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화, 대장기술 연마.
대답하는 린다의 목소리가 좀 시원치 않았다. 당당하고 활기찬 것이 그녀의 장점인데 그 장점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랄까?
표정도 좀 뭔가 아쉬워 보이는 느낌이었고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밀크는 의아해하고 있었다.
‘뭐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놀고 싶은 것이아닐까요?]
‘뭐?’
[왠지 그녀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밀크와 같이 놀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설마…. 그녀는 어른인데?’
[아직 그녀의 나이는 30이 못되었습니다. 어른이긴 하지만, 다른 홀스타우로스 여성에 비하면 엄청 젊고 어리죠. 부족 최고의 전사라고 떠받들어 주지만 그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까요? 아마 어렸을 때부터 노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힘을 기르고 훈련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어린 시절이 떠올라 더 저런 모습을 갈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흐음…. 루가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 뭐가 또 있어?’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아서 불만이 있어 보입니다.]
‘엉?’
[그녀의 호감도는 이미 100입니다. 그리고 애정 상태이지요. 그런데 밀크의 그간 행적을 보면 밀리, 뷰렌, 메어리와 관계를 맺었지만 정작 옆에서 당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그녀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못내 불만이 되어 있을 겁니다.]
‘헉…. 아니 나는…. 혹시라도 덜컥 임신하면 날 지키는 것도 힘들고 할 테니까…. 그래서 그런 건데….’
[가끔은 생각보다는 저지르고 보는 것도 중요 합니다.]
‘너 은근히 우리 아빠처럼 말한다?’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당신을 지키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지 말입니다.]
‘음….’
[달성 과제가 있는데….]
‘린다야?’
[예.]
‘이건 뭐….’
달성 과제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대략 알려준다. 그리고린다라는 것을 듣기만 해도 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와 관계를 맺으라는 내용일 것이다.
[다만 그녀 역시 자신이 밀크를 받아들이면 임신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당신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굴뚝 같지만, 막상 행위에 들어가려고 하면 거부 반응을 보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복잡하네…. 하고는 싶은데 일 때문에 못한다. 뭐 그런 거야?’
[그렇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잘 설득해서 관계에 들어갈지가 관건입니다. 이번에는 그저 무작정 엎어트리고 자지를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너 은근히 내가 그런다고 비꼬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요. 그저 사실에 기반을 두어 조언을 해드린 겁니다.]
‘끙….’
뷰렌, 그리고 메어리의 경우 밀크가 조금 강압적으로 나간 감이 없잖아 있긴 하였지만 두 사람 모두 밀크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못 이기는 척 그에게 안겼다.
두 차례의 전적이 있는지라 밀크는 루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고 입을 다물고 침음성을 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이번 달성 과제는 제한 시간이 없습니다. 느긋하게 하셔도 좋지만, 일정이 전혀 없는 날은 땅의 날과 태양의 날입니다. 이날이 아니면 그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힘들 것입니다.]
밀크는 달의 날에는 밀리와, 불의 날에는 메어리와, 물의 날에는 뷰렌와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남은 나무의 날에는 벨과 벨의 어머니를따라 밭으로 나가 일을 돕고 무쇠의 날에는 유크와 유리를 따라 산에 올라 채집을 돕는다.
꽉꽉 들어차 있는 일정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드니 될 수 있으면 땅의 날이나 태양의 날에 일을 치르라는 루의 말이었다.
루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을 따라오는 린다의 얼굴을 살피는 밀크, 역시나 불만이 조금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가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억지로 웃는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나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주인님! 하고 부르는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가엽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노력해 볼게.’
[알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밀크는 아이들이 젖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직후 밀리의 가슴에 붙어 젖을 수유 받았다.
딸들과 같이 엄마의 젖을 공유한다는 진풍경이 펼쳐졌지만, 어쩌랴- 그는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상황인 것을….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한동안은 잠자리를 같이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밀리와의 약속 덕분에 밀크는 그녀와 방을 따로 쓰는 중이었다.
밀크의 방 옆에는 새로 증축하여 만들 린다의 방이 있다. 밀크는 어두운 밤 자신의 침대에 누워 린다의 방으로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당장은 거부당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뭔가 계기가 없으면 린다와의 관계가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계기라…. 계기란 말이지….’
