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전쟁 시작
* * *
"드디어 끝났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올림푸스 탐방기가 끝난 뒤.
난 아테나와 아르테미스를 데리고 집으로 바로 복귀했다.
'퀘스트도 완료 했고.'
마음 같아선 곧장 보상을 확인하고 침대에 누워서 밀린 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인간! 지금 당장 아테나한테 걸린 최면을 풀어라!"
"주인님은 나한테 그런 거 하신 적 없어, 오해야 아르테미스."
"나으리! 저년 아주 건방진 것 같은데 소녀, 특별 성교육을 준비할 테니 명령만 내려주시와요!"
당장은 그런 것보단 교통 정리한 번 할 필요가 있었다.
나 싸울 때 앓는 소리를 다 내고 있던 아르테미스도 상황이 정리 되니 본래 모습을 되찾은 야수처럼 날뛰고 있었다.
춘향이는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 따라 날뛰니 정신이 없었다.
'식구가 너무 많아.'
가만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여 살릴 식구가 넷이나 늘어난 상황.
소환수를 제외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생명체는 나를 포함한 셋.
초기에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아주 복잡한 상황이 연출 될 게 뻔했다.
'여기서 확실하게 잡고 가야 된다.'
슬프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서열 정리는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여자 친구를 일렬로 나열하며 감상하는 게 아닌 모두와 깊은 소통하는 거기 때문에.
아테나가 날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의지하는 건 좋지만 확실한 구분은 필요했다.
아르테미스도 이제부터 같이 살게 될 처지인데 저런 반항적인 태도는 옳지 않았고 말이다.
"다들 일단 내 말부터 들어."
"넵."
"흥."
"알겠사와요."
아무 생각 없이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메르피를 제외한다면 모두 내 앞에 공손히 착석한 상황.
반응은 다를지언정 그래도 일단 전부 다 내 말을 들으니 그 부분은 다행이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같이 살게 될 건데, 아테나는 저번에 썼던 방을 쓰면 되고... 아르테미스는 어떻게 하고 싶어? 아테나랑 같이 살래?"
"당연하지, 네가 아테나랑 밤에 매일 무슨 일할 지 어떻게 알고! 절대 아테나를 혼자 둘 수 없어!"
음 주거 문제는 해결 됐고.
아테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 참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당장 불만은 없지만, 밤에 '무슨 짓'을 할 때 아르테미스가 방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분 같은 경우는 아르테미스가 현세에 적응하면 따로 방을 쓰게 하면 되는 거니 큰 지장은 없었다.
우선은 아테나와 같이 살면서 현대 문화에 차차 익숙해지는 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춘향이는 알겠지만, 내가 여자 관계가 좀 다양해. 그러니까 만약 내가 다른 여자랑 대화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난입하면 안 돼."
"저는 그 부분을 이미 아주 잘 명심하고 있사와요, 나으리."
"..."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신계도 정리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러브 스토리가 쭉 이어지는 바.
그때 당연히 홈 데이트는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될 텐데, 이때 같이 사는 동거인들이 관계에 난입을 한다?
그럼 그 순간 바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정말 치고받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중간에서 조율을 하는 내가 피가 말릴 거라는 건 확실했다.
'아테나는 대답을 바로 못 하네.'
아테나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그 심정이 이해는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관계의 풋풋함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관계가 나에겐 너무 많았다.
'심지어 리리엘은 아직 아무것도 못 했고.'
진짜 섹스는 타이밍인 건지 지금 리리엘은 예전 멜라니의 일을 완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언젠간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지 하다가도 계속 뒤로 밀리게 되는.
새로운 방치의 아이콘이 생겨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실 제일 심한 건 정말 오래 만나지 못한 혜미였다.
생도 같은 경우엔 그나마 아카데미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지만 그녀는 연구원이었기에 활동 반경이 제한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가 아카데미에 묶여 있지도 않았기에 정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주말엔 이번 일 같은 경우가 생기면 또 외부로 빠져야 하니 못 만나고.
진짜 학생 시절 직장인이랑 연애 했을 때 경우가 생각나 감회가 새로울 지경이었다.
