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화 〉 얘네 다 처녀냐?
* * *
제우스는 지금 상황을 똑바로 판단할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가 뭐라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 그건 그녀만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랑의 신이라고 해서 늘 사랑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확정된 미래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 아내인데 말이지.'
아무리 아프로디테가 그런 쪽으로 스페셜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남편이었다.
올림푸스의 주신이자 헤라의 유일무이한 남편인 존재.
그런 부분에서 오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헤라가 정말 바람을 폈다고는 해도 그건 자기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과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바람이라는 부분에서는 별로 할 말도 없는 게 자신 또한 정말 셀 수 없이 바람을 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냥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강력한 자기 합리화로 제우스는 단단하게 자기 정신을 무장 시켰다.
바람을 핀 것도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집 나간 어린아이가 몇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집으로 귀가하듯.
결론은 항상 나.
정착지는 제우스로 정해져 있다고.
그렇게 굳게 믿으며 아테나의 은신처에 들어갔던 거였다.
하지만.
"천천히 먹어봐, 천천히 응? 정신도 좀 차리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는 듯.
소중히 백태양을 젖가슴 사이에 끌어당기며 입에 젖꼭지를 물리고 모유를 짜먹는 모습은.
"..."
제우스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또르륵.
살면서 몇 번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 자연스레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슬퍼서 우는 것보단 더 상위의 감각이 전신을 덮쳐왔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자연스럽게 모든 신체를 지배한다.
눈물이 나오는 건 기본이고 턱은 빠진 것처럼 축 늘어졌으며 다리가 부들거린다.
몸에 힘이 들어오다가도 빠지고 전신이 오징어처럼 흐물거릴 기미를 보인다.
스으읍 하.
스읍 하.
호흡이 진정 되지 않으며 온몸이 벌겋게 색칠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저런 모습을 하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비단 헤라를 말하는 게 아니라 백태양이 그렇게 아끼는 여자들을 잔뜩 끌어안고 멀티 하렘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여태 해 오던 제우스의 품격이자 올림푸스 주신으로서의 완벽한 이미지였다.
폭군이라고 욕을 먹긴 하지만 그 강력함과 흠집나지 않은 권위 때문에 모두가 알아서 따라왔었다.
그런 존재가, 패배를 겪는 것도 아닌 가장 자신 있어야 하는바람 분야에서 왕좌를 뺏긴다?
그것도 어디서 굴러 먹다 온 지도 모르는 인간계에서 온 하찮은 버러지한테?
자기 아내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제우스는 유체 이탈했다가 돌아온 것처럼 정신을 다잡으며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지금 일어나는 기괴한 흐름을 끊기 위해선 체통이고 뭐고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꼴사나운 모습을 포세이돈이나 토르가 보는 것? 그것보단 저 자식을 헤라한테서 떼어놓는 게 더 중요했다.
"헤라! 이게 무슨 짓인가! 아테나도! 그리고 아르테미스도!"
"주인님한테 이러는 건 당연하죠."
"당신도 이런 거 자주 했었잖아요? 바람 핀 여자 지켜 주는 거, 저도 그냥 똑같이 하는 거예요."
"저는 배가 아파서..."
뜨거운 분노로 모두를 나무랐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거나 뜨듯미지근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듯, 오히려 이 상황을 나무라는 제우스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까지.
제우스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지금,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지 고민할 필요도 없지.'
그런 건 패배한 수컷들이 하는 행위 아니던가.
진정한 남자라면 이런 상황에도 항상 스스로 헤쳐 나갈 방법을 찾는 법이다.
치지지지지직.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번개가 내려칠 준비한다.
제우스의 팔이 검게 물들며 금방이라도 번개를 내려칠 준비한다.
거인들이 만들어 준 번개 아스트라페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제우스의 손에 깃드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우스의 행동을 공격 신호로 인식한 토르와 포세이돈도 각각 자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번개를 다루며 신실한 자만이 들 수 있다고 전해지는 망치 묠니르.
바다를 다스릴 수 있으며 파도를 치게 만들며 재앙을 불러온는 삼지창 트리아이나.
강력하다고 알려진 세 명의 신에 피어나는 강력한 공격은 금방이라도 백태양을 죽일 듯이 기세를 내뿜었다.
그러나.
"그만두세요."
무기란 사용 되지 못하면 그 의미를 잃는 법.
헤라는 충분히 백태양에게 젖을 먹은 후 옷매무새를 단정하며 제우스의 앞길을 틀어막았다.
