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진짜 중요한 일 아니면 뒤졌다.
* * *
"왜 안 된다는 거죠!"
"네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게 무슨..."
올림푸스 회의실 안.
그곳에서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내려가 백태양을 단죄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중이었다.
아레스의 마지막 기억을 바탕으로 아테나가 홀로 백태양과 대적하겠다는 걸 유추했고.
그녀가 지금 아직 올림푸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구출을 하겠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제우스는 뭐가 그리 신경 쓰이는지 아테나를 구하러 가는 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네 마음은 잘 안다만 이 사태는 뭔가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로 접근을 해야 할 것 같구나... 난 아폴론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만?"
제우스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가야된다는 걸 은연중에 어필했다.
아르테미스도 믿음직하지만 여자라는 불안감이 있었고 그럴 바엔 차라리 만능이라 불리는 아폴론이 나았던 것.
"음... 글쎄요 제가 가는 게 맞을지 모호하네요."
"뭐?"
"절 믿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 같아서요."
아폴론은 당연히 임무를 받을 거로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을 깨부수고 거절을 내뱉었다.
'다들 아직 전성기 때의 기억에서 못 벗어났군.'
신앙이 사라진 신들에게 무엇이 남고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다들 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과거 모든 인간들의 숭배를 받았던 시절이야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강압적인 통치를 해도 먹혔다지만.
지금은 신을 믿는 자들이 많지 않은 시대인 만큼 힘도 당연히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루베니아 같은 토착신들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에 반해 우리는 힘을 많이 잃었지.'
사실 신이라고 해봤자 그 무늬만 그럴 듯할 뿐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은 위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들도 신처럼 능력을 쓰며 천지를 가르는데 신이 이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레스가 인간한테 소멸 당한 걸 보고도 아직 짐작을 못 하는 건가?'
인간의 고점이 신의 고점과 비슷하다는 걸 왜 눈치채지 못 하는가.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어서 현실 감각을 다 잃어버린 건지, 그들은 여전히 백태양 참교육을 외치고 있었다.
원래도 그런 것에 회의적이었던 아폴론은 이번 아레스의 참패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을 더 단단히 굳혔다.
'게이트 꼼수가 막혔으면 그냥 다 포기해야지.'
올림푸스에 많은 신이 있다지만 지금 정상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건 12신 뿐.
나머지는 아직 힘을 다 되찾지 못해 잠들어 있었고, 그나마 있는 12신조차 한 명이 방금 막 준 상태였다.
'물론 눈에 안 띄고 얌전히 숨죽이고 있는 신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대적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신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시도조차 사전에 들켜서 실패했다면 포기하는 게 정상이거늘.
'하지만 결국 제대로 겪어봐야 아는 것도 있기 마련이지.'
아폴론은 이 상황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지켜보기로 결심한 듯 팔짱을 끼고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아르테미스는 폭발했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인간한테 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건 안 되는 말이지."
분노한 아르테미스의 말에 제우스는 결국 옥좌에서 일어났다.
아레스는 소멸 직전 상태가 되어 돌아왔고 아테나는 행방불명이 된 상황.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일단 주신으로서 제우스는 해답을 내놓기로 했다.
"헤파이토스에게 무기를 정비하라 전해라. 만반의 준비하고 내려가겠다."
결국은 '일단 무승부'로 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었지만 당장 이렇다 할 선택지가 없었기에.
제우스의 말을 들은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자리에서 흩어졌다.
아폴론은 흩어지면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난 원하지 않는데 말이지.'
그는 직접 백태양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자리를 벗어났고.
'이럴 순 없어...'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아르테미스만이 활을 잡은 손에 분노를 담으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하지 않겠다면 나라도 하겠다.'
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테나를 구출하고 백태양에게 천벌을 내리게 되는 건 분명 자신일 것이라고.
남성에게 단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는 아르테미스의 굳은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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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카드!"
"오 잘하네."
"그럼요, 제가 하는 법을 몰라서 그렇지 배우면 금방 한…"
"아아아아아앙!"
찌걱찌걱찌걱찌걱.
평화롭게 하는 원 카드 게임에 왜 남의 섹스 소리가 들리는 걸까.
멜라니는 신음을 듣자마자 당황스러운 얼굴로 마지막 카드를 내려놨다.
"와...와아...제가 이겼어요."
"...그러게."
전부 다 떡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바로 나갈 순 없으니 보드 게임 몇 판 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사방에서 방해하면 하던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진짜 보드 게임 카페에서 왜 섹스하는 거지, 모텔 가면 되잖아.
'다 유명인이라 그랬나.'
