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화, 미래의 트라우마를 부순다.
거기에 더해 40대 어른이 아닌 6살 아이의 정신으로 돌아가 숨바꼭질에 심취한 밀크의 얼굴은 어딘지 진지해서 귀여움과 함께 남자의 얼굴이 엿보이고 있었다.
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여자아이에게 그런 밀크의 얼굴이 주는 매력은 작은 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을 날리기 딱 좋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밀크에게 들키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 심정이 돼버린 벨, 그리고 그런 벨의 기분은 루를 통하여 밀크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졌었다.
[벨의 호감도가 52로 올랐습니다. 앞으로 10초 더 같은 공간에 머물 경우 그녀의 호감도는 55까지 올라갑니다.]
‘알려줘서 고맙긴 한데 이거 괜찮은 거 맞지?’
[약간의 신체적 접촉이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만 아직 그녀는 성숙하지 못하여 심각한 상황에 부닥치지는 않을 겁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벨은 점점 밀크의 뒤로 다가왔다. 그녀의 숨결이 등에서 느껴질정도까지 가까워졌을 때 그녀의 배에 밀크의 꼬리가 닿았다.
아직 어려 단단하지 않고 힘이 없는 꼬리지만, 그래도 끝에 달린 부드러운 털 뭉치는 벨의배에 스쳐질 때 부드러운 감각을 선사했고벨은 더욱 그의 몸으로 다가가고 싶어졌다.
‘아…. 좋은 향기. 엄청 좋은 향기야. 남자아이의 몸에서는 이런 향기가 나는구나….’
술래를 피하고자 잔뜩 뛰어다닌 그의 몸에는 땀이 식으면서 어린 홀스타우로스 특유의 신선한 우유 향이 풍기고 있었다.
이 향은 나중에 성인 홀스타우로스 여성을 흥분시키는 페로몬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사람에게는 그냥 향긋한 우유의 향일 뿐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밀크도 가까이 다가온 벨의 몸에서 흐른 땀에서 풍겨 나오는 우유 향을 느끼는 중이었다.
‘좋은 향기네….’
[여성 홀스타우로스의 향기는 남성을 흥분시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고 그저 좋은 향기라는 인식만 있을 겁니다.]
‘저번에 유크랑 유리씨의 몸에서도 비슷한 향기가 나긴 했지. 젖을 먹을 때 느꼈는데 그때는 힘들어서 그런지 이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었어.’
[긍정합니다. 지금은 이제 막 숨바꼭질을 시작했으니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때문에 동년배 향기에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겁니다.]
“어디 있어!”
“어기있다. 찾았다!”
“아! 진짜다! 다 나와!”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술래에게 잡힌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잔뜩 긴장한 밀크가 몸을 움츠리며 더 몸을 작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벨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놀이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밀크의 옆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몸을 웅크렸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항아리 안쪽을 보았을 때 시야에 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듯했다.
그렇게 서로 살을 맞대길 어느덧 아이들이 잡히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제 잡히지 않은 아이들은 대략 다섯에서 여섯 정도라 예상되었다.
술래들의 수사망이 좀 더 좁혀져 오고 있었다. 한 번 뒤진 곳도 더 꼼꼼하게 뒤지며 아이들이 숨은 곳으로 다가오는 술래들의 기척
긴장감이 너무 컷던 것일까. 밀크의 옆에 있는 벨이 순간 그의 허리를 살살 찌르며 그를 불렀다.
[‘밀크…. 밀크….’]
[‘왜 그래 벨?’]
조용한 벨의목소리에 그 역시 조용히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매우 곤란한 표정을 하고는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 급해…. 마려워….’]
[‘헉!’]
평소에 조용하고 침착함의 대명사인 그녀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그 나이 때의 소녀와 다르게 매우 지적인 모습도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난다고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모양인지 소변이 마려워진 그녀는 자신 때문에 밀크가 발각이 될까 봐 노심초사해서 꾹 참고 혼자 소변과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참아 봐야 얼마나 참을 수 있겠는가. 결국, 그녀는 소변 마려운 것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어떻게 해…. 나 진짜 급해…. 아, 앗!’]
