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08화 (308/325)

마이크를 뺏다시피 가져간 MC는 곧바로 여분 마이크를 무대 뒤쪽으로 휙 날려 버렸다.

"그럼 본격적인 춤 사위를 보기 전에 자기소개...는 넘어가도록 하고 바로 지금부터 트는 노래에 맞춰 각자 춤 춰주시길 바랍니다!"

원래 이런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행사 진행을 많이 해 본 사람이어서 그런지 실시간으로 일정을 자연스럽게 수정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예정대로라면 자기소개도 하고 각자 한 명씩 나와서 무슨 춤을 출 건지 말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 댄스 타임을 빠르게 끝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근데 단체로 춤을 추게 하면 안 되지 않나?'

MC도 그렇고 주변 애들도 그렇고 다들 너무 김민수를 얕보고 있었다.

한 번 분위기를 박살 낸 놈이 계속 눈치 없이 이곳저곳을 들쑤실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MT 초짜들은 생각조차 못 하는 거였다.

빰! 빰! 빰! 빰!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다들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춤을 추기 시작한다.

메인 스테이지 위에 올라와 있지 않은 생도들은 최대한 흥을 돋구기 위해 단체 구호도 부르고 이름도 불러 주고 하는 등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 나도 지구에서 클럽 좀 다녀 본 경험을 살려서 설렁설렁 춤을 추고 있을 때.

"꺄옷후!"

김민수가 모든 걸 박살 냈다.

"뷜리 쥔! 얏 마이 럽!"

자신이 무슨 춤을 추는 지 대놓고 알려주기 위해 짧게 가사를 읊은 뒤이어지는 춤사위.

며칠 동안 연습하긴 했는지 나름 모양새는 나왔지만 문제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거였다.

보통 같았으면 '오! 빌리진이군요! 춤신춤왕!' 이런 호응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몇 번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김민수의 행동은 '나댐' 그 자체였다.

자기 가랑이를 꽉 쥐고 허리를 흔들어대면서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김민수.

그리고 그걸 보며 춤을 추다가도 몸이 간헐적으로 멈추는 주변 애들.

자기 재량으로 상황을 수습할 수 없을 깨닫고 절망하는 MC까지.

정말 희로애락이 이 무대 위에 다 담겨 있었다.

'내가 적당히 마무리해야겠다.'

나 또한 신나게 춤을 추는 척하며 김민수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지 딴에 강해졌다고 나한테 다가오는 거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이미 같은 라인에 존재하지 않았다.

헤라의 젖이라도 먹고 왔다면 모를까 트롤 킹 젖조차 빨지 않은 김민수는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전 세계에서 오직 김민수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자자 김민수 생도와 백태양 헌, 생도님, 아니 생도가 맞붙기 2초 전입니다!"

세 발자국 정도 남겨진 거리.

주먹을 쥔 듯 안 쥔 듯 가볍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여기서 휘두른다.'

세 발자국 째, 김민수는 예상대로 어깨를 내 쪽으로 움직였다.

의도가 너무 뻔한 어깨빵을 가볍게 피해 주고 몸이 겹치는 그 사각 지대를 이용해 놈의 명치에 주먹을 두 방 꽂아 넣는다.

"꾸에에에엑!"

흥겨운 클럽 음악 소리 가운데.

김민수의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역시 민수가 최고구나.'

타격감은 얘 만한 게 없었다.

"꾸에에엑!"

타격감은 클럽 음악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메인 스테이지 한가운데를 시원하게 뚫고 그 존재감을 주변에 알렸다.

김민수의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여러 번 공개적인 장소에서 들려주긴 했지만.

방금 같은 상황에서 아무도 놈이 맞았다고 생각하지 못 했기에 다들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무슨 소리야?"

"DJ 표정 보니까 의도적으로 난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 근처에 도축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어디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웅성웅성.

소근소근.

춤을 잘 추고 있다가 들리는 굉음에 분위기는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무도 김민수와 내 쪽을 바라보지 않는 걸 보면 내 계획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역시 안 걸렸네.'

일부러 딱 두 대만 때려서 쿵쿵따가 발동 되지 않도록 조절하고 속도도 최고치로 올려 팼으니.

사실 걸리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의 은밀 기동이었다.

'멜라니는 정확히 봤네.'

내 행동을 정확히 인지한 건 유민이와 멜라니 정도.

멜라니는 날 보며 입 모양으로 계속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사람 팰 거면서 왜 믿음직하게 거짓말을 하냐고 하는 것 같은데.

누굴 데려와도 빌리진 춤을 추느라 허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김민수를 다 팰 게 분명했다.

그걸 패지 않고 말로 타이르거나 그냥 참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 통달해서 부처가 되어 있거나 진리를 깨우칠 정도였다.

"어...아! 역시! 김민수 생도! 리액션이 장난 아닙니다! 잠깐 그 톡 했다고 이 정도의 연기를! 춤을 추면서도 연기를 하는군요!"

부랴부랴 MC가 상황을 수습하는 멘트를 던지고 나서야 상황이 간신히 이어졌다.

명치 부근을 꽉 잡고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운 듯 꺽꺽거리는 걸 연기라고 포장하다니.

