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헤헤헤헤헤."
김민수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행선지를 설정했다.
'루베니아.'
그곳에서 마지막 검을 얻고 마, 성, 인의 검을 얻은 용사로 다시 우뚝 서리라.
그는 그 각오를 가지고 머리에 뽈록 난 혹을 만지며 걸음을 옮겼다.
대영웅 헤라클래스가 김민수를 택한 이유는 뜻밖에 간단했다.
'선택지가 얘 밖에 없다.'
제우스와 토르가 만신창이가 된 게 온 신계에 쫙 퍼진 지금.
인간을 지배하겠다던 야욕을 품던 수많은 신들은 모두 모습을 감추거나 계획을 바로 포기했다.
'신들은 더 이상 인간계에 관여하지 마라'라는 불문율이 생긴 거나 다름없는 상황.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헤라클래스는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애초부터 신이 아니었고 뒤늦게 신의 자리에 올라가 반신으로 기록된 자.
이 반신이라는 속성 덕분에 그는 신들이 내린 법칙을 엄중하게 지키지 않아도 됐었다.
즉 헤라클래스는 백태양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거였다.
제우스를 포함한 다른 신들도 내색만 하지 않을 뿐 누구보다 백태양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다.
중간중간 헤라가 한 마디씩 던지며 그게 과연 좋은 일일지 생각해 보라는 말도 남겼지만.
그런 자아 성찰보단 신계에 뿌리 깊게 남은 백태양에 대한 공포심을 빨리 지워야만 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해도 원수까지 보듬어 줄 수는 없는 일.
헤라클래스는 이 상황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적합자를 찾아 지상을 샅샅이 뒤졌다.
불굴과 불패에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왕이면 백태양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 좋은 인간.
'없어도 너무 없었지.'
한참을 고르고 골라도, 정말 쥐잡듯이 전 세계를 주시해도 김민수 하나밖에 없는 상황.
결국 헤라클래스는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김민수를 선택하게 된 거였다.
신의 권능으로 인해 신위를 내려주면서 그의 과거를 잠깐 보고 많은 후회를 했지만 별 방도가 없었다.
백태양과 척지고 있는 인물이 정말 몇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안티의 개념을 떠나서 정말로 척을 몇 번 져야하고 실제로 격투 경험이 있는 존재.
그게 김민수 뿐이었다.
'그래도 뭐 착실하게 미래를 대비하는 점은 마음에 드는군.'
처음엔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었다.
싸움에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 무기를 구하러 다니는 점이라던가 짬 날 때마다 훈련하는 등.
생각보다 망나니는 아니었기에 헤라클래스는 합리화를 통해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뭔가... 적고 있는 거 보면 어떤 심득 같은걸 정리하는 건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에.
헤라클래스는 김민수가 어렴풋이 뭘 하는지 짐작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그는 알지 못 했던 거다.
김민수가 인터넷으로 뭘 적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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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대영웅에게선택받은용사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진정한 용사입니다.
남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다, 장난치지 마라 하겠지만 진짜이고 정말 진지한 고민이 있어 이리 글을 남깁니다.
제가 늘 봐주던 녀석이 하나 있는데 이 자식이 요즘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위세를 딸치더라구요.
언제 한 번 날을 잡아야 하나, 잡아야 하나 싶었는데 마침 그게 정말 날짜가 잡여서 참...
어떻게 이길지, 그리고 이기면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뭐 그런 것 떄문에 심란합니다.
바로 그냥 만나자마자 슥 빡! 해서 기습적으로 완 투 딱 치면 바로 멕을 못 추릴 것 같은데
(사실 그전에 제 기세만 봐도 쫄 것 같긴 합니다)
아무리 세계가 평화로워졌다고 한들 뭐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안겠습니까.
악역을 자처한다는 것 그리고 미움 받을 용기 그런 걸 써야 할 순간이랄까.
뭐 사실 고민이라기보단 일종의 결전을 앞둔 푼염? 같은 겁니다.
누군가 이 흔적을 보고 세상을 지켜 주는 한 명의 용사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했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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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탐지견 :: 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왈
나는야듀얼킹 :: 이 새끼 그 네이바에서 봤던 새끼 같은데 이젠 새계정 파서 여기로 왔네
취미는격투기입니다 :: 와 이런 애들은 어케 매일매일 나오지 색다롭네
수박소금 :: 팬이예요 소통해요 주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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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순애일지작가님이 없으니까 글 쓰는 맛이 없구나.
김민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예전에는 무슨 글을 올려도 다 친절하게 답변해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댓글조차 없더니 그 어떤 연락하나 없이 갑자기 사라졌었다.
원래 인터넷에서만 알던 사이였고 실제 연락처도 모르며 아는 거라곤 뚱뚱한 이등분 남자가 최측근으로 있었다는 것.
너무 적은 정보여서 어디 가서 부탁해서 찾아달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지켜봐주세요 순애일지작가님.'
