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는 경우는 그냥 해결하면 됐지만 이유가 없이 연락한 경우는 해결이 문제가 아니었다.
호의가 있어서 먼저 선톡이 날아온 거였으니 해결을 내기보단 어떤 보이는 결과를 내는 게 맞았다.
예를 들면 데이트 약속 같은걸 잡는다던가 말이다.
'성녀와 용사의 데이트라.'
유명해질 만큼 유명해져서 기사 몇 개 나는 거로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지만 이번 경우는 굉장히 특수했다.
백두산 사건 이후에 떠오르는 핫한 신흥 헌터에서 나름 대표급 인물로 인정 받는 나와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성녀.
이 두 명의 조합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아주 많은 구설수를 생성할 게 뻔했다.
그게 좋든 나쁘든 사람들 혀 위에 올라가는 순간 단두대에 올라간 사형수 취급받는 법.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성녀와 함께하는 모습을 주변에 노출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 데이트를 할 수도 없고.'
첫 데이트를 집에서 했다간 너무 의도가 뻔하고 결과물이 어떨지 벌써 눈에 훤했다.
물론 성녀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고 싶은 건 맞지만 그런 것만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몸이 목적이 아닌 그녀라는 사람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첫 만남부터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는 건 옳지 않았다.
예전에는 퀘스트를 깨야하고 맹목적으로 달려야 하고 그러니까 일단 빨리 친해지기 위해 섹스했다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아니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이니 굳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나으리 무얼 그리 고민하시나요! 그냥 잡고! 확 따먹으면 다 해결 되는데! 평소답지 않으시와요!]
[그래 주인놈아! 나한테 했던 것처럼 갑자기 막 벗겨서 더,덮치고 그러면 되지 않느냐!]
소환수들의 쓸데없는 조언은 깔끔히 무시했다.
'약간 갈 길을 잃은 것 같기도하고.'
정말 퀘스트가 사라지니 내 스스로가 얼마나 수동적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만나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어디서 만나냐였다.
첫 만남이지만 풋풋한 데이트로 기억 되면서 몸을 노리지 않는 장소지만 그렇게 될 경우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을 만한 장소.
섹스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생긴다면 좋은 분위기로 이어지면서도 어떤 설렘이 가득할 만한 곳.
'진짜 어렵네.'
그런 데이트를 안 한 지 너무 오래 돼서 그런지 동심을 다 잃어 버렸다.
썩을 대로 썩은 어른 용사와 아직 풋풋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처녀 성녀의 조합.
(리리엘)
<리리엘 별다른 일정 없으면 주말에 한 번 만나는 거 어때요?
>주말이요?
<네 별다른 일없으면 너무 오래 안 만난 것 같아서요.
<뭐 할지는 아직 안 정했는데 일단 선약 잡는 식으로 어때요?
<별론가요?
마지막 메시지와 그 전 메시지의 시간 차이는 약 오 분.
혹시 내가 설레발을 쳐서 감정을 넘겨짚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좋아요! 엄청 좋아요!
>토요일 어때요? 혹시 모르니까 이튿날도 주말인 편이 좋은 것 같아서요!
<좋아요, 그럼 일단 토요일로 하고 어디서 만날지는 차차 같이 생각해요.
>네!
아주 뜨거운 답장과 함께 좋은 반응이 날라왔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생각할 시각은 충분했기에 난 핸드폰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아카데미 생활이 기대되는 새벽이었다.
++++++++++++++
"왜! 나가면 안 된다는 거냐! 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거지?"
"내가 말했잖아, 아직 네가 여기 사회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때 동의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 반긴 건 어떤 새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감과 부푼 희망 같은 게 아닌 현실적인 혼돈이었다.
아르테미스가 한마디를 내뱉으면 다른 쪽에서 입이 하나씩 툭툭 열리는데 느낌만 보면 초등학생 교사가 된 기분이었다.
불만이 접수 된 건 약 한 시간 전.
신계에서 내려와 정착하기로 한 아르테미스는 향수병이 돋은 건지 아니면 당분간 얌전히 있으란 내 말이 거슬린 건지.
갑자기 전날과 다른 이야기하며 반항을 시전 했고 그걸 춘향이는 얌전히 넘길 생각이 없었다.
"나으리, 역시 소녀가 아이스 피스팅을 하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요?"
메르피는 아무 관심도 없어서 그냥 과자를 먹으며 티비를 봤고 아테나는 내 기분을 우선으로 했으며.
"주인님 너무 노여워 하지 마세요, 제가 잘 타이를테니..."
유민이는 이 상황을 싹 무시하고 날 쏙 빼낼 생각뿐이었다.
"태양아, 빨리 가자 더 늦으면 지각이야."
순식간에 대가족이 된 부작용으로 너무 산만해지고 어수선한 작금의 상황.
모두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즐거운 동거 라이프는 진지하게 다시 고려해야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였다.
특히 다들 하나같이 성격이 있는 편이어서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맞춰준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이것도 교육을 다 해야겠구나.'
일단은 나중에.
