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92화 (292/325)

안뚱땡을 잡고 나서 놈이 남긴 영향력이 아직 세상에 잔존하는 경우가 몇 개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는 거였다.

이건 안뚱땡이 의도한 결과로 놈은 김민수가 하렘 순애를 유지하며 모두와 해피 엔딩을 맞이하길 바랐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를 가능케 만들었다.

안비실이 무조건 1:1 사랑하게 만든 걸 그대로 뺏어서 역전 시켰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민수를 위한 세상이니까 당연히 하렘 결혼이 가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걸 내가 득 보고 있고.' 

곰은 재주가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경우였다.

"그럼 그... 모두라는 사이에 우리 성녀님이 속한다는 말쓰..."

벌컥.

"페르쿠스! 그만! 그만 하세요! 더 이상 못 들어 주겠네요!"

리리엘은 페르쿠스의 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문을 열고 대화에 난입했다.

발갛게 익은 얼굴과 분노로 인해 파르르 떨리는 볼살은 굉장히 잘 어우러지며 귀엽다는 인상을 줬다.

일부러 발을 쿵쿵 찍으며 걸어올 때마다 출렁거리는 신성력 주머니까지.

리리엘은 진짜 조금 다른 의미에서 완벽한 성녀였다.

심지어 수녀복도 여기 와서 거동이 편해지기 위해 허벅지 중간까지만 오게 하는 디테일까지 선보이는걸로 봐선.

그녀의 존재 자체가 신성스럽고 포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진짜 듣고 있었는데요! 그, 그만하세요! 태양 씨, 아니 용사님이 곤란해 하시잖아요!"

"이젠 아예 태양 씨라고 부르는 겁니까? 그렇게 서로 씨씨 하면서 편하게요...?"

페르쿠스는 리리엘의 일침에 당황한 게 아니라 호칭 정리가 이미 됐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자세하게 따지고 보면 그 안에 있는 애정에 놀란 거겠지만.

'그렇다고 입이 그렇게 떡 벌어질 일이야?'

페르쿠스의 벌어진 입은 대충 봤을 때 주먹이 최소 두 개 정도는 들어갈 듯 보였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리리엘은 눈에 불을 켜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니 저도 다 큰 성인인데! 이러실 필요 없어요 페르쿠스! 가요 가! 난 진짜 무슨 대화를 하나 했는데 이런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안 됩니다 성녀님, 제가 일단 용사님과 진지한 대화를 통해 그 인성과 성품을 더 알아보고자..."

"뭐 맞선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서 대화하는 건데 왜 그러는 거예요! 가세요!"

주르르르르륵.

페르쿠스는 리리엘이 밀어내는 힘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까지 쭉 움직였다.

말이 움직인 거지 끌려간 거나 다름없었는데, 리리엘은 불쌍한 표정을 짓는 페르쿠스를 보며 눈 하나 끔벅하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

쾅!

화난 사춘기 소녀처럼 문을 세게 닫으며 씩씩거리는 콧김을 내뱉기를 두어 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자각한 리리엘은 황급히 면사포를 쓰며 얼굴을 가렸다.

이미 사과 같은 얼굴은 다 보여서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방금 건 못 본 걸로 해주세요."

"아 뭐... 네. 일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앗, 넵."

리리엘은 내가 바로 상황을 눈 감아주자 감사한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바로 내 옆에 착석했다.

'앞이 아니네.'

당연히 마주 보고 앉을 줄 알았으나 벌써 이런 식으로 거리감을 좁혀 오다니.

남자 경험이 아예 전무하지만 인터넷을 많이 하다 보니 확실히 거리감을 잘못 잡는 편이었다.

김민수도 이런 식이었지만 그녀와 김민수의 가장 큰 차이는 외모와 평소 행실이었다.

"일단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디서 만날지를 아직 못 정해서 그 장소를 제대로 정하고자..."

"네네."

꼬물꼬물.

말을 이어 나갈 무렵 손 하나가 꿈틀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손 위에 턱하고 덮어진다.

'...진짜 걍 여기서 확 따먹을까.'

앙큼한 짓하면 벌을 받게 된다는 걸 알려줄지말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리리엘은 특정 반응을 기대하고 일부러 페르쿠스와 백태양의 대화에 처음부터 개입하지 않았다.

페르쿠스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한 수 접은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핵심적인 건 백태양의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만화나 애니 같은걸 보면 흔히 나오는 교과서적인 발언인 '따님을 제게 주십쇼'라는 말이 너무 듣고 싶었다.

그거 한 마디 듣고자 뒷문에서 최대한 방 안을 감지하며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으나 그쪽으로 대화가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백태양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 거고 어떤 미래를 그리는 지 단편적으로 알았기에 어느정돈 만족한 상태였다.

모두를 든든하게 책임지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를 싫어할 여자는 없었다.

'부끄럽네.'

페르쿠스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백태양은 완전히 사위의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겪으니 리리엘의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얌전히 대화를 듣길 몇 분.

꼼질꼼질.

