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데빌베어의 습격.
“왔니 우리 아들? 아휴 이제 좀 살겠다. 킁킁!”
혼케일은 밀크에게 달라붙자마자 그의 향기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밀크는 언제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충분히 아들의 향기로 힘을 충전한 그는 밀크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아 한숨을푹! 내쉬었다.
“하아!”
“아빠? 왜 그래? 뭐 걱정 있어? 표정도 안 좋고….”
“응? 아…. 너무 티 났나?다름이 아니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불렀단다 밀크.”
“나한테?”
“그래…. 중요한 이야기지. 저기 말이다….”
그리고는 한참을 뜸들이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혼케일, 그는 한동안 멍하니 밀크이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뭔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의 혼케일이 하려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좀 이르지만…. 날 대신해서 족장이…. 되는 게 어떠니 밀크?”
“뭐?!”
다짜고짜 족장이 되라는 혼케일의 말에 밀크는 뭐?! 라고 되물으며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뷰렌의 말을 듣고심각한 내용일 거라고는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이건 상상보다 더 심각한 내용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아빠? 물론 때가 되면 족장에 자리에 앉을 테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후우…. 그러니까…. 바크 말이다….”
“…….”
여기까지만 들어도 다음 내용은 대충 유추해 낼 수가 있었다. 그가 15년을 산 어린 홀스타우로스지만 그 정신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40년을 더러운 한국 땅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산 영혼이다.
공사판을 전전하기만 한 그였어도 세상의 쓴맛을 어지간히 많이 보았다. 일당을 작업반장에게 수수료로 떼이고 소개비로 떼이고 공사판이 문을 닫아 모든 지금 받아야 할 일당이 공중분해 돼버리기도 하는 등 말이다.
그리고 더러운 일도 많았다. 살려면 넙죽 엎드려야 했고윗사람에게 아부해야 했으며 기분을 맞춰야 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분일 것이다. 홀스타우로스끼리의 내분, 자신과 동생인 바크가 이 족장의 자리를 두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것 그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뭘 걱정하는지 알겠어. 그렇지만 여자 홀스타우로스는 족장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잖아. 이미 아빠가 정해준 다음 후계자는 나야. 그런데 누가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겠어?”
다만…. 밀크는 15년간 평화로는 생활에 물드는 바람에 과거 지구에서의 더럽고 치사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없을 거라는 순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일한 생각이긴 했어도 그간 고생해온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그누구도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혼케일은 그런 순수한 밀크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이일이 그리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물론 여자들은 우리 남자의 말에 절대복종한단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심점인 나 족장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 만약 네가 족장이 되기 전에 내가 내일 죽는다면? 아니면 병에 걸려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앓아눕는다면 어떨 거 같니?”
“아빠! 그게 무슨!”
“가정해 보자는 말이란다. 그래 가정을 말이다.”
“….”
혼케일이 그에게 한 말 때문에 그는 정신이 트였다. 그리고 순수하던 밀크의 정신에 지구에서의 40년 세월을 살아온 연륜이 다시금 깨어났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아…. 이거 위험하구나…. 생각 이상으로 지금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밀크가 깨달은 듯 하자. 혼케일은 이어서 이야기했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홀스타우로스 여성들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그때부터는 유목민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닌단다. 그러다가 다른 홀스타우로스 부족의 부락을 습격하여 남자를 납치해 다시 다른 부족을 건설한단다. 우린 그런 종족이야.”
“아빠….”
“그럼 만약 그 구심점이될 수 있는 남자가 둘이라면 어떻게 될 거 같니?”
“….”
답을 알고 있지만, 대답하기 힘들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밀크가 대답을 하지 않자 자신이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는 혼케일
“내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죽으면 구심점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오르는 너와 바크를 중심으로 부족이 갈라지게 될 거란다. 물론…. 내가 후계자로 지정을 해 두었고 나이가 더 많은 너에게 여자들이 많이 몰리겠지만. 요즘 치라야의 주변으로 몰리는 여자들을 보니 제법 수가 많더구나….”
“…….”
“난 부족이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단다.그래서 차라리 좀 이른 시기지만 너에게 자리를 물려 주려는 것이다….어떻게 생각하니….”
