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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조교일지-45화 (4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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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론은 오른쪽에 리엔을, 왼쪽에 엘리자를, 그리고 발치에는 루시엘을 끼고 다소곳하게 티아나를 기다렸다. 그러나 루시엘의 마지막 제자는 한참이 지나도 공방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에 살짝 머쓱해진 베론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침음을 삼켰다.

"음... 얘가 왜 안 오지? 오다가 길 잃어버렸나?"

"그, 글쎄요. 길을 잃을만한 아이는 아닌데..."

루시엘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리엔이 걱정스레 말했다.

"혹시 마탑의 상부에 신고하러 간걸까요?"

"에이, 8등급 마법사인 베론님을 상대로 어떻게 신고할 생각을 하겠어? 티아나가 조금 순진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거든?"

"하지만 스승도, 사매들도 잃고 공방에 홀로 남아있다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 궁지에 몰려있는 사람이 꼭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건 아니거든."

베론이 한 마디 하자 루시엘도 진지하게 가능성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머지않아 간단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럼 주문을 사용해서 티아나의 마력 파장을 추적해보도록 하죠."

"그런게 가능해?"

"그럼요."

루시엘이 쉽게 답하자, 베론은 꽤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자신처럼 야매로 8등급에 오른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8등급 마법사는 불가능한 일 보다 가능한 일이 더 많다.

그녀는 베론의 안색을 살피곤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무, 물론 베론님께선 굳이 익힐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저급한 수법이지요."

"공치사는 됐다. 어서 티아나를 찾아보자."

베론과 여성들은 빠르게 옷을 차려입은 뒤 대문을 나서서 루시엘의 공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곳에서부터 티아나의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마력의 파장을 쫓아 상층의 구석으로 향하던 그들은 머지않아 티아나를 감금중인 툰바의 공방에 도달했다. 공방의 입구에 새겨진 명패를 본 루시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여, 여긴 티아나의 전 스승이 사용하는 공방인데..."

"전 스승? 아, 그러고 보니 티아나도 다른 마법사에게서 빼앗아 왔다고 했었지?"

"네. 아무래도 놈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 같아요. 툰바는 쪼잔한 인간이라서 좋은 꼴은 못 봤을텐데..."

"음... 그럼 작전을 변경하지."

베론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곤 루시엘만 내세우기로 했다. 잠시 뒤 루시엘이 공방의 문을 두드리자, 조금 초췌하면서도 흥분한 기색의 툰바가 당혹스런 표정을 보였다.

"루, 루시엘님?"

"안녕하세요 툰바님. 혹시 여기에 티아나가 찾아오지 않았나요?"

"아뇨. 그러진 않았습니다만..."

"정말요? 티아나의 마력 파장이 이쪽으로 이어졌는데... 괜찮으시면 안쪽을 한 번 보고 싶네요."

루시엘이 그의 공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툰바가 발끈하며 그녀를 막아섰다.

"잠시만요. 아무리 루시엘님이라도 남의 공방을 멋대로 뒤지다뇨?"

이 세계에 무슨 압수수색 영장 같은게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의 공방에 멋대로 침입해서 뒤지는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만행이다. 만약 툰바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루시엘의 정적들이 신나게 그녀를 물어뜯으리라.

루시엘이 억지를 쓰면서 그를 비켜서게 만들려던 찰나. 뒤쪽에 있던 베론이 퇴각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일단 순순히 물러난 뒤 베론에게 물었다.

"저렇게 반응하는걸 보니 티아나가 안쪽에 있는건 확실한 것 같은데... 억지로라도 파고들어볼까요?"

"아니. 저쪽이 법대로 처리하길 바라면 그렇게 해줘야겠지. 앨리샤, 지금 당장 네 언니를 불러야겠구나."

"네, 주인님! 언니도 주인님의 부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앨리샤는 기쁘게 대꾸하며 왕국 감찰관인 아르샤에게 통신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

베론의 연락을 받은 아르샤가 마탑으로 날아오듯 이동하는 중. 베론과 루시엘은 주변 인맥을 총 동원해서 툰바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요청을 받은 그레이스가 꽤 신경쓰이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툰바라... 그 양반은 좀 꺼림칙하던데요."

