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 * *
화산을 사람으로 빚으면 저런 모양일까 싶은 외형.
활활 타오르는 전신은 세상이 멸망해도 타오를 듯 기세를 내보인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이 일그러지며 아지랑이가 짙게 남는다.
'이제야 진짜 보스 몬스터를 만나는 기분이네.'
여태 김민수 맞춤 서비스 때문에 대부분 허접하거나 위기감조차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인공 지분율을 절반 이상 뺏어오자마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백두산에선 사람을 죽이는 몬스터가 툭툭 튀어나오고 중턱에 오니 저런 보스 몬스터까지.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돼.'
찐따 하나 때려잡았다고 갑자기 난이도가 폭증하고 '원래 이랬습니다.' 이러면.
이 현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좀 억울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네가... 백태양인가?"
난 조니 프레이스라고 해.
오싹!
[폭군 발동! 아랫것들의 모든 걸 무시합니다.]
[마족화 발동! 폭군을 발동 시킨 상태이기에 능력이 증폭 됩니다!]
[탐욕의 군주가 현세에 강림합니다!]
[성춘향이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현현합니다!]
딱 한 마디.
조니가 내뱉은 그 말에 온몸의 신경이 죽음을 경고했다.
원래라면 천천히 간을 보면서 키려고 했던 모든 스킬을 발동시켰고, 춘향이는 멋대로 튀어나왔다.
소개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불탈 지도 모른다는 착각.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였네.'
김민수를 조금만 더 천천히 조질 걸 그랬나.
잠깐 옆을 보니 민수는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발발발 떨고 있었다.
자칭 용사라고 주장 했으면.
보스 몬스터를 보고 허세라도 부리는 기개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워워, 그렇게 막 경계하지 않아도 돼... 그냥 뭐 간단한 대화부터 시작하자고."
인간들은 대화하는 걸 좋아하잖아, 난 인간 시절에 대화하는 걸 많이 못 즐겼거든.
'인간 시절?'
마족 중에서 한자리 꿰차고 있어 보이는 놈이 인간인 시절이 있었다고?
실제로 이름도 미국인스러운 조니 프레이스였다.
'조니 프레이스...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날랑말랑 했지만 결국엔 이렇다 할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엄청 중요한 거였는데 너무 예전에 들어서 까먹은 듯한 느낌.
"혹시 샤엘 페롯트라고 알아? 아니 당연히 알겠지."
"모를 리가."
상대방이 여유롭게 나왔는데 내가 쫄 필요는 없었다.
나 또한 잠깐이나마 보스 몬스터 취급을 받았던 몸.
어떻게 보면 보스 vs 보스 구도였기에 움츠릴 이유가 없었다.
'폭군이랑 마족화를 키니까 할 만해지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춘향이도 곁에 있었기에 주변 온도 또한 어느 정도 낮아졌다.
지옥의 군주가 내뿜는 불길을 완전히 죽일 순 없어도, 위력을 감소 시키는 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호오, 내가 그 샤엘 페롯트에게 아주 많은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래?"
바닥에서 지리고 있는 김민수와 온도를 낮추느냐고 움직이지도 못 하는 춘향이.
이 둘의 도움을 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틈을 봐서 기습하는 게 정답이다.'
내키진 않지만 승률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조니가 당장 싸울 마음이 없는 이상 기습 하려면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놈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최근에... 아니 최근도 아냐 아주 예전에 샤엘이 지상으로 올라간 이후부터 쭉 네 이야기밖에 안 해."
"와 그거 참 안쓰럽네."
붓검과 탐욕의 곡괭이를 각각 한 손에 붙잡으며,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힘을 끌어모았다.
사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휘둘러서 일격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도록.
그걸 위해 붓검의 끝부분을 살살 흔들며 먹선을 한 점에 응축시켰다.
"무슨 짓을 했지?"
"어?"
"무슨 짓을 했길래 샤엘이 딱 한 번 지상에 다녀온 이후 네 이야기밖에 안 하냐고 묻잖아!"
너도 김민수과야?
급발진하는 타이밍이 왜 이래.
조니가 고함을 치자마자 주변에 있는 용암이 폭발하며 내 쪽으로 쏟아졌다.
여기서 움직인다면 먹선을 모으고 있다는 걸 들킬 수 있었기에 난 김민수를 두 번 걷어찼다.
"꾸에에엑!"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이런 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시원하게 걷어차인 김민수는 허공에서 열심히 용암을 온몸으로 완벽하게 방어해냈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고 해도 아픈 건 싫었는지 마그마가 닿기 전에 열심히 발악하는 꼴이란.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동영상을 찍었을 텐데, 참 아쉬웠다.
"샤엘한테 언제 한 번 이상형을 물어 봤더니 너라고 답하더군! 이유를 물어보니까 강한 남자가 좋다는 거였어! 그래서! 내가 널 쓰러트리고!"
샤엘의 이상형이 되어서 멋지게 고백할 거다!
조니의 급발진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지, 놈은 말을 마저 우다다다 쏟아 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땐 지옥불을 다루는 멋진 마족 군주 느낌이 났었는데.
말하면 할 수록 김민수와 같은 동족의 냄새가 솔솔 풍겼다.
'힘은 강하지만 뇌는 김민수! 뭐 이런 건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좋은 수준이었다.
