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다려주겠냐고."
김민수 때야 그냥 어린애가 영웅 놀이하는 것처럼 변신 하니까 봐준 거지 안뚱땡은 이야기 자체가 달랐다.
"난 널 샌드백으로 본 적 없어."
죽여야 할 적.
살려봤자 해악만 끼치는 쓰레기.
[강압을 사용합니다. 출력을 100%로 설정합니다. 생명체 :: 김민수]
팔에 찬 능력 제어 팔찌를 그대로 뜯어 버리며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안뚱땡인 상태에선 강압이 지정이 되지 않았으나 김민수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안뚱땡이었기에 강압이 그대로 들어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 어떤 순간에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출력 100%의 강압이 모든 공간을 무너트릴 듯 압박한다.
상시 발동 메인 스킬 능력자의 진심.
단 한 번도 제대로 발휘해보지 않았던 전력.
"내 첫 전력의 희생자가 된 걸 축하해."
안뚱땡의 영원한 안식.
본격적인 돼지 두루치기의 시작이었다.
쾅!
쇠망치가 바닥을 부수는 듯한 타격음이 터져 나온다.
팡!
뻥 튀기가 만들어질 때처럼 폭발하는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이 모든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안뚱땡이었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만 하는 안뚱땡.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직감했다.
'왜 내 공격이 먹히지 않지?'
여태까지는 잘 먹혔잖아.
안뚱땡은 어떻게 백태양이 자기 공격을 전부 피하거나 막아 내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도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찬란하게 힘을 내뿜으며 모든 걸 마음대로 주무르던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는 착각.
김민수는 진즉에 그게 잘못 됐음을 깨닫고 멘탈이 나가 있었으나 안뚱땡은 아니었다.
비록 약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삼라만상의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융합한 순간 적수는 없다고, 그리 굳게 믿고 있었다.
"나중에 쓰려고 했는데, 지금 전부 다 꺼내야겠구나."
"뭐?"
백태양에게 하도 얻어터져서 키워진 맺집과 트롤의 회복력 그리고 마지막 숨겨둔 비장의 수.
"헤라클래스여!"
헤라클래스의 힘을 빌리는 것.
본래 김민수에게 주려고 했던 힘이었기에 안뚱땡은 곧바로 헤라클래스의 힘을 전신에 둘렀다.
수많은 시련을 견뎌 내고 끝까지 나아가 승리를 쟁취해낸 영웅의 힘이 깃든다.
"또, 또, 헛짓거리하네."
문제는 백태양이 헤라클래스의 윗선인 제우스까지 전부 박살 내고 왔다는 것이었다.
안뚱땡은 더 이상 세계를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백태양이 무슨 업적을 이뤄냈는지 알 지 못했다.
아마 그걸 알았다면 덤빌 생각은 하지도 않고 김민수의 무의식에 도망치라는 의념만 심어 넣었을 터였다.
쾅!
그 짧은 사이에 강해지면 또 얼마나 강해지겠어라는 안일한 생각.
방심의 결과는 백태양의 발차기가 되어 그대로 안뚱땡의 턱주가리를 강타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더 공격을 허용하면 위험해!'
간신히 긁어모은 힘들이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권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짰고, 김민수와 융합도 했으며 헤라클래스의 힘도 꺼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백태양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야."
흑룡포를 입고 고고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태양의 눈을 바라본다.
놈은 단 한 번도 위험에 빠진 적이 없었다. 항상 강했고 늘 이겨 왔으며 그 어떤 상황이든 돌파구를 찾아냈다.
어떻게 그게 되는 거지?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만약 내가 김민수를 꼬시지 말고 백태양에게 영업을 했더라면 미래가 달라졌을까?'
어디서부터 선택을 바꿔야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까.
안뚱땡은 지금, 이 상황이 자기 실수로 인해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의 연속 그리고 운명의 장난.
이 두 가지가 자신을 억까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서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꾸구구구구구국.
힘을 뭉친다.
계속 이렇게 맞다간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안뚱땡은 전보다 힘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분명 예전엔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 했던 주제에!"
"그게 언제야 미친놈아."
언제적 이야기하고 있어.
안뚱땡의 발악에 백태양은 기가 찬다는 미소를 지으며 집중된 안뚱땡의 힘을 간단하게 소멸시켰다.
힘과 힘의 충돌.
이게 비등비등해야 상쇄가 되는 거지, 차이가 너무 압도적으로 나면 격돌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계란과 바위의 충돌에서 바위가 어떤 손해를 보겠는가.
"진짜 좋은 것 같아, 처음과 같은 공간에서 다른 결말을 맞이하는 거.'
이런걸 수미상관 구조라고 하지 않냐? 넌 작가니까 잘 알 거 아냐.
표절이지만, 그 말을 끝으로 백태양은 안뚱땡의 지척까지 다시 접근해 주먹을 휘둘렀다.
망설임 없이 명치에 꽂히는 묵직한 한 방.
개빠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태양은 틈 날 때마다 안뚱땡을 주먹으로 타격했다.
