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짓밟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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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찰칵 찰칵찰칵
수많은 카메라가 플래쉬를 터트리며 날 한 번이라도 더 담으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여태 한 기자 회견 중에서 이번이 제일 역대급 같은데.'
대여한 공간이 기자들로 꽉 차다못해 터질 지경이었는데.
자리가 부족하니 각성자 기자들은 천장에 매달려서 날 찍으며 마이크를 쭉 내밀고 있었다.
"백태양 헌터! 범죄자 김민수를 어떻게 잡으실수 있으셨습니까?"
"어디 있는지도 알아낼 수조차 없었던 범죄자를 찾아내실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백두산 중턱 거미 습지 던전을 솔로로 공략하셨다는 말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귀국하자마자 내가 제일 처음으로 한 건 경찰을 부르는 게 아닌 기자를 모으는 거였다.
경찰부터 부르게 된다면 내가 한 일이 소문이 제대로 나지 않을 수 있으니 선택한 결과였다.
강태민과 최영남 회장님의 도움을 통해 기자를 소집 했고,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 광경이 펼쳐진 거였다.
다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공항 근처에서 숙식을 했나 생각할 정도로 미친 속도였다.
"일단 차례대로 질문 받겠습니다. 아까 질문이 김민수를 어떻게 잡았냐였죠? 그냥 감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 있겠구나, 싶어서요."
"오오오오오오..."
찰칵찰칵 찰칵찰칵
유명하면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별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대답에 현장은 감탄으로 가득 채워졌다.
기자 회견을 연 목적은 이런 대접을 받으려는 것도 있었고, 대회를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장두철한테 외부 대회 참여한다고 해 놓고 어쨌든 다른 짓을 한 거니까. 그걸 무마 시킬만한 굵직한 게 필요했다.
'기자 회견을 통해서 아카데미 위상을 조금 높이면 괜찮아지겠지.'
김민수는 호흡이 불규칙한 것으로 봐서 진즉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젠 불가능하단 걸 깨닫고 기절한 척을 쭉 하는 상태였다.
이해는 된다만 그래도 여기가 마지막으로 서는 공식 선상일 텐데 저러고 있다니.
자기한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게 기회인지 썩은 동아줄인지 구분을 못 하는 놈이었다.
"그다음은 뭐... 똑같이 감각적으로 가장 큰 대회에 출전을 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그걸 면죄부 삼는다 뭐 이런 계획을 세웠을 것 같아서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혹시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김민수와 컨택을 따로 하진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신지...?"
단 한 명의 트롤링으로 인해 싸해진 분위기.
기자들은 방금 질문을 한 자식이 어디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기 시작했다.
3초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찾았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든 분노가 한 명을 향해 쏘아진다.
'뭐지?'
근데 질문을 내뱉은 기자한테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걸 어디서 느꼈더라,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수상했다는 거다.
그래도 아직 별다른 걸 하진 않으니 그 기자를 주시하며 상황을 잠깐 관망했다.
"방금 말한 새끼 누구야!? 미친 거 아니야!?"
"끌어내! 끌어내서 여기가 어디고! 누구에게 그따위 말을 내뱉었는지! 몸으로 알려 줘야 한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기자 회견장.
난 손을 슬며시 들며 진정을 요구했고, 정말 빠르게 상황은 진압 되었다.
이 정도 시끌벅적함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기자.
보통 인간이라면 진즉에 얼굴이 하얗게 돼서 발발 떨었을 텐데.
확실히 뭔가 있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네요. 뭐 이상한 질문은 받지 않을 생각이고 이런걸로 기분 상해서 금방 기자 회견을 접진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오... 대인배.... 역시..."
"얼굴도 잘 생기고 몸도 좋고 능력도 출중하고... 허벅지 사이엔 포신을 달고 다니고... 없는 게 없는 남자 백태양. 여기에 인성까지 갖추다니 얼마나 이기적인지..."
마지막 말은 기자가 한 게 아닌 백태양 코인으로 한몫 두둑하게 챙기고 있는 강태민의 대사였다.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전국에 '내가 백태양의 매니저다.'를 각인 시켜 주려는 듯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편하긴 했지만 가끔 이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람을 띄워줄 때가 있었다.
[주인놈아 뭐가 그게 부담인 것이냐! 당연한 취급받고 있는 겠지! 날 뽑고 용사가 되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니라! 게다가 너는 나를 거,검집으로 쓰기 까지 한 엄청난 허접이 아닌……]
[맞사와요 나으리, 나으리는 킹갓제네럴엠페럴마제스티충무공불멸의이순신태권도진 회축메가톤……]
'그만.'
