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딸한테 덮쳐졌습니다. ─09, 엇갈린 선택 (9/10)

내 딸한테 덮쳐졌습니다. ─09, 엇갈린 선택

───아아아.

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대가를 치뤘다. 그래. 어린 딸의 광기를 방치한건 나였다. 직장을 그만둔건 한달전. 은지가 죽은건 세달전이다. 회사는 발칵 뒤집혀졌다. 은지는 실종 처리되어, 아직도 경찰의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은지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갇혀버린 이곳은, 누구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치지직……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초췌해진 내게 윤ㅅㅡㄹ……「치직─」예슬이가 다가왔다.

“오빠, 밥먹어야지.”

“응……. 예슬아.”

예슬이가 내게 미소지었다. 요즘 느낀다. 예슬이가 많이 어려진 것 같다. 색기없이 청순가련한 미인이었는데, 결혼을 하고나서 그런가. 색기가 짙어진 것 같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매력적이다.

“양장피로 해봤어. 어때? 맛있겠지─?”

예슬이가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힘없이 웃어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응…… 맛있어 보인다.”

핏물이 접시를 타고 흐른다. 달걀 지단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장식되었을 채썬 오이와 당근은 시커먼 물에 찌들어 있었다. 오늘 먹는 이 고기는 어느 부위일까. 알 수 없다. 누구였을까. 그또한 모른다. 핏덩어리가 접시 가운데를 채우고 있었다. 가장 위에는 새빨갛게 터져버린, 소름끼치는 눈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접시를 타고 넘쳐흐르는 핏물이, 식탁보를 적셨다. 내 앞에 앉아있던 예슬이가 미소지었다.

“먹자.”

“……”

침묵이 흐른다. 퀭해보이는 예슬이의 공허한 눈동자가 날 노려본다.

“안 먹어?”

예슬이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다소 신경질적인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 나는 숟가락을 잡고만 있었다. 눈알이 여전히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인사해야지. 오빠.”

예슬이가 빙긋 웃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매일 주는 은지에게 고마워해야지. 안녕? 은지야?”

예슬이는 고깃덩어리에게 말을 건넸다.

“접시 위는 어때? 따뜻하니? 넌 죽었고, 난 이렇게 살아있네……?! 히히……”

“……”

나는 그저 물끄러미 예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반응이 시덥지않자, 예슬이는 고개를 팍 숙이더니 이내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럼에도 내가 꿋꿋이 있자 예슬이가 고개를 확 쳐들었다.

“먹어!! 먹으라고──!!”

쾅─!

예슬이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묵묵히 예슬이를 응시했다. 넘쳐흐르던 핏물이 예슬이의 하얀 볼에 튀겼다. 창백한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한참동안 서로 공허한 시선만이 오고갔다. 예슬이가 돌연 히죽 웃었다.

“먹기 싫으면 말던가. 치울게.”

예슬이는 냅다 접시를 치워 싱크대에 버렸다.

퍼억─. 퍼억─

싱크대에 쏟아진 내장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끔히 접시를 씻은 예슬이가 다시 내앞에 앉았다.

히죽.

난 침을 삼켰다. 갈라진 목구멍에서 피가 나오는것 같다. 잔뜩 쉰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힘겹게, 마른 숨을 내쉬며 내 앞에 서있는 여자를 불렀다.

“윤슬아.”

예슬이의 눈동자가 커진다. 예슬이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마!!”

콰직─!!

예슬이는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거실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나무 원목으로 만든 의자가 박살났다.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예슬이의 눈동자에는 핏줄이 잔뜩 돋아 있었다.

“죽은건 그 아이야. 지금 오빠 앞에 살아있는건. 나라고─?”

예슬이가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힘겹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슬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심히 비틀린 미소. 그 광기 가득한 모습에 난 입을 다물었다.

“…………”

죽은건 내가 아니다. 죽은건 최윤슬이다. 살아있는건 최예슬이다. 살아있는건 나다.

아니──.

넌 너를 죽였잖아.

내가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예슬이의 얼굴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예슬이가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아악──!!!”

다짜고짜 탁자를 넘어 예슬이가 나를 덮쳤다. 난 뒤로 넘어갔다.

쿵!

머리가 강하게 울릴 정도로, 난 바닥에 부딪쳤다. 내 머리가 으깨졌다. 예슬이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미친듯이 흔들고 있었다. 잔뜩 길게 자란 산발이 이리저리 휘둘렸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죽은건…… 최ㅇㅖㅅㅡㄹ……이 아니ㄹ……”

예슬이는 울면서 웃고 있었다. 피눈물이 내 셔츠 위로 떨어진다. 최예슬이 일그러진다. 턱이 덜컥거린다.

퍼억─!!

예슬이의 두 눈알이 터져나갔다. 눈알이 있던 자리에선 새카만 구정물이 줄줄 흘러나오더니, 이내 피분수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퍼걱─!!

예슬이의 양어깨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덜컥 두 팔이 떨어져나갔다. 내 목을 조르던 양손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미친듯이 흔들던 머리가 뚝, 하고 떨어진다.

피. 피. 피.

이미 시뻘건 핏물과 각종 살점, 덩어리가 내 몸 위를 뒤덮고 있었다. 머리를 잃은 몸뚱어리는 허공에서 휘적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나는 새빨간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이럴건데……”

…………모르겠다.