제가 아직 당신의 뜻을 이어받아 삼라만상의 진리가 뭔지 백태양에게 알려주겠습니다.
김민수는 그런 다짐하며 루베니아행 비행기에서 내렸다.
무죄 판결을 받고 아카데미 지원금이 나오자마자 바로 끊어 버린 퍼스트 클라스.
덕분에 아주 편안 하게 루베니아에 도착할 수 있었으며 컨디션 또한 최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예전처럼 자기 마중을 위해 장로들의 기도가 이어진다거나 축복이 없다는 것.
뭐 어차피 백태양을 쓰러트리고 나면 다시 얻게 될 것들이니 큰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되찾을 영광이란 거지.'
그런 생각하며 합리화를 잘 마무리하려는 그때.
"오오! 오셨군요!"
"꺄아아아아악!"
커다란 소음이 들리더니 대부분의 인파가 한쪽으로 막 모이기 시작했다.
'뭐지?'
옛 용사인 나를 반기지 않는 마당에 저렇게 소리를 내면서 올 만한 사람이 있다고?
김민수는 머리를 최대한 굴렸고 그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녀님이구나.'
아직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 없지만 김민수는 굉장히 강렬한 유대감을 느꼈다.
자신이 루베니아에 오는 타이밍에 성녀 또한 같이 귀국하다니.
이는 운명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내가 갈 수밖에 없잖아!'
원래라면 바로 아카벨름에 찾아가 새로운 성검을 요구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김민수는 즉시 발걸음을 돌려 인파를 뚫고 성녀를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목격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눈을 몇 번이나 비벼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
다소곳하게 백태양의 품에 안겨 있는 성녀를.
'...이게 뭐야.'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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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래도 이게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건데 엄청 많네.'
성녀가 본국으로 귀국한다는 걸 아예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주요 인사한테만 소식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인파는 진짜 과하다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상징적인 존재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온다고 했을 때 기대감과 선망.
그런 감정은 백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리리엘이 받는 중압감이 더 걱정이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해맑게 웃는다고는 하지만 루베니아에 오니 그녀는 정말 성녀 그 자체였다.
흔히 말하는 '연예인은 똥 안 싸'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요정은 이슬만 먹고 산다 뭐 이런 이미지였다.
'여기선 내가 이미지를 좀 깨야겠네.'
귀국한 건 맞지만 성녀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온 게 아닌 하나의 여자로서.
용사와 성녀가 함께 와서 나라에 위광을 밝혀주는 도구로 전락하는 게 아닌 정말 순수하게 놀러왔다는 걸 알려 줘야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네?"
덥썩.
사전에 말은 안 됐지만 뭐 이런 건 미리 말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리리엘의 허리에 팔을 감싸고 그대로 품에 쏙 넣으며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너무 당연하다는 듯.
용사가 성녀를 이렇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끔은 주변 사람을 싹 무시하고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했다.
넓게 보면 다 똑같은 사람인데 귀중품이나 문화재 같은 취급을 하며 신성시하는 건 사양이었다.
이게 신성시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 가면 어쩔 땐 역차별을 당할 때도 있었다.
'성녀는 안 이러겠지, 뭐 하겠지 뭐겠지 당연히 이렇게 해주겠지 이런 거.'
아주 괘씸하거든.
그런 생각으로 인파를 뚫고 있을 때 저 멀리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내 운명이었는데!"
와 진짜 무슨 여기서 만나냐.
정말 전생에 무슨 사이였는지 궁금할 정도로 강렬한 끈으로 이어져 있는 존재.
"당장 그 손 놔! 네가 뭔데 그렇게 잡은거야!"
주변 신경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걷는 아주 교과서적인 인물.
그 뒤에 따라오는 책임을 지지 않기에 겁쟁이라는 꼬리표가 늘 달린 놈.
"와 민수야 진짜 오랜만이다."
김민수가 나타났다.
김민수의 급발진.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수많은 인파가 있음에도 마치 온 세상 자기 혼자 사는 것처럼 사는 당당함.
저 정도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아마 전 세계를 뒤져도 김민수가 유일할 거라 확신했다.
그 누가 용사와 성녀가 사이좋게 걷고 있는 와중에 길을 막고 소리를 지를 수 있겠는가.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그건 한 나라의 대표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성녀의 본국인 루베니아에서 귀국을 하기 위해 걷고 있는 걸 방해한다?
이건 진짜 머리에 어떤 큰 문제가 있지 않은 한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뭐? 오랜만? 내가 너 때문에 무슨 일을 당했는데 말을 그따구로 하는 거야!"
김민수가 없던 시각은 길다면 길게 볼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아직 급발진 같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제대로 고치지 못한 상태로 보였다.
여태 그러다가 결국에는 감옥까지 갔으면 사람이 좀 바뀔 법도 한데.
역시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