슬슬 리리엘은 백태양 옆에 앉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대화가 진행 되면 될 수록 저 간질거리는 대화에 끼고 싶었다.

'이제 페르쿠스는 가도 되지 않나...'

백태양이 내뱉는 말의 목표는 어차피 자신이었기에 페르쿠스는 더 이상 이 대화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지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 리리엘은 일부러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저 대화에 낄 명분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음 어차피 결혼한다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내 의사니까 페르쿠스가 개입할 여지는 적잖아, 그러면 나랑 대화하는 게 맞지 않나?'

이중삼중으로 된 자기 합리화 회로는 아주 빠른 속도로 리리엘에게 정당성을 부여했고 그녀는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이후는 바람직하게 리리엘이 원하는 상황으로 갔다고 볼 수 있었다.

페르쿠스를 밖으로 내보내고 아주 자연스럽게 백태양 옆에 착석해서 손을 잡기까지.

'너무 좋아, 어떡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리리엘은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백태양을 올려봤고.

'어?'

리리엘은 백태양의 눈 깊숙하게 숨어져 있는 성욕의 편린을 느꼈다.

'오늘... 하나?'

페르쿠스가 나가자마자 귀빈실이 침실로 변해서 백태양한테 안겨서 처녀를 상실하는 건가.

늘 꿈꿔왔던 미래 중 하나였지만 그게 막상 실현이 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는 마음과 기대되는 심정이 섞였다.

물론 어디까지 리리엘이 혼자서 엄청난 상상력으로 기대감을 부풀게 만드는 거였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왜냐면 백태양은 발정 난 짐승이 아니라 사회화가 아주 잘 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빨리했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리리엘은 기대감을 바로 진정시키며 백태양의 손등을 꽉 쥐었다.

자기 마음이 전달 되길 바라며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선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백태양의 마음은 하나도 모르는 리리엘이었다.

++++++++++

'아주 요망하네.'

천연의 무서움이라고 해야 하나.

인터넷으로 야한 걸 알고 있어도 그걸 실행해 본 적도 없고 오직 지식만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파괴력이 엄청났다.

완전 백치미는 아니지만 19금을 유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게 참 괘씸했다.

'페르쿠스한테 책임지겠다 말한 것도 있고 나도 자세를 좀 바꿀 생각이어서 당장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지만.'

정말 그 순간이 올 때 침대에서 이자를 붙여서 벌을 받게 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일단 주말 데이트 장소를 정하는 걸로 만족하는 게 맞았다.

페르쿠스도 마음 정리할 시각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수진이 아버님한테 찍힌 이유도 이런 시간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수진이를 안아서 그런 걸 지도 몰랐다.

섹스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같이 있을 때 느껴지는 기류로 판단이 가능할 테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겠지.

'하나 배웠다.'

그런 생각하며 빤히 느껴지는 시선에 나 또한 리리엘과 눈을 마주쳤다.

슥.

빼꼼.

슥.

빼꼼.

슥.

시선이 조금 오래 마주친다 싶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시 고개가 들려질 때 똑같이 쳐다 보면 이번엔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인다.

눈을 마주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마주치면 피하고, 손을 꽉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깍지를 끼면 빼고.

'진짜 사춘기 소녀냐.'

부끄러움을 타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여자가 어떻게 대놓고 옆에 앉아서 손을 잡은 생각을 했는지 미스테리였다.

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단 본론을 꺼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주말 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목이 덜 끌려야 한다는 건데 아무래도 용사와 성녀가 같이 다니면 사람이 좀 몰릴 것 같더라구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아예 좀 과감하게 루베니아에서 만나는 건 어떨까요?"

"루베니아요?"

"네."

어제까지만 해도 국내엔 여론이 좀 잠잠하니 괜찮고 해외는 바로 기자들로 시끄러워져서 지양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좀 더 깊게 고민해 보니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들어가라고 했다고 역으로 루베니아에 가는 게 정답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나왔었다.

성녀와 용사가 성지로 간다면 연애 기류라기보단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테고 그렇게 되면 기사가 나도 별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루베니아에 아무리 많은 해외 기자가 있다고 해도 성녀에 대해 무지성으로 파고들 수도 없는 노릇일 터.

이런저런 조건을 다 따져 본다면 아예 리리엘의 홈그라운드인 루베니아에서 데이트하는 게 맞았다.

전용기까지 타고 간다고 했을 때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냥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부터 바로 데이트 하면 되는 거잖아.'

비행기 안에서도 데이트를 할 수 있으니 주변 시선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어떠신가요?"

"어...아...음... 좋아요."

리리엘은 무언가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본 결과 합당하다고 느낀 거겠지.

'최고지 뭐.'

내가 말했지만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럼 일단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이만 전 일어나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아뇨 가는 건 아니고, 슬슬 수업을 들어야 해서요."

"아..."

음.

리리엘은 할 말이 더 있는지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날 한 번 보고 주변을 한 번 빙 둘러봤다.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 하는 모양인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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