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도 없는 게, 실제로 한 번 만나서 붙은 적이 있었기에 춘향이의 압승이 예상 됐다.
때문에 난 기습 당할 염려 없이 바로 김민수한테 달려갔다.
안뚱땡의 마지막 씨앗 김민수.
그걸 박살 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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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맞고 있는 거지.'
퍽! 빡! 퍽! 빡!
지금 왜 이런 연속적인 타격음이 내 몸에서 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난 신이 됐을 텐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고 백태양을 부른 건데.
그리고 당연히 백태양을 때려 눕힌 다음에 원래 있던 세계로 모든 걸 되돌려야 하는데.
'내가 모든 걸 가져야 하는 게 마땅한 세계.'
백태양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연애 컨설팅을 차곡차곡 받아서 내가 성공한 세계.
그 세계를 김민수는 원래 있던 세계라 불렀다.
-역시 혼자서는 힘들지?
백태양한테 개빠따로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김민수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넌 나와 함께였잖아, 민수야 우리라면 백태양을 이길 수 있어.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친근하게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나야, 안뚱땡.
네 안에 얌전히 숨어 있었어.
나지막한 한 마디에 김민수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안뚱땡이라고? 잠깐만 그건 안경 뚱땡이 줄임말이잖아.'
뭔가 알아선 안 되는 진실에 한 걸음 내디딘 듯한 감각.
김민수는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뚱땡은 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빈사 상태로 김민수의 품 안에서 때를 기다렸었다.
'백태양과 김민수를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안뚱땡은 백태양에게 일격을 맞고 쓰러지는 그 순간 자기 몸을 스스로 분해시켜 김민수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당장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하다가 사라질 바엔 때를 기다리기 위한 일 보 후퇴 이 보 전진의 순간.
다행히 그때 백태양은 안비실까지 함께 처리하느라 미처 안뚱땡을 끝까지 신경 쓰지 못했었다.
'우선 김민수를 서서히 조종한다.'
안뚱땡이 김민수의 몸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은 김민수의 무의식을 장악하는 거였다.
백태양에게 연이은 패배로 자존감이 나락까지 간 김민수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한다.
이로 인해 다시금 김민수를 부활시켜 수련하게 만들고 이기기 위한 수단을 찾게 하는 것.
그렇게 해서 김민수가 예전의 강함을 되찾을 때 잠시 김민수의 몸을 차지해 백태양이 가지고 있는 힘을 뺏으면 끝.
근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이게 뭐야.'
김민수는 안뚱땡과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자 점점 다른 방식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찌질하면서 허세가 가득한 모습이 아니라 자기 찌질함을 인정하며 순수하던 그때 모습으로의 회귀.
이 부분은 미처 안뚱땡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무의식을 조종할 수가 없잖아.'
성녀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급발진의 때만 하더라도 김민수를 완전 장악한 줄 알았지만.
어찌 된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민수는 점점 멀쩡해지고 있었다.
안뚱땡은 김민수가 강해지는 걸 바라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강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 강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찾게 되는 결과를 원했거늘.
'감히 독립을 하려 그래?'
지금의 김민수는 자기 과거 행적과 치열하게 싸우며 새로운 모습을 일깨우려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때문에 안뚱땡은 남아 있는 힘을 대부분 끌어올려 다시 김민수의 무의식을 장악했다.
원래라면 끝까지 아껴서 마지막 순간에 쓰려고 했으나, 이대로 가다간 김민수의 몸 안에서도 쫓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김민수와 백태양을 싸우게 만든다.'
시기가 굉장히 앞당겨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김민수가 변신을 할 때마다 자기 힘을 보태줬고, 이번에는 정말 많은 부분을 투자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무차별적인 폭력을 김민수는 견디지 못 했으며 계속 맞고 일어나는 게 전부였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피해를 입을 때마다 자기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한 번 백태양에게 패배한 이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백태양의 힘은 완전히 상극으로 다가왔다.
세계를 지배해야 할 자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패배를 한단 말인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안뚱땡은 도박 수를 던졌다.
-나와 하나가 되자.
그건 바로 직접 김민수에게 말을 걸어 별개로 존재 했던 힘들을 하나로 섞는 것.
자아가 섞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안뚱땡의 인격 자체가 소멸 될 수도 있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계속 맞다가 사라질텐데 그럴 바엔 발악이라도 해야만 했다.
'넌 누구야.'
-나야 안뚱땡.
'안뚱땡이라고?'
-그래, 나야.
여기서 안뚱땡은 늘 하던 것처럼 순애일지작가는 바쁘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려 했다.