"넌 진짜 오래 맞아야 돼."
손맛을 느끼기 위해.
소멸 시키는 건 기정사실이었으니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었다.
참교육을 뛰어넘는 무언가.
꽉 찬 탄산이 필요한 순간.
백태양에겐 답답함을 해소할 무력이 존재했고, 안뚱땡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이 승부의 결과를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
"일어나 안뚱땡, 너무 맞아서 이젠 소리도 안 나는구나."
2시간.
안뚱땡을 무차별적으로 팬 시간이다.
물론 하얀 공간에 갇혀 있어서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으나 짐작컨데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리라 확신했다.
"꼴이 좋아."
수차례 이어지는 구타를 일방적으로 당한 안뚱땡은 정말 많이 지쳐 보였다.
숨 쉬기조차 힘든지 꾸륵꾸륵 거리는 소리를 입으로 내며 시선은 이미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그림만 놓고 봤을 땐 내가 악당으로 보이는 구도였지만 진실은 완전 정반대였다.
"난 여기서...패배...안...해...여자들...전부 다아..."
"여자? 무슨 여자? 설마 너 이 상황에서도 히로인 어쩌구 하는 거야?"
역겨움의 수치가 있다면 안뚱땡은 분명 그 끝을 달렸겠지란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처맞고 있는 와중에도 미래에 하렘을 차릴 상상을 하다니, 여자에 미친 것도 정도껏 해야지.
"그래, 네가 지금 김민수 몸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민수는 못생긴 편에 속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언급 했지만 라노벨에서 흔히 나오는 '평범하게 속하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도내 S급 미소녀들이 사랑하는 얼굴' 스타일이었다.
갑자기 해맑게 웃거나 머리카락 좀 올리면 여자애들이 '우웃...!'하고 얼굴을 붉히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유형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얼굴이었기에 당연히 안뚱땡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거였다.
어떻게든 이 상황만 벗어나면 자기 육체보다 훨씬 월등한 몸으로 여자를 꼬실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니까 정육점에 걸린 돼지와 같은 꼴로 두들겨 맞고 있는 와중에도 희망을 품는 거겠지.
"내가 다 뜯어내줄게."
헤라클래스의 힘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수차례 가격한 폭력 때문에 놈의 권능도 약해진 상태.
지금이라면 김민수와 안뚱땡을 완전 분리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고 손을 움직이자 정확히 안뚱땡의 얼굴이 잡힌다.
김민수의 얼굴 위로 홀로그램처럼 흐릿하게 떠 있던 안뚱땡의 큼지막한 얼굴이 손안에 쏙 들어온다.
쩍 쩌저쩌적.
치지지지지직.
벽에 완전히 달라붙은 스카치 테이프를 뜯는 듯한 감각.
처음이 어렵지 끝을 조금 뜯어내 잡는 순간부터 접착력은 의미를 잃고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툭 투두두둑.
김민수의 몸에서 안뚱땡이 뜯어져 나온다.
"안 돼! 안 된다고! 그만! 그만둬!"
입에 침을 줄줄 흘리며 애원하는 안뚱땡.
이런걸 원했다.
"진즉에 애걸복걸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처음부터 바짝 엎드렸다면, 알아서 잘못을 빌면 얼마나 좋아.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일을 크게 만드는걸 보니 확실히 김민수의 스승이라고 자부할 만한 놈이었다.
"넌 근데 처음부터 그랬어,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다 남한테 의지하려 했지."
김민수한테 연애 상담해준 이유? 그건 사실상담을 가장한 대리 만족일 뿐이다.
자기가 할 수 없는걸 대신 이뤄주는 존재를 만들고 나중에 그 존재가 모든 걸 이뤄냈을 때 몸을 차지하려는 개수작.
그걸 위해 김민수에게 모든 걸 아낌없이 주는 척을 했던 거다.
김민수에게 자기 성격을 계속 넣으면서 이런 찌질함조차 사랑해 줄 히로인을 만들어내고, 급기야 하렘까지 손을 댄 거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자신은 노력조차 하지 않고서 달콤한 것만 먹겠다는 쓰레기 같은 심보.
어떻게 사람으로 태어나 그런 생각만을 하고 살아올 수 있단 말인가.
"널 표현할 말조차 아까워."
찌이이이익, 쫙!
마지막 끝부분까지 떼어내자 김민수와 안뚱땡이 완전 분리된다.
김민수는 융합도 강제로 됐다가 분리로 강제로 당해서 그런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일반인이라면 쇼크사 할 정도의 충격을 기절로 끝내다니, 괜히 한 때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던 놈이 아니었다.
'김민수는 어차피 나중에 패도 돼, 아니 이제 안 패도 될 수도.'
아만다가 먼데는 춘향이와 대치하고 있다가 김민수가 풀려났다는 걸 확인.
곧바로 몸을 움직여 김민수를 따듯하게 품에 쏙 넣었다.
모성애가 느껴질 정도로 감탄이 나오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느껴져 발로 안뚱땡의 얼굴을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