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300화 (300/325)

"그럼 영화 보러 갈까요?"

복도에서 기분을 제대로 풀어 줄 수는 없는 노릇.

난 안내 받은 호텔 방문을 열면서 리리엘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인 성인 데이트가 지금 개막했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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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엘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느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실수와 긴장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

그러나 그걸 완벽하게 막아주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데이트 파트너.

당황할 때쯤 설렘이 심장을 때리고 좌절하는 순간에 다시 두근거림이 뇌를 강타한다.

호로몬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사랑이란 감정을 미칠 듯이 생산할 무렵.

쪽.

그걸 완벽하게 터트리는 이마에 뽀뽀 한 방은 리리엘에게 정말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수, 숨을 못 쉴 것 같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뤄지자 숫처녀 리리엘은 견딜 수가 없었다.

영화를 봐야겠다고 호텔을 찍었을 때 그녀의 머릿속은 정말 단순하게 조용하게 단둘이 있고 싶다가 전부였다.

거기서 뭐 과감하게 알몸이 돼서 질펀한 첫사랑 풋풋 섹스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근데 뭔가 분위기가...!'

없었는데 잠자코 현 상황을 다시 뇌에서 되감아보니 뭔가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가장 유명한 호텔에서 이 주 정도를 예약한 (예비)신랑과 (예비)신부의 사랑 이야기.

상황의 흐름이 그런 쪽으로 팍팍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무, 무슨 영화 보실래요?"

리리엘은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무 말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화두를 던졌다.

"음, 무서운 거 볼까요? 아니면 액션? 아니면 로맨..."

"로맨스요!"

첫 데이트엔 부담감 없는 액션이나 코디미 쪽이 좋다는 인터넷 연애 조언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고 클대로 큰 성인이라면 첫 데이트부터 과감하게 로맨스를 보는 법이었다.

그것도 이왕이면 손 잡거나 키스로 끝나는 가벼운 로맨스가 아니라 완전 알몸으로 허벅지를 진하게 붙어서 몸을 나누는 딥한 거로 말이다.

"제, 제가 고를 게요. 여기 호텔 제가 잘 알 거든요."

"아 그러면 저는 잠시 주변 구경 좀 하고 있겠습니다."

"네,넵!"

리리엘은 재빨리 침실에 있는 리모컨을 확보한 후 티비를 열심히 조작하기 시작했다.

마침 백태양도 근처에 없으니 지금이야말로 19금 빨간 딱지가 붙은 영화를 고를 때였다.

'그리고 미리 재생 시켜서 성인 영화라고 나오는 부분도 건너뛰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리리엘의 머리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여태 인터넷으로 배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써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드디어 좋아하는 남자와 거사를 치를 수 있다는 행복감.

그런 것들이 그녀를 채찍질하며 몸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영화 보는데 뭐 먹을 거라도 시킬까요? 그냥 보기엔 입이 심심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영화를 고르고 재빠르게 앞부분을 건너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백태양의 말이 날라왔다.

"어, 어... 먹을 거요?"

먹을 거라.

키스를 위해서 양치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키스는 못 하는 건가?

뭐 먹고 하면 별로라고 하던데.

'근데 태양 씨가 식사가 부족 했어서 아직 출출하신 거면 어떻게 하지...'

설마.

아니면 혹시 내가 꼬르륵 소리를 내서 날 배려하시는 건가?

'그건 최악이야!'

밥 잘 먹는 여자가 복스럽고 예쁘다는 평을 듣는다지만 꿀꿀이 이미지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성녀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최대한 말도 고르고 자세도 구부정하게 안 다니고, 그게 얼마나 힘든 노력이었는데.

그런 게 고작 뱃고래 소리 하나에 물거품됐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전 괜찮아요!"

배가 조금 고프긴 했지만.

진짜 미세하게 살짝 출출해서 스튜 정도는 한 그릇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양치를 해야 키스를 할 수 있는데. 뭘 먹으면 절대 안 돼.'

결사반대.

리리엘의 의지가 전해진 것인지 백태양 또한 별다른 음식을 시키지 않고 가볍게 음료를 시켰다.

"와인은 괜찮으시죠?"

"네!"

안주 없이 먹는 와인이라니.

뭐 이것도 나름 어른의 계단이라고 여긴 리리엘은 영화 세팅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먼저... 보고 계셔도 돼요!"

"아니예요, 그래도 같이 봐야죠. 기다리겠습니다."

"어...그럼 후딱 다녀올게요!"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리리엘의 말에 백태양은 꼭 같이보겠다고 약속 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방긋 웃었다.

역시 영화는 같이 봐야 제맛이지.

