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17화, 족장 혼케일 (17/177)



〈 17화 〉17화, 족장 혼케일

정말 드물게 태어나는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홀스타우로스, 그녀의 이름을 바로 엘라이다.

냉정하게 뜬 눈과 미소라고는 전혀 없는 입술, 그리고 날카로운 콧잔등 때문에 그녀는 얼음과도 같은 냉정한 얼굴을 가진 미녀였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아들이 죽은 후로는 웃는 일이 없었고 그것은 눈앞에 있는 밀리와 밀크를 만나면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밀크는 그런 엘라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에게 가까이 붙어 발돋움하여 코를 들이밀었다.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목에 코를 대고 향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밀크의 키가 작아서 목에는 닿지 않고 겨우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서 끙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를 시작하고 그에 화답하여 윗사람이 몸을 숙여 키를 맞춰 줘야 하지만 엘라는 물끄러미 그의 모습을 바라볼 뿐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홀스타우로스 간의 인사에서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를 그만두는 건은 결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밀크는 아무리 키가 닿지 않아도 이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물론 상대의 인사를 무시하는처사 또한 결례에 해당하지만, 그것을 지적해 보았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기에 그는 꾹 참고 자세를 유지하며 그녀가 인사를 받아 주기를 기다렸다.

‘무서운 분이지만. 향기는 좋네…. 조금만 마음을 열어 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

오르카라는 형이 죽은 이유가 자신 때문인 것도 아닌데 마치 자기 때문에 그가 죽은 거로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볼 때마다 그는 참 야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굳게 마음을 먹고 항상 자신이 먼저 다가가고 그녀와친해지기 위해 그녀의 앞에서는 더 살갑게 굴고 더 예의 있게 굴었다.

무섭게 밀크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일말의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라고 모를 리가 있을까? 밀크가 밀어내려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주는 것을

‘나쁜 것…. 이러면 내가 뭐가 되니’

밀크의 노력은 차근차근 그녀의 마음을 녹여가고 있었다. 빙하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있는 마음을 녹이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반이요 한번 녹기 시작하면 또 빠르게 녹아내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덕분일까?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표정과는 다르게 지금 그녀의 호감도는 20점까지 올라 있었다.

겉으로는 그에게 쌀쌀맞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미워하기 힘든 아이라고 생각하며 점점 마음을 열어 가는 중이라  수 있었다.

아직 그의 엄마인 밀리와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우선 자신에게 마음을 열게 하면 그 뒤는 자신이 중재할 수 있을 테니 자기가 먼저 친해지는 것이 순서였다.

1초가 1년 같은 시간이 1분이나 지나갔다. 그제야 엘라가 밀크의 목에 코를 들이밀고는 향을 맡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밀크가 힘들었는지 그녀의 허리를 살며시 잡으며 중심을 잡았으나 엘라는 딱히 그것을 지적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그를 기다리게 했으니 지쳐서 그러는 거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오히려 엘라는 손을 들고 밀크의 머리를 두어  쓰다듬어 주었다.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녀의 행동을  밀리는 순간 긴장이 풀려 옆으로 살짝 휘청하였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꼿꼿하게 서서 그녀 역시 엘라의 목에 코를 대고는 인사를 하였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자 엘라는 막고 있던 길목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혼케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이가 기다리고 있단다. 들어가 보렴.”

아직 목소리에서는 얼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처음 들어올때보다는 많이 풀린 그녀의 목소리에 밀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의자에 근엄하게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밀크의 거의 비슷하지만 키가 좀 더 크고 뿔도 단단하게 자라 있으며 무엇보다도 25cm가 넘어가는 자지가 아주 인상적인 남자, 그가 바로 이곳의 족장인 혼케일이다.

“밀리- 잘 왔어. 젖 짜느라 수고 많았어.  항아리에 들어 있는 거야?”

“예- 여보. 가득 채워 왔어요.”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써 줄래? 창고에 가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곳에 두고 다시 돌아와 줘. 오늘은 우리 아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고 싶으니 저녁을 들고 가라고.”