“아직…. 모르겠어…. 앞으로 아빠가 20년은 더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줄 거라 믿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워.”
“미안하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당장 대답하라고 하지는 않으마. 그래도 이번 해가 지나기 전에는 답을 주렴. 바크가 더크기 전에 말이다.”
“알았어….충분히 생각하고 답을 줄게.”
약간 충격을 받은 밀크는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린다와 벨은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밀리와 상의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하아….”
[밀크]
‘들었지?’
[예. 그리고 경고를 해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경고?’
[홀스타우로스 여성들은남자에게 복종하고 절대 자기 목소리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여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부족 내에서 세력을 이루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남자가 둘이상일 때입니다.]
‘아빠한테 들었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아무리 평화로운 종족인 홀스타우로스도 족장이라는 권력 앞에서는 이빨을 드러내는 종족입니다. 거기에 자기 아들이 족장에 앉지 못하면 서서히 도태돼서 죽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성의 경우는 더더욱 말이지요.]
‘뭐?’
[당신의아버지 혼케일이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다음 대 족장으로 내정되지 못한 홀스타우로스 남자는 성인이 되는 날 거세를 당합니다. 이는 족장 이외의 남자가 여인의 몸을 탐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홀스타우로스 부족의 전통으로 족장이 되는 자의 명령으로 행해집니다.]
‘헉!’
[당신의 할아버지는 이에 더해 목숨까지 취하였지요. 당신 아버지의 과거를 찬찬히 확인해본 결과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한동안 충격에 빠져 지냈다는 것을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한 거야?’
[당신에게 호감도가 높은 대상에 관하여 가능합니다. 어쨌든. 거세당한 홀스타우로스 남자는 그때부터 여자들 틈에 끼어서 힘든 일을 해야 하지요. 가뜩이나 힘도, 골격도 약한 남자가 거세를 당하여 남성성도 잃어버리니 여자들 틈에서 일을 하다 보면 골병이 들고 결국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게 됩니다.]
‘….’
[바크의 어머니인 치라야도 이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무슨 짓이라도 하겠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경고를 해드리는 점입니다. 혼케일의 말을 따라 어서 족장 자리에 오르세요. 그것이 당신을, 그리고 부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럴 수가….’
[잔인한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 이것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태어났을 때 오르카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 바크의 상황을 당신이 겪고 있을 겁니다.]
‘…….’
웃음기를 싹 뺀 루의 조언, 그것은 아픈 곳을 아예 후벼 파 버릴 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는 조언이었다.
‘하…. 평화로운 일상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있을까?’
[힘드시겠지만, 이겨 내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전 삶은 이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지요?]
‘그랬지.’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일들 살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고 모았지만, 수중에 남은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모래를 쥔 것처럼 손에 쥐기만 하면 어딘가로 빠져나가 버리는 자신이 이룩한 재산, 기술, 그리고 건강
그러나 지금은? 배부른 한숨이나 쉬고 있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생각을 해보라. 가족이 있다. 그토록 원하는 가족.
치라야 또 한 가족이지만, 그녀와 그 아들이 가족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다만….’
[바크와 치라야가 걸리십니까?]
‘그래. 3년간 바크와 정도 많이 들었고 치라야 역시 아침에 그런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나와 나쁜 사이가 아니었어. 힘들겠지만, 모두가 만족할 방법을 찾았으면 해.’
[알겠습니다. 제가 경우의 수를 따져서 최선의 답을 돌출해 내겠습니다. 오늘 많이 지치셨을 테니 이만 주무십시오.]
‘네가?’
[당신과 함께하면서 저 역시 당신의 정신 속에서 배움을 얻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믿고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다만, 얼마간 답을 돌출하기 위해 심층 안으로 잠들어 자리를 비우게 될 겁니다.]
‘알았어. 그 문제는 부탁할게.’
그렇게 밀크는 바크와 치라야의 문제를 루에게 일임하고 어렵사리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을 설치며 계속 깨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하며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뒷산에서 채집하는 채집 조의 여인들과 함께 모여 등산을 시작한 밀크, 그의 뒤를 따르는 린다와 벨은 아침에 조금 나아진 표정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제의 심각함과 거리가 먼 유크는 밀크의 옆에 달라붙어 그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힘들어? 내가 업어줄까?”
