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양을 이기려면 특별하고 아주 압도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게 바로 마계의 무기란 결론이 나왔다.
마음 같아선 특정 게이트를 공략해서 보상을 쓸어담고 싶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과거엔 힘이 들끓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굉장히 평범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일단 이런 방식으로 전력을 강화하는 게 옳다고 판단을 내린 거였다.
'빨리 무기 달란 말이야.'
민수는 마계에 도착하자마자 조니 프레이스가 담당하던 구역으로 향했다.
마계에 있는 친분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으니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할 속셈이었다.
물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국내 장인에게 검 한 자루까지 의뢰한 상태니.
그야말로 철두철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라고 김민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 자랑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
레크레이션 시간에 무슨 일이 펼쳐질 지 백태양은 짐작도 하지 못하겠지.
김민수는 결국 마지막까지 가면 자신이 이긴다는 확신을 하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왜 웃는 거야 미친놈.'
눈앞에 있는 대장장이가 망치를 꺼내 높게 들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상태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주말 아침.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였기에 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왜 소녀는 못 따라 가는 건가요! 저년은 데려가면서!"
"난 당연히 따라가야지! 내 고향에 가는 건데!"
"그래, 이건 메르피 말이 맞아."
"저도 그래도 나으리 곁을 보필하는 역할이 있는데!"
"넌 아테나랑 아르테미스 보필해 줘야지."
잡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잘못하면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기에 춘향이는 떼어 놓고 가려고 했는데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래도 함께 한 세월이 더 긴 데 비교적으로 짧은 메르피만 같이 가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거겠지.
'어쩔 수 없어.'
근데 이건 합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테나와 아르테미스만 집에 두기엔 너무 그림이 이상하지 않은가.
일박 이일은 길다면 긴 시간이었기에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말 극단적인 경우에 외출을 하다가 기자한테 걸릴 수도 있는 거고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여기선 춘향이가 밀착 마크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인간 사회에 대해 알려주는 게 합당했다.
'합당한 건 합당한 거고 기분은 기분인 거지.'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맞지만 감성의 영역은 다른 법.
여기선 계속 상황 설명을 하며 설득을 시키는 것보단 합당한 보상을 제시하는 게 옳았다.
"이번 일 잘 끝내면 포상을 줄게, 네가 원하는 걸로."
"소녀가 원하는 거 말씀이시와요?!"
뭐든지 들어 주는 소원권 한 장을 줄 생각으로 입을 열자마자 바뀌는 춘향이의 표정.
그리고 눈동자 안에 있는 짙은 성욕을 보자마자 난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들어 보고, 너무 무리한 건 안 되고 그냥 딱 정말해줄 수 있는 것만."
"네! 알고 있사와요! 소녀도 터무니없는 걸 요구할 만큼 철 없지 않답니다."
"아, 그래... 그럼 뭐."
욕정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처럼 들끓는 눈동자로 말해봤자 큰 신뢰감은 생기지 않았지만.
알아서 잘 조절하겠다니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또 질질 끌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 봤자 쪼잔하다는 이미지만 생길 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부탁 좀 할게."
"네! 제가 꼭! 제대로 사회화를 시키겠사와요! 믿게주시와요 나으리!"
너무 열정적이면 또 곤란한데.
이미 샤엘한테 보지 아이스 피스팅을 한번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녀의 체벌은 일반적인 처벌과 궤를 달리할 게 분명했다.
그런 상태에서 감투까지 씌어줬을 때 무슨 짓을 할 지 참.
'그래도 믿어야 한다.'
어쩌면 내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는 생각했다.
아테나와 아르테미스는 아무 말없이 얌전히 있는 걸 보면 춘향이가 평소 나한테 하는 것과 다르게 또 다른 면모를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럼 믿고 간다?"
"그럼요 나으리!"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넵!"
걱정되는 마음을 접고 메르피를 성검으로 변환 시킨 후 그대로 집 밖을 나섰다.
정말 일 때문이 아닌 순수하게 놀러가기 위한 해외여행이라니.
기대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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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색한 침묵이 비행기 안을 감싼다.
데이트라고 해서 정말 단둘만 비행기 안에 있을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성녀님은 뭘로 드시겠습니까, 비프 앤 치킨?"
"저는 비프요."
"저도 비프입니다. 용사님은요?"
"아 저는 치킨 먹겠습니다."
"벌써 이런 음식 차이도 맞지 않는데 어찌 데이트를..."
대체 왜 따라온 거야.
교황, 아니 페르쿠스는 아주 굳은 얼굴을 하고 나와 리리엘 사이의 자리를 차지해 데이트 분위기를 방해했다.
아니 방해라고 하기도 뭐 한 게 애초에 페르쿠스가 전용기를 타서 우리와 같은 날에 루베니아에 갈 뿐이었다.
그냥 아주 '우연히' 타이밍이 안 좋게 겹친거라고 보는 게 맞다고, 페르쿠스는 그런 변명을 내뱉었다.