한참을 고민하던 밀크는 결국, 그날 린다의 방을 찾지 않았다. 계기가 없으면 힘들 거라는 루의 조언을 전적으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태양의 날 또 한 아이들과 놀이에 흠뻑 빠져 있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갈때까지 흐지부지 있다가 이날 역시 린다와의 관계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달의 날이 지나 불의 날이 되었다. 메어리에게 대장 기술을 배우는 날, 밀크는 린다를 대동하고 그녀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럼 메어리 하고 있을 테니까 잠깐 쉬고 와. 점심은 그녀와 먹을게.”
“알겠습니다.주인님.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질러 주십시오.”
“알았어- 메어리도 같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그럼….”
그녀가 밀크의 목에 코를 대고 향을 맡았다. 밀크 역시 그녀의 행동에 화답하듯 인사를 해 주었다.
그는 확실하게 보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급격하게 시무룩해지는 린다의 얼굴을 말이다. 아무래도 빨리 그녀와 관계를 해야지 이대로 두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번 땅의 날이랑 태양의 날이 될 때까지 생각을 좀 해보자. 어떻게 하면 그녀와 내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이렇게 생각을 하며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는 밀크,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대장간 안에서는 그 온도만큼이나 화끈한 몸매를 가진 메어리가 나체로 철을 두드리고 있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역시 여성이 나체로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은 한편의 작품 같다니까?’
[동감입니다. 여자인 제가 보아도 그녀는 매우 아름다워 보이는군요.]
‘그렇지?’
루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은 밀크는 일하는 메어리의 옆으로 다가가 자신도 역시 그녀처럼 옷을 벗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그다.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그녀에게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 밀크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높아지고 있었다.
“왔니?”
“응- 벌써 땀범벅이네-”
“후훗- 대장간은 더운걸- 자 밀크도 망치 들고 이리 오렴. 오늘도 아줌마가 친절하게 알려 줄 테니까.”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밀크의 몸에 착 맞는 크기의 망치, 메어리가 그를 위하며 특별히 제작해준 제련용 망치였다.
그것을 들고 열기가 흘러나오는 용광로 앞의 모루로 다가가니 메어리는 막 뜨겁게 달군 철을 집게로 들고 모루 위에 올려 두었다.
“오늘 만들건 무기란다. 부족 전사들이 사용할 철검을 만들 거니까. 철을 길쭉하게 펴야 해.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두들기면 중앙이 상해서 금방 부러지게 되니까 적당한 힘으로 넓게 피는 것이 중요해.”
“응! 알았어. 한번 해볼게.”
“좋아! 아줌마가 꽉 잡고 있을 테니까 망치로 두들기렴. 도중에 내가 신호를 주면 망치질을멈춰야 한다?”
“알았어!”
땅!
땅!
땅!
밀크는 메어리가 잡은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망치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홀스타우로스 남자가 약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홀스타우로스 사이에서 약한 것이다.
평범한 인간과 비교를 하자면 지금 밀크 나잇대의 홀스타우로스 남자아이는 평균적인 20대 성인 남성과 팔씨름을 해도 밀리지 않을 힘이 있다.
거기에 밀크의 경우는 루의 도움으로 강화 포인트로 늘어난 힘, 그리고 신의 축복으로 인해 또래 남자아이보다 건강하고 근육 감퇴도 적어 두 배는 강한 힘이 있었다.
물론 또래 여자 홀스타우로스 보다는 약하지만 근소하게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다.
즉 밀크는 충분히 대장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나이 때의 홀스타우로스 여자들이 자기가 배우고 싶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할 때이니 어찌 보면 그는 그녀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땅!
땅!
땅!
밀크의 망치질을 받은 쇳덩어리의 모양이 점점 길쭉한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메어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정지!”
우뚝!
메어리의 목소리에 밀크는 즉각 망치질을중단하였고 메어리는 슬슬 열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쇳덩어리를 용광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까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어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모양이 조금 변하였지만. 밀크가 만든 원형은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자! 다시 두드리자”
“응!”
땅!
땅!
땅!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와 흘러내리는 두 사람의 땀방울, 그리고 입에 걸쳐지는 환한 미소,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대장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 너무도 즐거운 그였다.