[‘참아 벨! 내가 밖에 나가서 상황을 볼 테니까. 잠깐만 참고 있어. 밖에 사람이 없으면 신호로 항아리를 한 번 두드릴게. 그럼 바로 나와서 화장실로 뛰어. 만약 밖에 사람이 있으면 두 번 두드릴 테니까 내가 잡혀가는 소리가 나면 조용히 나와서 소변을 보고 다시 이 항아리에 숨어. 알았지?’]
[‘밀크’]
그녀는 감동한 표정이 되어 밀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그의 볼에 짧은 뽀뽀를 해주었다. 왠지 쑥스러워진 밀크는 볼을 붉히며 그녀의 답례를 받자마자 위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아! 찾았다!”
“이크!”
그러나 어찌나 안 좋은 타이밍이었는지 바로 술래가 안으로 들어오다가 그런 밀크와 눈이 마주쳤고 밀크는 그 자리에서 잡힐 위기에 처했다.
[‘가만히 있어. 내가 나가서 애들을 유인할 테니까.’]
[‘밀크!’]
“찾았어! 여기 있어. 밀크 잡았다!”
“어! 밀크 거기 있어?! 좋아 잡았다! 어서 이리 나와!”
술래인 여자아이 둘이 까르르거리며 달려와 밀크가 숨은 항아리를 에워싼다. 밀크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항아리를 나왔다.
그리고는 두 아이에게 태연하게 말하며 잡혀주었다.
“와- 난 없는 줄 알고 주변을 한번 살피려고 한 건데 이렇게 들키고 말았네. 아이 아쉬워-”
“히힛- 이제 한 명 남았다.”
“벨인 거 같은데? 빨리 찾아야지. 어라?”
“왜 그래?”
“여기 항아리에서 소리가 난 거 같은데?”
“정말?밀크! 사실대로 말해 여기 한 명 더 숨어 있지!”
홀스타우로스의 귀를 속일 수 없는 건가? 확실히 야생과 더 가까운 무리라 그런지 인간보다 청각과 후각이 뛰어난 종족이었다. 항아리 속에서 울리는 기척을 그녀들이 바로 감지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하는 수 없네. 이대로 들키더라도 그녀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게 나을 거야.’
한 차례 숨바꼭질이 끝나게 되겠지만, 이대로 놀이가 끝나면 벨은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이 생긴다.
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항아리 안에 있는 벨을 부르기 위해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벨이 항아리를 박차고 튀어나와 쏜살같이 튀어나기 시작했다.
“앗! 벨이다!”
“기다려! 너 찾았어! 기다리라고!”
두 여자아이의 부름에도 벨은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달음박질을 하며 그녀들에게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밀크가 날 위해 만들어준 기회야!절대 헛되지 않게 할 거야!’
노는 것뿐인데 꽤 진지해진 그녀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밀크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절대로 잡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을 치다가 중요한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소변이 급하다는 사실이었다.
달리다 보니 어린 나이에 방광이 풀리게 된 그녀는 결국 안색을 보기 좋게 일그러트리며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아…. 아아!!!”
밀크와 두 술래가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그때 벨은 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소변을 지리고 말았다.
따라오던 두 여자아이와 밀크는 그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으며 그녀의 외침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그녀에게 다가와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벨?!”
“벨 언니?!”
“화장실 가지 왜 거기서 싸-”
“오줌싸개….”
“벨은 오줌싸개-!”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그녀가 너무 급했나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는 느낌이었지만, 나이가 좀 되는 (10살에 가까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특히나 술래 두 사람은 벨을 향해 오줌싸개라고 부르며 놀리기 시작하였다. 의외인 것은 유크는 그녀를 향해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질린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을 받은 벨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던 침착한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낼 눈가에 잔뜩 생겨난 눈물과 일그러지는 얼굴 그리고 훌쩍이기 시작하는 입이 밀크의 눈에 들어왔다.
[경고 벨의 성격이 변할 정도의 트라우마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보면 후에 두고두고 회자하여 그녀의 삶에 영향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애들이라 악감정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주의를 시키는 게 좋겠어.’
[돌발성 달성과제가 확인되었습니다. 내용은 벨을 위기에서 구하라입니다. 해결할 경우 신체 강화 포인트 2점과 벨의 호감도 10점을 획득합니다.]