───치지지직……

내 앞에는 깔끔히 옷을 입은 윤슬이가 앉아 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만두 하나를 집어먹었다.

와득와득─.

뭔가 많이 씹힌다. 난 잘게 씹은 만두를 삼키고는 짧게 말했다.

“맛있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윤슬이가 작게 대답한다.

“은지 언니야.”

나는 젓가락질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현관 쪽에 걸린 거울을 본 내 입안은, 피범벅이었다. 어쩐지 만두가 터질때 나는 비린내가 이거였나.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일일이 젓가락으로 찔렀다.

어떤 만두 안에서는 머리카락, 손톱이 핏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어떤 것은 불길한 핏덩어리가 뭉쳐져서 썩은 치즈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접시를 타고 넘친 핏물이 똑똑, 떨어졌다.

“아직도 맛있어──??”

윤슬이의 두 눈이 뚫려 있었다. 텅 빈 양눈에는 시커먼 구멍만이 뚫려있는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구멍 안쪽에는 새빨간 안광만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는 핏줄기가 두 눈에서 흘러나왔다.

“…………”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윤슬이의 몸뚱아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천천히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윤슬이의 관절 곳곳에서 퍼걱, 하고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윤슬이의 몸이 일제히 떨어졌다. 조립된 컴퓨터가 부품별로 분해되는 것처럼 윤슬이의 머리통이 떨어지는 걸 시작으로 팔다리, 어깨, 배가 뜯겨져 나갔다. 그 안에 있던 창자들이 모조리 거실에 쏟아져버렸다.

데굴데굴 굴러온 머리통이 내 발치에서 멈췄다. 혼자서 기이하게 돌아간 머리통은 나를 응시했다. 은지의 얼굴이었다.

「아직도 날 사랑해……?」

난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꼭, 찾아낼게. 윤슬아.”

어느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날 반기는건 눈부신 아침 햇살이 아닌, 나를 휘어감는 어둠이었다. 마치 문어의 발처럼 어둠이 꿈틀거렸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끔찍했다. 하지만 그걸 감내하고 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난 딸과 놀아났다.

그것만으로, 이미 난 아빠 자격 상실이지만…….

이윽고 어둠이 날 완전히 집어 삼켰다. 난 어둠에 삼켜졌다. 그리고……

내 의식은 심연 밑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잠식되었다.

─────치지지지지지직…………!

어렸을때, 엄마가 없는걸로 힘들어하던 윤슬이는 항상 12시가 되면 내 방으로 몰래 살금살금 기어들어왔다. 그런 버릇은 9살까지 계속되었다. 난 울며 잠드는 윤슬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힘겹게 잠들던 딸아이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매일매일 날짜 ─치지직…… 엄마 ─치지직…… 잘했지? 아빠? 응? 장례식 때도 기ㅃ…… ─치지직…… ㅡ지않아……─치지직……슬퍼서…… ─치지직…… 아빠한테 와락 ─치지지지직……!!! 안겨서…… 근데 슬퍼서 운 건 ─치지직……맞아……. 너무 슬퍼서…… ─치지직……」

윤슬이가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였던 때가 떠오른다. 난 잊고 있었다.

윤슬이는 12살때 병원에서 다중인격장애 판정을 받았다.

윤슬이의 엄마, 예슬이는. 윤슬이가 10살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예슬이를…… 윤슬이는 무슨 심경으로 지켜봤을까. 항상 상냥하고, 친절하고, 어여쁘던 자신의 어미가…… 한낱 핏덩어리로 전락한 광경을…… 직접 목도한 윤슬이는.

아내의 장례식 당일, 윤슬이는 울다 지쳐서 혼절했다. 병원에 혼수상태로 입원한 윤슬이를 두고서, 장례식은 끝났다. 일주일뒤, 윤슬이는 제정신을 차렸다. 그뒤로, 윤슬이는 뭔가 달라졌다─.

뭔가 갑자기 어른스러워졌다는 느낌인걸까. 말투나, 어조, 얼굴에 짓는 표정……. 마치 누군가 내 딸아이의 영혼을 갈취하고, 그 탈 안에 다른 누군가를 뒤집어 씌운 듯한 느낌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윤슬이는 빠르게 자라났다. 비정상적으로…… 13살때 이미 가슴이 너무 커져서 주변의 시선이 주목되는걸 느꼈다. 그걸 딸아이는 자랑스러워하며 내게 교태를 부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오래전부터 꾸준히 먹던 안정제를 다른 약으로 누군가가 바꿔쳤던걸 깨달은건 윤슬이가 15살이 되던 해였다……. 이미 난 윤슬이가 바꾼 약에 중독되었고, 뇌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병원을 자주 다녔다.

그러다가 난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았다. 결국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수술 전날. 난 수술을 펑크내고 말았다.

친딸과 관계를 맺었으니까.

난 반쯤 약에 취한 상태에서 무작정 딸아이가 들려주는, 소설에─ 잠식되었다.

