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내가? 애완동물이라고?
* * *
마계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건 김민수를 찾는 게 아닌 숙소에 짐을 푸는 일이었다.
'이제 예전이랑 많이 달라졌으니까.'
소설의 영향을 벗어났다는 메시지도 있었고, 주인공 지분율도 내가 더 우위에 있는 상황.
더 이상 김민수 하나 잡으러 놈의 뒤꽁무니를 줄줄 쫓아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안뚱땡이 만든 소설의 영향을 생각한다면 내 할 일하고 있으면 김민수가 어련히 나타날 터.
왜냐하면 내가 하는 일이 곧 메인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스토리 진행하는데 따라가고 싶으면 알아서 얼굴 보여야지.'
안뚱땡이 만든 소설은 무조건 원톱 주인공 체제로 절대 독보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굳이 NTL하면서 김민수 근처에 뱅뱅 돌지 않았을 테니까.
따라서 놈이 아무리 뒤에서 무슨 개수작을 부려도 결국, 내 앞에 와서 중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짐 다 푸시고 혹시 모르니까 여기에 한... 여섯 시간 정도 계신 다음에 일정 진행하는 걸로 할게요.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
"알겠어, 그렇게 할게."
샤엘은 그 말을 끝으로 내 짐 정리를 도와주던 걸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딴에는 배려를 해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
'그럼 이제 쉬어볼까.'
세력을 만드는 게 나중에 마계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가져갈 수 있을 거란 샤엘의 말이 생각나긴 했지만.
썩 내키거나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상에선 용사라고 불리는데 마계에 와서 마족과 손을 잡고 세력을 넓히기는 좀.
이중 생활도 아니고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기가 매우 귀찮았다.
마계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제부터 내가 진행해야 할 메인 스토리가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 지 궁금해서 온 것일 뿐.
그 외 추가적인 어떤 걸 이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나갈 이유가 없단 말이지.'
숙소도 호화롭고 침대도 넓고 푹신푹신해서 마음에 들었다.
샤엘은 아예 자기네 쪽 진영에 있는 저택을 주려고 했지만 내 쪽에서 거절했다.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딱 마계 정중앙 가장 높은 호텔에서 경치나 구경하며 마계 회담에 참석하는 것.
이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콰와아아아아앙!
아니, 했다.
"여기 인간 냄새가 나길래 진짠가 싶어서 와봤더니만 진짜구만?"
"내가 뭐랬나? 샤엘님께서 애완 동물을 하나 키우시는데 그게 인간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눈으로 보고 나서 믿는구나?"
"이야 그래도 내가 여길 다 들어오네, 일박에 얼마였더라... 오 년은 일 해야 십 분 잘 수 있는 곳인가 그랬는데."
쟤네 뭐야.
분명 샤엘이 보안은 철저하니까 누가 불쑥 들어오는 건 걱정 없다고 했는데.
'숫자는... 다섯 정도인가.'
생김새는 각각 달랐지만 공통점은 모두 똑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는 것.
날카로운 이빨이 새겨진 마크가 심장 부근에 붙여진 깔끔해 보이는 정장.
상징이 이빨이라는 부분에서 놈들이 폭식 쪽에 관련된 놈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각각 상징이 있다고 했는데, 이걸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세력을 만들지 않으면 귀찮아질 수도 있다고 한 게 이런걸 말하는 거였구나.
밖에 누군가 지키는 애들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나한테 올 일도 없었을 텐데.
"어이, 인간 너무 무서워 하지 말라고 우리도 그래도 이렇게 보면 겉보기는 똑같잖아?"
"그래 맞아, 발제트님은 겁먹은 음식을 먹는 취미가 없으셔서 말이야 되도록 친근하게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
"만들진 말고, 그냥 내 방식대로 해야겠다."
"뭐?"
[폭군 발동! 천한 것들을 멸시합니다.]
[마족화 발동! 탐욕의 군주가 마계에 강림합니다. 마족화를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며, 신체에 걸리는 부하가 대부분 사라집니다.]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들고 핏줄의 자리에 금맥이 자리를 잡는다.
석탄이 흩날리듯 연기가 풍기며, 흑룡포가 얹혀진다.
쾅!
처음에 방이 박살 났던 소리가 한 번 더 나며 불청객들이 밖으로 솟구친다.
하나, 둘, 셋, 넷.
딱 네 명.
정확한 힘 조절.
"발제트한테 안내해."
"네...네?"
순식간에 자기 편이 모두 사라지고 혼자만 남게 된 마족은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빨리 상황이 변해서 제대로 인지 하지 못 하는 와중에 존대를 쓰다니.
