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93화 (293/325)

'귀엽네.'

확실히 예쁜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답답하다는 생각보단 매력 있다는 인식이 먼저 들었다.

터질 듯한 신성력 주머니가 손 모양 때문에 가운데로 모아져서 이리저리 비벼지는 광경은 참.

보기만 해도 수명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저 그... 페르쿠스랑 하는 말 다 들었거든요."

"아... 그렇군요."

드디어 본심을 말하는구나.

우물쭈물거리길 일 분 정도 마침내 리리엘은 본심을 드러냈다.

하긴 뒷문에서 전부 다 듣고 있었을 테니 언급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저를... 책임지신다고... 하셨더라구요."

"네, 당연합니다. 용사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선 네... 들으신 그대롭니다."

남친으로서? 남편으로서? 뭐라 말하기가 애매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상대방의 의사도 묻지 않고 대뜸 넘겨짚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리리엘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너무 건방지게 구는 건 좋지 않았다.

"...그러면 그 뭔가 증거가 필요하지 않나요?"

"증거요?"

"네, 그 정도로... 페르쿠스한테 강하게 말을 했으니 뭔가 명분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지금 여기서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 말을 끝으로 리리엘은 날 빤히 보더니 눈을 꾹 감았다.

'뭐 하는 거야.'

뭘 의도하는지는 알겠는데 이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뤄질 일인가 싶었다.

내가 간다니까 아쉬워서 급하게 말을 꺼내는 건 이해하는데.

'생각보다 귀엽게 구네 진짜.'

명분을 만들자면서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미는 앙큼함은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인터넷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진짜 알고 있는 건 엄청 많았다.

그걸 실전에 적절하게 녹여내지 못 해서 그렇지 이론은 완벽해 보였다.

쪽.

이런 꽁냥스러운 이벤트를 응답하지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었기에.

난 생각을 그만두고 바로 입술 도장을 찍었다.

깊게 섞거나 고개를 돌려 혀를 넣을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입술만 꾹.

날름.

리리엘은 아쉬웠는지 입술이 떨어질 무렵 혀를 조금 내밀어내 아랫입술을 핥고 떨어졌다.

'천연 여우네.'

더 이상 같이 있다간 진짜 확 따먹어 버릴 것 같아서 난 급하게 리리엘에게 인사를 한 뒤 귀빈실을 나왔다.

빳빳.

빳빳.

"..."

하마터면 발기된 걸 들킬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

한시름 놓으며 발기가 전부 진정 되기 전까진 잠시 화장실에서 몸을 피신시키려는 찰나.

"정지, 정지!"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당신, 왜 거기서 나오는데 그러고 있는 거죠? 대체 뭘 했길래 그... 거기가 막... 그러냐구요!"

내 자지를 손가락으로 콕 가리키며 눈을 앙칼지게 뜬 여인.

멜라니의 등장이었다.

"왜 말을 못 해요!"

"당황하고 있어서 그래, 금방 회복할 거야 기다려 봐."

"뭘 회복해요! 왜 발기 됐는지 말하라니까!"

귀빈실 안에 있는 거 성녀님 아니예요? 설마 성녀님이랑 한 거예요?

이어지는 멜라니의 말에 난 그건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비슷한 상황까진 갈 뻔했지만 아닌 건 아니었으니 확실히 부정할 수 있었다.

"아냐, 그냥 내가 음."

발기가 잘되는 편이라서 그래.

지금 상황에 이보다 더 적절하게 내뱉을 수 있는 핑계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옷깃만 스쳐도 되는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뭐 아무튼 그래."

"...그래요?"

"어."

멜라니는 의심된다는 눈빛으로 날 노려봤지만 이건 생리적인 거라 뭐 어떻게 진위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거였다.

발기가 쉽게 된다고 했지 아무 때나 된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무슨 상황이 와도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흥분이라는 건 절대적인 건 없고 원래 상대적으로 다 다른 거니까.

"뭐 일단 알겠어요."

멜라니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의심을 접고 곧바로 이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 친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멜라니는 이사장실로 들어갔고 난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빅토리 아카데미 연습 무기를 카이반 걸로 바꾸는 건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불리는 아카데미의 무기를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져올지.

게다가 이사장실에 들어간 게 멜라니의 아버지가 아닌 멜라니라는 사실도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한국 지부를 담당하는 걸로는 이 정도 스케일을 못 끌어낼텐데.'

정말 후계자로 완벽한 입지를 자리 잡았기 때문에 멜라니가 아닌 한 기업의 대표자로서 이사장과 만나러 간 거였다.