루의 설명을 들은 그는 쓴웃음을 지워 버리고는 바로 진지한 표정이 되어 아이들이 둘러싼 벨을 주시했다.
차라리 그냥 놀이를 중지하고 술래에게 잡혀주는 것으로 화장실로 가게 만드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놀이에 너무 심취하는 바람에 그녀에게 부담을 주게 된 밀크는 미안한 감정을 가지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미 축축하게 젖어버린 그녀의 점박이 치마를 본 그는 주변 아이들을 다그치며 혼내 주었다.
“야! 웃지 마! 다들 웃지 말라고!”
뚝
순간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작고 여린 밀크의 외침, 그러나 그 외침은 누구보다 강렬했고 여리지만, 확실하게 아이들의 귀로 들어갔다.
“친구가 실수했는데 비웃고 놀리면 어떻게 해! 다들 반성해! 특히 너희 둘! 친구한테 오줌싸개라고 하다니 실망이야! 사과해!”
“으….”
“아웃….”
밀크의 호통을 들은 술래 두 아이는 질끔 한 표정을 하고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벨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사과했다.
“벨 미안해.”
“미안…. 실수한 건데 내가 너무 심했어.”
“언니 미안”
“미안해 벨.”
“벨 미안해”
두 아이를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 역시 벨을 향해 사과하기 시작했다. 벨은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이거”
“유크?”
유크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천을 벗어 벨에게 내밀었다. 벨이 그녀를 쳐다보자 유크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젖었잖아. 가슴 좀 보이면 어때? 그런데 그쪽은 중요한 곳이니까 가려야지. 자 어서 이걸로 가려.”
“유, 유크….”
앙숙도 싸우다 보면 정이 드는 법이라고 하던가? 밀크의 옆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의 대장이 되어 양측으로 갈라져 싸우던 유크와 벨이었지만, 그런 라이벌의 위기에 그녀는 어른스럽게 대처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벨은 유크가 내민 천으로 젖은 천을 벗어 버리고는 그것으로 아랫도리를 감아 가렸다. 아이들의 놀이는 계속 신행 되었으며 유크는 가슴을 드러내고도 사내아이처럼 웃으며 열심히 뛰어다니며 같이 놀기 시작했다.
[상황해제입니다. 벨을 위기에서 구하여 돌발 달성과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신체 강화 포인트 2점과 벨의 호감도 10점을 얻어 그녀의 현재 호감도는 65점이 되었습니다. 주변 아이들의 인식이 바뀌어 친구의 실수를 놀리기보다는 보듬어 주는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오? 그 정도인가?’
[밀크의 호통이 주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족장으로서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아니 뭐…. 어린애들 사이에서 무게 좀 잡은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다시 시작된 놀이, 밀크는 때로는 술래가, 때로는 숨는 측이 되어 아이들과 놀다가 해가 지고 있을 때쯤 헤어져 집으로 향하였다.
“밀크! 밀크!”
“응?”
그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그의 뒤에서는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벨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 중에 달리기가 가장 빠른 그녀였던 지라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 들었고 다음 순간 그녀는 밀크의 바로 앞에 당도하였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숨도 안 차는 듯 밀크의 앞에서 담담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는 허리를 구부리며 그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읍!”
짧은 키스였지만, 두 사람 모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떨어지게 되었고 벨은 새빨갛게 물들인 얼굴로 그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고, 고마워! 좋아해 밀크!”
그리고는 달려왔던 속도 그대로 다시 발을 놀려 그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멍해진 밀크의 머릿속에서는 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의 호감도가 70으로 상승했습니다.]
‘안 들어도 알 거 같아.’
점점 진해지는 해가 만들어낸 노을을 향해 달려가는 벨의 뒷모습을 보며 밀크는 점점 이 세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가고 있었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팍팍한 삶에 지쳐 만들어 보지 못했던 주변 친구들과의 추억과 분홍빛의 사랑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생을 허락받은 그는 이 행복들이 깨지지 않게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거야말로 내 전 삶에 대한 신의 선물이야.’
[긍정합니다. 저 역시 당신을 끝까지 도와 이 삶이 부서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그녀도 또 한 번 다짐했다. 두 사람의 다짐을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태양은 더욱 어여쁜 노을을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