실제로 공신력 있는 사람이 그런 말해서 그런지 무대 밑에 있는 애들 대부분은 믿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도 멜라니와 유민이는 계속 날 째려봤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스테이지 내려가자마자 혼날 게 뻔한데 벌써 눈치를 보며 살살 길 이유는 없었다.

상남자라면 나중에 혼날걸 알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하는 법이었다.

'덜 팼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밟아놔야 하는데 놈 꼬락서니를 보니 한참 부족했다.

정말 초창기에 두들겼다면 이 정도로 진압이 됐겠지만, 시간이 지나 재생력 하나는 끝내주게 높은 김민수는 멘탈까지 강철로 무장한 상태였다.

몇 대 맞았다고 패배를 하거나 포기를 떠올리기보다 다음 기회를 노리며 도전하는 삼류 악당 같은 존재.

그게 바로 지금의 김민수였다.

"...뭐야, 고작 이 정도인가. 좀 귀여워졌구나."

실제로 김민수는 회복 되자마자 내 쪽으로 다가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인 상태로 대사를 내뱉었다.

명치 부근을 여전히 손으로 꾹 누르면서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게 너무 허접한 허세로 보였지만.

다 같이 놀고먹는 곳에서 더 망신을 줬다간 분위기가 갑자기 대결로 변했기에 여기선 절제를 해야 했다.

"아 그치 뭐..."

"내일, 내일 있을 시간에 너와 나 마지막 검무를 준비해야 되겠군."

"...?"

갑자기 어디 연극에서 할 법한 말투로 이상한 문장을 완성한 김민수.

놈은 이미 완벽하게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이번... 그래, 넌 뭐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던전 실습에 대해서 말을 좀 하자면..."

여기가 춤을 추는 장소라는 것도 잊고 말을 늘어놓는 김민수를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같이 더 오래 어울렸다간 똑같은 유형이라고 오해 받을 수 있었기에 최대한 놈과 멀어져야 했다.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라는 한 공통점에 묶여 있는 마당에 대화까지 오래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상한 놈이라고 낙인 찍히기 딱 안성맞춤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놈이 내일 뭘 한다는 걸 알았다는 거지.'

짱구는 어려서 말썽 부려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라도 하지.

얜 나이를 먹고 이러니까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냥 패는 게 답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일단 여기선 대충 치고 마무리하자.'

MC는 얼추 보여 줄 건 다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춤은 이 정도면 다 본 것 같다고 하고 그 이후부턴 본격적인 경품 뽑기가 시작 됐다.

사전에 나눠준 번호표를 이용해 추첨을 기다리거나 게임을 통해 상품을 획득하는 등.

대학교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가 쭉 이어졌고, 그런 상황 속에서 난.

"당신 미쳤어요? 거기서 패면 어떻게 해요! 안 팬다면서요!"

"태양아, 진짜 내가 널 아무리 사랑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 다음에 또 그러면... 근데 다음 또 그럴 것 같은데 미리 혼내도 돼♥?"

축제 현장에서 벗어나 숙소 뒤편에서 미친 듯이 혼나고 있었다.

'아니 근데 걘 진짜 패야 된다니까.'

예로부터 그런 놈을 패라고 몽둥이가 약이란 말이 있었던 건데.

이건 부분적으로 조금은 억울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김민수가 그렇게 다가온다면 그 누구라도, 정말 옆집 똥개라도 공격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뭐 안 팬다는 약속도 있었고 얌전히 놀겠다고 했는데, 그걸 어긴 건 맞으니까.

얌전히 혼나기로 했다.

"태양아, 얌전히 혼나기로 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지금, 이대로 넘어가면 모든 상황이 다 끝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 그냥 이대로 제 방으로 따라와요."

"아니지, 그건 아니지 내 방으로 따라와야지."

"네?"

"응?"

근데 상황이 기묘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타이거 파이트로 넘어가려는 기미를 보였다.

충돌하려는 건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보유자 둘.

목표는 날 누구의 방에 데려갈 것인가.

'가볍게 할 생각은 없나보네.'

둘 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말 진심인지 서서히 자기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멜라니의 등 뒤엔 화기가 생겨나고 있었고 유민이의 등 뒤엔 마법진이 새겨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있었다면 기겁하면서 도망칠 정도의 상황이었다.

"에이, 다들 그러지 말고 그러면 둘 다 내 방으로 오는 거 어때."

하지만 나에겐 가뭄에 내려진 단비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밤새도록 혼나는 것도 모자라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으면서도 혼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그사이에 난입이 가능해지는 거였다.

'그리고 마침 유민이랑 멜라니, 이렇게 둘이서 같이 해 보기도 싶기도하고.'

라이벌 관계로 앙숙이던 둘이 남자 하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섞으며 보지를 부비는 장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기가 될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 광경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난 재빠르게 일어나 두 여인의 허리를 팔로 꽉 끌어안았다.

"...혼나다가 갑자기 이러는 거, 진짜 능글 맞다고 생각 안 해요?"

"태양아, 근데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하게? 책임질 수 있어?"

날 나무라는 멜라니와 미래까지 확실하게 답하길 원하는 유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책임질 수 있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백태양이라고 백태양.

그런 자신감이 담긴 미소로 유민이와 멜라니를 품 안에 꼭 끌어안고 숙소로 향했다.

아주 날카로운 3P 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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