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51화 (251/325)

〈 251화 〉 없다, 없어.

* * *

"태양아아아아아아♥♥♥♥♥♥"

"유민아!"

와락!

등교하기 위해 집에서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마주친 건 유민이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날 기다렸는지 문을 열자마자 내 품에 쏙 안겨 왔다.

"너무 보고 싶었어 진짜루♥♥♥ 망할 교육만 아니었으면 방학 때 맨날 붙어서 태양이가 유민이 개보지 따먹어 주는 건데 그치♥?"

"당연하지, 진짜 매일 따먹었을 걸."

"아앙♥ 너무 좋아 태양이♥"

실제로 못 본 날만 따져도 두 달이 넘어가니 반가울 법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유민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교문에서 수진이도 만날 수 있을 테니 벌써 설렜다.

왜 전날부터 모든 여자들의 연락이 끊겼나 했더니 이런 기대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니.

'뭐 이런 것도 좋지.'

유민이와 손깍지를 끼며 걸어가는 등굣길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상 그 자체였다.

꿈에만 그리던 행복한 아카데미 생활의 표본이라고 해야 할까.

"두 달 정도 수행했는데 엄청 많이 변했네."

"그래? 그렇게 보여? 어느 부분이?"

"음... 확실히 더 예뻐졌어."

이건 정말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순도 100% 진실이었다.

무슨 훈련을 했는지 몰라도 붉은 머리칼이 더 윤기가 흐르고, 눈동자는 이제 아예 붉은색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몸매도 한층 더 도드라졌는데, 전체적으로 전신에 탄력이 흐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 기운.'

전에는 메인 스킬을 제대로 쓰지 못 해서 힘의 흐름이 아주 불규칙적이었다면.

지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힘이 원활하게 퍼지며 힘을 고루 공급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전투 태세가 가능하게 됐다는 뜻이었다.

"태양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이대로 반 들어가지 말고 미디어자료실 가서 유민이 개보지 따먹어 주면 안 돼요♥?"

"안 돼."

"힝."

물론 당연히 따먹긴 할 거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마계 갔다 오랴, 안뚱땡이랑 안비실 패랴, 뭐다뭐다 하면서 못 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수진이도... 멜라니도...혜미도... 리리엘도... 아니 진짜 거의 다 못 봤네?'

그중에서도 특히 유민이랑 수진이, 혜미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스토리에 개입되는 일이 적었다.

지금이야 소설의 영향에서 다 벗어났다지만 아직도 그랬다면 히로인 공기화가 쭉 진행 됐을 터.

완벽한 하렘을 추구하는 나에게 그런 건 정말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진짜 그동안 훈련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거 있지, 태양이보고 싶었는데 열심히 참았어♥."

"나도 엄청 보고 싶었어, 매일매일 우리 예전에 찍어 놨던 거 보고 그러면서 달래고 그랬지."

"달랬어? 진짜?"

"그럼 당연하지."

달달한 대화에 19금을 잔뜩 끼얹은 느낌.

유민이가 혹시라도 훈련받으면서 고된 일로 인해 성격이 바뀌었나 걱정도 했지만.

방금 걸로 그녀가 한결같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카데미가 멀지?'

아무리 걸어가는 중이라고 해도 각성자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걷는데 오래 걸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자각한 거지만 주변에 정말 우리 둘만을 제외하곤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인위적으로 누군가 조작한 듯 말이다.

"유민아."

"응, 알겠어."

유민이도 그걸 느꼈는지 그녀는 마법을 이용해 주변에 있는 모든 걸 감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많이 바뀌었네.'

예전 같았으면 마법을 사용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사용할 때마다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났을 텐데.

이젠 그런 거 하나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메인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찾았어, 우측 대각선."

"고마워."

쾅!

유민이가 알려 준 곳으로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두르자, 허공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막히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와 이렇게 빨리 걸릴 줄은 몰랐어, 니네 확실히 다르긴 하구나?"

막히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튀어나온 건 서양식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뱀이 얽혀있는지팡이와 날개가 달린 신발.

자기가 누군지를 아예 광고를 하는 수준이어서 정체를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헤르메스."

"어? 날 아네? 확실히 요즘 애들은 교육이 빠르다니..."

쾅!

놈이 말을 내뱉는 사이 순식간에 근처에 접근해서 다시 한번 더 주먹을 휘둘렀다.

생각지도 못한순간의 기습은 당연히 그대로 먹혀들어갔고, 헤르메스는 뺨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소리는 안 나는군.'

경험상 때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는 놈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김민수와 안뚱땡은 돼지 멱 따는 소리, 안비실은 시조새가 울 것 같은 소리가 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타격감.

