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제가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 * *
사실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단 걸 알아차린 지는 이미 오래였다.
하지만.
"으아아아아...이,이런 거...? 처음 느껴봐요오..."
국어책 읽듯이 나오는 신음과 수치심에 죽으려고 하는 얼굴.
저 두 가지가 너무 재미있어서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 했는데 굳이 망가트릴 이유가 없었다.
'자주 써먹어야겠네.'
주기적으로 성녀한테 의심 하는 척하면서 저 꼴을 최소 달에 두 번씩 볼 수 있다면.
그것만 한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일상에 소소한 재미, 소확행이라고 했던가.
그게 나한테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듯했다.
'춘향아 더 해 봐.'
'네 나으리.'
밥상이 차려진 김에 난 그녀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만약 선을 넘어서 리리엘이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다면,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재미있는 추억을 서로 공유하게 된 건 같을 테니까.
"흐앙...아앙...아아아아앙...! 주,주인놈아 제발 그만둬라아... 가운데엣...가아....너무 차갑다아아앗...!"
끝말을 높게 올리며 온몸을 달달달 떨기 시작하는 메르피.
아무래도 처음 느껴보는 자극과 쫀쫀하게 조이는 레몬 보지의 흡입력으로 인해 얼음을 더 진하게 느끼는 거겠지.
그리고 당연히 메르피가 이 정도로 경련을 하듯 신음을 내뱉는다면.
"흐아아아아아앙. 너, 너어무. 자,자아극...? 이 강해요오...."
리리엘은 필사적을 메르피를 따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네.'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연기를 하는 거니까.
오히려 거짓말이 아니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 했는지, 그녀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사이에 최대한 뭐라도 하고 싶어서 보지를 움찔거리는 게 눈에 보이긴 하는데.
"으하아...으...주인놈아...나...진짜, 진,짜아... 그때처럼 쌀... 쌀 것 같흐아앙..."
진짜로 아이스 피스팅을 당하며 씹물을 뿜고 있는 메르피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럴 때 흥분감을 못 이겨서 자위라도 했다면 충분한 눈요깃거리가 됐을 텐데, 그 부분은 아쉬웠다.
처녀가 생각할 수 있는 19금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귀엽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수녀복을 걷어 올리고 필사적으로 신음 연기를 하는 성녀라니.
리리엘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신음을 연기하고 있었다.
처녀티를 팍팍 내는 것조차 꼴림 요소였기에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야하다고 볼 수 있었다.
"주, 주인노마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런 상황이 지속 될 무렵 결국 메르피는 참지 못하고 조수를 터트리며 허벅지를 파르르 떨었다.
이때 난 메르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리리엘을 올곧게 쳐다 봤다.
'쟤가 저 정도 했으면 너도 뭔가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냐'라는 눈빛.
그녀는 그걸 제대로 느꼈는지 바로 반응을 보였다.
"흐...아...아아아앙...? 아앙...!"
메르피가 절정에 이른 신음 섞인 고음이었다면.
리리엘은 교과서로 착실하게 배운 학습된 고음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신음 쪽에는 절대로 낄 수 없으며 굳이 따지자면 음악 시간에 하는 목풀기 정도.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더 이상 장난치다간 무리수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성녀님."
"예?"
[메르피와 춘향이를 역 소환합니다.]
[뒤처리 발동! 주변을 깔끔하게 치웁니다.]
난 주변을 말끔히 정리한 후 고개를 숙였다.
"잠시나마 성녀님께서 불순한 의도로 거짓말을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일체화가 되어 있을 줄이야..."
"아뇨아뇨아뇨,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죠!"
리리엘은 내 말을 듣자마자 상황 파악이 순식간에 끝난 건지 곧바로 탁자 위에 있던 다리를 내렸다.
수녀복은 다시 발목까지 쭉 피고, 가슴 단추를 풀려고 했던 손은 그대로 얌전히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나으리! 저 아직 안 끝났사와요! 이 년이 파르르 떨 때야말로 완전히 보내버리기 적기라고 할 수 있사와요!]
[주,주인놈아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 날 구해주는 걸 보면 역시... 날 좋아하는 게 분명하구나... 정말 고맙다.]
어지러운 소환수들의 대화는 귓등으로 넘겼다.
자세히 들어 봤자 큰 도움이 될 리가 없단 걸 진즉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 생각 잘하셨어요! 용사와 성녀는 예로부터 믿음이 가득하고 서로 불신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오해가 풀려서 정말 다행이예요!"
리리엘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 눈물을 흘릴 기세로 우다다 말을 쏟아 냈다.