'그리고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하는 키스도 제맛이고.'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기대감이 리리엘의 심장을 힘차게 뛰게 만들었고.

치카치카치카.

그 열정은 그녀의 양치질에서도 이어졌다.

불꽃 양치질이야말로 리리엘이 지금 상황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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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리리엘이 열심히 양치질하고 있을 무렵.

"뭔가... 뭔가 불길한 기운이..."

페르쿠스는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교황의 완벽한 감각이었다.

"아무튼... 인근에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남녀가 보이면 신원 확인을 하지 말고 최고급으로 대접하도록 해라."

"넵!"

페르쿠스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리리엘을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준비했다.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성인이라면 당연히 할 법한 데이트 중 하나인 호텔 데이트.

호텔에서 영화를 보는데 만약 그 영화가 진한 로맨스 영화일 경우 19금적인 상황이 일어날 확률 아주 높음.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호텔에 들어온 여자가 먹는 걸 거부하고 양치부터 할 경우.

'살을 섞을 확률 100%.'

이거 완전 작정을 했구나.

치카치카치카치카.

욕실에서 들리는 양치질 소리에 웃음이 픽하고 삐져나왔다.

저러다가 아마 높은 확률로 씻을게 분명했다.

'외출하고 이제 뭐 하려다가 보면 갑자기 안 나던 땀 냄새가 느껴질 테니까.'

이 예상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애초에 청결을 신경 쓰는 사람이 양치만 하고 나와서 키스하고 살을 섞을 리 없었다.

"꺅! 죄송해요 물을 잘못 틀어서 옷이 젖었네요... 금방 샤워하고 나갈게요!"

내 예상을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연이은 리리엘의 목소리에 난 속으로 박수를 쳤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행동을 이행하는 리리엘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첫날밤을 잔뜩 기대하는 푼수 아가씨 같은 모습에 발기가 절로 될 정도였다.

그 어떤 자극을 주지도 않았음에도 단지 순수함 만으로 사람을 흥분시키게 만드는 위력이라니.

'이러면 근데 나도 씻어야 되나.'

쏴아아아아아아.

쑤우아아아아아.

샤워기 소리와 욕조 물 트는 소리가 동시에 나는 걸 보니 아마 입욕제까지 사용할 생각인 듯한데.

이렇게 된다면 몸에 좋은 향기가 날 때까지 욕조에 있어야 하니 최소 샤워 시간은 삼십 분 이상.

확실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 그런지 앞뒤 흐름이 정말 뚝뚝 끊어졌다.

영화를 같이 보면서 분위기를 끌어내기도 전에 이미 샤워에서 시간을 다 쓴다면 마음은 지치기 마련.

이게 정말 로맨스 코미디 소설이었다면 내가 눈치 없이 기다리다가 자면 정말 완벽한 그림이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인 여자 주인공과 그런 마음도 모르고 숙면을 취하는 남자 주인공.

참 많이 본 그림이다 싶었다.

'씻긴 해야겠네.'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야겠군.

그런 생각하며 당장 할 게 없었기에 난 바로 핸드폰을 켜서 강태민에게 연락을 넣었다.

(강태민)

>지금 바쁘신가요?

<앗 아닙니다. 한가합니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지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1초 만에 오는 칼답장.

이 정도면 5분 대기조보다 더 한 수준이었다.

(강태민)

>다름이 아니라 요근래 김민수가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동향 파악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 몰라서 제가 조금 조사해봤는데 얼마 전에 검을 두 자루 정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베니아에 간 걸 종합해 보면 아마도 성검 비스무리한 걸 찾으러 간 것 같구요.

>검이요?

<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예전 무장 상태보다 더 한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고 나머지는 추가적으로 밝혀질 때마다 보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을 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하든 척척 알아듣는 강태민의 분위기 파악 능력과 눈치에 감탄하게 된다.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김민수는 신경 안 써도 되겠네 그럼.'

강태민이 붙었다면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을 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물 소리가 연이어서 나고 있는 욕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상급 층임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허니문을 위해 설계 된 건지 침실에서 바로 욕실을 바라볼 수 있는 이상적인 구조.

안에서 뭘 하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찰박거리는 물장구 소리는 확실하게 귓가에 들어왔다.

"앗, 그러고 보니 저도 씻어야겠습니다. 음식 먹을 때 부주의했나봅니다."

말도 않는 핑계로 씻는다고 말을 꺼내며 난 그대로 다른 욕실에 들어갔다.

"앗... 어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네 그러면 그... 씻고 영화는 같이 봐요!"

"네."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씻기 위한 배려이자 나도 나름 밤을 보내기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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