두드리면 알 수 있다는 해결 확률 100% 치료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왜 때리는 거야!"

"개수작을 부리길래."

"난 그냥 대화할 생각으로 조용한 곳을 만들었을 뿐이야, 인간들은 대화 하려고 조용한 카페에 간다면서!"

"인간은 보통 낯선 상황에 갑자기 처했을 때 이런 식으로 대응해."

신이라고 해서 엄청 높은 지능을 가지고 상상 속의 귀족 같은 모양새로 행동할 줄 알았었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수준이 안뚱땡과 안비실이 만든 애들이랑 비슷했다.

다른 점은 걔네보다 덩치가 더 크고 강하다는 것 정도.

"그게 말이...어? 헤라님?"

"뭐?"

"아, 아니야."

헤르메스는 날 한 번 보고 난 후 유민이를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헤라를 언급했다.

'헤라랑 유민이가 닮았다고?'

이 정보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몰랐지만 일단 기억은 해 두기로 했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더 이상 질질 끄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헤르메스한테 바로 본론을 물어 봤다.

멋지게 등장하려다가 간파 당하고 한 대 맞기까지한 놈은 날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네가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꼬우면 한 판 뜨던가.

"넌 제우스님의 말을 거절한 대가를 받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게 두렵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항복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래? 그거 정말 무섭네. 제우스님이 어떤 천벌을 내리는데?"

"인간들에게 내릴 천벌이 다 비슷한 거 아니겠어? 벼락을 뿌리고 너와 관계 있는 모든 사람이 죽어 나갈 거야."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린 억울하게 힘을 빼앗겼었고, 이제 되찾았으니 원래 세계로 돌려야지.

헤르메스는 제대로 입이 터졌는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작가? 뭐 그런 것들이 사라졌으니 다시 신들의 통치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 그게 맞잖아. 그리고 헤라님이랑 헷갈려서 미안 했어, 너무 헷갈려서 말이야. 헤라님이 너랑 똑같이 생겼거든 특히 그..."

빡!

못 들어 주겠네.

시간을 잡아먹는 헤르메스의 말을 끊어먹고 바로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김민수랑 얘랑 다를 게 뭐지.'

굳이 찾아보자면 김민수는 스토리 상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때릴 때 늘 손대중했다는 거고.

헤르메스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너 진짜 미쳤어?! 마지막 경고라고!"

"그래, 이게 내 마지막 대답이야."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얘네가 날 멍청하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안뚱땡과 안비실을 처치한 게 요행이거나 운이라고 생각해서 헤르메스 하나만 보낸 거겠지.

게다가 헤르메스 하나만 보냈기에 난 더 정확하게 놈들의 견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타격이 그냥 먹히고... 피해도 그대로 입어, 아픈 척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물론 이게 전력은 아니겠지만 대충 짐작 해봤을 때 칠죄종 수준과 비슷해 보였다.

이런 논리라면 주신 제우스는 마왕과 비슷하거나 살짝 급이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퍽! 빡! 쾅! 쿵!

"그만! 그만 때려! 니 대답은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천벌이 내려질 거야. 각오 하는 게 좋아!"

생각하면서 유민이와 함께 헤르메스를 두드리는 사이.

헤르메스는 인간의 폭력을 견디지 못 했는지 급하게 발을 움직이며 도망칠 움직임을 보였다.

"그냥 가면 곤란하지, 그건 두고 가라."

"뭐?"

전령의 힘을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게 해주는 헤르메스의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

도둑의 신이기도 한 놈의 몸짓을 따라가 튀기 전에 신발 한 짝을 벗겨 냈다.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 지각을 해도 억울하지가 않지.

"우리가 지상에서도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날! 두고 보자!"

흡사 로X단 대사를 내뱉고 사라진 헤르메스.

아마 놈의 성격상 천벌을 알리기 위해 내려왔다기보단 날 놀리러 왔을 게 뻔했다.

그만큼 장난을 좋아하는 신이라는 묘사가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헤르메스에게 얻은 정보 중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민이와 헤라가 닮았다는 말, 그 말은 왠지 히로인들이 신들과 닮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유민아 우리 반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도서관부터 갈까?"

"어차피 지각이니까? 도서관에서 하는 섹스 좋아♥"

"나도."

"헤헤... 사랑해."

유민이와 주거니 받거니 사랑을 나누며 다시 등교를 이어갔다.

만약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건 제우스와 내 싸움이 아닌.'

백태양과 원조 금태양의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이미지가 그렇긴 했는데, 솔직히 걱정이 됐고 자신도 없었다.

'떨린다.'

너무 시시하게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질 자신이.

없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