「아빠가 날 안아줬을 때에는 너무 ─치지직……. 사랑하는 사람한테 안기는 건 너무나도 ─치지직…… 일인걸. 하지만…… 그게 부모 자식간의 애증뿐인 관계라면, ─치지직…….」

그래. 애증이었다. 딸을 구하다가 죽은 예슬이. 정말 아내없이 산다면, 죽을 것만 같았던 내게. 아직 젊었던 아내의 죽음은 내 영혼에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신을 원망했다. 집에 있던 십자가는 내던져버렸다. 거실에 걸려있던 예수의 초상화를 갈기갈기 찢으며 비명을 질렀던 일을 기억한다.

난 딸을 증오했다. 내가 딸을 위해 헌신했다고? 아니…… 난 술에 취해 딸을 학대했다. 때리긴 했지만, 성적으로 학대했던 일은 없었다. 증오 뿐이었다면, 난 진작에 딸을 데리고 자살했을거다. 하지만…… 그만큼 난 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집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고간 유산이었다. 꿈속의 나비처럼 내게 다가와 환상처럼 사라진 아내였다.

아내를 꼭 빼닮은 딸을, 난 무작정 증오할 수는 없었다. 밤마다 상처에 얼룩진 우리 부녀는 폭력을 멈추고 서로 끌어안아 무작정 울기만 했다. 어렸지만, 딸아이는, 그런 나를 이해해줬다. 보듬어줬다.

그런 애틋함이 서로의 마음 속에서 자라났다. 그러다가 딸의 경우는 비틀렸고, 결국 이렇게 되었지만. 쿡쿡───”

최재현은 그동안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를 멈췄다. 얼마나 이야기한걸까.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앞에 무표정하게 서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어렸을적 최윤슬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재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딸이지만, 자신이 아는 딸은 아니라는 것을─

“자, 이제 내 이야기는 끝났어.”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은 회색빛 세계였다. 세기말, 마치 핵폭탄을 맞은뒤 세계일까? 저 멀리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난 건물들과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척박한 대지…… 하늘도 잔뜩 찌푸려, 회색이었다. 색채라고는 없는 이 세계에서 생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윤슬이를…… 꼭 봐야겠어? 아빠?”

어린 윤슬이는 슬픈 눈으로 재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힙겹게 입술을 열었다.

“만나야만 해. 만나야……만…… 하니까.”

소녀는 입술을 깨물다가 폐허 위에서 내려왔다. 소녀가 그의 양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온세상이 새카만 밤에 먹히고 있었다. 마치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처럼, 천천히…… 몸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이윽고, 더욱…… 훨씬 아득한…… 마침내 어둠만 남은 이 공간에서, 최재현은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인영을 목격했다.

그것은 흐느끼고 있었다. 마치 태아처럼 몸을 최대한 말아, 움츠러들었다.

재현은 그것을, 끌어안았다.

그것은 자신을 안은 이 포근한 느낌에, 깜짝 놀라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재현은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내 딸…… 정말 미안해……”

그것은 재현의 가슴팍을 밀치고 비명을 질렀다.

“이제와서 그렇게 외쳐봤자 늦었어! 늦었다고!”

피범벅이 되버린 딸아이. 그래…… 그 교통사고 당일날 입었던 원피스, 머리띠…… 토끼달린 치마…… 전부 그대로였다. 윤슬이 울부짖었다.

“조금만…… 따뜻하게 바라봐줄 수 있었잖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다니…… 아빠는…… 어린 나한테…… 대못을 박은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윤슬아…… 그러니까 제발……!!”

재현은 윤슬이의 옷자락을 잡으려했지만, 다시금 시야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윤슬이 히죽 웃었다.

“이젠…… 전부 끝났어…… 이 지긋지긋한 아빠도, 끝이야.”

푸욱──.

윤슬이가 등뒤에서 꺼낸 커다란 가위가 재현의 배에 쑤셔박혔다. 손잡이를 비틀다가, 니퍼가 순간적으로 빠지자 재현의 배에서 막대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윤슬이가 미소지었다.

“기분이 어때? 아빠?”

치지직─…… 팟─!

비로소 세계의 일그러짐이 끝났다. 모든 것이.

자신은 자신의 집에 있었다.

재현은 소파에 앉아, 거실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은, 저기서 고통스러워하며 뒹굴고 있었다. 재현은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밑을 내려보니 깔끔한 검은 체크무늬 양복과 붉은색 넥타이를 입고 있었다. 저쪽에서 온갖 비명을 지르며 이쪽을 향해 손을 뻗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신은, 추해보였다. 후줄근한 티셔츠와 볼품없는 청바지는 피로 얼룩져있었다. 재현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가자, 윤슬아.”

“안돼─!! 안돼애애애─!!”

재현이 비명을 지르며 멀어져가는 부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윤슬이는 이쪽을 향해 간악하게 혀를 내밀어보이며 광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손을 내민 재현을 향해 웃어보였다.

“응, 아빠─.”

어린 딸과 자애로운 아버지는 서로은 손을 잡고 걸어나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재현은 끝없이 흘러나오는 핏물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가, 그의 숨이 거칠게 끊어졌다. 그것으로, 그는 끝이었다……

─내 딸한테 덮쳐졌습니다

Bad End: Crossing choice

내 딸한테 덮쳐졌습니다2 ─01, Besuch des Todes 

『1회차 엔딩, ‘Crossing choice’가 감지되었습니다──.』

『2회차를 시작합니다──.』

──치지직……

낡은 영사기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회상이 시작된다.

