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시원한 싸커킥.
불쾌할 땐 역시 안뚱땡을 패는 것만한 스트레스 해소가 없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보는 게 세 번째네, 내적 친밀감은 엄청난데."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런가.
안뚱땡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정말 강렬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패고, 또 패고, 계속 패고, 질릴 때까지 패려고 했으나 질리지가 않아 난 완전한 결말을 위해 개빠따를 들어 올렸다.
"소설 다시 써봐, 아카데미 순애일지 같은 거 말고."
숨을 몰아쉰다.
드디어 이 지독한 악연을 끝낼 때가 왔음이 체감이 되니 괜히 손끝이 떨려왔다.
"니 여친 쩔더라, 어때."
방금 지은 제목이야, 마음에 들어?
그 말을 끝으로 위에서 아래로 개빠따를 내려찍었다.
비곗덩어리를 한 줌의 핏덩어리로 만들 최후의 일격이.
"꾸에에에에에엑!"
돼지 비명과 함께 떨어진다.
끝났다.
"흐헥...흐힉...햑...흐악..."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안뚱땡의 처절한 몸부림이 길었던 여정의 끝을 고하는 듯했다.
안뚱땡은 빛으로 흩어져 또다시 김민수의 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더 이상 그런 수법은 통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거 안 통해."
신위를 얻어 안뚱땡의 권능에 간섭할 게 된 순간부터 놈의 움직임은 모두 내 통제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도망치려하면 뒷덜미를 잡아 바닥에 내려찍고 허튼짓을 하려하면 그대로 턱을 찍어서 곧바로 중지 시킨다.
첫 만남 때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모든 행동들을 전부 해내자 엄청난 상쾌함이 몰아쳤다.
복수를 성공적으로 끝나면 허무함만이 남는다고 그랬나? 그건 전부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기분 좋고 후련한데 어떻게 이게 허무할 수 있단 말인가.
"살려 줘...제바알...난 아직...죽으면 안 돼...너도 알잖아...그리고 솔직히 너도 즐겼잖아...응...? 내가 여기에 불려서어어어억...!!!"
궤변을 늘어놓으며 내 발목을 붙잡는 놈의 손등을 짓뭉갰다.
마지막 순간에도 사과하지 않고 자기 행동을 합리화 하려는 안뚱땡이 너무 역겨웠다.
"어디까지 추해질 생각이야."
끝까지 악역으로 남으려는 그 태도는 높게 사주고 싶었으나 그건 안타깝게도 불가능했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피해를 입으면 안뚱땡은 정말 사라질 게 물 보듯 뻔한 시점.
이런 상황에서조차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뜻이었다.
"내가...내가 좀만 더 힘을 모으면 돌려줄게... 너 처음에 돌아가고 싶어 했잖아, 응? 그렇잖아...아아...!"
그런 말은 우리가 처음에 만났을 때 했어야지.
뭐가 잘못 됐다, 이건 의도한 게 아니다 꿍시렁거리면서 혼자 슉 사라졌을 게 아니라.
내가 이 세계에 정이 들고 책임감이란 게 생기기 전에 날 보내줬어야지.
"그랬으면 우리 둘 다 편했잖아, 넌 너대로 세상 먹고 난 나대로 잠깐 헤프닝 같은 경험하고 복귀하고."
너무 멀리왔어.
그 몇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젠 돌이킬 수 없어.
난 여기에 뿌리를 내렸고 영양분을 너로 삼을 거야.
서서히 참아왔던 분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일방적인 폭력으로 육체적인 울분을 해소하고 나니 뭉쳐 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나타나는 거였다.
"오래 했다, 오래 만났어."
이제 그만 가라.
모든 힘을 개빠따에 담는다.
검은 빛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황금의 흔적.
탐욕의 군주이자 신위를 얻은 인간이 내뿜는 힘.
그 힘은 절대자를 일격에 지울 만큼 강렬했고, 약해진 안뚱땡이라면 절대 견뎌낼 수 없는 힘이었다.
"이게 내가 세운 업적이야."
쾅!
내려찍었고, 내려찍혔다.
안뚱땡은 돼지 멱 따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어딘가로 또 도망쳤다거나 하는 게 아닌 완전한 소멸.
신위를 사용해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절대 변수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
난 정말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하고 개빠따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감정이 벅차 올라 아무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다 끝났어."
김민수, 아니 안뚱땡의 힘으로 만든 공간이 서서히 무너진다.
처음엔 안뚱땡이 불러서 납치했던 그 공간이 나에 의해 무너지는 걸 보게 될 줄이야.
무기력하게 당했던 곳에서 통쾌한 복수를 한 것만큼 속 시원한 일은 없었다.
"먼저 가, 난 커버 해 줄 생각 없거든."
"...알겠엄."
고마웜.
아만다가 먼데는 김민수를 꼭 끌어안고 먼저 공간에서 벗어났다.
갑자기 허공에 뿅 하고 나타났는데 트롤 킹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상황이 귀찮아질 수도 있기에, 미연에 방지한 거였다.
나 또한 춘향이를 역 소환 시킨 후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나갈 준비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지긋지긋 했던 안뚱땡을 완전히 치워 버렸으니.
정말로 백태양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걸 하며 책임을 지는 평범한 삶.
"백태양 인생 2막 시작 이런 느낌이네."
입가에 절로 그려지는 미소를 즐기며 난 발걸음을 옮겼다.
