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노따먹 선언
* * *
"대답해라 백태양!"
"어? 뭐가?"
딴생각을 너무 오래 하고 있었을까.
아르테미스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노여움을 토해냈다.
"아테나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헤파이토스랑 있어."
"...?"
너무 순순히 나오는 답변에 아르테미스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거친 대화하다가 싸워서 이긴 뒤 아테나의 행방을 묻는 그런 그림을 생각했을 텐데.
대수롭지 않게 결과가 툭 튀어나오니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거짓말을 믿을 것 같으냐!"
"아니 진짜라니까 기운 안 느껴져? 감지를 못 하나?"
"..."
옆집에 있는 강아지 위치를 말하는 것처럼 무신경한 말투.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당당함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내 말을 따랐다.
정신을 집중하고 헤파이토스의 신전에 기운을 집중 시켜 아테나가 정말로 그곳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눈 깜빡할 시간이 지나자 아르테미스는 아테나의 기척을 확인한 지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봤다.
그리 밝지 않은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거로 보였다.
"왜 아테나를 헤파이토스에게 접근 시킨 거지? 아테나를 좋아하는 헤파이토스의 마음을 가지고 놀 생각으로 그런 거냐? 신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칠 생각하다니 넌 정말 쓰레기구나!"
역시나.
아르테미스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모든 원인으로 날 지목했다.
'근데 좀 억울하네.'
내 지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헤파이토스를 이용하자는 기획안의 최종 확인 도장을 찍은 건 아테나였다.
평소 이미지가 어떻게 구축 되어 있냐에 따라 상상력이 발휘 되는 정도가 다르단 건가.
아테나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결론 짓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나만 매도하는 건 좀 슬펐다.
"불쌍한 아테나! 너 같은 남자에게 붙잡혀 일분 일초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생각도 못 하겠지."
오페라 연극 톤으로 말하는 아르테미스의 구슬픈 외침을 들으며 아테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상기했다.
첫 섹스를 야외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대범함이 장착된 그녀는 경련 절정 자궁 정액 주유를 아주 좋아하며 허리를 흔들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아르테미스는 아테나를 무슨 옛 동화에서 나오는 용에게 붙잡힌 공주 마냥 묘사했다.
'그래도 내가 용은 맞긴 하지.'
하반신에 용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용족이라고 말해도 의심조차 할 수 없겠지.
'슬슬 뭐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르테미스의 뮤지컬 일인극을 계속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냥 빠르게 제압하는 게 더 쉬운 길이었다.
근데 진짜 무슨 아테나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고 저러고 있는 게 너무 신선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격정적인 몸짓을 할 때마다 유두가 조금씩 보이고 보지 가리개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게 시선을 너무 뺏어갔다.
"아테나를 대체 어떻게 할 속셈인 거야!"
"그게 그러니까."
"아니! 대답은 듣지 않겠어!"
그럼 왜 물어보는 거야.
처녀 신이라고 속이고 치녀 그 자체의 모습을 보이며 방탕한 모습으로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다니.
확실히 사냥의 달인이어서 그런지 복장부터 사냥감의 이목을 완벽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근데 아르테미스가 저 정돈데 그럼 아프로디테는 뭐 안 입고 다니는 건가?'
수치심 따위 모르고 전라로 다니는 여신이라.
"그냥 빨리할 거 하면 안 될까, 너도 어차피 아폴론처럼 될 텐데."
잡생각은 여기서 그만하는 걸로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허,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남성은 수도 없이 많았다. 날 굴복시킬 거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 말이다."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나?
이게 만약 게임이었다면 라운드 1 이라는 글자가 뜨며 전투가 시작될 장면이었겠지.
아르테미스는 활시위를 쭉 잡아당기더니 정말 가볍게 툭 하고 놓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모든 걸 휩쓸며 지나가는 폭풍이 일직선으로 나에게 날아온다.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범위를 피해야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 화살.
'곤봉이 없는 게 아쉽네.'
방망이만 있었어도 쳐 내고 바로 성검으로 돌파했을 텐데.
검을 다루는 숙련도가 부족한 만큼 화살을 쳐 내는 건 무리가 있었다.
"피하는 꼴이 우습구나!"
"다들 맞기 전엔 다 그렇게 입이 살더라고."
땅을 박차고 옆으로 최대한 몸을 이동시킨 뒤 바로 아르테미스에게 돌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바로는 아르테미스의 무기는 은활과 금화살 그리고 창 한 자루가 전부다.'
전부 다 전투보단 사냥에 특화 된 무구들이었다.
곰을 사냥하는데 검과 방패를 쓰지 않는 것처럼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사냥감을 제압하는 무기들이 주류를 이룰 터.
그렇다면 그녀를 제압할 가장 적합한 방법은 거리를 좁히는 거였다.