무력 수준이 비슷하다지만 멘탈이 김민수의 그것이라면.
구워삶을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샤엘의 이상형이 왜 나고, 강한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고 있나?"
"뭐?"
이 대사는 김민수한테만 할 줄 알았는데.
"니 짝사랑 쩔더라."
"이 개새끼가!!!"
조니의 고함을 끝으로 모든 화산이 폭발하며 쏟아졌고, 놈 또한 폭발적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걸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볼 내가 아니었다.
[일점집중 발동! 전신의 힘이 양손과 무기에 집중 됩니다!]
[쿵쿵따 발동! 다음 타격이 강화 됩니다!]
힘을 집중해 둔 것과 아까 김민수를 일부러 두 번 찬 이유.
최강의 일격을 준비하기 위한 떡밥이었고, 조니는 그 떡밥을 제대로 물었다.
"죽어!!!"
놈의 손에 모인 마그마는 온 세상을 녹일 것처럼 내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나 또한 붓검과 곡괭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으며 응수했고, 그때 생각났다.
'조니 프레이스.'
상시 발동형 메인 스킬 능력자가 위험하게 인식된 계기.
패트 보이 사건의 당사자, 조니 프레이스.
그 당사자가 마족이 되어 나타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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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도 용사인데...! 내가 진짜 용산데!'
민수는 보스 방에 들어오고난 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백두산 중턱 거미 습지 던전이 어려운 건 예정 되어 있던걸지만, 보스 방은 그러면 안 됐다.
꿀 같은 보상과 최단 루트로 강해지기 위한 묘약이 사방에 널려 있어야 정상인데.
그런 건 다 어디 가고 모든 생명체를 녹여 버릴 것 같은 몬스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 너만 멋있는 거 하냐?'
사실 그것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보스 몬스터의 태도였다.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로 백태양한테만 고정된 시선.
심지어 백태양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그 시선을 받으며 멋지게 외형을 바꿨다.
'원래 저런 건 다 내 거였다고!'
백발 위에 자리 잡은 검은 왕관과 흑룡포.
핏줄 대신 흐르는 금맥과 새까만 석탄 같은 피부.
온갖 금은보화가 치렁치렁 매달린 면류관.
가만히 있어도 짤랑 거리는 보석 소리는 사람을 유혹시키며 눈을 어지럽힌다.
"꾸에에에에에엑!"
그렇게 감탄만 하며 벌벌 떨고 있다가 백태양한테 걷어차였을 때 든 감정은 분노였다.
내가 누군지도 알려주고 친근하게 먼저 말까지 걸었는데 날 이렇게 대해?
게다가 소환수도 나와 다르게 예쁘고 아주 다재다능한 부분도 화가 나는 포인트였다.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줄만 알았다면 큰 오산이야.'
비록 데카우킹이 말한 보상은 아직 먹지 못 했지만 김민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직 보스 몬스터한테만 모든 신경을 쏟아부으며 필사적으로 상대하는 이 순간이.
백태양을 완벽하게 무찌를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보스 몬스터는... 어차피 내가 다시 붓검을 잡으면 될 일이잖아.'
민수는 눈앞에 펼쳐지는 격렬한 전투를 애써 외면했다.
마그마와 검은 벼락이 부딪치며 주변을 붕괴하든 말든 이제 알 바가 아니었다.
만약 백태양이 혼자서 보스를 쓰러트리고 또다시 보상을 독차지한다면.
다시는 역전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김민수의 뇌를 지배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이왕 내가... 다크니스 워리어가 됐으니까... 오히려 난 마족 편에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어둠이 더 가깝다고 사실 나는.
용사가 흑화하는 거, 원래 흔히 있는 이야기잖아? 그렇게 되면 더 큰 힘을 얻고 말이야.
판단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죽어어어어어!"
보스 몬스터와 백태양이 격돌하는 그 순간 민수는 재빠르게 백태양의 뒤로 이동했다.
서로 전력으로 맞붙는 상황이라면 아주 잠깐의 틈만으로도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법.
민수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백태양의 몸을 그대로 붙잡았다.
"야 이 미친...!"
쾅!
그 잠깐의 틈에 의해 백태양은 조니가 휘두르는 마그마가 가득한주먹에 그대로 정타를 허용했고.
뒤에 있던 김민수 또한 벽에 처박혔다.
모양새만 본다면 김민수가 백태양의 에어백 포지션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푸하...후...후하하하하!"
"나으리! 나으리!"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하고 있지 못 하는 조니와 눈물을 뿌리며 달려오는 성춘향.
민수는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며 진한 웃음과 함께 백태양을 내려다봤다.
"어때! 그렇게 있으니까 어떠냐고! 내 심정이 이해가 돼?! 맨날 그렇게 어디 처박혀서 밟히는 심정이 이해가 되냐고!"
"...업..."
"뭐?"
아직도 말할 힘이 남아 있나?
'유언 같은 거냐?'
킥킥.
김민수는 비웃음을 꾹 누르며 몸을 숙여 백태양의 말을 경청했다.
혹시 사과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의한 행동이었다.
"레벨 업..."
"그게 무슨 마..."
백태양의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태양의 몸을 감쌌다.
아무리 눈치가 없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김민수여도 알 수 있는 상황.
그 누구보다 바랐으며 김민수가 가장 원하던 것.
"...!"
각성의 빛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