하지만 김민수는 안뚱땡과 멀어져 있는 동안 지능이 상승했고 그렇기에 단번에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안뚱땡인 네가 나타나는 걸 보면... 너구나, 네가 순애일지작가였어.'
그래서 여태까지 모든 게 이상하게 꼬였던 거였어.
너도 잘 모르는 거니까, 그런 외모로 연애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가 힘들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늘 실패하고 백태양은 성공했던 거야.
-...김민수?
뜻밖의 진실에 다다른 김민수의 멘탈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몇 년 동안 연애 상담을 하며 믿고 따라왔던 자가 사실은 안경 뚱땡이에 연애 경험이 전무한 아다라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충격.
자신보다 더 못한 존재에게 조언을 구하며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에 대한 허탈함.
가장 큰 상처는 여태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이 그걸 그대로 믿었던 자기 멍청함이었다.
'내가...내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아서 일이 여기까지 온 거라고?'
그동안 했던 모든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김민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유민이를 방과 후 교문 앞에서 기다렸던 때부터 성녀를 만나 급발진하는 것까지.
하나같이 전부 안뚱땡에게 배운 잘못된 지식이 낳은 결과들의 수치심이 김민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야, 기회잖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순간.
멘탈이 나간 김민수의 몸을 안뚱땡은 너무나도 쉽게 차지하게 되었다.
안뚱땡조차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으나 그는 빠르게 납득을 함과 동시에 김민수와 자기 힘을 융합 시켰다.
끼기기기긱.
힘의 조율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에 나오는 불협화음.
그러나 안뚱땡은 이 순간을 이겨 내고 백태양을 잡아먹기만 한다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로 생각했다.
"오랜만이다, 백태양."
나지막이 내뱉는 한 마디.
안뚱땡은 사실 뒤를 이어 몇 마디를 더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것도 사실이고 이제부터 선사할 절망이 어떤 건지 전달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래 돼지 놈아, 잘 됐어."
백태양은 안뚱땡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김민수의 기세가 바뀐 걸 확인하자마자 움직인 백태양은 그대로 안뚱땡과 거리를 좁혔다.
그 후 이어지는 일격.
빡!
"꾸에에에에에엑!"
공간을 가득 울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와 함께 백태양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래야 앞뒤가 맞지."
세상 그 누구보다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태양은 상쾌한 표정을 하며 뒷말을 덧붙였다.
"마족화."
쿠구구구구궁.
탐욕의 군주가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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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럴 줄 알았어.'
김민수에게 안뚱땡의 잔재가 있다고 느낀 시점부터 당연히 이런 식의 전개 펼쳐질 거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게 안뚱땡은 그 누구보다 진부한 클리셰에 푹 빠져 있는 놈이었으니 무조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너무 약한 보스를 쓰러트리니 최종장이 펼쳐지며 진짜 흑막이 나타나는 전개.
수도 없이 봐 왔던 스토리 흐름이었기에 너무 당연하게 몸이 움직였다.
꾸에에에에에엑!
하얀 공간을 꽉 채우는 듯한 돼지 멱 따는 소리.
김민수도 한 소리 했지만 역시 진짜 원조는 차원이 다른 법이었다.
"기억나? 네가 나 처음 이런 곳에 불러서 너도 당해 보라고 하면서 나한테 했던 짓들?"
영문도 모르고 소설 속에 끌려와서 허둥거렸던 날들이 떠오른다.
여자를 따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면서 선도부도 따먹고 남의 여친도 따먹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솔직히 정말 다행이야. 김민수가 아니라 널 팰 수 있어서."
사실 따지고 보면 김민수는 역겨운 거지 패죽일만한 수준의 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
위협적으로 다가온 적도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자다가 날라다니는 모기 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뚱땡은 해악 덩어리 그 자체였다.
세계를 멋대로 주무르려고 하고 김민수를 조종하는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전개하는 것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죄의 연속,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후두려 패도 무죄 판결을 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김민수랑 하나가 되면 뭐가 될 것 같아? 그리고 엄청 불안정해 보이는데."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으나 신위를 얻게 된 지금은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김민수의 몸을 가지고 안뚱땡의 말하고 있었으나 드문드문 김민수의 자아가 보였다.
아마 모종의 수를 사용해 멘탈을 무너트리고 그사이에 몸을 차지한 것 같은데.
저런 방식은 기존의 자아가 정신을 회복 했을 경우 빠르게 붕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놈도 그걸 알고 힘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고.'
안뚱땡은 나에게 타격을 당하며 그대로 멀리 날아가 힘을 비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