그 이상하면 뇌절이야.
메르피와 춘향이의 쫑알쫑알 콤보가 이어지기 직전 바로 맥을 끊었다.
전용기 안에서도 계속 저런 식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더니, 아주 끝을 몰랐다.
"백두산 솔로 공략은 모두 헛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거길 혼자 공략하겠습니까? 과분한 사랑으로 헌터라고 불릴 뿐. 전 아직 현역 헌터들에게 턱없이 부족하며 배워야할 게 많은 입장입니다."
여기선 겸손과 존경을 보이는 말투로 대충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맞았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알려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1학년이 벌써 이 정도면 왜 굳이 아카데미를 다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는 건수였기에.
아카데미를 오래 다니며 느긋한 일상을 보내고 싶은 나에겐 가장 피해야 할 주제였다.
게다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고작 백두산 중턱 가지고 이런 식으면 곤란했다.
'때가 되면 어련히 밝혀질텐데 참.'
나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됐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혹시 더 궁금하신 거 있습니까? 조금만 더 받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얼추 말해야 될 건 다 끝났으니 팬 서비스 차원에서 몇 개만 더 받고 자리를 끝내려는 찰나.
"신이 당신을 위협한다면 당신은 복종할 것입니까?"
"?"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내가 개소리라며 무시 했던 기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뭐지?'
근데 묘하게 뭔가가 달랐다.
사람이 말했다고 보기에 과하게 어색한 문어체.
그리고 살살 풍기는 익숙한 기운까지.
루베니아에게서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사람들 대피시켜 주세요. 저 사람만 빼고요."
"알겠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급하게 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며 질문을 뱉은 기자를 빤히 쳐다 봤다.
자세히 보니 눈에서 미약하게나마 전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신은 당신에게 고마워하며, 당신이 마땅하게 자신들의 대리자 자리를 내려줄까 생각합니다.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당연한 예의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뭐?"
안뚱땡이 사라지고 안비실이 힘을 잃었을 때 나타난 메시지가 떠올랐다.
억눌려 왔던 신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
그것 때문에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 같은데.
어이가 없었다.
"무슨 개소리야 대체."
"위,위대하신 제,제우스니니니니님의 오오오올림푸스!!!"
삐걱 삐걱 삐걱.
기자는 말을 더 전달하기 어려운 지 제대로 된 발음을 내뱉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몸을 이리저리 꺽었다.
징그러울 정도는 아니었고 각기춤을 추거나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느낌이었는데, 신선했다.
"아아아니다, 아아,아아스,아스가르드드드드드드에 보보보복, 아아아니 너는 우리에에에에에게게게게게"
"음. 그렇군."
뭐라고 하는지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이것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명백해졌다.
난 박수를 치면서 기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처음부터 사람 같지 않은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신들의 꼭두각시였구나.
"신들에게 전해, 안뚱땡이랑 안비실이 어떻게 나한테 처맞았는 지 아냐고."
모르면 그럴 수 있었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것들이 안뚱땡이랑 안비실한테 처맞고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쐬니까 정신이 이상해질 수 있었다.
그래,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땐 나랑 대화 해야지."
여기서 잠깐 짤막하게 자기소개하자면.
내 이름은 백태양.
직업은 대화를 주 수단으로 삼는 치료사이며.
완치한 환자는 안뚱땡과 안비실이 있으며 현재 100%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올림푸스? 아스가르드? 다 데리고 와."
하나씩 밟아줄 테니까.
이 세계에 주인공이 사라졌다고? 그럴 리가.
내가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짓밟아줄게."
다시는 지상을 넘보지 못하도록, 살려 준 것에 감사하며 평생 고개를 조아리며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도와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 직업은 치료사.
안 되는 걸 되게 하는데 특화된 직업이었다.
"지지지지금 마마마마말 잊지 안않?않?!겠겠!!"
빡!
개소리를 더 들을 필요가 없어서 주먹으로 꼭두각시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으드드드드."
추욱.
한 대 맞자마자 바로 쓰러지는 꼭두각시.
마치 그 모습이 뱀 허물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아직 맞아야 할 애들이 많구나."
환자가 속출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네."
당분간 백태양의 업무는 끊이지 않을 모양이었다.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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