───

임예슬. 1살 연하의 어여쁜 내 아내. 우린 고등학교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사랑했다. 좋아했다,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정말 열렬하게 사랑했고, 이 사랑이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는 영원한 화염처럼 타오르리라 맹세했었다. 그만큼 우린 서로 아껴주고, 함께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린 처음 하나로 맺어졌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을때 너무나도 기뻤다. 도서관도 함께 다니고, 학교에서도 찰싹 붙어다니고…… 우린 이미 바퀴벌레 커플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성적은 놓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둘은 시너지 작용을 했다. 그녀는 내가 잘 못하는 문학을, 난 그녀가 잘 못하는 수학을. 서로를 보완해주면서 전교 1,2등을 다퉜다.

양가 부모님들은 예쁘게 사랑하는 우리가 썩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아버지는 너무 연애에만 몰두하지 말라며 충고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우린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고, 예슬이가 대학교 1학년이 됬을때 결혼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히 과외를 한덕에 돈이 제법 쌓여있었다. 나와 예슬이는 사치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서, 꼬박꼬박 돈을 아꼈고, 그 결과 작은 전셋집 하나를 용인 쪽에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집이 생겼을땐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군대를 가기 2주전에, 예슬이는 딸을 낳았다. 3.2k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예슬이와 나의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벅찬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새빨간 핏덩어리가 맥동하며 세상에 내뱉은 울음 소리를. 그 감동적인 순간을.

딸아이의 이름은 최윤슬로 지었다. 찬란한 햇빛이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처럼 윤슬이는 아름답게 자라났다. 시간이 흘렀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그리고 윤슬이의 범상치않았던 외모는 5살이 되서 한창 꽃을 피웠다.

주변에선 아내를 닮은 화사한 미모를 칭찬하기 일수였다. 아내는 청초한 분위기의 미인이었고, 딸아이는 하얀 피부, 크고 검은색의 맑은 눈망울을 가진 어여쁜 아이였다. 장차 자라서 아내보다도 아름다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엿보였다.

우린 행복했다. 적어도 셋이 있는한.

어느날이었다. 사고는 불현듯 찾아왔다.

우린 항상 자각하지 못한다. 죽음이란 놈은, 순서없이 무질서하게 데려가는 광인이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노크하고 집주인을 데려가는 무례한 손님이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모두가 모르는 척한다. 그래…… 척할 뿐이다. 외면받지만, 모두가 두려워한다. 한편으로는 증오한다.

회사에서 한창 업부를 보던 중이었다. 윤슬이가 10살이 되던 해였을거다. 그날을 난 생생히 기억한다. 돌연 울리는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아내로부터 온 전화. 아내는 왠만하면 내가 업무 중에 있을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결혼을 한지 10년이 넘어서도 신혼 때처럼 서로를 정말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사랑은 식지 않았었다. 거기에 귀여운 공주님까지 껴서 무척 분에 넘치게 행복했던것 같다.

한편으론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최재현 씨 맞으시죠──?」

아내의 휴대전화 너머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목 뒷켠이 서늘해졌다.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불안한 감은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침을 삼키고 겨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만……”

「여기 여의도 성모 병원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사모님이 숨지셨습니다. 여기 따님도 계신데 아무래도 보호자 분이 계셔야할 것 같아서 연락을……」

아아, 나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흡사 괴물이 앓는듯한 소리를 내며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며 묻는 상사에게 간략히 대답하고 난 홀린듯 미친듯이 엑셀을 밟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보고야 말았다. 하얀 시트에 쌓인 아내와─ 멍하니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 딸아이를. 서울로 이사온뒤 시댁에 가는 길이었다. 하얀색 원피스에는 시뻘건 핏자국이 길게 나있었다. 아내가 정갈하게 매준 머리띠는 흐트러져 있었고 토끼가 달린 치마는 밑단이 구겨져 있고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아빠……”

“윤슬아─”

딸을 부르는 내 목소리는, 교통사고를 당해 분명 충격을 받았을터인, 어린 딸에게 들려줄만큼 감미롭지 않았다. 오히려 갈라지는듯, 증오와 원망을 듬뿍 담은 벼려진 칼같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어떻게 된거야?”

난 내게 다가오는 딸을 내려다보며 허망하게 웃었다.

“미안해……미안해……내, 내가……할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놓쳐서 주우려다가……”

“그만. 그만…… 그래서─”

난 숨을 들이키고, 딸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 때문에, 네 엄마가 이렇게…… 예슬이가 이렇게 된거야?”

결국 딸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럽게 우는 윤슬이를 바라보며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털썩 무릎 꿇으며 예슬이의 시신 앞에서 절규했다.

아내의 장례가 끝나고, 한달이 흘렀다. 한동안 시댁에서 지내던 윤슬이가 비로소 집에 왔다.

“…………”

입술을 꾹 다물고 현관에 들어선 윤슬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 닥치는대로 손에 잡히는 것을 집어던졌다.

