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끝을 보자, 민수야. (기존 전개 일부 수정)
* * *
"흐아아앙...이...이게 전부예요 태양님..."
"정말 이게 전부야?"
"네, 네 진짜 이게 끝이예요 그러니 제발, '제발 더 이상... 보지에 얼음 그만 넣어 주세요. 너무 차갑고... 이걸로 싸니까 너무 수치스러워요..."
"나으리, 이 갈보년 지금 당장의 고통 때문에 거짓말하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사와요. 소녀를 믿어 주시고 시간을 더 주신다면 이 년의 씹물을 전부 뽑아 가뭄 보지로 만들겠…"
"아냐 그럴 필요는 없어 보여."
춘향이가 더 하려는 걸 멈추게 한 뒤 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샤엘을 내려다봤다.
씹물을 줄줄 흘리고 허벅지는 달달 떨면서 날 애처롭게 쳐다보는 샤엘.
동정심이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날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 체벌이 약한 거지.'
마음 같아선 정말 춘향이 말대로 보지를 완전 가뭄으로 만들 생각으로 아이스 피스팅을 시키고 싶었지만.
마계에서 유일하게 있는 내 편이기도 했고, 아직 그녀에게 얻어낼 정보가 많았으니 이쯤에서 멈추는 게 맞았다.
"세력을 만들면 마계 회담 때 유리해서 그랬다는 거지? 정말 다른 뭐가 있는 게 아니라?"
"네, 네 정말이예요. 제가 뭐 하러 태양님에게 반하는 행동을 하겠어요? 저 정말... 정말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 말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젖을 움켜잡으며 유두를 살살 돌리는 게 역시 서큐버스 퀸이구나 싶었다.
'이 순간에도 끼를 부리네 하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본능은 본능이란 건가.
저걸 가지고 딱히 뭐 어떻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나 좋아서 하는 행동인데 굳이?'란 느낌이 강했다.
"그럼... 마계 회담도 사실 그냥 형식적인 자리일 뿐이다?"
"네... 마왕님이랑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곱 명이서 각자의 영토와 자리를 어떻게 할지 논의를 하는 정도예요."
그럼 마계에서 얻어갈 수 있는 정보는 없는 거였네.
샤엘이 날 부른 이유도 딱히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란 걸 들었을 때 얼마나 허무했는지.
마계 회담도 강제적으로 참여할 이유도 없었기에 난 마계에 더 이상 있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이유도 내가 멋지게 보이길 바랐기 때문이었고, 마계 회담에 참여한다고 해서 별 이득도 없으니.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샤엘, 미안 하지만 지상으로 가는 통로 좀 열어 줄 수 있어?"
"가, 가시게요?"
"응."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마왕이 너무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하지만 그 정도라면 천해일이 알아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서로 끝판왕 포지션이니 알아서 하겠지.'
이후 울먹거리는 샤엘을 적당히 달래준 뒤 자주 만나러 오겠다고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앞으로는 꿈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과 김민수가 무슨 짓하면 바로 연락을 달라는 것.
이 두 가지를 말하니 그녀도 더 이상 칭얼거리며 내 품에서 고개를 도리질 치지 않았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안심 시키고, 임무를 줘서 책임감을 가지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엘과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면서 그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주 좋은 수였다.
"그럼 다음에 또, 아니 오늘 꿈에서 꼭 봬요 태양님!"
"그래 고생했어."
이 대화를 끝으로 짧은 마계 여행기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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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은 빠르게 흘러 개학식 날 당일.
방학 동안 특별한 일이라곤 마계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정말 심심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만한 것도 없지.'
루베니아도 만나지 못하고, 김민수는 뭐 알아서 마계에서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다 했으니.
굳이 내가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4월부터 시작된 강행군은 7월 말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졌으니 휴식을 할 때가 됐었다.
느긋하게 집에서 보내는 호캉스.
이것만한 보상이 없었다.
"근데 니네 조직 보스는 대체 누구야?"
"응? 그건 왜?"
"아니 죽이려고 들 땐 언제고 이젠 아예 너무 느긋하게 있어서..."
간단한 개학식이 끝나고 난 곧바로 유이와 카리스를 찾아가서 바로 궁금한 걸 물어 봤다.
세상을 원래대로 돌린다는 거창한 계획을 가질 땐 언제고 지금은 하하 호호 친구로 지내게 하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방학 동안 특별히 나한테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얘네도 따로 활동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자기들이 '진짜 노블'이라고 말했던 처음과는 달리, 점점 이름만 그럴 듯하고 실속이 없는 '가짜 노블'과 아주 똑같은 모습을 보이었다.
"굉장히 무례한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군."