"할 말은 끝났으니까 음... 피곤할 텐데 각자 좀 쉬자, 나도 할 게 있어서 말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상황을 제대로 끝내지 못해 마지막 매듭 짓는 말을 내뱉은 후 난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상황도 전부 다 끝났으니 이젠 보상을 확인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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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신계를 정리하고 제우스의 아내까지 따먹어 버린 당신!
그야말로 네토라레의 화신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거기에 자신을 건드린 대가를 똑똑히 보여줬으니 신들이 이제 당신을 귀찮게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메인 퀘스트와 보조 퀘스트를 모두 완료함에 따라 더 이상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 되지 않습니다.
퀘스트에 구애 받지 않고 이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 보는 건 어떨까요?
자유를 당신에게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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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혼자서 왜 완결 같은 느낌을 내고 있어."
당연히 물질적인 보상이나 스킬을 얻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때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퀘스트가 갱신 되지 않고 자유를 선사한다니.
이걸 보상이라고 준 게 가장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루베니아가 퀘스트는 튜토리얼 같은 느낌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이제서야 튜토리얼이 끝났다고 해석을 할 수도 있었다.
기초 단계가 끝났다기보단 내가 이제 진짜 여기에 완전히 정착을 할 상태가 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기도하고.
시스템 메시지가 이상하게 나왔던 이유도 그냥 마지막이어서 변화를 준 건지 뭔지.
결과적으로는 시스템에서 해방 됐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모호하네."
퀘스트를 따라 움직이면서 수동적으로 상황을 받아 냈을 땐 싫다가 갑자기 목표가 완전히 사라지니 당황스러웠다.
'뭐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지.'
지금은 그저 퀘스트가 전부 다 끝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였다.
굳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이제 밀려 있는 데이트를 쭉 진행해볼까.'
유민이부터 시작해서 수진이, 혜미, 멜라니, 리리엘, 샤엘, 유이까지.
차례대로 데이트도 하고 현재 여자 두 명과 동거를 하고 있으며 원한다면 같이 살아도 좋다고 말을 하는 계획까지.
'음 정말 이제 아무런 걱정도 없겠네.'
이게 바로 완벽한 하렘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었다.
띵동.
"태양아~ 나왔어~♥"
지금처럼 유민이가 갑작스럽게 집에 오는 경우만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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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민 20세.
그녀는 지금 아주 커다란 기로에 놓여 있었다.
'태양이가 여자를 만나는 것 같단 말이지.'
개인 사정으로 인해 백태양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 동안 소유민의 촉은 점점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었다.
마법 수련을 한 감각이 왜 이쪽으로 발달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유민이는 지금 백태양이 집에 있고 왠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여자와 함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가 봐야겠어.'
데이트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얌전히 기다렸다간 기회가 또 순식간에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방학 동안 수련을 하겠다고 연락도 문자로 밖에 못하고 만나지도 못 했는데.
가만히 있다가 순서가 밀리는 경우는 무조건 지양해야 함이 옳았다.
시간은 밤 열 한 시.
남의 집에 가기 적절한 시간은 아니었으나 급습을 하기엔 아주 딱 알맞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급작스럽게 침투를 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민낯을 드러내기 딱 좋은 상황.
물론 백태양의 민낯이라고 해봤자 여자 친구가 많은 것 정도겠지만.
아무튼 유민은 여자의 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백태양의 집을 향해 직진했다.
띵동.
도착하자마자 누르는 초인종.
"태양아~ 나왔어~♥"
여기에 달콤한 여자 친구의 목소리까지 추가.
유민은 이보다 더한 올가미는 없다고 생각했고.
우당탕탕탕.
예상대로 집 안에선 매우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메인 스킬 마법을 사용합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소리를 포착합니다.]
여기서 가만있지 않고 그녀는 즉시 마법을 사용해 집 안에서 나는 소리를 모두 포착했다.
아까 말했던 거 알지? 절대로 나오면 안 돼.
어차피 네가 최면을 걸어서 함락된 여인이지 않은가! 일단은 따르겠지만...
...주인님 저는 근데 있잖아요...
주인님?
지금 주인님이라고 한 건가?
이럼 문이 열리는 걸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충분해.'
명분이 아주 충분했기 때문이다.
쾅!
"태양아, 집에 딴 년이 얼마나 있는 거야?♥"
속시원하게 문을 박살 내고 유민은 백태양의 집에 당당히 들어갔다.
전쟁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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