“개같은년─!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들어와! 이 씨발년!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예슬이가 죽었잖아! 왜! 왜! 하필이면 예슬이가 죽은거야! 왜!”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우린 셋이서 행복했다. 하지만 문제라면, 나와 예슬이는 서로 너무나도 사랑했었다. 지나칠 정도였을까……? 하지만 우리 둘다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예슬이는 우리 가족의, 행복의 구실점같은 것이었다. 난 어디까지나 윤슬이보다 예슬이가 더 우선이었다.

윤슬이는 11살이 되었다.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회사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겉으로 보기에 우리 부녀는 이제 괜찮아 보였다. 예슬이를 잃은 슬픔을 모두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고름같았다. 언제나 위태위태한 일상이 이어졌다.

“하하, 윤슬아. 너네 엄마는 어디갔니? 응? 예슬아아아─! 어디 갔어! 좀 나와봐! 내가 잘못했어! 좀 나와봐!!”

난 소리를 지르며 장농을 발로 찼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옷을 넣어둔 걸이가 부서지며 방바닥에 쏟아졌다. 윤슬이는 침대 위에 올라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소리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난 또 화가 뻗쳐올라 뺨을 후려쳤다.

“이 썅년, 넌 누군데 이 집에 들어와있는거야! 예슬이나 데려와봐! 난 예슬이 없이 살 수 없어!”

그리고 다시 예슬이를 부른다.

“예슬아─!! 하하,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정말이야! 내가 들어줄테니까, 직접 나와서 말해줄래? 제발……”

낮에는 부서 내에서 업무 능률 1위를 달리는 착실한 직장인, 착하고 자상한 아빠를 연기하며 밤에는 술에 찌들어 딸을 폭행하고 학대하는 개새끼였다.

“이이! 씨발! 예수고, 뭐고, 좆도 없잖아! 씨발!”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2때 우린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예배를 나갔다.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시편 23장 1절에서 6절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죽고 난뒤,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졌다.

우선 거실에 걸려있던 나무 십자가를 거실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 옆에 걸려있던 예수의 초상화를 향해 침을 뱉고 식칼로 그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하하…… 하하…… 왜, 왜…… 세상에 더 데려갈만한 새끼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착한 우리 예슬이…… 왜 데려가셨냐고……”

그런 절규를, 딸은 듣고, 바라보고 있었다.

술을 과하게 마신 어느 날이었다. 윤슬이는 일찍 들어와 자기 방에서 이불을 덮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는 척을 해보려했던 것 같은데, 난 그마저 무시하고 거칠게 이불을 걷었다.

“꺄아악─!”

윤슬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잠옷이 말려 올려가면서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등의 피멍이 드러났다. 하지만 난 소주를 들이키며 피식 웃었다.

“이 씨발년아, 뭘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이리 나와!”

난 눈물을 흘리는 딸의 머리채를 잡고 거실로 질질 끌고나왔다. 얼마나 아팠을까. 어린 나이에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폭력이었을까. 그것도 한없이 상냥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돌변한건, 윤슬이에게 충격이었을거다.

“왜 네가 살은거야, 윤슬아? 엉? 대답 좀 해봐.”

그리고 난 결국 해서는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야 말았다.

“차라리 네가 죽어버리지──!! 왜, 왜!! 네가 살은거야! 어째서?! 대신 죽었어야지!!”

그리고 생기없이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윤슬이는,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창백해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윤슬이는 서럽게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미안해 아빠…… 흐극, 미안해…… 내가 살아서…… 나 때문에 엄마가 죽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아빠…… 흑, 후윽!”

헐떡이듯이 눈물을 쏟아내는 딸의 독백은, 처절했다. 그제서야 술이 확 깨고 난 비로소 내가 방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난 간곡히 용서를 구하며 미안하단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 부녀는 밤새 울면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물론 그뒤로도 학대는 간간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밤이 지나면 또 우린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렇게 미친 일상이 반복되었고, 윤슬이가 12살이 되던 해에 다중인격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외에도 각종 정신 질환 증상이 발견되었다. 교통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학대당한 영향으로 증상은 더욱 심화되어 있었다.

물론 문제는 딸에게만 있는게 아니었다. 나한테도 있었다. 우리 부녀는 약을 복용받았고, 딸은 여전히 싱글벙글거리며 내 옆에 붙어 재잘거렸다.

윤슬이는 학교 생활을 문제없이 해냈다. 오히려 어머니를 잃은 역경을 버텨내고 성실하게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으로, 학교에서도 주목하는 영특한 아이였다.

하지만 속으로 윤슬이는 철저히 망가져 있었다. 나에게 매달리고, 나만 보면 미안하다며 사과해왔다. 그런 딸을 난 괜찮다며 끌어안았다. 그러다 문득, 윤슬이가 13살이 되던 해에 있었던 일이다.

평소처럼 학교가 끝나고, 나도 회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둘이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내 품에 있던 윤슬이가 문득 몸을 돌려 정면에서 날 바라본다.

“아빠.”

“응?”

“애들이 나보고 가슴이 크대. 아빠가 보기에도 그래?”

딸은 또래보다 훨씬 성숙했다. 벌써부터 많은 남자들이 꼬일 것 같은 여우같은 눈매와 오밀조밀한 얼굴, 검은색 색기 가득한 눈망울과 반짝거리는 연분홍빛 입술. 거기에 발육도 출중했다. 청순가련한 미인이었던 아내와 달리, 딸은 팜므파탈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등학생 6학년이 아니라 거의 중학교 3학년 정도로 보였다.

