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18화 (318/325)

마지막 말을 끝으로 유이는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아무래도 취한 상태에서 억지로 계속 나와 어울린 듯한데, 그것조차 정성스러워 보여서 감동이었다.

'아무튼 하루에 세 탕... 진짜 미쳤네.'

길고도 긴 새벽.

유이와 섹스하고 멜라니와 살을 섞고 유이와 같이 자는.

이 엄청난 일련의 흐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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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도 허리랑 허벅지가 떨리네."

이튿날 아침.

난 난생처음 섹스로 인한 근육통을 겪고 있었다.

아무리 많이 해도 두 번 정도였는데 확실히 세 번은 이런 신체여도 무리가 있는 듯했다.

운동 체력이랑 섹스 체력이랑 다르다고 여러 번 말하긴 했지만, 그게 나한테도 해당 될 줄이야.

그래도 날 이렇게 만든 세 여인은 아직 침대에 떡이 돼서 누워 있으니, 자존심은 지켰다고 볼 수 있었다.

나름 이름값이 있는데 그거 세 번 했다고 여자들이랑 똑같이 누워 있으면 쪽팔리지 않는가.

"백태양, 후들후들 거리는 게 참 허접하구나."

"음?"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고 있을 때 김민수가 귀신같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단련을 게을리해서 그런지 걷는 것조차 미숙해."

"이거 섹스해서 그런 거야."

"섹스하면 행복한 천국에 빠져서 헤엄을 치고 무중력에 있는 듯한 신체가 된다던데..."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대체 무슨 동인지랑 야설을 봤길래 저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막힘없이 내뱉는 걸까.

'설마 얜 여태까지 그런 게 섹스라고 생각했던 건가?'

섹스를 실존하는 행위로 여긴다기보다는 그냥 유니콘 같은 느낌으로 상상해 왔다고?

정말 여러 번 김민수의 찐따스러움에 놀라며 놈의 말에 대답하길 포기했다.

불쌍해서 몇 마디 섞어 줄 생각이었는데,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안 엮이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네가 하는 모든 건 나의 것이 되었어야 하는데 말이야."

"갑자기 또 뭔 개소리야."

근데 주변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걷고 있는 장소는 숙소의 복도.

아무리 사비를 털어서 예약 했다지만 아침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보통 조식이라도 먹기 위해서 사람들이 한 두 명이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복도에 있는 건 김민수와 나 단둘 뿐.

게다가 김민수는 너무 태연하게 나한테 말을 걸며 또 혼잣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 했고 악연을 언제 끊을지 생각했다. 난 감옥에도 들어갔고, 여러 시련도 겪었어."

"...?"

뭐라는 거야 진짜.

짜증을 내며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김민수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므로 이제 진짜, 정말 마지막 순간을 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갑자기? 넌 무슨 떡밥도 안 던지고 이러냐."

그렇게 말하면 무서울 거로 생각했나.

안 그래도 날 잡아서 팰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나야 땡큐였다.

"해 보자, 너와 나의 마지막 전투를."

김민수는 굉장히 거창하고 장엄하게 이 순간을 묘사했지만 난 아니었다.

'샌드백 몇 대 패고 이제 그럼 진짜 귀찮게 안 구는 건가.'

끝의 끝.

드디어 김민수를 안 보게 될 순간이 오게 된 거였다.

밝은 빛이 환해져 주변을 삼키다가 짧게 점멸하며 전혀 다른 풍경을 펼쳐 낸다.

울창한 밀림과 그 뒤로 커다랗게 펼쳐진 웅장해 보이는 성.

너무 익숙한 모습에 여기가 어딘지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내뱉었다.

"트롤 왕국?"

"그래, 맞아. 트롤 왕국이야."

개구리 공주 게이트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렸던 C급 게이트 트롤 왕국.

여기서 트롤 킹 아만다가 먼데의 무용에 놀라기도하고 그녀를 이용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는 장소였다.

'클리어가 안 됐었나?'

아만다가 먼데가 김민수의 소환수가 되고 나서 게이트 보스가 사라진 거니까 자연스레 클리어 처리가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도착한 거 보면 아무래도 트롤 왕국은 여전히 건재한 듯 보였다.

"내가 남편과 맺어지게 되면서 여기는 게이트라기보단 그냥 개별적 공간으로 인정 받은 거얌."

"응?"

"뭐강? 트롤 말하는 거 처음 봠?"

"아니 방금, 처음에 말한 거 있잖아."

"남편?"

"그래, 그거."

남편이라고?

'결국 인간이랑 사귀는 건 포기한 거냐?'

저지른 실수도 많고 입만 열었다 하면 분위기가 싸해지니 연애는 절대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거늘.

김민수는 그런 예상을 시원하게 박살 내고 당당히 트롤 킹과 결혼을 했던 거였다.

'언제 한 거지? 신혼은 대체 언제고... 아니 그럼 사랑을 이뤘으니까 더 강해진 건가?'

여러 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김민수는 얼굴을 붉히며 바로 반박했다.

"무슨 소리야! 그냥 소환자랑 소환수의 관계라고! 백태양! 너도 소환수가 있어서 알 텐데?!"

날이 선 듯한 반응.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자잘한 건 무시하고 난 내 경험을 바탕으로 바로 대답했다.

"난 춘향이랑 섹스하는데? 그때 봤잖아, 그 얼음 쏘는 애. 걔랑 온종일해."

"..."

"너도 그런다는 거야?"

근데 생각해 보면 막 엄청 이상한 건 또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며 서양에선 염소박이들이 드글드글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종족만 다를 뿐 말이 통하고 지성체와 관계를 맺는 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해서 가능하다고 하면 박고 아니면 안 박는.

