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97화 (297/325)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고.'

진짜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니까.

그런 생각하며 김민수와 여기서 더 말을 섞는 건 무리가 있었기에 일단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리리엘도 있고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평소처럼 갑자기 김민수의 안면에 강타를 먹이고 죽도록 팰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갑자기 난입한 괴한이 상황을 망치고 있다'정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게 좋았다.

마음 같아선 반갑다고 한 대, 마침 날씨가 좋아서 한 대, 데이트를 방해했으니 세 대 정도 때리고 싶었지만.

김민수가 그랬다고 똑같이 원숭이처럼 행동할 위치가 아니었다.

용사란 이런 일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법이다.

"주변에 민폐니까 가라."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니 완벽하게 놈을 내치는 언동.

이것만으로 주변에선 상황 파악을 아주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뭐야, 난입이야?"

"예정된 게 아닌가 봐."

"그럼 완전 민폐 아냐?"

김민수가 아무리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막 지르는 멍청이라고 해도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귀가 막힌 건 아니었다.

게다가 용사니 인기스타니 뭐니 하면서 남들한테 추앙 받는 걸 좋아하는 놈인 만큼 이런 거엔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마 여태 김민수를 패온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분석하자면 지금 난입한 것도 멋지다고 생각해서 했을 확률이 높았다.

성녀와 용사의 앞을 가로막는 예전에 용사라고 불렸던 자.

뭐 이런 생각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은 거 아니었을까.

내가 했지만 아주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윽...! 두고 보자... 어차피 넌 나랑 또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김민수는 주변 분위기를 드디어 파악 했는지 이리저리 얼굴을 돌리다가 이내 뒷모습을 보였다.

그 후 민간인이 많은 공항 내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성자의 각력을 이용해 그대로 빠져나갔다.

뭐 저 정도 능력이야 하도 많이 매스컴에 노출 돼서 다들 그런갑다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선을 넘은 행위인 건 사실이었다.

'그럼 벌을 받아야지.'

비행기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버리지 못 했던 병뚜껑을 주머니에 꺼내 김민수의 뒤통수에 조준했다.

팅.

빡!

끄악!

청아한 소리와 함께 몇 초 뒤 고통에 찬 비명이 멀리서 들려왔다.

간만에 만난 김민수와의 만남은 역시 폭력으로 마무리되는 게 맞았다.

+++++++++++++

'근데 진짜 걘 무슨 생각으로 여기 온 걸까.'

공항에서 나와 루베니아 측에서 안내해 준 숙소에서 짐을 풀며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고민했다.

김민수는 항상 사건 사고를 달고 다니는 골칫덩어리였기에 그놈이 여기 나타났다는 건 뭔가 사건이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일으키거나.'

시답잖은 생각으로 항상 수습하지도 못 할 일을 만드는 게 바로 김민수였기에.

이번 데이트에 커다란 지장이 생길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뭐 그래도 날 막을 순 없을 것 같은데.'

잠깐 만나서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김민수는 나랑 뭘 주고받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신위를 얻고 헤라의 젖까지 먹은 지금 김민수는 정말 뭐랄까.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돌멩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부러 지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한테 아무 상처도 입힐 수 없는 수준.

뭐 분명 자기 딴에는 특출난 힘이라고 듣도 보지도 못한 걸 들고 오겠지만 어차피 다 뻔한 레파토리였다.

"준비 다 됐어요?"

"아, 거의 다 끝나갑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앗... 재촉해서 미안 해요."

"아닙니다, 제가 짐 정리가 좀 느린 편이어서요."

생각을 너무 오래 하고 있었을까.

밖에서 리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안내 받은 숙소라고 해봤자 아카벨름에 있는 리리엘의 방 바로 옆이었다.

페르쿠스가 기를 쓰며 날 다른 곳으로 안내하려고 했지만 리리엘이 루베니아를 언급하는 순간 모든 게 의미 없어졌다.

루베니아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게 루베니아에선 법이고 진리였다.

'그러고 보니 루베니아한테 물어볼 것도 많았는데.'

진짜 뭐 엄청 다양하게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으나 퀘스트가 사라진 지금 다 의미가 없어졌다.

"금방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한 오 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저는 미리 요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넵."

"저... 그... 예쁘게 입고 있어요."

"...기대되네요."

왜 저렇게 앙큼한 짓을 하는 거지.

아주 그냥 따먹어달라고 애원하는 꼴이나 다름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요망한 것도 정도를 넘으면 덮치는 걸로 응징해 줄 수밖에 없는데.

리리엘은 지금 그 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져 있는 상태였다.

일단 짐 정리해야 하니 난 대충 캐리어를 열어 옷을 전부 옷장에 때려 박았다.

그 후 속옷이나 샴푸 같은 건 아직 쓰지 않으니 침대 위에 널브러트리고 캐리어를 구석에 짱 박으면 정리 끝.