“그, 글쎄……”

내가 대답을 피하자 딸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밀착했다. 꾹 눌린 탄력 넘치는 가슴의 감촉이 티 너머로 느껴졌다.

“나 브래지어 바꿔야 할 것 같아. 지금 입는거 너무 꽉 끼는 것 같아. 사줄거지? 아빠?”

살짝 콧소리까지 내며 교태를 부리는 딸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애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비틀린 모습을, 난 그때까지도 미련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딜봐도 정상적인 부녀의 모습이라 보기에는 힘들었다.

“응. 우리 딸.”

난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딸이 내민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윤슬이는 볼을 붉히면서 더해달라며 졸랐고, 우린 더 진한 입맞춤을 이어갔다.

비틀림은, 예슬이가 죽으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내 딸한테 덮쳐졌습니다2 ─02,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12호 슈퍼 태풍 키쿠가 현재 한반도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북상중입니다. 오늘부로 한반도 전역이 영향권에 들어왔으며 현재 보령에는 시간당 800mm 이상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전국에 낙뢰를 동반한 경이로운 양의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시간부로 국가 재난 사태를 발령하고 한국 중앙 재난 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중입니다. 국민 여러분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매미라는 태풍이 한국에 직접 상륙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태풍이 비껴가거나 약화되어 상륙하는게 대부분이라 별로 자각이 없었다지만 태풍이 할퀴고 지나가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이례로 최악의 태풍라면 할 말은 다 나온게 아닐까. 이른바 슈퍼 태풍이라는데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잔뜩 겁에 질려 내게 안겨 있었다. 탁자 위에는 2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라면과 통조림들, 건조 식품들과 생수 5병이 있었다.

우리는 소파 위에 찰싹 붙어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시선은 TV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연일 다른 채널에서도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은 커녕, 괴물처럼 다가온 폭풍에 대한 속보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태풍의 중심 풍속이나 역대 태풍들과의 비교를 다루면서, 벌써 제주도에는 시간당 1,000mm까지 빗방울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정도면 쏟아진게 아니라 들이부은게 아닐까.

문득, 꾹하고 윤슬이가 팔을 눌러온다.

“아빠…… 무서워……”

그도 그럴것이, 전등을 꺼둔 상태라 거실은 어두웠다. 텅빈, 공허하고 넓은 집에서 우리 두 부녀는 서로에 의지하며 허무의 공포에 맞서고 있었다. 베란다 너머로 누군가가 두들기는 것 같았다. 밖에서 들리는 거센 빗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마치 거대한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심장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살점에 파묻힌 나약한 곳을 파헤치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내 가슴위로 귀를 댄 윤슬이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빠……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 있어.”

나는 피식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뭘 그런걸 듣고 있어.”

“……그래도 아빠 심장 소리 들으니까 안심이 되네.”

웃는 윤슬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난 창가 너머의 빗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벌써 아내를 떠나보낸지 7년이 다되었다. 아내를 잃은 공백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마치 심장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사무치는 공허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내게 고양이처럼 머리를 비비며 눈을 감고서 웃고 있는 딸아이를 내려다볼수록 알 수 없는 애정이 치밀어올랐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딸에 대한 애착으로 매웠다.

윤슬이는 내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딸이었다. 우리 부녀의 관계는 아내의 죽음 이후로 크게 비틀려버렸다. 왜곡되어버렸다. 뒤틀렸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엉망진창이 되었다는게 맞으려나.

난 딸을 증오했고, 미워했다. 결국에는 너가 대신 죽었어야 했다는, 해서는 안될 말까지…… 아버지로선 실격이었다. 아니…… 쓰레기같은 짓을 해버린 것이었다. 난 그날 울면서 딸아이 앞에 무릎 꿇었고, 사과했다. 윤슬이도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간 어미의 육편을 보며 윤슬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아, 불쌍한 사람. 여리디 여린 어린 생명을 구하려다 자신이 부서져버린 내 아내. 예슬이의 죽음은 윤슬이와 내 몸 안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흔은 쉽게 지워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부녀는 꾸준히 심리 치료를 비롯해서 약물 치료도 받았다. 윤슬이는 결국 정신 장애 2급 판정까지 받았다. 평소에는 정상인처럼 행동하지만, 내면적인 면을 검사해보니, 여러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왔다. 타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동정, 연민…… 책임감같은……

난 가뜩이나 상처받아 웅크린 고슴도치같은 아이에게 대못을 박다못해 끔찍한 고문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다 서로 상처를 머금고 있었고, 그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곪아 터져버렸다.

윤슬이의 하얀 볼을 타고 내려가 한없이 갸냘파보이는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내게 안겨있는 딸은 묵묵히 내 손길을 즐긴다. 턱을 들어올려 딸과 시선을 맞추고, 윤슬이는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백치처럼 느껴지는 흐리멍텅한 시선. 마치 녹아내린 듯한 응시.

콰콰쾅─!!

흡사 대포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벽력같이 내 고막을 찢어발길 기세로 천둥이 울려퍼졌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는 내게 하늘이 일갈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근친상간. 성경에서도 가장 증오하는 가증스러운 것들로 신께서 친히 지목하셨다. 동성간에 애정을 금치않는 자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 제 부모나 자식간에 교합한 자들……

하지만 이제와서 성경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내가 사고 한번으로 망가질 줄이야. 큭큭.