여기서 시간이 끌린다면 일이 어떻게 더 진행될 지 몰라서 그런지, 아주 필사적이었다.
'앞으로 자주 자주 의심해서 신음 소리 들어야지.'
그런 다짐하며 난 그녀에게 성검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용사님 말씀은 그러니까 봉인해제하고 신성력을 쓰셨단 말씀이시죠?"
"맞아."
난 말투를 다시 편하게 바꾸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너한테 확인을 했는데, 네가 몸이 이상 없다고 나와서 전화 했던 거야, 괜챦냐고."
"네, 저는 이상 없었어요. 평소랑 똑같았고... 그런 일이 있으셨는지도 몰랐네요. 죄송해요."
"아냐 사과 듣자고 말한 거 아니니까 그럴 필요 없어."
신성력을 쓴 성검이 아닌 내 서브 스킬 때문이었지만 이 부분을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믿을 만한 동료여도 굳이 물어보거나 하지 않은걸 멍청하게 다 내보일 이유는 없었다.
"다행이긴 하네요, 용사님도 성검 쓰실 때 제 걱정 없이 쓰실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아무래도 그게 문제였었어."
리리엘은 조금 전의 기억은 전부 지울 것처럼 대화 주제를 쭉쭉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대화를 유도하면 다 잊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본데.
어림도 없었다.
"근데 메르피가 발정기가 있더라고."
"네?"
"봉인을 풀고 나니까 얘가 가끔 발정을 일으켜서... 동물도 아니고 무슨, 그래서 가끔 성욕을 방금처럼 풀어 줘야 하더라고."
"그...그래요?"
"응, 근데 아무 때나 하면 너도 업무 같은 거 처리하기 힘들 테니까, 내가 미리 신호를 줄게 그럼 우리 집으로 와."
괜찮지?
"네...뭐... 어,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리리엘은 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낚시의 정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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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양이 화기애애하게 리리엘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과 반대로.
"드..드디어 불이 꺼졌다."
이제 막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남자가 있었다.
그 이름하여 바로 김민수.
민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거미 습지 던전에 대한 보상을 받은 상태였다.
사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직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백태양이 남긴 화염 마법이 보통이 아니었다.
"보상이라고 해봤자 상태 이상 회복이지만... 큰 도움이 됐어."
김민수는 우선 전체적인 상황 점검을 시작했다.
현재 스토킹 취급을 받아서 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상태이며, 빅토리 아카데미에선 제명 상태.
즉 혁신적인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노블도 해체 됐고...'
김민수를 따르던 선천적 각성자 찬양 집단 노블은 어느 샌가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진실은 백태양이 주인공 지분율을 과반수 이상 차지 함으로 원래 순리대로 흘러간 것뿐이지만.
그에겐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야말로 거짓된 세계나 다름없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찬양을 받고 호의를 얻는 게 일상이었던 과거가 김민수는 너무나도 그리웠다.
'백태양만 아니었어도...'
몇 번을 탓해도 부족한 최악의 쓰레기 백태양.
그놈만 아니었다면 이미 아카데미에서 하렘을 차리고 어깨 쫙 피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내 최후의 일격도 안 먹혔어.'
데카우킹, 그러니까 안뚱떙은 김민수에게 힘을 좀 더 길러야 한다고 말했지만.
민수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이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래 내가 받아야 할 모든 보상을 독차지 하는 게 너무 말도 안 됐기 때문이다.
"방학 때 무언가 큰 공을 세워서 모든 걸 다시 백지로 만들만한 그런 게 필요해!"
그렇게 된다면 날 뻥 차버렸던, 아니 내가 찼었던.
유민이 그리고 내가 거절했던 류혜미, 날 은근히 좋아했던 멜라니.
나와 운명으로 맺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성녀 등등.
모든 여인이 다 날 바라보게 할 수 있을 터.
"그래 그 마음 너무 잘 알고 있다."
"데카우킹!"
"그래, 힘을 키울 계획을 가지고 왔다."
안뚱땡은 최대한 데카우킹을 연기하기 위해 어색한 문어체를 시작했다.
나중에 자기 본 모습이 드러났을 때 반전을 주기 위함이었다.
"계획이란 뭐죠?"
"그건 바로 마계에 가는 거야."
"마계요?"
"그래, 지상에서 힘을 키울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곳에서 힘을 키우는 게 상식이잖아."
삼라만상의 진리에서 배우지 않았냐고, 민수쿤.
김민수는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좋네요."
최악의 듀오 다음 행선지는 마계.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최대한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포즈로 웃었다.
정신 승리만큼은 정말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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