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54화 (254/325)

〈 254화 〉 이제부터 처녀신이란 건 없는 거다.

* * *

아테나는 독보적인 존재로 그 출생부터 비범했다고 볼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무장한 상태였으며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세상이 벌벌 떨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녀는 강하고 자비로웠으며 어쩌면 제우스보다 더 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순결을 지키기로 한 처녀신이며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

모든 신들과 인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고고하게 홀로 존재하는 자.

그게 바로 아테나였다.

하지만 안뚱땡과 안비실이 세상을 주무르며 힘의 대부분을 뺏어간 이후 그녀는 회의감을 느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인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시 해야 될 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두 명의 작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을 많이 되돌아봤다.

항상 해결사 혹은 현자 같은 면모를 보이며 타인에게서 많은 호의를 받아왔다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뭘 주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전쟁과 지혜 그리고 문명.

이 세 가지를 아무것도 발휘할 수 없게 된, 오로지 '아테나'라는 존재가 고립되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할 수단이 없다는 걸 자각했다.

신이라는 존재가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니.

혼자서 활동할 수 없고 사회를 꼭 갖춰야 한다면 그건 인간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 생각을 계기로 아테나는 자기 내면 속에 잠재워져 있던 인간성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여러 가지 감정의 갈등과 자기 행동을 반성하는 등.

자아 성찰의 시간을 오랫동안 가지게 되었고.

사건에 돌입하기 전 항상 다각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천벌'을 행할 때라고 해도 말이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때문에 아테나는 자기 분노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걸 뒤늦게서라도 인지를 한 상태였다.

아레스 같은 경우는 멍청하게도 아직 모든 감정을 백태양이란 인간한테 돌려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지만.

그건 놈의 지능이 원래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결과였다.

가벼운 전쟁조차 어렵게 끌고 가는 미련한 놈.

피를 덜 보게 할 수 있음에도 전쟁을 꼭 재앙으로 만들어 파멸로 이끄는 쓰레기.

그게 바로 아레스였다.

아레스는 게이트 안에서 백태양이 빨리 들어오길 기다리며 계속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스스로 행동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자신을 대표하는 신명에만 묶여 있는 존재.

아테나는 과연 저런 모습을 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애초에 신이 인간이랑 크게 다를 게 있을까.'

인간에게 신의 힘을 준다면 그게 신 아닐까.

고작 다른 점이 무력 하나라면 대체 이런 행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성찰을 하는 아테나와 다르게 아레스는 계속 흥분 상태였다.

"우! 우! 우! 우! 하하 아버님도 참, 굳이 이런 복잡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들 사이를 이간질 시켜서 전쟁을 벌이면 알아서 신의 위대함을 아실 텐데. 왜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하시는 지 원!"

"그게 안 되니까 이러는 거잖아."

"...난 포기하지 않는다!"

방금 대화를 통해 아테나는 아레스의 평가를 한 단계 더 낮추며 게이트 입구를 빤히 바라봤다.

이게 가장 피해를 적게 입히며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인걸 알아도 찝찝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하게 접근했다고 해도 정정당당함과 비겁함에게 떳떳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이번 같은 경우가 더더욱 그랬고 말이다.

천벌을 내리기 위해선 신의 힘이 필요하고, 지상에선 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기에 게이트를 만들어 아무도 볼 수 없게 하고 제한 시간도 최소로 설정해 웨이브를 일으킨다.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게이트 안에서 가지고 있던 힘을 그대로 밖에서도 쓸 수 있게 되고.

그 말은 즉 신의 힘을 가진 상태로 지상에 현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졸렬해, 아폴론이나 쓸 것 같은 방법이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헤르메스가 신발까지 뺏기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전령의 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빠른 그의 발목을 붙잡고 죽기 직전까지 팰 정도라면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녀는 자기 사파이어빛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게이트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1분 정도인가."

"게이트 제한이라는 거 정말 까다롭군. 마음 같아선 0.1초 같은걸로 하고 바로 나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런 억지는 안 부렸으면 좋겠어. 그게 법칙이잖아."

