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처녀신이 복장이 왜 그래.
* * *
'...이건 아니야.'
제우스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오직 무장에 집중하자고 말을 하며 대기하고 있을 무렵.
아르테미스는 도저히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자들이라면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순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전쟁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제우스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무리 무력을 펼칠 수 있는 신이 얼마 없다고 해도 주신인데.
모두를 관장하는 신의 자리에 있음에도 신들이 죽거나 행방불명 된 걸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다니.
'나라도 뭔가 해야 해.'
전쟁에서 중요한 건 정확한 때를 찾는 것과 명분을 가지는 일이라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손 놓고 있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백태양에게 모든 걸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아무도 못 하는 걸까.
아르테미스도 사실 아레스가 당했을 때까진 생각을 못 했고, 소중한 아테나가 다치니 떠오른 발상이었다.
"사냥의 신인 내가..."
그런 마음을 품으며 일단 뭐가 됐든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하려는 순간.
'음?'
그녀는 올림푸스 내부.
헤파이토스 신전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힘의 파동을 감지했다.
'하나는 아폴론이고... 하나는 누구지?'
이질적이며 괴이하기까지 한 힘.
심지어 가장 신기한 부분은 아폴론이 계속 열세에 몰리고 있는지 힘이 간헐적으로 끊기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티탄?'
아니지.
티탄은 지금 있을 리가 없지.
생각을 정리하면서 아르테미스는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는 건 지금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아주 만약의 경우에.
'백태양 그놈이 어떤 수를 써서든 올림푸스에 올라와 아폴론과 싸우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용서하지 않으리라.
아르테미스는 활에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당기며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그녀를 움직이는 건 강한 분노였다.
꿈틀.
그녀의 몸을 묶고 있는 스틱스의 맹세 또한 미동을 보였다.
분노를 느끼고 있는 건 아르테미스 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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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비겁하게 내가 무장이 없을 때를 노리다니!"
"넌 내 뒤통수 치려고 했잖아."
아폴론은 처음에 내 말에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했지만 몇 대 맞고 나서 표정을 싹 바꿨다.
어떻게 알았지라는 표정보단 이렇게 됐으니 죽어라! 라는 눈빛으로 날 상대하는데.
빡!
"끄아아아악!"
영 시원치 않았다.
적당히 반항하면서 아레스처럼 들이 박는 맛이라도 있어야 일격을 날리던지 할 텐데.
대놓고 소모전을 벌이며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게 티가 나 섣부르게 몸을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박수도 손바닥이 맞아야 치지.
계속 저렇게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다가 멀리서 원거리 공격 한 번 쏘고.
거리가 좁혀지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맞고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를 거리를 벌리고.
이걸 계속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이 계속 끌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백태양,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건 따지고 보면 네 탓 아닌가? 나는 솔직히 그냥 얌전히 모든 걸 끝내려고 했다."
"니 뜻대로 끝내려고 한 거겠지."
뻔히 보이는 수작과 거짓말을 굉장히 당당한 표정으로 하길래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저런 말 때문에 대화는 필요 없는 애라는 걸 깨닫게 됐으니 어쩌면 더 편해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냥 묻고 따지지도 않고 패다 보면 알아서 두 손 두 발 들 게 뻔했으니까.
"춘향아."
"네 나으리!"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는 만큼 춘향이를 소환시켜 아폴론의 신체를 점점 얼게 만들었다.
도망치다가 한 번씩 맞부딪칠 때마다 아폴론의 몸을 착실히 얼리니 아폴론도 점점 힘을 꺼내고 있었다.
태양, 음악, 의술, 궁술 등등 전반적으로 만능의 모습을 보이는 놈은 정말 바퀴벌레 같았다.
불꽃을 쏘아대면서 자기 부상은 치료하는 귀찮은 전투방식.
다행인 건 힘이 얼마 회복되지 않아 정말 태양을 재현하진 못 했고 딱 조니 프레이스 정도라는 거였다.
'그래서 춘향이가 활약할 수 있는 거고 말이지.'
조니를 상대할 때 춘향이가 엄청난 활약을 한 건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신경을 분산시킬 정도는 됐다는 거다.
"이익! 비겁하게 다수로 압박을 하다니!"
"둘이면 다수도 아니지, 아니 그리고 신이 뭐 이렇게 핑계가 많아."
생긴 거에 비해 졸렬하고 얍삽하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나보다.
어떻게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자기가 한 행동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
그냥 저런 애들은 패는 게 정답이었다.
툭
"음?"
아폴론은 내 쪽을 보고 도망을 치고 있었기에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어딘가에 한 번이라도 막혀서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멈춘다면.
턱
"잡았다."
지금처럼 나한테 잡히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피했겠지만 춘향이의 끈질긴 서포트 덕에 아폴론의 행동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이라고 해도 몇 분 전이니까 뭐.'