"저도 참... 주말에 성직자 회의가 있는 걸 깜빡 했지 뭡니까. 근데 마침 전용기가 토요일날 뜬다는 걸 알고 이렇게 부리나케... 하하 눈치도 없이 왔습니다."
"...이해해요."
나한테는 차갑게, 리리엘한테는 따듯하게.
비행기에 타기 전 무슨 전략을 세운 건지 모르겠지만 페르쿠스는 시종일관 비슷한 태도를 유지하며 연인스러운 분위기를 원천봉쇄 했다.
리리엘도 이럴 줄은 몰랐는지 실시간으로 분노가 채워지는 중이었다.
'어차피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때부턴 완전 따로 다닐 텐데.'
그때까지 따라오는 건 억지란 걸 그도 알 텐데 여기서 방해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마치 연애하면서 통금을 세운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섹스를 밤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낮에 얼마든지 모텔에 들어가 할 수 있는 건데, 통금을 걸어서 뭘 어쩌겠다고.
마찬가지로 페르쿠스가 우리 둘의 분위기를 막는 건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아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용사와 성녀 사이일 땐 든든한 아군이었던 존재가 백태양과 리리엘이 되니 이렇게 눈엣가시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경우였다.
'뭐 지금, 이 순간 뿐이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하는 건 나뿐인 듯했다.
'사과 같네.'
리리엘은 페르쿠스가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볼을 부풀렸었다.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볼은 어디까지 늘어나나 호기심까지 생길 정도였는데 이젠 슬슬 폭발할 때가 온 듯했다.
발갛게 익은 홍시 같은 얼굴로 계속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가를 반복하며 화를 삭이는 게 티가 났다.
풋풋한 소녀의 첫사랑과 첫 데이트를 무참히 짓밟으면 어떻게 되는지 페르쿠스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혹시 성녀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쪽 구석에서 잠시 루베니아에 들어가기 전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리시는 건 어떠하..."
"그만! 그만 하세요 페르쿠스!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쭉 갔다면 분노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을 터.
하지만 페르쿠스는 어떻게든 우리 둘을 떨어트리고 싶어서 계속 툭툭 리리엘의 간을 봤고 마침내 리리엘은 폭발했다.
'생각보다 듣기 빡세네.'
인터넷 문화에 찌든 리리엘의 언어는 차마 중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고 끔찍했다.
아주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 상대방의 실수를 지적하고 자기 기분을 차분히 설명하면서 사과를 요구하는 말투.
화를 내도 성녀스럽다는 말이 아주 딱 맞았고 페르쿠스는 난생처음 겪는 상황인지 실시간으로 얼굴이 죽어 가고 있었다.
'방금 대머리라고 말하려다가 참은 건가?'
거기까지 말한다고?
와, 이건 좀 심한데.
페르쿠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한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난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의사를 표현했다.
여태 방해하다가 이제 와서 화를 입으니까 꼬리를 내리다니.
'진즉에 그랬어야지.'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졌고 리리엘은 저분노를 다 토해내야만 진정할 테니 결론은 이미 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냥! 그냥 분위기 딱 파악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독신이라서 잘 모르는 건가요? 페르쿠스! 대체 왜 이러는 지 논리적으로 빨리 설명해보라구요!"
"..."
리리엘의 일방적인 팩트 폭력에 페르쿠스는 정신이 혼미한 듯 고개를 푹 떨궜다.
사춘기 딸의 거친 반항을 직격으로 맞았을 때 나오는 흔한 딸바보 아버지의 교과서 같은 모습이었다.
얼핏 저걸 유민혁한테서도 본 것 같은데.
'페르쿠스도 파파더 아냐?'
수진이랑 대화할 때 자기 아빠가 무슨 이상한 단체에 속해 있다는 걸 얼핏 기억났다.
아빠들의 모임, 파파더.
되게 유명한 헌터부터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인사들이 대거 가입해 있다던데.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다.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
훈훈한 비행기 데이트는 글렀다고 판단해 난 수면 안대를 끼고 그대로 비행기 의자를 뒤로 눕혔다.
리리엘이 내뱉는 귀여운 재잘거림을 들으며 취하는 수면.
이게 바로 섹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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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줄 것이지..."
김민수는 끈질긴 구애 끝에 마계에서 원하는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고로 검사라고 하면 대검을 쓰거나 쌍검을 써야 하는 법.
하나는 인간이 만든 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족이 만든 검.
이 두 가지야말로 어떤 검사의 로망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만족하지 않지.'
향상심이라고 했던가.
마검과 인검을 얻었다면 응당 성검을 얻어야 하는 법.
진짜 성검은 이미 빼앗겼지만 그래도 혹시 남은 게 있거나 열화판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없다고 할 수 없지, 그리고 애초에 성검이 하나라는 것도 편견이잖아.'
불패의 용사라는 메인 스킬의 이름과 헤라클래스의 신위를 계승한 이름값.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아마 루베니아 측에서도 자기 평가를 다시 하며 성검을 내줄 수도 있을 터였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왜냐고? 난 불패의 용사 김민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