"허..."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이었기에 대화는 계속 단편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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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대화는 더 줄어들었으며 10초가량 남았을 땐 아예 서로 말이 없어졌다.

아레스는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자신의 모든 무구를 하나씩 챙겨 입고 있었다.

딱 봐도 들떠서 난장판을 피울 생각인 게 너무 보여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아레스는 결국 그 흥분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흉갑을 탕탕 치며 큰 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으하하하하!!! 인간들에게 신의 위엄을 알려줄 차례군! 이게 얼마만인지!"

"무의미한 살생을 할 생각이라면 내가 막겠다."

아테나는 천벌을 내릴 본보기로 백태양 딱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만에 하나 아레스가 헛짓거리를 한다면 바로 막아낼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아레스와 싸웠을 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아레스도 그걸 알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서로 무장을 챙기며 천벌을 내릴 준비하고 있을 그때.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게이트 입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런 쪽으로 경험이 없는 둘이었지만 저게 뭘 의미하는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인간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의 소란과 무관하게 게이트는 계속 요동치다가 툭 하고 인간 하나를 입장시켰다.

새하얗게 물든 머리와 대비되는 구릿빛 피부.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와 신성력이 가득 담긴 검까지.

"백태양! 네가 헤르메스가 말한 백태양이구나!"

아레스는 놈을 보자마자 상황 파악을 할 새도 없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뭐지?'

아테나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며 조금 뒤로 물러났는데.

이때 그녀는 백태양의 눈빛을 보고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목숨이 위협을 받는다거나 재앙이 닥칠 거라는 경각심과는 전혀 다른 처음 느껴보는.

인간성을 되찾은 이후로도 느껴보지 못 했던,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감정.

'...위험하다.'

그녀는 아직 제대로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 했지만, 그녀가 가진 처녀성은 아니었다.

도망치라고, 뒤도 보지 말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수도 없이 그녀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음에도 너무 오랫동안 처녀로 살아왔던 그녀는 이걸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백태양이 왜 자신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는 지를.

그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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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인가.'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보인 건 넓게 펼쳐진 땅이었다.

사방이 가로막혀 있으며 그 위로는 관중석이 쫙 깔렸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관광 명소에 왔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일단 주변을 살피며 아레스와 아테나가 어디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찰나.

"백태양! 먼저 와주니 고맙구나! 찾아갈 필요도 없고 말이야!"

쾅!

아레스가 나타났다.

기습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놈은 아주 위풍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일단 얜 찾았고, 그럼 아테나는 어디 있는 거지?'

똥개도 자기 집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헤르메스를 쉽게 팰 수 있었던 게 지상이었기 가능 했다는 걸 이미 인지한 상태였다.

즉 신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운다는 건 그만큼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기습을 당하지 않으려면 안 보이는 존재를 빠르게 찾아내는 게 중요했다.

"날 무시하는 거냐 백태양!!!"

"시끄러워."

소란스럽게 떠드는 아레스의 말을 씹으며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고.

'찾았다.'

아테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파이어빛 눈동자에 백옥 같은 피부.

만화책 속의 외모가 오히려 모욕처럼 느껴질 정도의 아리따운 외모였다.

확실히 만인의 우상을 받아야 하는 신답게 외모가 아주 뛰어났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처녀신이라.'

스틱스강에 처녀를 지키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맹세를 한 존재.

그건 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걸 알려줄 차례가 온 거였다.

'이제부터 처녀신이라는 건 없는 거야.'

난 곤봉과 성검을 꽉 쥐며 눈앞에 있는 아레스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무시 하지 말라고 네 번째 말하고 있다 백태양! 내가 인간에게 베푸는 마지막 준비라고 할 수 있지! 정정당당하게 싸우기 위해 네 입으로 네 이름을 들어야겠…"

"야 덩치."

"?"

"시끄러워."

남자는 죽이고.

"너 잡고 빨리 아테나 보러 가야 돼."

여자는 겁탈해라.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난 바로 아레스에게 달려들었다.

백발 태닝 티탄의 등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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