군.”
“덕분입니다. 하하하 이번에 자기만 잘난 줄 아는 그 행수들의 표정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정말이지 족장님을 만난 것은 제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아부는 그 정도면 되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아- 이내용은 저희 상단의 중요 내용입니다. 그러니 족장님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내가 입이 좀 무거운 편이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가져온 것으로 상단주님이 크게 칭찬을….”
퍼슨은 전날에 있었던 에스타 상단 총 회의를 회상하며 밀크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
꼬장꼬장 해 보이는 노인이 행수들의 얼굴을 무섭게 쳐다보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렀다.
“깁슨!”
“네 상단주님.”
“아포르코!”
“예! 여기 있습니다.”
“맬던!”
“예!”
그렇게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른 그는 모두 참여했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를 위해 준비된 상석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 뒤 주변에 모인 행수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쏘아보듯이 한 번씩 둘러본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상행에 자신감이란 자신감은 모두 보이더니 그 결과는아주 형편이 없군. 이래서야 어디 장사를 해먹고 살겠나!!!”
“죄, 죄송합니다!”
“내가 많은 걸 바라나? 안될 거 같으면 그냥 하지를 말란 말이야! 왜 너희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설치냔 말이야 응? 이번에 내가 분명히말했지? 다른 왕국에서 상행하는 것은 이익이 보장되지만 그만큼 험난하고 또 한 번 실패하면 돌이킬 수가 없을 거라고. 그러니 자기 분수를 알고 정말 실력이 되는 사람만 나서라고 분명히 경고했지. 그런데도 무리를 해서 상행에 가겠다 한 놈들을 내 믿고 더는 말리지 않았지. 그런데 이게 뭐지? 너희들이 내 믿음을 이렇게 배신을 해!!!”
분노하여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턱, 나이가 있어서 살이 처지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었지만,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노기만큼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한참 행수들을 혼낸 상단주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번 상행의 결과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있는 대로 보고 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리돌림의 시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상행 내용을 소상히 밝히기 시작한다. 누구는 그나마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렇지 않고 낭패를 당한 행수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로 자신의 성적을 공개했다.
“크게!!!”
꼬장꼬장한 상단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이번 일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는지 모두에게 망신을 한번 당하고 정신을 차리란 뜻에서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다.
특히나 이번에는 자신의 입지를 이용하여 입지가 좁지만, 실력이 좋은 행수나. 이제 막 신입으로 올라온 행수들을 따돌려 자신이 좋은 조건의 상행을 차지한 자들을 한껏 혼내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였다.
하나둘, 자신의 실패를 모두에게 고하는 웃지 못할 조리돌림이 사람의 사람을 파고 이어졌고 그것은 이제 그나마 평범한 이문을 남긴 발파르에 이어 퍼슨에게 이어졌다.
퍼슨은 이번 상행에서 가장 오지나 다름없는 램튼 마을에 파견된 행수다. 신임 행수에 오지라는 엄청난 위험성이 따르는 상행이니 그 결과는 뻔할 것으로 생각한 행수들은 한껏 안심한 얼굴이 되어 그의 보고를 기다렸다.
“간단명료하게 보고 올리겠습니다. 저희 상행 단은 얼마 전 램튼을 방문하여 돌아오는 도중에 홀스타우로스 유목민을 만나 거래에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신선한 젖을 다섯 항아리를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 상하기 쉬워 항아리 두 개는 마법 처리를 해서 이리 가져왔고 항아리 세 개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거래하여 큰 이문을 남겨 돌아왔습니다.”
“저, 젖?!”
“홀스타우로스의 젖이란 말인가!”
“으음!!!”
“이럴 수가!!!”
놀라워하는 상단의 행수들, 내부의 물건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마법 처리된 보관용 항아리는 다른 항아리처럼 내부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철저하게 일정한 기준에 맞춰 제작된다.
보관량을 지구의 기준으로 따지면 항아리당 약 200L의 보관량이다. 두 항아리를 가득 받아 왔으니 무려 400L의 젖을 가져 왔다는 말이었다.
인간들의 기준으로 홀스타우로스의 젖은 500mL당 1골드에 호가한다. 1 골드는 한 가정이 평균적으로 두 달을 마음고생 없이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그런 젖을 홀스타우로스 종족과 물물 거래를 하는 것으로 400L나 받아 온 것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800골드가 된다.
이것은 한 영지가 2년간 벌어들이는 순수한 세금과 비슷할 정도의 규모였다. 순수한 이란 뒷돈을 챙기지 않은 말 그대로 어두운 손길이 없는 세금을 말한다.
여기에 아직 셈하지 않은 항아리 세 개 분의 1200골드, 아니 그의 특유의 상행 실력으로 인해 이문을 확실히 남겨 1400골드에 육박하는 금액, 이것을 더하면 지금 퍼슨은 거의 영지 6년의 세금을 걷어 드린 것과 같았다.
