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그래서 어쩌라고
* * *
놈을 때리기 직전 자신을 원작자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 모습에.
"그래서 어쩌라고."
깡!
망설임 하나 없이 곤봉을 후려쳐 놈의 머리통를 후려깠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설마 내가 그 소리 듣고 '아이고 그랬습니까'하면서 넙죽 절이라도 할 줄 안 건가?
실제로 그걸 생각하고 있었기에 방어막 하나 세우지 않고 멀뚱멀뚱 서있던걸겠지.
"그래 뭐, 안뚱땡은 표절 작가고... 너는... 뭐 안비실로 부를 게, 너는 음... 원작자라 이거지?"
안경뚱땡이와 안경비실이의 환상적인 조화.
근데 원작자고 나발이고 안비실은 내 성격 파악을 전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내가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하나 있었어. 수진이랑 백화점 게이트를 막았을 때였는데."
4월초 수진이와 보금자리몰 데이트하면서 오크를 때려잡았을 당시.
그때도 지금처럼 내가 다 잡아둔 걸 당당히 내놓으라는 연구원이 존재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면서 그대로 표본을 채취해야 한다고 하며 주장했던 존재들.
"너 내가 그때 어떻게 했는 지 전혀 모르는구나?"
이렇게 했어.
스스스슥 쾅!
[일점집중 발동! 곤봉에 모든 힘을 집중시킵니다.]
[유수진의 메인 스킬 철혈을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바닥에 박혀 있는 안뚱땡에게 몸을 이동시켜, 그대로 곤봉으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안뚱땡은 그나마 팔딱팔딱 거리던 몸이 곤봉에 직격 당하자마자 몇 초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오징어처럼 축 늘어졌다.
똑같은 상황이라면 무조건 똑같은 결과를 내야 하는 게 당연지사.
이거를 위해서 그들이 처들어와도 상관없다는 뉘앙스를 풍긴 거였다.
그게 걱정 됐다면 처음부터 유이와 카리스가 같이 따라오려는 걸 막았겠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얼마든지 변수가 생겨도 항상 동일한 결과값을 뽑아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나!"
"내가 잡은 걸 왜 니들이 요구해, 꼬우면 니들이 잡았어야지."
이건 내가 백태양의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바뀌지 않는 절대적인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 비실아, 너는 진짜 왜 이렇게 아까부터..."
말이 짧냐?
미쳐서, '내가 원작자요'이러면 뭐 상황이 쓱쓱 풀릴 줄 알았던 건가.
알리바바도 아닌 놈이 주문을 실컷 외워 봤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원작자는 지금 힘을 거의 다 잃은 상태다.'
안뚱땡이 안비실의 힘을 뺏어서 소설을 만든 거라면.
안비실은 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걸 다시 되찾으려고 발악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 과정 중 하나가 안뚱땡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힘을 뭐 추출하려고 한 거였겠지.'
물론 안비실이 힘을 되찾게 된다면 세상이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안뚱땡이나 저놈이나 다를 게 없는 거였다.
결국 이 세상이 딱 한 명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뜻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강압으로 인해 머리가 박힌 안비실의 딱까리들을 곤봉으로 하나씩 땅에 처박는다.
두더지 게임으로 치면 두더지들이 머리만 빼꼼 내밀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 느낌.
이 모든 걸 1분 안에 해결하고 다시 안비실을 바라봤다.
놈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 있었다.
"바, 방금 안뚱땡을 네가 처리함으로 이 세상에 큰 혼란이 도래할 거다! 내가 만들었던 소설의 전개를 나도 모른다고! 그럼 얼마나 큰 혼란이!"
"야, 말이 짧다고."
[강압 출력 100%!]
[무리한 메인 스킬 출력은 몸에 강한 부하를 일으킵니다.]
[현재 마족화와 폭군을 같이 쓴 상태에서 올리는 출력입니다.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출력을 100%로 올리자마자 땅이 진동하며 머리를 박고 있던 놈들은 아예 땅속으로 점점 파고들어갔다.
딱딱한 흙바닥이 늪이라도 되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하로 들어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지금 말 짧은 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중요해."
아주 중요해.
저벅저벅.
난 아까처럼 급속도로 달려드는 게 아닌 아주 느긋하게 놈에게 걸어갔다.
"난 아랫것들이 기어오르는 걸 싫어해, 그리고 내 걸 가져가는걸 좋아하지 않아."
원작자여서 내 강압을 견디는 것 같은데. 그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달달달 떨리는 다리와 두르르르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걸 증명했다.
"넌 근데 지금 그걸 다 하고 있잖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꾸욱.
"끄아아악!"
원작자의 발등을 지르밟으며 놈을 내려다봤다.
안비실은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지 고통 속에서도 말을 내뱉었다.