창세기 19장 16절에 당시 소돔에서 살던 롯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심판을 받은 죄악의 도시에서 가까스로 탈출한다.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던 천사의 지시를 어겨 소금 기둥이 되었고, 두 딸과 롯은 탈출하여 동굴에 기거하게 된다.

30절, 소알에 기거한 롯의 두 딸은 이 땅에 세상의 도리를 따라 자신들의 배필이 될 이가 없다 여겨 제 아비에게 술을 먹이고 번갈아가며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렇게 두 딸은 친 아버지의 아이를 임심한다.

이 어찌 큰 아이러니가 아닌가! 신이시여,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더러 부모와 자식끼리 간하지 말라 가르치셨거늘, 당신의 절대적인 말씀에는 모순이 있지 않으십니까?

어렸을때부터 당신을 위해 신실히 살아온 종을 누구보다 일찍 거두어가시고 내게 불행의 씨앗을 뿌리신 자여! 대답해보시죠! 내 고함을 들은 누군가는 그렇다면 이렇게 이르겠죠, 욥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무두질하여 강하게 만드시는게 목적이라고! 그딴 개같은 목적이라면 난 필요없습니다! 난 당신을 저주합니다! 증오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배신하고, 져버리셨습니다! 당신께 충성하는 자를 이리도 불행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당신이 내겐 사탄입니다! 당신같은 신은…… 필요없어─!!

콰콰쾅……─!!!

신이 내게 분노하는 듯한, 거대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난 개의치않았다. 난 오히려 희번득하게 웃었다.

“으응…… 하읍…… 아빠……”

윤슬이가 내 목을 끌어안고서 입을 맞췄다. 윤슬이의 얇은 입술 안으로 내 혀가 파고들었다. 태초에 이브를 홀린 사악한 뱀처럼, 미끌미끌한 뱀 한 쌍이 얽히고 설킨다. 끈적끈적한 침이 흘러내려, 윤슬이의 턱을 핥아 주었다. 윤슬이가 미소를 흘리며 다시 내게 다가왔다. 가슴팍을 간질이던 손가락을 내려 셔츠를 단추를 조금씩 풀렀다.

딸의 혀가 젖혀진 셔츠 자락 사이로 드러난 내 살을 핥아내렸다. 짜릿한 쾌감에 난 짧게 신음하며 치마 밑으로 드러난 윤슬이의 매끈한 다리를 어루만졌다.

그래…… 우린 이런 식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짐승처럼 핥아주었다. 내 딸이었기에, 마냥 증오할 수는 없었다. 애정과 증오가 나란히 공존하는 기묘한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변질되어버렸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점점 윤슬이가 자라나가면서, 난 소름이 돋았다. 마치 예슬이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기에. 흡사한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예슬이에게 없었던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머금은 윤슬이는, 가시를 잔뜩 품은 검은 장미였다. 가냘프고 청초하면서, 색기를 한껏 함유하고 있는 딸아이.

언젠가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집에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리운 된장 찌개 냄새가 났다. 난 홀리듯이 주방으로 다가갔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난 그 여자의 이름을 이렇게 불렀다.

예슬아─라고……

뒤에서 으스러져라 그 여자를 끌어안았지만, 드러난 그녀의 정체는…… 윤슬이었다. 그날 우리는 둘다 하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의 우리 부녀간의 험악했던 나날 이후로 오랜만에 집안에는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다행히 다음날 윤슬이가 아무렇지않게 나를 대해줘서 고마웠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 부녀의는 엇갈린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하고 말았다.

마치 젊은 애인이 생긴 것 같았다. 윤슬이는 내게 교태를 부리면서 몸을 바짝 밀착하기도 했고, 콧소리를 간혹 가다가 내기도 했다. 딸의 애교는 더이상 귀여운 딸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여인의 것이었다. 점차 무뎌져가던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지고야 만 것이었다.

“하아……”

윤슬이가 나직하게 신음을 흘렸다. 밖에서 강한 바람이 몰아쳐서 창문에 부딪쳐왔다. 그 충돌이 울려, 마치 유령의 음울한 울음 소리처럼 이리저리 울려퍼졌다. 그나마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Tv의 불빛마저 꺼졌고, 거실에는 아무런 불빛도 켜두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은 한없이 어두웠다. 가뜩이나 넓은 집에 가구도 별로 없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우리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딸의 검은 다이아몬드같은 눈망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흐드러진 듯한 눈빛은 총명함을 잃고 쾌락에 가득차 있었다. 윤슬이의 젖가슴이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밥사발을 얹어놓은듯 탄력을 잃지않고서 몽실몽실 흔들리는 깊은 고기 골짜기를 바라보며 내 음욕이 꿈틀거렸다.

“아윽, 흐윽…… 흐읏, 흐응……”

윤슬이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서 허리를 살살 돌렸다. 그 요염한 움직임은 태국의 전통 춤사위처럼 느릿느릿하지만 절도있고 우아했다. 분홍색 젖꼭지에 맺혀있던 땀방울이 힘겹게 튀겼다.