“알았어요. 여보. 그럼 다녀올게요. 밀크- 너는 여기서 아버지랑 같이 있으렴.”

“응- 엄마-”

밀 리가 어깨에 이고 있는 항아리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자  안에는 밀크와 혼케일만 남게 되었다.

‘음- 슬슬 올 텐데.’

뭐가 온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혼케일의 행동이 온다는 것이다.

와락!

언제 다가왔는지 눈앞에 나타난 혼케일은 아까까지의 안 어울리는 소년의 근엄한 얼굴을 집어치우고는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밀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볼과 이마에 연신 키스를 하며 그를 인형 다루듯 했다.

“밀크- 밀크- 우리 아들  왔어. 아빠 보고 싶었지? 못 본 사이에 엄청 컸네! 우리 아들내미-”

“아휴- 간지러워 아빠- 남자끼리 이러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들한테 뽀뽀  한다는데 뭐가 이상해?”

“으휴-”

다시 말하지만, 그는 아들 바보다. 그것도 심할 정도의 중증인 아들 바보.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안 이러지만 둘만 남으면 이런 식이다.

이 아들 사랑이 얼마나 심한지 집에 와서 잠잘 때면 밀리의 옆이 아닌 밀크의 옆에서 잘 정도로 그의 아들 사랑은 참 대단했다.

그렇게 아들의 향을 충분히 맞은 혼케일은 드디어 그를 놓아주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놓아  것은 아니고 그의 바로 옆에  달라붙어서 근황을 묻기 시작했다.

“잘 지내니?”

“응. 뭐…. 주변이 여자아이들뿐이라 가끔 죽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다들 착한 아이들이라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어.”

“큭큭-  그런 것 가지고-  스무 명이지 아빠는 주위에 여자애들만 오십 명이어서”

생각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 숫자. 예전이야 입이 벌어지는 숫자지 지금은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지금 그가 말한 오십 명의 여성들과  외 그의 아버지, 즉 밀크의 할아버지를 모시던 젊은 아내들까지 그의 아내가 되어 지금 아내의 수는 60명이다.

죽은 밀크의 할아버지를 모시던 여성들은 아직 살아 있긴 하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녀들을 위한 따듯한 가옥에 모여 딸들의 보살핌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

홀스타우로스는 노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부의 이야기일 뿐이고 뼈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노화되어 나중에 가서는 거동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특히나 거대한 가슴과 엉덩이 등등 무겁기 그지없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뼈가 가장 중요한데 노년에는 이 뼈의 노화 때문에더욱이 움직이기 힘든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새긴 하였지만, 어쨌든 밀크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이자 친구와도 같이 친근한 혼케일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랑 얼마나 갔니?”

“뭐야 그 질문- 아빠랑 아들이 주고받기 좋은 내용은 아닌 거 같은데-”

“뭘- 아빠는 네 나이 때 엄마랑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걸?”

“말을 말아야지…. 그거 사실 부족 내에서 암묵적으로 하면  되는 행위잖아”

“뭐 어때? 우리 아버지를 빼면 아빠가 실질적으로 이 부족 최고 권력자였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당시 내 아버지,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도 적당한 일탈 정도는 그냥 눈 감아 주셨어.”

“어휴…. 그런데 아빠는 왜 할머니를 아내로 안  거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끔찍하게 사랑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두 분을 때어놓지 않았어. 당시에는 우리 부족에 전염병이 도는 바람에 안 그래도 할아버지 아내분들이 많이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남은 분이 다섯뿐이었는데 아빠가 어떻게 두 분을 갈라놓겠니.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으니까 기회가 되면 빨리 자빠트려!”

‘아니 이 양반은 아빠가 되어서 이게 아들한테  소린가?’

생각하는  참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심히 위험한 발상의 남자, 그것이 바로 혼케일이었다.

[새로운 달성 과제를….]

‘너까지 그러기냐!’