지금은 정말 등교를 해야 했기에 난 춘향이와 아테나에게 아르테미스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끝으로 집을 나왔다.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 설득을 해봤자 계속 대화가 반복될 게 뻔했기에 이럴 땐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조만간 보지로 교육을 한번 해야겠네.'
에널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것만 역시 성교육을 할 때 가장 확실한 건 보지만 한 게 없었다.
처녀신의 타이틀을 상실했으면서도 처녀막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컨트롤 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 부분도 다 일종의 매력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공동 질서를 망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조만간 이사를 한 번 더 해야겠네.'
집에 방이 많다고 해서 다 함께 살 수 있다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집의 기준이 전부 다 나한테 맞춰져 있다 보니 조금만 시야를 다르게 틀어도 다 내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아르테미스도 집 밖에서 좀 돌아다니고 싶은걸 지도 몰랐다.
"태양아 안녕!"
"누나, 진짜 보고 싶었어."
등교를 하던 중 선도부로 나와 있는 수진이와 뜨거운 포옹과 함께 재회의 기쁨을 누리는 걸 잊지 않았다.
수진이는 나와 포옹하면서 고개를 살짝 돌려 유민이를 쳐다봤고 유민이는 억지로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오랜만이예요, 근데 너무 꽉 안고 계신 거 아닌가요?"
"아, 이게 일.상.이라서... 미안, 헤헤."
방금 대화에 얼마나 많은 신경전이 오간 거지.
이것도 한 번 하렘 섹스했기에 망정이지 예전 같았다면 등굣길을 아작 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위험짜릿한 등교 인사까지 끝내고 반으로 들어가려던 중.
"백태양 생도, 잠깐 따라올 수 있나요? 그동안 아카데미 안 나온 것도 있고 그래서 검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혜미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나와 혜미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알고 있는 유민이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사실 할 수 있는 게 딱 거기까지였다.
'아카데미 안에선 혜미가 왕이긴 하지.'
연구원이었기에 만나는 장소가 많이 제한 되는 혜미였지만 그만큼 그 장소에서 받는 어드벤티지가 어마무시했다.
생도와 교수의 신분이라는 건 정말 마음만 먹으면 교수가 생도를 마음껏 호출 시킬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미의 말마따나 난 출석 문제도 있었고 백두산을 다녀온 이후도 별다른 검사를 받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빨리 와야 돼?"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고 유민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한 번 보다가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
자지를 한 번 쳐다보고 혜미를 바라본 유민이는 잠깐 혜미와 아이컨택을 한 이후 그대로 총총걸음으로 반으로 먼저 들어갔다.
'정신이 없네.'
30분도 안 되는 등교 시간에 일이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니 어느 장단에 맞춰서 움직여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
"따라오세요."
"넵."
사귀는 중이라고 해도 공과 사는 확실한 법.
오래 못 만나긴 했어도 아무래도 혜미는 직장인에 속하는 편이다 보니 이런 부분은 다른 여자 친구들과 차별점이 있어 보였다.
'교수로서의 행동을 우선으로 한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연구실로 가면서 그 어떤 연인의 흔적과 향기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정말 딱 검사를 위한 움직임.
드르르륵 탁.
라고 생각했던 난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성욕에 물든 눈을 보고 생각을 싹 바꿨다.
"일단 정액 검사부터 할까요?"
"예?"
그녀도 똑같은 암컷이었다.
류혜미는 그저 웃고 있었다.
개들이 시작하자마자 달려갈 때와 다르게 그녀는 치타처럼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때를 기다렸다.
'이게 어른의 연애지.'
학생 때와 다르게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사냥감을 기다리는 연애.
백태양이 바쁜 건 빅토리 아카데미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그럴 수록 일부러 백태양에게 연락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와중에 단독 데이트 약속을 모두 받아 낼 때 동참을 하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였다.
'죄책감을 만들어야 해.'
아카데미에 없는 백태양과 그녀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근무 시간이 다 끝나거나 주말뿐인데.
사실 이 둘 다 한동안 백태양이 바빠서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이때 연락을 지속해서 해서 보고 싶다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나 혜미는 아예 다른 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연락을 가끔하다가 지금, 이렇게 딱 마주쳤을 때 미안 함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이 접근은 혜미의 예상처럼 아주 대성공으로 막을 올렸다.
다짜고짜 백태양을 데리고 와서 연구실에 쏙 넣은 뒤 문을 잠그고 요구하는 정액 검사.
백태양은 거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지 버클을 천천히 풀었다.
"해야지, 정액 검사."
근데 문제는.
"근데 요구하는 자세가 잘못된 거 아니야?"
백태양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거였다.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갑고 이런 자리가 기쁘긴 한데 관계를 잊으면 안 되지."
그는 부드럽게 혜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을 천천히 낮췄다.
백태양의 가랑이 사이 앞에서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들며 태연하게 자지를 손에 쥐고 혜미의 입가에 부볐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했는지 잊은 거 아니지?"
"으...응."
혜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백태양의 자지를 손으로 감싸며 귀두에 입을 맞췄다.
본격적인 정액 검사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