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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엘을 부지런히 준비시키던 베론은 마침내 입질이 온 것을 느꼈다.
이전에 앨리샤에게 수작을 걸었던 사내들이 마침내 보고를 해온 것이었다.
루시엘의 주문에 당한 놈들은 모든게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처럼 가장하고 있었다.
그들을 움직이던 왕비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려는 듯, 티나엘과 하수인들 양쪽 모두에게 지령을 내렸다.
왕가의 편지를 받아온 티나엘의 베론의 앞에서 그것을 읽어준다.
"며칠 뒤에 수도에서 연회가 있는데, 거기에 참여하라는 명이 내려왔어요."
"저희는 베론님과 마법사들에 대한 공작을 명령받았습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연회에 참여한 것을 확인하고, 티나엘님이 마실 음료에 미약을 타라고..."
두 개의 지령을 확인한 베론은 조금 떨어져있던 이리나를 불러서 편지를 가져오게 시켰다.
오늘 아침 그의 공방에 도착한 편지에는 왕가의 인장이 찍혀있다.
"그리고 내쪽에는 그 연회에 대한 초대장이 왔구나. 아무래도 티나엘을 이용해서 사고를 연출하려는 모양이군."
모든 단서를 제공받은 베론 일행은 상대의 계획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베론이 하층에서 티나엘과 우연히 마주쳤던게 왕비의 불운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초대장을 받은 루시엘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번 연회에는 베론님과 저를 비롯한 마탑의 인사들이 참가합니다. 아마 그렇게 판을 만들어두고 티나엘에게 미약을 먹여서 베론님과 붙여놓으려고 하겠지요. 보통 왕족이라면 몰라, 마탑의 견습생 신분이라면 이쪽의 경계심도 많이 풀어질테니까..."
"왕족 강간은 무조건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입니다. 만약 왕비의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베론님께서 굉장히 위태로워졌을거에요."
베론은 왕비의 치졸한 술수에 치를 떨었다.
그가 미약을 먹은 여성을 내버려두는건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나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알고도 당해버릴지 모른다.
그는 끓어오르는 성욕을 겨우 자제하며 회심의 반격을 준비했다.
다행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차고 넘친다.
남은건 건방진 왕비를 어떻게 응징하느냐 뿐.
공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베론의 선택을 기다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그럴싸한 생각을 떠올리곤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들어봤나?"
"네?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요?"
베론은 청중들의 반응에 만족하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
공방에서의 회담으로부터 며칠 뒤.
욕조에 잠겨있던 왕비는 전신을 휘감는 온수의 감각을 즐기며 오늘의 계획을 되새겨봤다.
자신의 딸인 헤시아를 가지고 놀았던 마법사들에 대한 복수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녀의 입꼬리가 절로 휘어졌다.
이번 계획을 위해서 애꿎은 티나엘을 희생시키게 됐지만, 그녀는 어차피 측실의 자식이다.
공주란 원래 정치의 도구로 쓰이는 법. 이제껏 왕가의 녹을 먹고 자랐으니 그녀도 불만을 토해낼 수는 없으리라.
상대가 상대인 만큼 살짝 긴장되기도 했으나 준비는 되어있다.
욕조에서 일어난 왕비는 옆쪽에 놓여있던 귀걸이와 목걸이를 착용했다.
헤시아의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제작된 그것들은 어떠한 정신조작이나 환영도 완벽하게 무효화한다.
이것만 있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들이라도 어쩔 수 없겠지.
기분 좋게 웃던 왕비가 욕조 밖으로 걸어나오자, 그녀를 위해 대기하던 시녀들이 미끈한 몸을 닦아줬다.
국고를 아끼지 않고 관리한 미모는 젊은 헤시아 보다도 뛰어났다.
마탑에게 종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나라의 왕족인 만큼, 써먹을 수 있는건 다 써먹어야 한다는 판단하에 성실히 가꿨다.
같은 여성인 시녀들 마저도 그녀의 피부를 보고 시샘어린 시선을 숨기지 못하던 중, 왕비의 침실로 일단의 무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샤워 커튼 안쪽의 왕비는 몸단장을 마무리하며 그들의 알림을 듣는다.
"이번 연회에 어울리는 의상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어디 한 번 보자."
이윽고 샤워 커튼이 치워지자, 왕비는 그제서야 뭔가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시녀들이 가져온 옷들은 평소에 입던 드레스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재질이나 만듦새야 나름대로 고급스럽지만, 천의 면적이 지나치게 적다.
복부나 허리를 가려주긴 커녕 속옷이나 다름없는 의상들.
파렴치함과 민망함 밖에 없는 옷들이 그녀의 눈 앞에 줄줄이 늘어서있다.