과거 공사판에서만 전전하던 그는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픈 기억이 있었다.
적어도 그 고생만 하던 공사판의 추억에 비하면 이건 고생 축에도 들지 못하는 즐거운 공부였다.
후에 자신이 만든 이 무기를 가지고 부족을 지켜줄 전사들을 생각하니 이렇게 보람 있는 일도 또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뿐 아니다. 대장 기술이 늘어나면 과거 자신이 존재하였던 지구의 물건들도 하나씩 제작해볼 생각이었다.
이곳에는 과학이 없지만, 마법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바람을 부르고 불을 일으키며 얼음을 만드는 그 마법이다.
성하나를 폭발시켜 버린 다던지 산을 날려버린 다던지 그런 엄청난 능력의 마법도 분명존재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기 드문 상황에 해당하고 대부분은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전 마법이었다.
후에 부족장이 되면 인간과 교류를 하여 그러한 마법사를 초빙해 합작을 통하여 과거 지구의 문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부족을 강하게 만들어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지금 그의 목적 그리고꿈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지식의 교류가 이 세계에 미칠 위험이 있지는 않을지 고민도 해보았지만, 그것을 옆에서 조언해줄 존재 루의 대답은 간단했다.
[상관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것은 이미 밀크가 지식을 사용하는 것을 신이 암묵적으로 허락을 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 죄책감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마음껏 사용하여도 무방하였다. 루의 확실한 대답을 들은 이후로 그는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느꼈다.
“정지!”
열심히 쇳덩어리를 두드리고 있으니 다시 메어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제는 넓게 펴진 쇳덩어리, 그녀는 그것을용광로가 아닌 옆에 담겨 있는 젖 통에 넣어 열기를 식혔다.
치이이이이!
열기가 식어가는 쇠에서는 수증기가 증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젖 통에 담겨 있는 젖은 밀크가 생산한 특제 농축액이다.
일반적인 홀스타우로스 여성의 젖보다 더 끈적하고 영양이 높으며 열을 식히는 기능도 탁월하다.
덕분에 쇳덩어리의 열을 빠르게 식었고 다 식어서 모루 위로 올라온 길쭉한 쇳덩어리를 살펴본 메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자.”
그렇게 말한 메어리는 이번에는 밀크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도구를 들고 철을 깎아서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뒤 어느 정도 형태를 찾아가는 쇳덩어리를 들고 숫돌의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꽉 잡고 밀크를 불렀다.
“손잡이 좀 돌려주렴-”
“알았어 메어리-”
밀크가 숫돌의 손잡이를 돌리자 숫돌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메어리는 회전하는 숫돌에 쇳덩어리의 한 면을 대고는 뾰족한 검의 날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한쪽 면이 날카롭게 벼려지자.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들고 똑같이 벼려내기 시작하는 메어리. 이윽고 쇳덩어리는 잘 벼려진 하나의 검이 되었다.
만들어진 검의 중심을 살피며 확인이 끝난 검을 들고 미리 만들어 놓은 조잡한 검 손잡이와 결합을 한 뒤 녹여둔 뜨거운 쇳물을 손잡이와 검의 접합부에 부어 고정했다.
그렇게 고정한 검을 잠시 용광로에 넣어 겉 부분의 온도를 높힌 뒤 그 위에 밀크의 젖을 뿌려 유광 처리를 하는 것으로 제작이 끝이 났다.
모양은 좀 볼품없지만 한눈에봐도 날카로워 보이는 검이 한 자루 완성이 되었다. 밀크는 그 검을 들고 뿌듯하게 살펴보았다.
“완성이지?!”
“응- 밀크가 보조를 잘 해줘서 금방 만들었네. 앞으로 세 자루 더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도와줄 거지?”
“물론이지. 한 번만 더 보고 쇠를 깎는 것도 해볼래!”
“호호홋- 그래 아줌마가 한 번만 더 보여줄 테니까 밀크가 한번해보렴.”
완성된 검을 한 편에 내려 두고 다시 망치를 들어 올린 밀크, 그는 힘들지도 않은지 즐거운 얼굴로 달구어진 쇠를 다시 내려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