약육강식에 익숙해져 있는 놈이라 그런지 태세 변환 만큼은 강태민급이었다.
"발제트가 그랬다며 날 먹고 싶다며."
"네...네네..."
"그래, 지금 먹히러 갈 테니까 안내하라고."
얼굴을 안 보고 먹을 순 없을 거 아냐.
"히...히익...! 악마....!"
웃었을 뿐인데, 겁 먹으며 뒷걸음질을 치는 마족이라니.
악마는 지들이면서.
억울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난 관대한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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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오는 거냐! 난 빨리 먹고 싶단 말이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떠난 지 약 십 분가량 흘렀으니 금방 데리고 올 겁니다."
"샤엘 그 망할 년의 애완동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군침이 돌아서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폭식의 군주 발제트.
그는 샤엘과 적대 관계로 호시탐탐 그녀를 사로잡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샤엘과 적대 관계인 이유는 단 하나.
그는 아직 단 한 번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입에 넣어본 적이 없었다.
폭식의 권능을 얻었다면 응당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먹어 봐야 하는바.
때문에 샤엘을 잡고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입에 넣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러던 와중 샤엘의 애완 동물이 마계에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인간과 정분을 나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마계까지 데려왔을 줄이야.'
놈이 탐욕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긴 했지만 발제트는 믿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으리라.
인간이 마족의 힘을 얻었다고 해서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마계는 인간에게 아주 척박한 환경이었다.
얼마 전에 몰래 들어온 인간 놈이 객기를 부리다가 감옥에 잡혀간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인간 놈들이 다 똑같겠지. 조니 그놈도 결국은 태생이 인간이었잖아?"
"맞습니다. 인간들이 약한 건 기정사실이지요."
발제트의 말에 그의 곁에 있던 모든 마족이 동의했다.
그를 치켜세워주거나 아부를 떨기 위함이 아닌 정말 순수한 진심에서 나오는 공감이었다.
우적 우적.
발제트는 샤엘의 애완 동물을 먹기 전 입가심을 위해 앞에 놓여져 있는 산해진미에 손을 뻗었다.
개걸스럽게 먹는 방식으로 인해 음식이 사방으로 튀기며 축 절여진 소스가 튀어나온 배에 뚝뚝 떨어진다.
"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
"...한 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다가 샤엘의 측근을 만날 경우를 상정해서 최정예를 추려 다섯을 보낸 지 벌써 30분.
데려왔다는 소식은커녕 다섯 명의 연락조차 없는 상황에 웅성임이 일었다.
만약 애완 동물이 아니라면? 정말로 탐욕의 군주가 세력을 만들지 않고 쉬는 거라면?
발제트는 음식을 미친 듯이 나르던 손까지 멈추고 진지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럴 리 없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인간이 마족의 힘을 얻는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쓸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적은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
오직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 발제트는 자기 경험을 굳게 믿었고.
쿠아아아앙!
그건 곧 부메랑이 되어 발제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무슨 일이냐!"
발제트가 머무는 폭식의 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굉음과 진동.
쿵! 쿵! 쿵!
그 소리는 연속적으로 나기 시작하며 성을 계속해서 울렸다.
쿵! 쿵! 쿵! 쿵!
"밑에서! 밑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니까 그걸 지금 설명하라고 했지 않느냐!"
점점 가까워지는 굉음과 더 거세지는 진동.
그 '누군가'가 가까워진다는 신호와 다름없었다.
"애, 애완동물...?"
"뭐? 누구?"
쾅! 쾅!
소리는 끝내 발제트가 머무는 장소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끄아아아아악!"
처절하게 들리는 비명 소리는 밖이 얼마나 혼비백산에 빠져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이 모든 게 5분도 안 된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면 믿겠는가?
발제트는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서, 설마...'
쾅!
마침내 발제트가 머무는 곳의 문이 박살 나고.
소리를 일으킨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날 보자고 했다며, 발제트."
백태양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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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엘의 방.
"다들 너무 태양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 난 그게 너무 속상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샤엘님?"
그곳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들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애욕을 즐기고 있었다.
샤엘은 그곳에서 백태양 사진이 걸려진 커다란 액자를 꼭 끌어안으며 말을 이어갔다.
"태양님의 위대함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바로 실행했지. 마족들은... 모두 본 것만 믿는 멍청이들이니까."
백날천날 태양님의 위대함을 연설해봤자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빠를 터.
샤엘은 이 모든 계획이 태양님을 위해서라며 진하게 웃었다.
그녀도 마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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