아폴론을 잡고 나서 일단 난 놈을 이리저리 패대기쳤다.
놈의 발목을 최대한 단단히 붙잡고 이리저리 구조물에 던지고 잡고 던지고 잡고를 반복했다.
훌륭한 회복력을 가지며 맨날 제대로 피니시를 하지 못 했던 어떤 멍청한 놈이 떠올랐기에 이번만큼은 확실히 하자는 각오를 다졌다.
"너도 욕심이 났겠지, 근데 그럴 거면 확실하게 생각했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엎드릴 땐 바짝 엎드려야 한다는 말이야."
내가 아무리 폭력을 행했어도 넌 내 신발이라도 핥으면서 자기 무고함을 증명 했어야 돼.
수틀리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력 행사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으윽! 그만! 그만 때려!"
"안 돼, 아직 입이 살았잖아."
붓검이 있었다면 성검과 연계해서 일격검으로 놈을 소멸 직전 상태로 만들었을 텐데.
아쉽게도 무기를 만들고 있는 상태여서 실신 시키는 쪽으로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빡!
가장 기절하기 쉽다는 턱을 집중 공략한다.
"으악! 그만! 그만 때려! 내 잘생긴 얼굴이!"
"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는지, 무슨 생각인지 그런 건 물어보지 않을게."
어차피 제우스도 조져야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똑같아.
아폴론을 여기서 다운 시키는 이유는 제우스와 싸울 때 변수 제거 용도였다.
그리고 무력 수준이 이 정도라면 생각보다 커다란 변수도 아니었기에, 그냥 후딱 치우는 게 맞았다.
빡! 빡! 빡! 빡! 빡!
오직 턱만을 노리자 처음엔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었던 입이 점차 얌전해진다.
중간중간 팔다리를 떠는 걸 보니 아주 가벼운 경련 상태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이대로 땅에 박아두는 게 맞겠네.'
땅에 묻은 다음에 위에 커다란 얼음 하나 얹혀두면 딱이라는 생각에 놈을 다시 패대기 쳤다.
쾅! 쾅! 쾅! 쾅!
주기적으로 회복하는 놈의 몸을 곡괭이 삼아 바닥을 파내고 그 안에 놈을 집어넣었다.
"춘향아."
"이미 준비해놨사와요."
"잘했다."
"나으리 그럼... 이따가 제 자궁에 찐한 딥 귀두 키스 후 정액 주유 해주시는 건가요?"
"...그건 나중에."
춘향이는 나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기운이 났는지 아주 힘차게 아폴론이 들어간 구멍을 얼음으로 틀어막았다.
'웬만해선 녹지 않겠지.'
일단 여긴 대충 끝났고.
주변을 둘러봐도 느껴지는 힘의 기척이 없는걸 보니 다들 바쁜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슈우우우웅 픽!
"?"
화살 하나가 바로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어찌나 빠른지 화살을 보자마자 몸을 틀었음에도 귓불이 찢겨 있었다.
'그리스 신들은 확실히 다 활을 잘 쏜단 말이지.'
누군지 짐작하고 있을 때 아주 당당하게 활을 쏜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태양! 정말 네놈이구나! 아테나는 어디에 있지?"
아르테미스.
사냥의 신이자 아테나와 똑같은 처녀신.
'아테나는 이제 아니지만.'
근데 복장이 왜 이래?
아르테미스는 처녀신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야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은발이 없던 달빛을 만들게 할 정도로 빛나는 건 신이니까 그렇겠거니하고 넘어가도.
가슴을 가리는 복장이 세로로 내려와 있는 천 하나라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벅지 바로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에 가슴에 딱 두 줄로 그려진 세로 줄이 아슬아슬하게 유두를 가리고 있는 복장.
처녀신이라기보단 탕녀에 가까운 패션이었다.
'움직이기 편하게 하려고 그런 건가?'
거치적 거리는 옷의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활동성을 높인 거라면 그럴듯하게 보였다.
근데 걸어올 때마다 살랑살랑 유두가 보일 땐 선을 명백히 넘고 있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뭐야 이게.'
짧은 치마가 펄럭거리며 흩날릴 때마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이 저항 없이 드러난다.
속옷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보지 가리개는 보는 눈을 민망하게 만들 정도였다.
'처녀신이기에 오히려 야하게 입고 다녀도 안전한 건가?'
저런 옷을 입고 있어도 처녀를 유지할 거기에.
길거리의 방탕한 창녀 같은 옷을 입고 있고 다니는 발상이 나오는 거라고?
"내 말에 대답하지 못해?!"
길거리 방탕한 창녀 같은 복장과 앙칼지게 쏘아 내는 음성.
이 두 가지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알아서 따 먹히러 왔구나.'
아폴론과 평화적으로 대화하니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역시 대화는 모든 일을 순탄하게 흘러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