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50화 (250/325)

〈 250화 〉 성춘향 성교육

* * *

김민수를 감옥에 넣고, 평화롭게 맞이하는 토요일.

춘향이와 메르피를 소환한 후 난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견주가 된 기분이네.'

주말에 소환수를 풀어두고 티비를 보는 삶.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느긋함이었다.

애완동물 대신 19금 덩어리 소환수가 둘이나 있다는 게 흠이긴 했지만.

뭐 그래도 별문제 없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메르피! 빨래를 그따위로할 거면 니년 보지를 세탁하듯이 얼음으로 쫙쫙 빨아서 밖에 걸어두겠사와요!"

"마,말이 너, 너무 한 거 아니냐... 나, 나는 그,그저 주인 놈의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한 건데 막, 보보지...그러니까..."

"그럼 도움이 되도록 똑바로 하세요, 도움도 안 되는데 도움 줬다고 생색낼 걸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 죽을지경이니까요!"

"알겠다아..."

장점은 혼자 있을 때보다 시끌벅적하다는 거였고.

단점은 혼자 있을 때보다 시끌벅적하다는 거였다.

장점과 단점이 하나 된 그야말로 무한 순환 고리라고 해야 할까.

'신들이라고 해서 바로 올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기자 회견장을 망치고 그렇게 멋지게 포부를 말했으면 뭔가 일어날 법도 한데.

놈들은 선전포고 했던 기세와 다르게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의아함을 느껴, 리리엘한테 루베니아가 어떠냐고 물어 봤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견적을 보는 건가.'

세계를 주무르던 작가 둘을 완벽하게 물리 치료한 나한테 바로 덤비기란 쉽지 않겠지.

그래도 나름 신이란 작자들이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로 나설 줄은 몰랐다.

여태 악역으로 등장하는 애들이 찌질하거나 소극적인 게 다 안뚱땡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안비실도 그렇고 신이라는 놈들도 그렇고, 다 비슷비슷한 거 보면 참.

빌런이 되려면 그래야만 하는 시험 같은 게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할 게 없냐.'

마음 같아선 당장 여자 친구들한테 연락을 싹 돌려서 광란의 데이트를 즐기고 싶었지만.

안뚱떙과 안비실이 사라지고 난 후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일단 혼자 있는 쪽을 택했다.

이 부분을 그대로 말할 순 없는지라, 여친들한텐 어쩔 수 없이 대충 둘러댔기에 나중에 꼭 보충 데이트하기로 약속 했다.

그렇게 한참을 티비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썩히고 있을 때 춘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으리! 집안일 다 끝났사와요."

"어어 그래, 고생했어."

"주인놈아! 나도! 나는 왜 칭찬해주지 않는 것이냐."

"그래, 메르피도 수고했어."

"후훗, 당연하다."

소환수들이 집안일도 다 해주니 가정부를 고용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춘향이 같은 경우엔 우렁각시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며 내가 사람을 고용하는 걸 극구 반대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더 잘하고 밤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낮시중도 당연히 드는 게 맞다나 뭐라나.

"그럼 소녀 할 일이 다 끝났으니 쉬러 가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주인놈아! 나는 간식이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티비 채널이 있다!"

"그래... 알아서 해라."

19금으로 뇌가 가득 찬 성인 여자와 머리가 텅텅 빈 것으로 추정되는 성검과 함께하는 동거 생활.

이젠 슬슬 익숙해졌을 때라 평소처럼 넘기려고 하는 그 순간.

'어?'

뭔가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무언갈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뇌를 가득 채우며 계속 정답을 짜내길 요구하는 듯했다.

'뭐였지? 뭘 까먹었지? 어디서 잘못된 거지?'

상황을 다시 한번 더 점검했다.

춘향이랑 메르피가 집안일을 끝내고, 메르피는 휴식을 취했고 그건 춘향이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춘향이도 마찬가지라고?

'그거다!'

벌떡.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춘향이가 들어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반드시 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 했는데 까먹고 있던 그것.

"춘향아!"

"네 나으리!"

"할 게 있다!"

"네!"

오늘이야말로.

성춘향의 잘못된 성 지식을 바로잡을 때였다.

+++++++++++++++

"일단 편하게 앉아."

"네 나으리."

"...? 넌 왜 왔어."

춘향이를 의자에 앉혔을 때 옆자리엔 메르피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나도 성 지식에 대해 알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주,주인 놈의 자,자지를 받은 몸이니..."

마지막 말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점점 목소리도 작아지는 게, 진짜 내가 처녀를 따먹었구나 싶었다.

너무 처녀스러운 반응이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춘향이 맞춤 교육이어서 뭐 너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냐만은 일단 그래."