매끄럽게 이어진 복부의 선을 쓰다듬으며 뒤쪽으로 손을 돌려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처럼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양손에 각각 꽉 쥐자 윤슬이는 내게 입을 맞추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사랑해요…… 아빠……”

윤슬이는 내게서 입술을 떼면서 수줍게 고백해왔다. 땀에 젖은 검은색 머리켤이 찰랑거리면서 윤슬이의 향기로운 내음이 코로 밀려왔다. 그 단아하면서 한없이 요염한, 이율배반적인 자태에 난 말없이 딸의 볼에 키스하며 허리에 더 힘을 주었다.

“하악…… 더 커지면 나 죽어……”

가슴팍을 톡톡 때리며 윤슬이는 교태스런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마주보고 미소지어보이며 내게서 윤슬이를 떨어트렸다. 그대로 난 윤슬이에게 소파를 짚게하고 엉덩이를 들게했다.

윤슬이는 뒤를 돌아보면서 음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헤헷, 아빠 뒤에서 하고 싶었어?”

“응, 좀 힘든 것 같아서.”

폭풍이 더욱 격렬해진다. 빗방울이 미친듯이 베란다를 두들긴다. 휘몰아치는 바람에는 누군가의 비명과 자동차 경적 소리,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른바 광기의 소용돌이가 몰아닥쳐 있었다.

“아아, 빨리 소녀의 보지에 박아주세요. 아버지♥”

엉덩이를 양쪽으로 살살 흔들며 애원하는 딸을 내려다보며 난 정복감에 도취되었다. 학교에선 모범적이고 사교적인 아이인 윤슬이가, 내게 이렇게 순종하며 굴복하는 모습에 한가닥 남아있던 인내심이 바닥났다.

내 자지가 딸의 몸으로 한순간─ 파고들었다. 딸아이는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며 소파를 잔뜩 부여잡았다. 난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쿠르르릉─……

다시 한번 천공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그 외침은 내게 갖가지 음행을 저지른 내게 이렇게 힘찬 음성으로 외치는 듯 하였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에 나는 이렇게 화답하였다. 무너지리라! 무너지리라! 큰 성 시온이여! 성령을 가장한 거짓된 선지자들의 처소와 각종 순결한척 가식에 찌든 자들이 모이는 곳과 스스로의 모순에 무너져 파멸한 곳이 되었도다─!!

콰쾅─!!

점멸하듯, 커튼 너머 막대한 불빛이 울려퍼졌다. 마치 우리 부녀의 이 저열하고 혐오스런 광경을 사진에 기습적으로 담듯이 번개가 번쩍였다.

“아아아아─!”

“크윽……”

딸의 하얀 젖소같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내 자지가 울컥거리며 윤슬이의 육단지에 정액을 토해냈다. 난 물건을 빼고 뒤에서 윤슬이를 끌어안았다. 윤슬이는 뒤로 팔을 둘러 나를 안으며 힘없이 신음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나와 윤슬이의 혀가 얽혔다. 바닥에는 우리가 방금까지 하나였다는 증거로 흥건했다. 여전히 윤슬이의 보지에서는 내 정액과 애액이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웃음을 금치 못했다. 이제 절정의 여운에서 벗어난 윤슬이를 끌어안고서 난 욕실로 향했다.

그뒤로 몸을 씻고, 우린 침실에서 한없이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에는 지쳐 잠들었다.

얼마나 잠들었던거지? 깨질듯이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난 잠에서 일어났다.

“끄응……”

난 부스스한 머리를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의 기억이 희미했다. 물에 번진 먹물처럼 희미한 기억의 잔상들을 더듬다가, 문득 내 옆에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냈다.

윤ㅅㅡ……「치직─」예슬이는 어디있지?

순간, 나는 흠칫했다. 내가 왜 예슬이를 찾지? 내 입에서 감돌던 말은 분명 윤슬이었다. 헌데 나는 어째서 죽은 아내를 찾고 있는가? 아직도 아내의 망령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건가?

아니, 윤슬이가 죽은게 아니었나? 갑자기 돌연 혼란스러워졌다. 한참을 고뇌하고 있어도 이상하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 태풍이 와서 너무 신경이 곤두서있었나. 밖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창문을 거세게 두들기는 소리에 내가 깬 것 같았다. 거실로 나가자 문득 맛있는 냄새가 났다. 식욕을 자극하는 김치 찌개 냄새에 혹해 난 주방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난 그 자리에 망부석마냥 굳어져버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찌개의 간을 보고 있는 여인의 뒷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이 여인은……

“예슬아──?”

명백히 흔들리는 내 목소리. 분명 그때도 그랬다. 난 착각하고 실수를 저질렀다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치직─…… 아니, 아니잖아? 이게 자연스러운게 아니었……나? 뭐지? 대체 뭐가 어떻게…… 뭐가……

그리고 뒤를 돌아본 여인은 내게 화사하게 미소지어보였다.

“응, 일어났어? 자기야?”

반달처럼 휜 진한 눈매. 크고 맑은 검은색 눈망울. 뽀얀 피부와 옅은 연분홍빛 입술. 화장기없이 청초하면서 피부가 하얘서 조금 창백해보이는 인상으로도 보이는 미인. 그녀는 분명히…… 최예슬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