"그런 사사로운 걸 따질 때가 아니라니까 왜 모르는가! 대의! 대의를 위해서였네! 이 모든 게 결과적으로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텐데 왜 몰라주는가! 저놈의 힘을 흡수했다면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가꿀 수 있었을 텐데!"
대의? 대의는 얼어 죽을.
그 대의를 위해서 그럼 난 그렇게 개고생을 시킨 거냐?
어이가 없어서 일단 다시 한번 더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화가 너무 나니까 진정이 안 되네 이게.
"내가 백화점 게이트에서 벌벌 떨 때 넌 뭐 했지? 앞으로 전개에 대해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땐? 김민수한테 뒤통수 맞아서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땐? 내가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넌 뭐 했냐고."
정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였다.
그런 거 싹 다 무시하고 내가 안뚱땡을 끊임없이 압박해서 모습을 잡아낼 순간이 되니까 나타나서 내놓으라니.
그것도 뭐 엄청난걸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안비실은 쭉 이어지는 내 말에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양심이 없다고 생각하겠지.
"네가 저놈의 힘을 뺏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그리고 있잖아, 세상엔 이제 작가가 필요 없어."
모두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간다.
신에 의지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건 기댈 곳이 필요한 마음일 뿐.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얼굴도 모르는 존재의 꼭두각시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이미 정해진 결과가 있고 난 그걸 그저 그대로 따라가며 사는 삶을 산다는 건.
"너무 재미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넌 안뚱땡한테도 털렸으면서 왜 그렇게 막 당당하냐? 쟤한테 털린 거 보면 너도 뭐... 별반 다를 거 없잖아."
루베니아와 문답을 나눴을 당시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 하나씩 설명 된다.
'그는 내가 백태양 몸에 빙의한 게 모두가 원해서라고 했어.'
모두.
그건 개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으며, 그렇다는 건 안비실이 의도한 게 아니란 말이 된다.
그리고 나한테 뭘 해줬냐는 말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면 튜토리얼을 안배해준 존재도 아닐 터.
"넌 효용 가치가 너무 없잖아."
그래도 네가 어느 정도 기틀을 만들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겠지.
원작이 있어야 표절이 나오고 계속 계속 파생이 될 수 있는 거니까.
"나 혼자 하는 중이었다가 숟가락을 과하게 얹으려 그러네?"
빡!
그 말을 끝으로 주먹 모든 힘을 담아 안비실의 턱주가리를 강타했다.
"너허...저허아...모오아아우이어..."
턱주가리가 털려서 강냉이가 다 빠진 안비실은 발등이 밟혀 있어 도망치지도 못하고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외롭게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이게 내가 항상 겪고 있었던 스트레스야.
빙의 된 사람이란 걸 아무한테 말도 못 하고 모든 걸 스스로 판단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전개를 만들었어.
"정말 못 돌아갈 수 있다라... 넌 이 상황에서 끝까지 잘못했습니다가 안 나오네, 말도 짧고."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예의가 없냐.
지금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판단이 아예 안 되는 건가.
원래 지구로 돌려보내줄 수 있다가 유일한 교섭 물건이라면 날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서 잠깐 놈을 놓아주는 게 맞을 지, 죽이는 게 나을 지에 대해 고민했다.
'음... 죽일 정도까지는 아니긴 해.'
후환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남긴 했지만 사실 그것도 있으나 마나한 수준으로 보였다.
안뚱땡의 힘을 뺏으려고 끌어모은 놈들 수준이 다 바닥에 처박히고 있는 정도라면.
몇 트럭이 와도 무난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안뚱땡도 끝났으니 목적을 상실한 상태여서 의욕도 없을 게 분명했다.
실제로 안뚱땡이 축 늘어지자마자 안비실은 급속도로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기세가 일반인 수준으로 변했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맷집 하나만큼은 김민수 수준이었지만 그 외는 모두 볼품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몇 대 패고 가자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뭔가... 어떻게 하지.'
그런 고민하고 있을 무렵.
안뚱땡이 쓰러진 자리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르륵.
빛이 뿜어지는 것과 동시에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
안뚱땡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은 하나의 책이 되어 펼쳐진 후 계속 계속 끝쪽을 향해 넘어가고 있었다.
라고 적힌 제목의 글자는 점점 사라져 갔으며, 그걸 본 안비실은 어디서 힘이 솟았는 지 거센 몸부림을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막아야 된다고! 너 저거! 저게 뭔지 알!"
빡!
"시끄러, 아니 왜 계속 얜 말이 짧지? 덜 맞았나."
이 정도 때렸으면 어련히 말을 높여야 정상인데.
확실히 안뚱땡이랑 비슷한 과여서 그런지 말 하나는 더럽게 안 들어처먹었다.
앞이빨이 전부 다 나갔는데도 꿋꿋하게 말을 까는 그 기개, 진짜 더 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사라지면 정말 다 끝이라고! 끝이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니 소설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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