왕국 수도 뒷골목의 창녀들도 이렇걸 입고 다니는 일은 드물겠지.
왕비는 이것들이 무슨 농담이라도 하는가 싶어서 목소리를 높인다.
"무, 이게 다 무엇이냐! 너희가 정녕 죽고싶은가보구나."
"요, 용서해주십시오 전하! 혹시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의상'이라는 이름의, 빈약한 천쪼가리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어올린 시녀들이 몸을 떨었다.
그녀들의 태도는 진짜 드레스를 취급하는 것 만큼이나 진지하다.
흙빛으로 물든 얼굴에는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억울함.
노련한 정치인인 왕비는 그것을 보고 한순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설마 그놈들에게 들킨건가?'
시녀들의 진중한 태도로 보건대, 그녀들은 무언가에 홀려있는게 분명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녀들의 표적인 8등급의 마법사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실력자들이다.
비싼 마법도구를 주렁주렁 달고있는 왕비라면 또 몰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시녀들을 홀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상황을 보아하니 티나엘도 이미 놈들에게 넘어갔다고 봐야겠어.'
왕궁의 내부인인 티나엘이 협력했다면 이런 수작질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왕비가 아랫 입술을 깨물고 있자 의상을 들고있던 시녀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최면에 걸린 그녀들로선 왕비가 왜 갑자기 패악을 부리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으리라.
"이번 의상은 왕국 최고의 장인들에게 특별히 의뢰한 물건들인데...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것을 꺼내오겠습니다."
"아니, 됐다. 조금 더 기다리거라."
깊게 한숨을 내쉰 왕비가 눈 앞의 의상들을 노려봤다.
어차피 이제와서 다른걸 고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그녀들의 상대인 마법사들이 그걸 가만히 놔둘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계획이 들킨 이상, 당장은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는 수 밖에 없다.
정쟁의 패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쓰레기 같은 마법사 놈들... 좋다, 당장은 어쩔 수 없지.'
당장은 굴욕을 참아내자. 어차피 나중에 다시 되갚아주면 된다.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던 왕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그나마 얌전한 의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얇고 빈약한 천쪼가리들을 훑던 손가락이 새하얀 옷자락을 간신히 집어낸다.
팬티와 브래지어. 단 두 조각 뿐인 '의상'.
심지어 그 두 조각도 천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옆쪽의 자락은 기다란 끈으로 되어있고, 좁은 면적의 팬티는 국부만 아주 간신히 가린다.
브래지어도 만만하진 않아서 유륜까지만 겨우 덮어주는 모양새.
그러나 시녀들은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작게 박수를 쳤다.
그녀들의 눈에는 예의 천쪼가리들이 정말로 아름다운 드레스처럼 보이는 듯 하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전하. 이 드레스는 전하께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왕국 최고의 장인들에게 의뢰한 보람이 있네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서 준비를 마친 왕비는 솔직한 감탄에 어이가 없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도망치고 싶지만, 이번 행사는 왕가의 이름을 걸고 개최한 연회다.
자신의 작전 때문에 국왕을 불참시켜놨으니 그녀라도 나가야 체면이 선다.
온몸을 부르르 떨던 왕비가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연회장으로 향하자, 성대한 음악과 요란한 박수가 그녀를 맞이했다.
애써 가슴을 편 그녀가 붉은 융단 위를 걸으니 주변의 귀족들이 시샘어린 눈길을 보내온다.
"저 드레스는 누가 만든거지?"
"왕가의 품격이 드러나는 멋진 의상이군요."
아무래도 그들 또한 시녀들과 비슷한 최면에 걸린 모양.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던 그녀는 참가자들의 속에서 음흉한 비웃음을 발견했다.
회장에 들어와있던 마법사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왕비의 치태를 감상하고 있다.
"크윽..."
알몸이나 다름없는 몰골의 왕비가 참담함과 굴욕감에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연회장의 입구에서 베론과 티나엘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티나엘은 왕비와 비슷한 의상을 입은 채, 훤히 드러난 엉덩이를 주물러지고 있었다.
연회장 안쪽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또다시 탄식한다.
"역시 왕가의 피를 지닌 분들은 그 자태부터 남다릅니다."
"나는 어째서 이런 의상을 입고 연회에 참가할 생각을 했던걸까..."
"마탑의 마법사 치곤 귀족들의 예법에 밝군요. 저렇게 완벽한 에스코트라니."
베론은 티나엘의 팬티에 오른손을 집어넣은 채 그들의 찬사를 즐겼다.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그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왕비의 앞에 멈춰섰다.
============================ 작품 후기 ============================
테에엥 테에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