'분노와 복수, 달, 순결, 사냥, 출산.'
마지막 출산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분노가 있으니 분명 2 페이즈가 있을 거란 거였다.
화가 나면 변하는 건 사람이든 신이든 마찬가지일 테니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게 중요했다.
"달려오는 사냥감을 따돌리는 건 나에겐 너무 쉬운 일이다!"
아르테미스는 자신만만한 대사처럼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 따돌렸다.
직선으로 따라잡으면 대각선으로 빠지고 대각선으로 따라잡으면 직선으로 사이를 돌파한다.
확실히 곰이나 늑대 따위를 잡으며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직면한 그녀였기에 보여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냥 잡는 건 좀 무리가 있겠는데.'
지금 상태에선 힘들기에 마음 같아선 마족화와 폭군을 발동시키고 싶긴 하지만.
그리된다면 힘의 파동이 너무 퍼져서 다른 모든 신들을 불러들일 게 분명했다.
아폴론을 잡고 아르테미스가 오고, 아르테미스를 잡으니 다른 신이 오는 이런 토너먼트 방식이 가장 안전했다.
때문에 난 내 자신을 강화 시키는 게 아닌 아르테미스를 약화 시키는 방법을 고민 했다.
'그거 뿐인가.'
사실 방법은 있었지만 혹시 모를 2 페이즈를 위해 아껴둔 비장의 수단.
"아테나의 처녀는 내가 따먹었다."
바로 멘탈 흔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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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의 처녀는 내가 따먹었다."
"...뭐?"
아르테미스는 지금 들리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로는 아테나가 백태양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내뱉은 것에 불과했다.
순결의 맹세를 한 아테나가 처녀가 아니게 됐다는 그 말을 아르테미스는 곧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스틱스의 맹세는 왜 발동하지 않은 거지? 맹세를 어기면 못 움직여야 할 텐데.'
기이했다.
이 남자가 말한 대로라면 아테나의 기운은 헤파이토스 신전에서 절대로 느껴져선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백태양은 너무 확신에 찬 눈동자로 자신이 아테나를 따먹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결론 내릴 수 있는 건 단 하나.
'거짓말이구나.'
평소에도 남성을 혐오 했던 그녀였기에 이번 거짓말에서 한 번 더 짙은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정신을 흔들게 만들려고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릴 줄이야.
'아테나가 이 남자를 따르는 것도 뭔가 다 수작이 있었을 거야.'
정신을 조작한다던가 엄청난 물건으로 유혹했다던가 등등.
그 고결하고 고귀한 아테나가 단 한 번의 만남에 쉽게 함락 됐으니 당연히 그만한 사유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순결을 중요시하는 아르테미스였기에 자지에 박혀 성 노예가 됐다는 발상 자체를 못 하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말해봤자 난 흔들리지 않는다."
"아테나한테 스틱스의 맹세가 안 느껴지지 않아? 확인해 봐 그럼 알 거 아냐."
내가 아테나의 처녀를 빼앗고 스틱스의 맹세를 뜯었거든.
하지만 그런 아르테미스의 속내를 다 간파하고 있다는 듯 백태양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아테나 허벅지 안쪽에 점 하나 있는 거 알아?"
아테나가 신음을 내뱉을 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떤 얼굴로 애원을 하며 몸에 달라붙는지.
거짓말이라기엔 생동감 넘치고 진실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문장들이 끝을 모르고 아르테미스의 귓가에 스며든다.
"말도 안 돼!"
그녀는 합당한 논리로 반격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감정적으로 대응했고.
그 순간이 백태양이 그녀의 허점을 파고드는 기회로 변했다.
"돼."
턱.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백태양에 발목이 잡힌 아르테미스.
허나 그 결과는 달랐다.
꿈틀.
그녀의 곁에 있던 스틱스의 맹세가 백태양의 손목을 잘라낼 듯 튀어나왔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스틱스?'
스틱스의 맹세는 아테나에게 벌을 주지 못하고 그대로 뜯겨 나간 분노를 기억하고 있었다.
맹세를 무슨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 취급을 하는 백태양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기에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잠들어 있는 스틱스의 의지는 맹세로 현현해 아르테미스를 지원하는 광경에 백태양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르테미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텐데 너도 그냥 굴복하는 게 어때? 아테나처럼 행복해지는 거야."
오만하고 경박스러운 그 말에 아르테미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난 남자에게 지지 않는다. 하물며 너 같은 쓰레기에겐 더더욱 말이다!"
분노는 힘이 되어 그녀의 화려한 은발을 짙은 청색의 불꽃으로 변모시켰다.
"저, 절대로 너에게 따먹히지 않는다!"
유두와 보지를 띄엄띄엄 보여주는 처녀 신 아르테미스의 지고한.
노따먹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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