유민이랑 수진이는 개인 훈련을 위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멜라니는 기업의 대표자가 되는 등.

다들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뭔가 나만 정체된 것 같네.'

엄연히 따지자면 템포를 너무 빨리 끌어와서 지금이 하이 엔드 상태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막상 퀘스트도 사라지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싹 치우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백두산을 가거나 마계를 다시 징벌하러 갈 수도 있지만 상황이 좀 묘했다.

'백두산은 또 아카데미 빠져서 혼자 다녀야 되고, 마계는 이미 일원으로 인정 받은 느낌이라 애매해.'

만약 마계에서 지상으로 침공했다면 몰라도 샤엘의 말로는 마왕은 지상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럴 계획이 있었다고 해도 나랑 샤엘이 지상에 호의적이어서 침략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다.

'굳이 가만히 있는 곳 들쑤셔서 죽이고 다니는 건 또라이잖아.'

명확한 명분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아예 없으니 어딜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당분간 일상을 느긋하게 즐기자는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주변에서 치고 나가는걸 보니 향상심이 들끓었다.

뭔가 크게 한 건해서 '저 정도 했으니 저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어서 보류겠지만 말이다.

난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뒤 그대로 교실로 들어갔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걸 여실히 느끼며 난 그대로 교실로 돌아갔다.

+++++++++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며 일정을 점검했다.

수업 진도는 당연히 너무 많이 빠져서 따라잡지 못 했기에 교수님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따로 사정을 말해서 보충 자료를 받기로 하고 일단 필기 하는 척했다.

'그럼 리리엘이랑 주말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화수목금이 비네.'

그사이사이에 여자 친구들과 스케줄을 전부 다 잡아서 알찬 일주일을 보내겠다.

이럴 생각은 없었으나 만약 일정이 생긴다면 활용할 생각으로 인지는 하고 있어야 했다.

오늘은 혜미와 보냈으니 최소한 하루가 끝나기 전까진 그녀와 붙어 있어야 할 터.

'최근 내가 너무 소홀했지.'

나만 보면 된다고 말해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쓰레기 짓을 너무 과하게 했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지금은 한 명이랑 같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하루를 전부 투자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김민수는 어떻게 됐을까.'

상황이 여유롭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안비실과 안뚱땡은 완전히 소멸하고 세상이 소설의 영향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된 지금.

김민수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엄청난 타격이 되진 않을 터였다.

왜냐면 그동안 쌓아둔 이미지는 스토킹 같은걸로 한 번에 무너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듣기로는 감옥에서 끈질기게 항소를 한끝에 대법원 판결로 무죄가 났다고 들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는 해도 그 재능을 빅토리가 놓칠 리는 없겠고.'

밖으로 많이 나돈 나에 비해 김민수는 나름 착실하게 아카데미 생활을 해온 편이었기에 평판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다.

여론이 안 좋다고 해도 원래 그런 건 금방 바뀌는 편이었으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무리 짓밟아도 부활하는 놈인 만큼 슬슬 뭔가 다시 기어올라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말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기 위한 발악이랄까.

'내 기분 탓이겠지.'

너무 많이 김민수를 패서 괜히 또 오랜만에 패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해 나온 상상일 뿐.

실상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한 뒤 다시 칠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민수가 설마 다시 깝치러 오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말도 안 되는 경우라 속으로 작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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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이익.

문이 열린다.

"축하드립니다. 전 결국 무죄를 받아 내실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김민수는 천천히 교도소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공기를 음미했다.

철창 안에서 나오는지독한 쇠 냄새가 아닌 달콤하고 중독적인 흙 냄새.

"역시 이게 나를 위한 거지."

안뚱땡이 사라져 아무도 김민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확정이 난 후.

신들의 세계가 시작 됐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김민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불굴의 용사라는 타이틀과 계속 패배 했음에도 끝까지 자신은 굴복하지 않는 그 신념.

무예에 능하다는 속성과 여러 시련에 맞섰다는 과거가 그를 또 다른 경지에 올라가게 만들었다.

'헤라클레스의 힘이라니.'

항상 영웅에 대해 논하면 빠지지 않고 늘 등장하는 존재.

사자의 가죽을 멋지게 입고 몽둥이로 악당들을 시원하게 패버리는 남자 중의 남자 헤라클레스.

그런 존재에게 선택을 받다니.

물론 이는 백태양이 신들과 직접 한 판 뜨기 전에 생긴 일이고 지금은 굉장히 그 영향력이 미미해졌지만.

이런걸 하나도 모르는 김민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소유민이 헤라와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

그것 하나만으로도 김민수는 다시 한번 더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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