"왜지?"

"툰바는 저와 비슷하게 마법약을 전공으로 삼았는데, 루시엘씨에게 패배한 이후로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어요. 듣자하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마약을 개발하고 있다나?"

"마약이라고?"

"네. 대외적으로는 여성용 흥분제라고 하던데, 미약의 기능 보다는 마약의 기능이 훨씬 강한 물건이라네요."

그녀의 말을 들은 루시엘은 즉시 사람들을 동원해서 툰바가 개발했다는 약품을 입수했다. 이미 암시장에서 유통까지 되고 있었는지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베론은 마약의 일부를 손에 쥐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개했다.

"비겁하게 약물을 써서 여성들을 굴복시키려 하다니. 이 놈은 마법사의 수치다. 이런 불한당이 나와 같은 마탑에 있다는게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군."

"그러게요. 이번 일은 용서할 수가 없겠어요."

베론의 페미니스트 소울이 흉포하게 울부짖기 시작할 즈음. 타이밍 좋게 아르샤가 도착했다. 그녀는 베론에게 입을 맞춘 뒤 곧바로 마탑에 조사를 요청했다.

비록 마탑은 갑작스러운 감찰을 달갑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식 절차대로 신청한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베론과 루시엘의 인맥들이 아르샤를 비호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아르샤와 동료 감찰관들이 툰바의 공방을 덮치자, 공방의 지하실에서 머지않아 티아나가 발견됐다. 툰바에게 붙잡힌 이후로 내내 약에 취해있던 그녀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우욱... 스, 스승님?"

어렵사리 루시엘을 알아본 티아나가 힘 없이 눈물을 흘렸다. 루시엘은 그런 그녀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괜찮다 티아나. 이제 괜찮아."

"... 마약을 좀 많이 복용한 것 같은데. 괜찮을까?"

뒤에 빠져있던 베론이 걱정스레 묻자 마약의 성분을 분석해본 그레이스가 그를 안심시켰다.

"딱히 위태롭진 않습니다. 마약을 단기간에 많이 섭취하긴 했지만 금방 회복될거에요."

"정말인가요? 저 마약은 뇌세포를 파괴한다고 하던데..."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던 리엔이 말하자 그레이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뇌세포를 파괴한다라. 말이야 거창하지만, 머리를 벽에 박기만 해도 파괴될 수 있는게 뇌세포야. 물론 뇌세포는 재생이 안 되니까 되도록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이 마약은 뇌세포에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해."

"정말인가요?"

리엔과 엘리자가 화색을 띄며 되묻자 그레이스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 약물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독성이랑 중독성이 더 위험한걸? 이것 때문에 바보가 되려면 적어도 1년 이상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할거야. 물론 그 전에 독성 때문에 죽을테고."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말하던 그레이스는 자신을 향한 표정을 보고 황급히 말을 고쳤다.

"지금처럼 3일 가량 섭취한 것 정도로는 큰 이상이 없어. 머지않아 원래대로 회복될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그럼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별거 아냐. 베론님의 부탁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레이스.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겠나?"

티아나의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사라진 베론이 꽤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처럼 군다.

"말씀만 해주세요."

"왕국 감찰부가 관여했으니 마탑이 잘 처리하긴 하겠지만, 여성을 억지로 굴복시킨 저런 쓰레기에게는 그것보다 더한 벌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베론의 생각을 전해들은 그레이스와 제자들은 그의 발상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확실히 합당한 벌이 되리라.

티아나가 구출된지 며칠 뒤. 감옥에 갇혀있던 툰바는 자신의 몸이 이상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방금 전에 먹은 식사를 주시하며 이를 바득바득 간다.

"이, 이게 무슨... 설마 독이라도 탄건가?"

황급히 세수를 하기 위하여 세면대로 다가가던 그는 벽면의 거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반들반들한 거울 속에 비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어여쁜 미녀의 얼굴이었다.

그의 놀라움이 다 가시기도 전에, 허리가 가늘어지고 가슴이 튀어나오는 등 평평하던 몸에 굴곡이 생긴다. 머리카락도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서 생기를 내뿜는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곤 절규했다.