그런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서 생각해보자면 김민수는 그냥 극단적인 가능충인 거였다.

"난 아냐,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안 할 예정이고! 저건 쟤가 그냥 멋대로 떠드는 거야!"

"엄멈머, 멋대로 떠들다니, 내가 그동안 자기가 하는 걸 쭉 봤는데 아무래도 시집 가 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하는 소리구만!"

치정 싸움을 왜 여기서 하고 난리야.

일반적인 사랑싸움이라면 또 모를까 손이 솥뚜껑만한 트롤 킹과 인간 수컷의 부부 싸움이어서 보기가 좀 역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이 무너진다고 해야 하나.

때문에 이 흐름을 끊기 위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미안한데, 니들 사랑싸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왜 여기로 불렀는지 빨리 용건부터 말해주면 안 돼? 나 바빠."

여행도 다녀야 하고 떡도 쳐야하고 그렇단 말이야.

내 말에 김민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갑자기 품속에서 검을 한 자루씩 꺼내기 시작했다.

검은색 검, 하얀색 검, 붉은색 검 총 세 자루를 꺼내서 아주 자랑스럽게 나열하는데,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검을 둥둥 띄워서 자기 등 뒤에 나열시키고 갑자기 혼자서 분위기를 잡는 김민수.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진짜 급발진하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개도 자기 멋대로 뽑아내고 분위기도 멋대로 변환 시키고, 정말 놈이 만약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소설이 탄생했을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스토리를 제대로 전개하기도 전에 에피소드가 한 수 백 개 생겨날 것 같은데.'

감당하지 못 할 일들이 꼬이고 꼬여서 결국 김민수한테 되돌아오고, 놈은 그걸 안뚱땡의 특혜를 통해 편의주의적 전개로 해결하고.

참 역겨운 상황이 이어졌겠지.

"그래, 내 용건은 딱 하나야. 그냥 나랑 싸우자."

"싸우자고? 그게 끝이야?"

"그리고 특별한 조건 하나, 더 이상 내 여자 친구를 뺏어가지 않기로 해."

"...나도 트롤은 취향 없는데?"

"그거 말고! 내가 앞으로 만날 여자들 말이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이해할 수 없는 대화의 나열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기껏 사람 납치해서 하는 말이 '싸우자, 여자 뺏지마라' 이런 거라니.

유치원생보다 한 차원 낮은 단어 조합에 억눌렀던 폭력성이 확 깨어났다.

'그러고 보니 진짜 얘랑 마지막으로 결판을 내면 난 진짜 자유구나.'

안뚱땡과 안비실도 사라졌고, 퀘스트도 사라졌고, 세계를 위협할 악당 같은 건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김민수의 여자를 뺏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세월에서 놈을 하찮게 보게 되는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과 인연이 있었으며 모두 다 유의미한 과정과 결과를 남겼었다.

'마왕도 탐욕의 권좌를 내가 먹고 있어서 인간계를 당장은 안 처들어올 테고.'

백두산 게이트 같은 건 차근차근 해결해가면 되는 거였다.

세계 금역이라 불리는 곳도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하나씩 공략해가면 세계는 분명 빠르게 안정을 찾을 터.

어찌 보면 지금, 이렇게 김민수와 대결하는 게 이야기의 종장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올 때도 안뚱땡의 급발진으로 오고, 끝날 때도 놈이 남긴 급발진 괴물에 의해 결정되는 구나.'

참 그렇게 생각하니까 웃기네.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면서 후련한 마음도 있었기에 난 최대한 진한 미소를 지으며 개빠따를 소환했다.

치지지지지직.

수많은 신들을 두들겨 패고 경고하면서 더더욱 강해진 개빠따는 모든 걸 분쇄할 정도의 힘을 내뿜고 있었다.

아직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정말 전력으로 휘두른다면 김민수의 회복 패시브조차 삭제시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틱스의 맹세도 박살 냈는데 고작 회복력이 오르는 패시브 하나 박살 내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래 뭐, 강해 보이는 무기가 있긴 하네, 근데 그거 알아? 천, 인, 마의 힘을 모두 손에 넣은 나는 신위를 얻었다는 거?"

"뭐?"

"놀랍지? 인간이 신위를 얻었다는 게? 아직은 미약하지만 최하급 신도 못 들 정도지만 난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어."

김민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며 손짓으로 검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손을 앞으로 내밀면 검도 따라서 앞으로 가고 팔을 휘적거리면 그에 따라서 동선을 맞춰 움직인다.

자기 위용을 자랑하기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내 눈엔 그저 애들 장난처럼 보였다.

"진짜 격차가 너무 많이 나니까 허무하네."

"무슨 말이야?"

"넌 날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잖아, 지금도 그럴 거고, 근데 넌 또 그걸 모르고 엄청 기세가 좋잖아? 이게 너무 반복 되니까 지루해서."

클리셰도 한두 번이어야 클리셰지, 김민수와의 전투는 하얀 사골을 넘어 이젠 맹물이 나올 정도였다.

"잘 봐, 민수야."

제발 피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그 정도 수준은 된다는 말이니까.

이 말을 끝으로 난 개빠따를 아주 가볍게 휘둘렀다.

 더 이상 거리는 나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기에, 얼마든지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었다.

내 기준에서 정말 느긋하게 우측 대각선에서 좌측 대각선으로 느긋하게 한 번.

빡!

"끄악!"

긴장감 없이 휘두른 공격에 허벅지를 제대로 타격 당해 몸을 부여잡고 뒹구는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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