물물 교환으로 가져간 것은 광석과 식료품들, 그리고 몇 가지 생필품들이었다. 거대한 밀크의 부족이 이것을 모두 가져가면서 젖과 투창을 내주었다. 그가 가져간 물품을 그냥 팔아 보았자. 그 이문이 300골드가 될까 말까였는데 어차피 밀크의 부족에서는 그것이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기에 서로에게 상생하는 결과가 되었다.
물론 퍼슨이 이외에 밀크에게 해줄 것이 더 있긴 하였지만, 이런 큰 이문을 남기게 도움을 주었는데 간이고 쓸개고 빼주지 못할 것은 또 무어랴. 퍼슨은 그저 그런 오지에 나가서 거의 황금을 캐 온 것이나 다름없는 엄청난 이문을 남겨 돌아온 것이니 무엇이든 그에게 해줄 수 있었다.
좋은 곳으로 파견되고도 이렇다 할 이문도 없이 거의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돌아오게 된 행수들을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대충 분위기가 자신에게 몰려 있음을 짐작한 퍼슨은 바로 이어서 다른 물품들을 소개 올렸지만, 워낙 젖의 위용이 강하여 대부분 묻어 들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대망의 투창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퍼슨은 소개를 하기 위해 표본으로 가져온 투창 하나를 들고 상단주에게 조심히 내밀었다.
“뭔가?”
잘 나가다가 갑자기 길이가 짧은 볼품없어 보이는 창을 내미는 그의 행동에 아까까지 그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상단주의 눈이 바뀌었다.
이익이 되지 않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였다. 지금도 그가 막대한 이문을 남겨왔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 창을 내밀었을 때 보지도 않고 내 쳐졌을 수도 있었다.
차분하게 그것을 보인 퍼슨은 상단주에게 투창에 대한 일을 설명했다. 아니 정확히는 날조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번 상행을 통하여 저는 실력이 우수한 숨은 대장장이와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밀크로 초야에 묻혀서 조용히 철만 두드리는 그야말로 대단한 대장장이였지요. 이 투창은그 대장장이가 만든 작품입니다.”
“흠…. 그것이 투창이란 말인가?”
관심이 없어 보이던 상단주가 잠시 눈에 이채를 띄더니 길이가 짧아 볼품없어 보이던 창을 다시 한번 살피기 시작했다.
창날은 그냥 쇳덩어리를 사용했는지 이색적이지 않았으나 그 모습이 화살촉을 확대한 것 같아 사뭇 예사롭지가 않았다.
창대는 데빌베어의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단단해 보이기가 이를 때 없었고 주변으로 우윳빛이 감도는 것을 보니 유광 처리를 했음이 분명했다.
“허! 투창 따위에이런 노력을 기울이다니. 분명 작품은 작품이지만, 무기로서의 성능은 영 기대할 수가 없겠군….”
투창을 보고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인정하였지만, 유목민들이나 사용하는 투창이었기에 무기로서의 성능은 거의 이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주변 행수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초보가 그렇지 뭐. 잘 해놓고 마지막에 실수하는 군,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그가 가져온 젖의 금액과 젖 때문에 뒤로 밀려난 기분이 들어 그를 헐뜻기 위해 혈안들이 되어있었다.
“들어 오게.”
퍼슨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 행수 발렌이 무언가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들고 온 물건을 한 곳에 가져가 잘 세워 놓았다. 그것은 나무판자와 그 겉을 데빌베어의 가죽으로 덧대어 만든 표적이었다.
“저 표적은 데빌베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홀스타우로스들이 남아서 못 쓰는 가죽이라고 준 것을 기워서 만들었지요. 지금부터 이 창으로 저 표적을 맞혀 보겠습니다. 잠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그의 선언에 행수들은 깜짝 놀라서 그와 표적지 사이에서 물러나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자 퍼슨과 표적지 사이에는 널찍한 길이 형성되었다.
표적지의 거리는 약 100보 표적이 충분히 보일 정도로 적당한 거리였다. 창을 들어 올린 퍼슨은 그들에게 덧붙였다.
“아시다시피 전 이렇게 빼빼 말랐고 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창은 매우 가벼워서 저같이 힘없는 사람도 이렇게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균형도 아주 잘 맞아서 던지기도 힘들지 않고요.”
그리고는 단숨에 힘을 줘서 그 창을 과녁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퍽!!!
힘이 없어 보이던 그가 창을 던지자 가볍고 중심이 잘 맞아 있는 창은 힘차게 날아가 그대로 데빌베어 가죽으로 만든 표적지에 틀어박혔다.
홀스타우로스처럼 창대까지 박히지는 않았지만, 창의 날은 확실하게 표적지를 뚫고 들어갔다.
이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고 처음에는 피식 웃으며 아이 재롱이나 볼 생각으로 가만히 앉아 있던 상단주도 할 말을 잃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자. 이렇게 무기로서의 성능도 아주 뛰어납니다. 이 창을 약 20개 받아 왔습니다. 대장장이 밀크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형성하여 이 창을 높은 가격에 팔 생각입니다. 상단주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상단의 행수가 상단주에게 당당하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상황.
싸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상석에 앉아 있던 상단주의 입이 열리고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