“괜찮아. 이 정도는 가뿐한걸-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유크.”
“그런데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채집에 따라온 거야? 원래는 작은 엄마랑 천 공예를 하는 날이잖아?”
“등산도 하면서 머리 좀 식히려고 요즘 사이에 머리가 좀 어지럽고 답답해서 말이야.”
“그럴 땐 등산 망한 게 없지! 좋아- 엄마한테 말해서 우리끼리 조금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줄까?”
“에이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흠….”
밀크가 사양하자 굳이 실행에 들어가지 않는 유크, 역시 그녀 또 한 밀크에게 절대복종하는 여인 중 하나였다.
다 같이 산에서 산딸기와 제철 바나나를 채집하여 한 곳에 모인 인원들, 오늘은 인간과 거래하여 많이 들여온 구운 옥수수를 나누어 먹으며 점심시간을 가진다.
‘루가 생각보다 늦네…. 아무래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네….’
하긴 그녀의 말처럼 누구 하나 눈물 흘리지 않을 최선의 결과라는 것이 참말처럼 쉽게 나올 수 없긴 했다. 특히나 중간에 권력이라는달콤한 것이 껴 있다면 말이다.
주변에 모인 여인들의 얼굴을 한 번씩 살펴보는 밀크,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얼굴들의 홀스타우로스 여인들, 입가에 옥수수를 묻혀가며 맛있게 먹는 유크와 웃으며 보는 유리 등등 정말 순박한 이들이다.
이러고 있으니 자기 혼자만 세상 심각하게 앉아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옥수수를 하나 들어 올리는 밀크, 오늘따라 목이 멨다.
“꺄아!”
“데빌배어다!”
그때. 산속을 해치며 두 여인이 달려왔다. 조금 더 깊숙한 곳에 과일을 따러 들어갔던 여인들이었다.
“뭐? 데빌배어? 다른 사람들은? 여섯이 갔잖아?!”
유리가 깜짝 놀라 도망쳐온 두 여인에게 물었지만, 두 사람은 공포에 질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모두 도망쳐! 마을까지 전속력으로 내려간다!바구니는 포기해! 우리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유리!”
“밀크도 어서 준비하렴”
“여기 없는 네 명은 어쩌려고요?!”
“밀크…. 데빌배어는 무리 지어 생활한단다. 녀석들은 무리 사냥의 귀재들이야. 습격을 당해 두 명만 도망을 쳤다는 것은 네 사람이 이미 포위당했다는 거란다…. 이미 구하러 가기는 늦어”
“그럴 수가….”
“우린 아무 힘도 없는 채집 조야.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도주하기 위한 빠른 몸놀림을 훈련하지만, 전투를 배우진 않았단다. 뭐 하고 있어?! 어서들 움직여!”
“주인님 어서 가시죠.”
“밀크….”
‘제길’
밀크는 그렇게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부족 여인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들이 탈출하여 부족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출동한 여전사들에 의해 훼손된 시체로 돌아온 여인들
그녀들은 모두데빌배어를 끈질기게 잡고 늘어진 모양인지 몸싸움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으며 입안에서는 데빌배어의 살점 조각이 나오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자신들을 희생한 것이었다. 이처럼 홀스타우로스는 종족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서로를 아끼는 종족이었다.
종족의 주술을 담당하는 제사장이 그녀들의 영혼을 혼의 세계로이끄는 주술을 부렸다. 푸른 불꽃이 죽은 부족원의 주변을 태우지 않고 밝게 비추며 서서히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그 불빛을 보며 부족 인원들은 죽은 자들을 기리며 마음의 안식을 가진다. 장례와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불이 꺼지자 밀리와 뷰렌이 목걸이를 들고 죽은 여인들에게 걸어 주었다. 예전 밀리가 만들던 그 목걸이의 재료가 바로 이 목걸이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였다.
이윽고 주술이 끝나자 그녀들의 몸은 신기하게도 모래처럼 흐물흐물해지더니 그대로 땅에 흩뿌려졌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주술의 끝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다음 이어진 것은 부족 회의였다. 데빌배어의 습격,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부족의 여전사들이 그 수를 줄이기 위해 매일 사냥을 나가는데도 녀석들이 습격해 왔다는 것은 그 수가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