"아, 안 돼. 내가 여자가 되어버린다니... 그만둬!"

그러나 그레이스가 만든 마법약은 굉장히 탁월했다. 머지않아 변신을 완료한 툰바에게 감옥의 간수들이 들이닥친다.

마탑에서는 흔한 여성 간수들이 그의 입을 강제로 벌리곤 그가 만든 마약을 들이붓듯이 털어넣었다.

"네가 그 아이에게 한 짓을 그대로 당해봐!"

"상부에서 웬일로 마음에 드는 판결을 내렸다니까."

"약에 푹 절여지면 사창가로 석방해줄테니까 걱정말라고."

"우웁! 우우웁!"

툰바는 눈물을 흘리며 저항했지만, 그의 의식은 벌써부터 마약에 잠식되어갔다. 베론은 보고를 듣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티아나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왕국 감찰부가 다소 갑작스럽게 끼어들긴 했지만, 사안이 사안인데다 처벌을 마탑에게 맡겨준 탓에 큰 마찰은 없었다.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집단으로서는 무척 이례적으로 원활한 일처리를 해냈다.

아르샤는 마탑의 사람들과 만족스레 악수를 나눈 뒤, 베론의 공방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녀는 마악 지쳐서 나가떨어진 티아나의 빈자리를 채우며 베론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베론님. 기껏 귀중한 씨앗을 주셨는데 베론님의 아이를 가지지도 못해서..."

"괜찮다. 뭣하면 지금부터 다시 만들자꾸나."

그는 자비롭게 속삭이며 아르샤와의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베론이 수 많은 여성들과의 난교를 즐기는 사이. 대륙에서 가장 큰 신전에서는 그를 향한 새로운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이 세계의 주신을 모시는 교단은 마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집단이었다. 그러한 교단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성녀는 오늘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회의실의 자리에 앉았다.

비록 성녀 치고는 젊은 축에 속하는 20대였으나, 연륜이 부족하다거나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은 없다. 다소 답답한 디자인의 성복조차 그녀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모두 가리지는 못했다.

천천히 걸어온 성녀가 자리에 앉자, 교단의 사제들은 치솟는 음심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애를 써야했다. 태생적으로 신성한 분위기를 내뿜는 그녀였지만 주신은 그녀에게 조금 과도한 미모를 선사했다.

사제들에게는 다행히도. 성녀가 테이블 주변을 살피며 얼음장 같은 눈빛을 보이자 음심은 절로 수그러들었다. 자애와는 거리가 먼 그녀의 앞에서 그런 기색을 내보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성녀는 드물게도 독기가 어린 목소리로 사제들에게 말했다.

"그 베론이라는 이계인 마법사... 조사는 다 끝났나요?"

"그렇습니다. 요새도 마탑에서 시끌벅적하게 지내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사제가 그의 근황을 보고하자 성녀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비록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마법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베론의 제자가 된 세리스는 그녀가 무척 아끼던 후배였다.

그런 세리스의 정절을 꺾고 완전히 타락시킨 베론이 제대로 된 사람일리가 없다. 성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에 대한 보고를 대충 걸러들었다. 한 번 색안경을 쓰면 사람 하나를 죽일 놈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들은 것들 중 반만 사실이라 쳐도,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자를 이곳으로 초대하죠."

"서, 성녀님. 아무리 장식이라곤 해도 베론은 마탑의 8등급 마법사입니다. 그런 자를 섣불리 해코지하는건 마탑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가능성이..."

"걱정마세요. 해코지 하지 않을겁니다. 제 신력을 이용하여 악심을 정화시켜주는게 어찌하여 해코지란 말입니까? 뭐, 그자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나머지 자살해버리면 어쩔 수 없지만요."

성녀는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머금고 베론을 위한 초대장을 작성하도록 시켰다.

============================ 작품 후기 ============================

저번회에서 공지한대로, hp가 높은 댓글을 작성해주신 메타포르비아님, 비탄의 나태님, 아히-님께 딱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중복 수령은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인입니다. 아무튼 성인이니까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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