+++++++++
MT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김민수가 부상을 입고 빠지자마자 MT엔 활기가 무럭무럭 솟았으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겁게 놀았었다.
여기서 난 그러지 못 했는데, 침대에서 하루 종일 섹스하며 보냈던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 진짜 허리 나간 것 같아."
"태양아 난 괜찮으니까 계속해줘도 돼."
"저도요...!"
유이, 유민이, 멜라니를 각각 상대하며 MT 기간 내내 허리를 움직였더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안뚱땡을 처리하고 나면 뭔가 변화가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 삶엔 그 어떤 변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안뚱땡은 내 일상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걸 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것과 실제 적용하는 건 다를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너무 일상이네.'
MT 일정을 다 끝내고 주말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날 반기는 건 아테나와 아르테미스였다.
그 둘은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빠르게 현대 문화를 습득해 이제는 어느 정도 사람다운 면모를 보이는 중이었다.
"확실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긴 하네요..."
"헤에, 태양짱은 근데 진짜 여자가 많구나."
"내가 괜히 화가 난 게 아니라니까? 진짜 가끔은 꼬추를 확! 태우고 싶어♥"
안뚱땡을 처리하고 난 후 난 여자 친구들을 집으로 곧바로 초대했다.
이제 더 이상 걸림돌이 존재하지 않으니 확실하게 하렘을 정비할 때가 온 거였다.
같이 MT를 다녀온 세 명을 필두로 뒤늦게 온 수진이와 혜미, 급하게 마계에서 달려온 샤엘과 그런 샤엘을 견제하는 리리엘.
어느새 인간화를 끝낸 메르피와 자연스럽게 다과를 준비하는 춘향이까지.
'나 진짜 엄청 문어다리였구나.'
이렇게 한 곳에 전부 다 모으니 정말 보통 하렘이 아니란 게 체감 됐다.
소유민, 유수진, 류혜미, 멜라니, 리리엘, 유이, 아테나, 아르테미스, 샤엘, 춘향이, 메르피.
'열 한 명이면 한 명을 한 달씩 만나면 거의 1년이란 소리네.'
새삼 일을 진짜 크게 벌렸다는 걸 자각하니 모아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야 이 살벌한 기 싸움을 끝낼 수 있을 텐데, 말이 잘 안 나왔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그런지 당황했고, 그렇기에 일단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다.
"같이 살...래?"
""어?""
모아 놓고 인사 없이 갑자기 같이 살자고 하면 좀 그런가?
전부 다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라는 대답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해서 한 번 더 말을 이으려는 찰나.
"흠, 그럼 나는 태양이랑 가까운 방에서 살아야겠다."
유민이의 말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다.
다들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내뱉은 그녀의 말은 전장을 여는 총소리와 다름없던 거였다.
"아... 그게 그런 뜻이야? 그런 거라면 말하지, 볼 것도 없이 내가 태양이 옆방에서 살아야 되잖아, 내가 정실이고 가장 내조를 잘하니까."
"...저는 그럼 그냥 당신 방에서 살래요."
""어??""
수진이가 그 말을 받고 다들 내 옆방을 보고 있을 무렵 멜라니가 회심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같은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같은 방에서 살 거라는 핵심을 찌르는 문장에 다들 슬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애들아 이런 건 어른이 먼저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 안 배웠니? 여기선 내가 먼저 할게."
"교관님 나이 우리랑 그렇게 차이 안 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론 조기 졸업하시고 교육 과정 많이 넘으셔서 비슷한 거로 아는데."
혜미가 앞서 나가려는 순간 바로 뒤이어지는 정보에 의해 태클이 걸린다.
유이는 반박을 하자마자 재빠르게 자기 의견을 설파했다.
"...보니까 내가 가장 마지막에 처...처녀 반납한 것 같은데, 아직은 태양쨩이 날 돌봐줘야 하지 않아? 그러니까 일단은 내가..."
"...?! 그건 말도 안 돼요! 아르테미스는 아직 처녀란 말이예요!"
"어...어, 맞다... 난 아직... 처녀다..."
유이의 말에 아테나와 아르테미스가 칼 같이 나서 아직 처녀막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녀의 의견을 박살 낸다.
"다들 잘 모르시나 본데 여기에 마족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그런 의미에서 남편과는 제가 함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신성력으로 마족의 위험을 막아야 해요!"
"...저기 초면에 죄송한데, 제가 서큐버스 퀸이라서 잘 아는데 그.. 신성력으로 지킨다면서 왜 티팬티를 입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브라는 왜 안 했는지도..."
리리엘의 말에 모두가 설득 될 뻔했으나 샤엘이 바로 나선 바람에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시선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메르피와 춘향이는 이 대화에 끼지 않았는데 왜냐면 어차피 내 소유였기 때문이다.
[흠, 나는 가끔 해주면 된다... 가끔...]
[나으리, 저는 늘 나으리를 보필하고 있으니 언제든 저것들이 지루하시면 제 몸을 쓰시와요.]
소환수여서 오히려 더 여유가 있다는 아이러니함.
근데 문제는 메르피와 춘향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상황은 개판 오 분 전이나 다름없었다.
한 마디씩 내뱉다가 주장이 바로바로 막히자 말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지, 무력을 사용하려는 낌새가 보였다.
'열 명이 여기서 치고 박으면 집은 가루도 안 남을 것 같은데.'
점점 과열 되는 분위기와 서서히 드러나는 난전의 기세.
난 정말 다행으로 이 상황을 한 번에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스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