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24화 (324/325)

후배는 며칠 전까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가 갑자기 달라 보였다.

크리스마스 때 길거리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빨던 사람의 이미지가 급변한 거다.

"선배 그럼 그런 건 어때요?" 

"응?"

"그 왜 있잖아요,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데, 아 내가 저 남자보다 괜찮은데? 저 여자 뺏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거요."

"어어, 응."

후배는 평가가 달라진 선배에게 인생의 조언을 얻기 위해 말을 이었다.

크리스마스고 옆구리도 적적하기도 하니, 연애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을 더 연마하잖아요, 더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아니지, 아니지, 아니야."

백발에 태닝을 한 선배는 후배의 말을 중간에 막았다.

그런 마인드로 접근해선 절대 여자를 사귈 수 없다는 눈빛을 하며 말이다.

"뻇어야지."

"예?"

"남의 떡이 왜 더 커 보이겠냐? 그건 진짜 원래 크고 맛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엉덩이에 묻은 물기와 눈을 털어내며 주변을 한 번 살폈다.

"더 좋은 남자가 될 필요 없어, 그냥 뺏고 한 마디만 하면 돼."

니 여친 쩔더라, 쉽지?

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전학 가서 나중에 연락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진짜 존경 받을 만한 쓰레기였다.

익숙한 천장이다.

라이트 노벨 클리셰로 시작하는 대사를 한 번 읊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뭐가 뭔지.'

분명 다 같이 밥을 먹고 낮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일어나보니 난 내가 원래 살고 있던 집에서 깨어났다.

그러니까 '백태양'으로 살기 전의 삶이라고 해야 하나.

근데 또 신기한 게 민증을 보면 이름은 백태양이라고 나와 있었다.

'내가 만약에 게임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건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실제는 아니었고 자각몽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면 어젯밤에 길거리를 돌아다닌 결과.

지구에서 만났던 후배와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각성자가 없는 세계지만 아카데미 비슷한 건 있는 뭐 그런.

그리고 설정상 나는 그 아카데미로 전학을 가게 될 운명인 것 같았다.

그것도 바로 당장 오늘 말이다.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일단은 정해진 일정에 따르기로 했다.

퀘스트 같은 것도 없고, 상태창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여기서 똑같은 짓 또 하면 되겠지.'

자각몽이라면 누릴 수 있을 만큼 누리고 깨는 게 맞지 않겠는가.

최근 너무 하루 업무처럼 해결하는 섹스 사이클에 살짝 지루함을 느끼던 차였다.

그렇기에 가끔은 이런 환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샤엘이 만들어 준 세계일지도 모르고.'

몽마의 여왕인 그녀라면 가능할 법한 일이었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등교였다.

++++++++

'똑같네, 똑같아.'

등굣길은 빅토리 아카데미를 했을 때를 완전 빼다 박았었다.

음습한 뒷골목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양아치들이 대기 타고 있었고.

스무 살 넘은 성인들은 모두 제복 비슷한 걸 입고 있었다.

복장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제복을 입는다는 건 일종의 뽕 같은 거였다.

나 이런 곳에 다닙니다, 라는 걸 온몸으로 알리고 싶어서 하는 행동.

그렇기에 1학년들은 아주 당연하게 제복을 입고 다녔다.

나 같은 경우엔 그게 얼마나 불필요한 건지 알아서 사복을 입은 상태였다.

깔끔한 회색 후드에 청바지.

전학 온 시기가 겨울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아주 쌀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딩은 입지 않았다.

패딩을 입는 건 간지가 나지 않기에, 그냥 간단한 점퍼 하나만 걸쳤다.

"허."

얼마나 걸었을까.

빅토리 아카데미로 추정 되는 곳의 대문에 다가섰을 때.

난 나한테 따먹히지 않는 세계 선의 수진이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나랑 만나면서 가슴이 더 커진 거구나.'

하긴 매일 같이 물고 빠는데 그게 안 커질 수가 있나.

수진이는 나와 첫날에 만났던 것처럼 열심히 선도를 하고 있었다.

"너, 학년이랑 이름 말해."

생도답지 않은 복장을 갖춘 녀석들을에게 벌점을 주는 저 성실함이란.

저 순진무구한 사슴 눈동자가 내 자지를 보며 욕정에 물들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런 기분을 가지고 난 수진이의 곁을 지나쳤다.