방금 혼케일이 한 발언 때문에 이미 내용이 파악되는 달선 과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밀크의 말을 들은 루는 그에게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달성 과제의 이름은 어머니의 마음을 훔쳐라.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밀리와 일정 이상의 관계에 도달하기만 하면 됩니다.]

‘후…. 정말 방심할  없는 양반이라니까.’

[참고로 이번 달성 과제는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은 상상 이상입니다. 무려 신체 강화 포인트 50점을 부여합니다.]

‘헉!’

강화 포인트 50점, 이건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기본적으로 이 강화 포인트라는 것이 참 10점 20점은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지만 50점이라는 수치는 확실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변화가 대단했다.

예를 들어 5kg이 나가는 아령이 있다고 가정하고 밀크가 그것을 들어 운동한다고 치면 약 10번을 들고 지칠 것이다.

그러나 이 포인트 50점을 전부 힘에 해당하는 능력치에 부여한다면 약 12번을 들고 지치게 된다.

뭐…. 이렇게 말해도 좀 미비한 변화이기는 하지만,  포인트 강화는 어디까지나 신이 그에게 준 작은 보상에 지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시스템이다.

어쨌든 이 포인트를 50점이나 준다는 것은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슬슬 밀크를 남자로 인식해 가고 있는 밀리와의 관계를 정립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었다.

“아빠가 허락하마. 네 엄마는 네가 데려가렴. 아빠는 이미 60명이나 되는 아내들이 있는데 그녀들도 많아서 힘들어. 아- 뷰렌도 너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그녀도 데려가려무나. 원래 아내 중에 어른이 좀 있어야 나중에 서열 가지고 싸우는 젊은것들이 없는 법이야. 아빠가 그 서열 싸움하는 아내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벌떡 일어날 정도라니까.”

“어휴….”

듣기만 해도 그의 고생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듯했다. 이번만큼은 그 역시 혼케일의 고생을 이해하며 그의 등을 도닥였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나요?”

“아- 왔어?”

그때 마침 창고에 갔던 밀리가 돌아왔다. 혼케일은 방금까지 나누고 있던 이야기를 그만두고는 밀크에게 눈짓으로 잘해 보라는 뉘앙스의 뜻을 전해 왔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의 오붓한 시간, 밀리와 혼케일은 차려진 음식을 먹고 밀크는 아직 약한 위장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밀리의 가슴에 붙어 젖을 빨았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혼케일은 오늘 봐야  아내의 집으로 향하였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밀크 역시 자신의 엄마 밀리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였다.

‘엄마랑…. 관계….’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렇지 뭐.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지만. 낳아주고 길러준 분이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제안합니다. 오늘 밤 그녀의 방에 들어가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어떻습니까?]

‘바로 오늘? 아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좀….’

[원래 이런 일은 마음의 준비보다는 용기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이루어 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이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넘기다가는 결국 기한을 넘기게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달성 과제 기한이 얼마나 되는 거야?’

[일주일입니다.]

‘이건 뭐…. 그냥 빼도 박도 못하겠구나.’

[굳이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박아야 합니다만.]

‘아니 심각하니까 말장난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밀크. 그러나 맞는 말을 한 겁니다. 지금은 박아야 할 시기입니다.]

‘알긴 하지만….’

[밀리는 오늘 젖을 짜내고  무거운 것을 들고 창고까지 움직이느라 많이 지쳤을 겁니다. 밤에 그녀의 방에들어가면 피곤하여 잠이 들어 있을 겁니다. 행동에 들어가면 일어나겠지만. 일단 행위가 시작되면 그녀도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오늘을 넘기면 성공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질 테니 오늘이 바로 기회입니다.]

‘휴우….’

혼케일의 허락, 그리고 루의 재촉 두 가지의 압박이 밀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날 밤 모두가 잠들어 쥐죽은 듯이 조용한 어둠이 깔린 시기에 그는 조용히 자신의 방을 빠져나왔다.

살금살금 걸어 밀리의 방 앞에 도착한 그는 그녀의 방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막상 앞에 왔더니 마음먹은 용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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