데이트할 때 입으려고 사뒀던 캐주얼 복장을 착용한 뒤 김민수가 왜 여기에 왔을지 다시 한번 더 고민했다.

'용사의 칭호를 뺏으려고 했다면 아까 달려들었을 거야.'

여자를 가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캠프파이어 때 수많은 사람을 게이트에 넣으려고 했던 놈이다.

그런 놈이 주변 신경 쓰겠다고 덤비지 않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놈은 애초에 루베니아에 온 목적이 나를 만나기 위함이 아닌 다른 게 있었고.

그게 나한테서 성검을 뺏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됐다.

'흠.'

성검을 가지지 못한 놈이 다시 루베니아를 기웃거리는 이유.

'설마 또 다른 성검을 얻기 위해서?'

성검을 얻지는 못해도 그와 비스무리한 걸 들고 다니고 싶어서?

이건 좀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놈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는 내가 뺏었으니까 지금 김민수에게 있는 건 자신을 아주 사랑하는 소환수 트롤 킹 아만다가 먼데뿐이었다.

무기를 가지고 싶어서 루베니아에서 무기를 얻으려고 한다는 단순한 생각.

딱 김민수 정도의 지능이라면 할 수 있을 법한 발상이었다.

벌컥.

문을 열자마자 정말 말 그대로 '요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리리엘에게 다가 갔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살금살금 다가가도 눈치를 못 채길래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후우.

"흐햣...!"

난생처음 듣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떠는 리리엘.

새하얗던 피부가 단숨에 빨개지는 걸 보자마자 확신했다.

'귀가 성감대구나.'

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중에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바로 이해하며 난 입을 열었다.

"이번 데이트 면사포 대신 마스크랑 선글라스 쓰고 이 주변 돌아다니는 거 어때요? 저도 변장해서 일반인 느낌으로 다니구요."

"네? 하지만 저희 그런 거 안 하려고 여기 온 거였잖아요."

"근데 막상 공항에서 반응 보니까 조용하게 넘어가지 못할 것 같더라구요."

"아... 그렇긴 하죠."

이해해요.

'됐다.'

리리엘에게 미안 하지만 김민수를 본 이상 아무 생각 없이 놀 수는 없었다.

골칫거리부터 치우고 움직여야 나중에 같이 잠을 자더라도 편하지 않겠는가.

'민가 쪽을 가면서 상가... 대장장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분명 놈은 거기에 있을 게 확실하니.

무죄 판결을 받고 나와서 기세등등한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민수야 너무 안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그럼 내가 담당이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처리 해야지.

그런 생각하며 리리엘을 끌어안고 진하게 웃었다.

정말 기대 되는 데이트였다.

+++++++++

"엄멈머, 나밖에 없으면서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고얌?"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처럼 차갑게 대하면 나 삐질고얌!"

공항으로 이어지는 대교 바로 밑.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공간에서 아만다가 먼데는 김민수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각성자의 단련된 신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병뚜껑은 민수의 뒤통수을 때려 커다란 혹을 만들어냈었다.

어떻게 병뚜껑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원.

'주인이 또 개 같이 맞겠군암.'

예정된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주인을 아끼는 마음에 아만다가 먼데는 차마 진실을 말하진 못 했다.

슥-슥-.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뒤통수에 난 혹에 아이스팩을 문질러 주는 것뿐.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그녀도 백태양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김민수가 대장장이가 있는 곳을 기웃거릴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민가 근처엔 김민수는 커녕 놈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데 또 이건 이거대로 데이트를 즐길 여유가 충분해진다는 뜻이었으니 마냥 나쁘기만 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맨날 이런 곳에 왔을 땐 행차 위주였어서 제대로 구경을 못 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신기한 게 많네요."

"루베니아에서는 솜사탕이 십자가 모양이네요."

"아, 맞아요!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게 생각나네요. 가끔 파시는 분 중에 믿음이 깊으신 분들은 정말 설탕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신성력이 깃들어 있기도 해요."

먹으면 그날 하루는 운수가 좋다는 느낌을 팍팍 받을 수 있어서 인기가 되게 많답니다.

리리엘은 정말 이런 데이트가 처음인지 끝도 없이 말을 이어가며 자기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변장을 하긴 했지만 면사포를 벗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해방감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경호가 진짜 없네.'

리리엘과 데이트하면서 과연 성국이 그녀를 가만히 냅둘까 싶어 주변에 기감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감각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가 있을 리는 없으니 정말 감시역이 하나도 없는 거였다.

나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괜스레 고맙기도하고 부담감도 느껴졌다.

'기사단이 몰래 붙는 것보다 그냥 내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을 한 거겠지.'

페르쿠스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인물인 만큼.

리리엘이 데이트하는 건 사적이지만 그녀를 호위하려 사람을 붙이는 건 공적이란 걸 완벽히 분리시켰다.

때문에 리리엘은 난생처음 호위 없이 길가를 다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된 거다.

'이런걸로 즐거워할 정도면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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