그때와는 다르게 난 수진이에게 벌점을 받지 않았다.

생도다운 깔끔한 복장이었고, 머리카락 색은 뭐 성인이니 큰 터치를 받지 않았다.

'이런 선도부를 개처럼 따먹었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많이 꼴리네.'

청렴결백해 보이는 여자가 보지를 벌리면서 박아 달라고 개처럼 끼잉 거리는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었으나 갑자기 발기된 자지 때문에 발걸음을 잠깐 멈췄다.

'우수납하는 걸 깜빡했네.'

귀두의 방향이 위로 향해 있을 경우 바지 밖으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었기에.

난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재빠르게 자지를 우수납했다.

근데 이 행동을 한 위치가 '우연히' 수진이의 바로 옆이어서, 그녀의 시선이 바로 내 하체 쪽으로 향했다.

"..."

자지 우수납하는데 거기다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수진이는 재빠르게 시선을 돌렸고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따먹을 수진이에게, 자지 사이즈를 미리 선공개 하는 서비스 정도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

교무실에 들어가자 곧바로 반으로 안내를 받았고.

예상대로 반에는 익숙한 얼굴들과 담임인 장두철이 있었다.

"오늘 전학생이 있다, 인사."

"잘 부탁합니다. 백태양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난 내가 무슨 회귀자가 된 것 같은 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나만 얘네들의 신상 정보와 데이터를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리셋한 기분.

남들이 모르는 것들을 나 혼자만 알고 있다는 쾌감은 정말 끝내줬다.

뭐 그래 봤자 그걸로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안녕, 난 반장 소유민이야."

"어, 그래 안녕."

장두철이 지정한 자리로 갈 때 유민이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대망의 김민수가 내 시야에 딱 들어왔다.

"난 부반장 김민수, 잘 부탁해."

"미쳤네..."

김민수를 보자마자 감탄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

"아, 아냐. 나도 잘 부탁한다고."

찐따가 되기 전에 김민수.

아니 찐따지만 안뚱땡의 연애 코치를 받기 전의 김민수라고 해야 하나.

아직 Lv.1 찌질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김민수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단풍 RPG 게임에서 나오는 더벅 머리와 살짝 쳐져 있는 눈동자.

자신감이 많이 없어 보이는 듯한 축 처진 어깨와 보기 답답할 정도로 꽉 조여 있는 제복의 넥타이까지.

빅토리 아카데미에서 편입해 왔을 때 처음 봤던 김민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역시 튜닝의 끝은 순정인가? 놈의 모습은 뭔가 지금이 가장 최종 진화 형태처럼 보였다.

'여기서도 사귀는 건 아닌 것 같네.'

친구 이상 썸 미만의 정말 미묘한 관계.

적극적인 유민이와 찌질한 김민수의 풋풋하고 172화를 걸쳐 손만 잡은 그 썩은 로맨스.

또다시 그 절묘한 상황에 개입하다니.

이건 나에게 내려진 어떤 사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수의 정실인 아만다가 먼데가 없는 세계 선에서, 그의 정조를 지켜야 하는 뭐 그런.

평행세계에서조차 그를 동정으로 만들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근데 나도 신이잖아.

그럼 그냥 내 계시구나.

'난 김민수를 동정으로 만드는 신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꾹 누르며 자리로 가 앉았다.

내 자리는 창가 맨 뒷자리.

흔히 말하는 양아치 자리의 정석과도 같은 위치였다.

뭔가 전학 오자마자 역할이 정해진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너무 당연하게 해야 할 일들이 쏙쏙 떠오르는 감각.

하지만 성급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땐 목숨이 걸려 있었기에 급하게 이리저리 굴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공을 들여 사골 육수를 우리듯 김민수의 정조를 지키는 게 가능했다.

'아니, 잠깐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편하네.'

여자를 뺏는 게 아니라 김민수의 동정을 지키는 것.

이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내 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럼 이번 아카데미 안내는 김민수한테 시켜달라고 할까.'

육수를 어떻게 우려야 하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가장 좋은 호구, 아니 사골이 이미 준비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 수업이 다 끝난 후.

"정말 괜찮겠어?"

"어어, 응 그럼 당연하지, 유민아 먼저 가, 기다려주면...더 좋고."

"음 알겠어."

난 김민수한테 아카데미 안내를 부탁했고.

김민수는 예상대로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마 유민이는 먼저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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