시간 낭비는 여기까지 하고.

난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춘향아 문제를 내면 네가 정답을 맞춰 그리고 내가 답변을 수정해 줄게.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할 거야 알겠지?"

"넵 나으리!"

"남자랑 여자가 손을 잡았어, 그럼, 여기서 무슨 생각이 들어?"

너무 어려운 것부터 들어가면 안 되니 쉬운 것부터 가기로 했다.

복잡한 어떤 연애에 대한 감정을 물어보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으니까.

"그거 완전 섹스각 아닌가요?"

"뭐?"

"제가 검색하기론 손을 잡았을 때 손바닥에 엄지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면 바로 그게 내 자궁을 따먹어달라는 신호로 알고 있습니다. 소녀, 그것을 판단했을 때 아무래도 여자 쪽에서 어떻게든 자궁에 정액을 가득 채워서 배를 빵빵하게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게 아닌지..."

"...아냐 틀렸어 그건 그냥 단순히 풋풋하게 손을 잡은 거야, 다른 목적이 아니라 정말 손을 잡기 위한 게 그 목적이라고."

"그럴 리가요 나으리...!"

비정상적인 오답을 상식적인 대답으로 바꾸자마자 들려오는 경악.

춘향이는 장난 치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를 연신 내보인 성춘향.

난 그런 모습에 동요하지 않고 문제를 하나 더 냈다.

"진짜 이번 건 아까보다 더 쉬운 거야. 그냥 단어의 뜻만 물어볼게. 순애가 뭐야?"

"순순히 애를 낳아라, 순순히 애를 낳을게, 순진하게 생긴 애를 따먹고 싶다."

미리 입력이라도 된 것처럼 척척 나오는 대답에 살짝 현기증이 났다.

평소에 어지럽게 했던 사상들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자 정말 심연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다소곳한 한복을 입고 얌전히 있는 애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거지.

"순애는 순수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야. 정말 그냥 아름다운 뭐... 로맨스에 나오는 그런 거 있잖아."

"하지만 걔네도 결국 섹스하지 않나요 나으리? 말로 안 해서 그렇지 결국 자궁을 큥큥 내놓고 배란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리를 M자로 벌리고 남성에게 성기를 달라며 목 놓아 울부짖을 게 분명하답니다."

"...아, 아닐 걸?"

"맞사와요"

진리를 엿 봤기에 정답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뉘앙스에 난 당황했다.

"제가 최근에 인터넷과 소설 사이트에서 몇 가지를 좀 보아하니... 대부분 정말 그랬사와요."

소녀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는 것이니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춘향이의 정돈된 태도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난 그녀의 말을 다시 한번 더 곱씹었다.

'인터넷? 소설 사이트?'

얘가 그럼 지금 정말 쉴 때마다 꾸준히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했다고?

너무 신빙성 없는 말이어서 한 귀로 흘렸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뭐 보는데?"

"네?"

"인터넷이랑 소설 사이트 뭐 보냐고."

"당연히…"

춘향이의 입이 열리자 판도라 상자가 개방된 순간처럼 세상 모든 욕망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해외, 국내, 불법, 합법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오는 춘향이의 방대한 성 관련 사이트들.

더 놀라운 건 그녀가 거기서 꽤 네임드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벨피아가 있사와요 나으리."

"마지막은 그래도 그나마... 뭐... 전연령도 있으니까."

"소녀는 19금이 아니면 취급하지 않사와요."

"...그래."

교육할 생각을 포기했다.

해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수많은 사이트에서 활동하며 색천마라고 불리는 고위급 네임드를 어떻게 교화시킨단 말인가.

'그래 그냥 이대로 살자.'

더 이상 깊은 심연을 쳐다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성춘향.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어둠이었다.

++++++++++++

"드디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좋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헤르메스, 그런 의미에서 저번에 보냈던 전령은 어떻게 됐지?"

"그게... 박살이 났다고 합니다."

"뭐라?"

올림푸스 안.

제우스는 자신이 보낸 전령이 백태양에게 박살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아무리 안뚱땡과 안비실한테 억눌러 왔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정도를 넘은 일이었다.

자신들은 절대로 무시당할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 줘야만 아는 건가! 용사라고 해서 잠시 좋게 봐줄까 생각도 했거늘!"

"근데 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존재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이제 우리가! 신이 있는데 어찌 아직도 똑같은 태도를 유지 하려 하느냐!"

당장 천벌을 내릴 준비를 해야겠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늑대가 나타난다 했던가.

백태양이 없는 곳, 안뚱땡과 안비실의 결말을 향해.

똑같은 결말을 밟으려 하는 올림푸스 신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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