"난 원래 이렇게 생겼어."
삐딱하게 나오는 카리스는 무시하고 내 질문에 답해 줄 유이를 지그시 쳐다 봤다.
유이는 방학 때 동안 태닝을 살짝 덜 했는 지 피부가 조금 연해져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딥다크 초코색에서 그냥 초코 우유 색깔을 띄는 느낌.
그녀는 말을 잠시 고르듯 이리저리 입안에서 혀를 굴리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음...사실 태양쨩,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예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거고... 각각 수단은 다 다르다고 했잖아? 그래서 정보 공유가 굉장히 적은 점조직이야."
"그렇다고 보스가 누군지는 알 거 아냐, 아니면 혹시 말하기 곤란한 거야?"
"음...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노블 자체가 보스랑 직접 연결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우린 아직 만나지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만날 예정이었다가 널 감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지."
허.
한 마디로 얘네도 조직 내에서 입지가 전혀 없는 수준이라는 말이었다.
'너무 날로 먹으려 했나.'
하긴 초창기부터 나타나, 얼굴을 계속 보여 준 애들이 비밀 조직 느낌에서 중견을 잡고 있을 리가 없겠지.
처녀 폭격기를 터트렸을 때 얻은 백태양의 서브 스킬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개상 조직 보스가 백태양일 것 같단 말이지.'
근거는 전혀 없었고 오로지 김민수를 매일 패다 보면서 얻은 일종의 감이었다.
안뚱땡이 짠 엉터리 전개를 따라잡으면서 키워진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당장 얻을 수 있는 소득이 그럼 전혀 없는 건가.'
유민이와 수진이는 대체 뭘 하는지 개학식 날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고.
멜라니는 자기 반에 있으며, 리리엘 또한 여전히 루베니아에 있는 이 상황.
혜미도 연구실에 있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일상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이 소설에서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던 초창기와는 달리.
지금은 그것조차 어떻게 할지 감을 못 잡은 상태여서 더더욱 그랬다.
'잠깐만... 잠깐만, 아니지, 아니야.'
그때 무언가 머리를 번뜩이고 지나갔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 했던 경우의 수를 떠올린 감각.
난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장두철에게 찾아갔다.
장두철은 늘 그렇듯 류혜미에게 전해 줄 연애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교관님 혹시 지금 바쁘십니까?"
"아니다. 무슨 일이지?"
장두철은 언제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냐는 듯 급하게 서랍에 종이를 숨겼다.
저러고 있을 바에 시원하게 고백해서 차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뭐 사람마다 저마다 박자가 있는 법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계속 지켜보는 것만큼 시간 낭비가 또 없었다.
"외부에 열리는 헌터 대회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외부에서 열리는 대회?"
"예, 뭐 아무거나 좋습니다. 근데 이왕이면 대결을 하는 쪽으로요, 예전에 했던 글라디르 같은..."
"몇 개 있다만, 참가하려고 그러나?"
"네."
김민수는 안뚱땡의 영향을 받으며, 멋진 남자라는 허황된 이상향을 쫓기 위해 마계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약 한 달이 흐른 시점이라면 어느 정도 훈련이 끝났을 터.
그렇다면 당연히 놈은 그 힘을 쓰기 위한 장소를 찾을 게 분명했다.
"여기 있다. 가끔은 그렇게 외부 대회에 나가 환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장두철은 내가 대회를 나가는 것에 있어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예전부터 꾸준히 보여줬던 성적과 실력을 통해, 1학년 교육 과정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가 건네준 자료를 확인하며 가장 큰 대회를 중점적으로 찾아봤다.
참가자 수가 많으며, 상금보단 커다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유명한 헌터들이 참가하며 우승하자마자 바로 유명해질 수 있는 장소.
'김민수가 안뚱땡과 함께 있다면 사실 뭐... 범죄자로 몰려서 추적을 당하는 것도 별일이 아니야.'
소설의 영향에서 대부분 벗어났다고 해서 안뚱땡의 힘이 약해지거나 한 건 아닐 터.
따라서 김민수와 안뚱땡은 커다란 대회를 우승함으로 여론을 뒤집을 준비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왜냐면 내가 편히 쉬고 있는 동안, 김민수도 알찬 개인 훈련 시간을 보내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을 테니까.
머리에 가득 찼던 먹구름이 하나씩 사라지며 오성이 트이는 기분.
'끝을 보자, 민수야.'
최종 목표는 김민수 뒤에 있는 안뚱땡 명치에 주먹 한 방을 세게 꽂아 넣고 참교육하는 것.
그걸 위해 난 즉시 아카데미 밖으로 나갔다.
따라오는 유이와 카리스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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