당장 옆자리에 룸의 문을 벌컥 연다면 분명 유튜브나 티비에서 자주 보이던 사람 얼굴이 나올 게 분명했다.
멜라니도 신음을 참고 게임을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 했는지 어정쩡한 자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보드 게임 카페지 익명성이 보장 되는 프라이빗 간편 섹스 룸카페였다.
"나가자 일단."
"...네."
그렇게 우린 바로 보드 게임 카페로 나와 일단 다시 내 집으로 몸을 옮겼다.
데이트를 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다시 원점으로 이동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딜 이동해도 섹스할 게 분명해.'
보금자리를 욕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안내하는 공간은 전부 그런 곳들일 게 분명했다
VIP만 따로 관리한다고 해서 VIP가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
"..."
집에 오자마자 바로 묘한 정적이 일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데이트하자고 나갔다가 이렇게 금방 들어오면 그 어떤 사이어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어, 말해."
이런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멜라니였다.
"보통 근데 데이트하면... 막 바로 섹스 해요?"
"푸흡,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겠지.
일부러 그런 쪽 상황이랑 멀어지려고 집에 왔는데, 바로 이 주제가 나올 줄이야.
난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멜라니를 바라봤다.
"아니 그렇잖아요, 저도 뭐 알 거 다 알고, 할 거 다 해 본... 사람이구요."
그렇긴 한데 초짜 중에 초짜잖아.
차마 뒷말을 그대로 내뱉을 수가 없어서 꿀꺽 삼켰다.
'섹스를 안 하려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하지, 멜라니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방치 됐던 세월이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멜라니와 살을 섞는 건 과정이 필요했다.
유민이와 수진이, 혜미 같은 경우엔 그런 식으로 만남과 정을 쌓아왔다지만.
그녀는 방치된 만큼 대화할 시간이 많았기에 오히려 섹스가 어색했다.
'이건 멜라니 뿐만이 아니라 리리엘도 그렇지.'
유이 같은 경우는 직전까지 가서 이제 언제든지 하면 된다지만 나머지 둘은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한쪽은 시작을 했음에도 아직 어색하고, 다른 쪽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도 감이 안 잡혔다.
물론 반드시 섹스해야 뭐가 변하고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깊은 관계라면 반드시 동반 되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건 관계마다 다르지 않을까."
최대한 나는 넌 무리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을 순화했지만 멜라니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관계도 그 사람들이랑 똑같고 싶어요."
"응?"
"남들처럼 평범하게 연애 하자고 간 곳에서... 다 섹스하고 있었잖아요. 그럼 우리도 그러는 게 맞는 거 아니예요? 막 보통 남자들은 여자 친구 보면 어떻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던데..."
멜라니는 그 말을 내뱉으면서 내 하반신을 빤히 쳐다 봤다.
"당신도 지금 그래 보이는데요, 뭘."
과도하게 건강한 신체와 주변에서 들리는 신음만으로 이미 빳빳하게 선 자지는 숨을 생각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면바지를 입고 앉으면 왼쪽에 굵게 뭔가 툭 들어가 있는 묵직함은 딱 봐도 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저는 음... 하고 싶어요."
"에?"
얘가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것처럼 진도를 쭉쭉 뽑아내려는 멜라니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은 경험이 많으니까... 절 배려해주려고 그런 거겠죠... 조금 전에 저한테 서운하다고 말한 것만 봐도 이해할 수 있어요."
조곤조곤.
롤빵머리를 한 부잣집 아가씨가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광경은 너무 귀해서.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애 박자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보통 당신이 맞춰주는 거겠죠, 근데 저도 한 번쯤은 당신한테 맞출 수 있는 거잖아요."
"어...어 그렇지?"
"...여기까지 말하면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안아달라구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푹 숙인 멜라니를 보자마자 자지가 폭발할 것처럼 쿵쿵 뛰었다.
'이건 당장 자궁 압박 프레스다.'
그래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간을 보는 건 백태양이 아니지.
바로 진도를 뽑아내려고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자마자.
띵동띵동띵동
눈치 없는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야.'
진짜 중요한 일 아니면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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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간이니 신이 직접 만나러 온 걸 보면 좋아하겠지.'
그것도 이렇게 정중하게 찾아왔다면 더더욱 그럴 거고 말이야.
아폴론은 행복 회로를 열심히 돌리며 백태양네 집의 초인종을 쉴 새 없이 연타했다.
천천히 머리 위로 드리우는 먹구름도 모른 채.
그는 해맑게 웃으며 문을 톡톡톡 두드렸다.
'좋군.'
착각은 자유로운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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