아테나는 무언가를 감지 했는지 그사이를 틈타 재빠르게 은신처에서 벗어났으며, 아르테미스는 어정쩡한 자세로 헤라 옆에 서 있었다.
하나는 빠지고 두 여신이 인간 남자를 지키기 위해 길을 막고 있는 상황.
"아니, 대체 왜 막는 거야! 특히 아르테미스 너는 막을 이유가 없잖아."
어이가 없어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을 뒤로하고 토르가 속 시원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
아테나가 백태양에게 주인님이라고 한 거 보면 볼장 다 본 것 같은데.
아르테미스는 그런 곳도 아닌 걸로 보이는데 저리 길을 막고 있는 게 이상했다.
"처음 받아본 남자를 잊지 못 하는 거겠죠. 단 한 번도 맛본 적 없으니 뭘 알겠어요?"
우물쭈물하는 아르테미스의 말을 받은 건 뒤늦게 따라온 아프로디테였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바로 장작을 때려 넣었다.
"헤라! 왜 혼자서 저 남자의 자지를 쏙 빼먹은 건가요? 말해 보세요! 혼자서 그렇게 진하게 물고 빨면 좋았냐구요!"
"..."
이젠 앞에서도 존대하지 않는 아프로디테는 백태양의 고간을 빤히 바라보며 분노했다.
딱 봐도 맛있어 보이는 대물 자지를 혼자서 빨아 먹는 것도 모자라 모유플까지 즐기다니.
분명 자궁에 정액도 한가득 담아놨을 게 분명했다.
'나도 하고 싶은데.'
대충 눈 대중으로만 봐도 박히자마자 배가 볼록볼록 튀어나올 것 같은 자지 사이즈.
저걸 혼자 먹겠다고 '조사'라는 핑계로 먼저 가서 자지를 빨아먹은 뒤 이런 꼴이라니.
아프로디테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그만! 그만! 저놈이 그냥 만악의 근원인 거잖아!"
제우스는 상황이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백태양을 죽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헤라가 막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건 포세이돈과 토르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게 분명했다.
"꺅!"
진짜 아프로디테의 말처럼 관계를 진하게 맺긴 한 건지 헤라와 아르테미스는 별다른 저항하지 못하고 바로 밀려났다.
툭 건드리자마자 하체에 힘이 없는 것처럼 쓰러지는 걸 봐선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눈에 훤했다.
그리고 상황을 정리하고 이제 드디어, 정말로 마침내 정신을 잃은 백태양에게 천벌을 내리려는 그 순간.
스스스스스.
백태양이 깨어났다.
'뭐지?'
평소라면 느끼지 못 했던 감각.
분명 누워 있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놈이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다들 하얀색인 공간에 혼자 검은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기이한 존재감.
혼자서 모든 이목을 먹으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처럼 주변을 파악한다.
"빨리 끝내자."
첫 마디.
그 한 마디에 제우스와 포세이돈 그리고 토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너무 차분하게 내뱉는 그 말이 사신의 그것과도 같아서.
금방이라도 목을 떨어트릴 것 같았다.
"오래 안 걸릴 것 같아."
아무도 백태양의 말에 반박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키이이이이잉.
경고등이 울리는 것처럼 귓가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도망치라고, 뒤도 보지 말고 미래를 기약하라고.
지금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 다고.
"개소리하지마라! 인간 주제에!"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경고를 무시했다.
이건 포세이돈과 토르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신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도망칠 순 없었다.
'라그나로크를 하는 것 같구만.'
토르는 과거에 있었던 가장 치열한 전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주 가볍게 뿅망치로 머리를 두들기듯 툭 하고 벌을 내려줄 생각이었는데.
저런 기세를 내뿜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혹시 몰라 내가 준비한 것들을 다 꺼내야겠군."
토르는 주인공이라도 된 듯 제우스보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으스댔다.
아내 뺏긴 놈과 그런 놈의 형제가 이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것 자체가 멍청한 거였다.
"내가 널 끝내주마, 백태양."
천둥으로 빚은 갑옷과.
"오라, 나의 가장 충실스러운 부하들이여."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발키리들.
모두 하나같이 백태양쪽으로 쇄도하며 날카롭게 창을 찌르려고 했다.
"안 돼!"
"...그만둬..."
애처롭게 외치는 헤라와 미약하게 목소리를 내는 아르테미스의 소리.
하지만 토르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백태양을 끝내기 위해 접근했으며.
쾅!
"어...?"
가장 최전선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자신이 엄선해서 뽑은 발키리가.
"얘네 다 처녀냐?"
허무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말이다.
"그럼 나한테 안 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