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거미 습지
* * *
"이제 중턱 던전을 어느 팀과 같이 갈 지가 남았네요."
"그러네요."
백두산 중턱부터는 웬만하면 헌터 팀끼리의 협력이 필수였다.
난이도가 외곽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외곽 지역에서 나오던 보스 몬스터가 하급 몬스터로 나오는 게 중턱이다 보니.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헌터 팀이 아니라면 무조건 팀을 합치는 편이었다.
'나 같은 애들이 열 명이 있으면 안 꾸려도 된다지만.'
말만 쉽지 그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실제로 그런 팀이 꾸려진다고 해도 바로 정상까지 달려가니, 중턱에서 볼일은 없었다.
"태민 씨, 저기에 가면 쓰고 있는 사람 보이시냐구요."
"네. 특이한 사람이네요."
"그게 끝인가요?"
"네?"
"아닙니다. 제가 잠시 뭘 헷갈렸나보네요."
역시 뭔가 수를 썼구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김민수가 현상 수배가 걸린 걸 알고도 그냥 봐줄 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뜻이다.
심지어 누가 봐도 김민수 같은 놈이 백두산 중턱에서 활보하는데 그걸 내버려둔다?
절대로 불가능했다.
'김민수 혼자서 여길 불법으로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무조건 그 돼지가 뭔가 했어.'
신분증 조작이 통할 리도 없고, 가면 따위로 모습을 모두 감추는 것도 불가능.
상식적으로 안뚱땡이 모종의 수작을 부려서 김민수의 모습을 바꿨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명성에 목숨을 건 1급 헌터들이 곁에 있는 김민수를 냅둘 리 없었다.
'김민수 뒤를 쫓았던 강태민도 못 알아볼 정도라니... 이것도 소설의 영향인가?'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원래 세계일까.
아직 제대로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
안뚱땡의 개수작은 더 이상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는 것.
"백태양 헌터는 어느 팀이랑 같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저는 저쪽이 좋아 보이네요."
피라미드 포지션 꼭대기에 위치한 내 의견을 묻는 건 너무 당연했기에.
난 자연스럽게 김민수가 있는 팀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왜죠?"
"저희는 지금 저 때문에 딜러가 충분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그 어느 팀과 합을 맞춰도 좋죠, 하지만 이왕이면 원거리 지원 쪽이 많은 팀이 좋아 보여서 선택했습니다."
"일리가 있네요."
사실 이건 김민수 쪽 팀을 제대로 보지 않아도 말할 수 있었다.
'그놈이라면 자기가 주목받고 싶은 곳으로 골랐을 테니까.'
딜러진 중에서 최대한 근거리 공격수가 적고 혼자서 활약하기 좋은 곳.
모든 이목이 집중되며 칭찬을 받기가 수월한 팀을 선택했겠지.
안 봐도 너무 뻔한 선택지였다.
이민준은 내 의견을 듣고 팀원과 조율한 후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민수 쪽으로 향했다.
'아무도 못 알아보네.'
돈키호테 게이트에서 김민수와 만난 적이 있던 이민준도 놈의 변장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안뚱땡이 근처에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또 헛짓거리를 하는 걸로 추정 됐다.
김민수를 강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쓰레기.
그리고 이번에 완벽하게 빌런이 되기로 선언한 김민수.
참 잘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괜찮다고 합니다!"
이민준이 손을 흔들며 협력이 이뤄졌다는 신호를 보냈고, 우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또 뭘 꾸미는 지 볼까.'
어차피 무슨 기연을 욱여넣어도 상관없었다.
먹으려는 순간에 걷어차고 뺏어 버리면 되니까.
오히려 안뚱땡이 강한 걸 마련해줬으면 하는바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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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단 소개는 끝냈고, 혹시 공략 예정인 장소가 있습니까?"
"저희도 아직 정하지 못 했습니다. 중턱 경험이 얼마 되지 않아서요."
"그 부분은 똑같네요. 하하하하."
팀을 합치고 난 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딱 맞았는데.
1급 헌터끼리다 보니 서로를 낮추고 빨아주는 사회성이 아주 일품이었다.
"일단은... 거미 습지가 가장 괜찮아 보입니다."
"확실히 저희가 전위와 후위가 든든하니까 기습 당할 우려가 적으니 괜찮긴 하겠네요."
"그리고 아무래도 공략이 까다로운 던전이라 정화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프로끼리 하는 대화다 보니 진도가 척척 나갔다.
팀의 전력 분석 이후에 유리한 던전 설정과 그 이후 얻을 수 있는 부산물 분배 등등.
일개 생도 신분인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팀이 합쳐지는 그 순간부터 내 모든 신경은 단 한 명한테만 집중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저는 본명은 남한테 알려주지 않습니다. 기운이 상하므로 가명을 사용하는 편이죠."
김민수 특징.
첫 번째, 아주 간단한 질문도 자기 세상에 푹 빠져서 쓸데없이 길게 설명함.
"그럼 가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검은 검이라고 불립니다. 단순히 칼은 검이다 이런 의미가 아니고 검은색 검을 쓰는 날카로운 검사라는 의미로 제가 쓰는 검이 검은 기운을 내뿜기 때문에 나중에 보신다면 제가 왜 검은 검인지 아실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 굉장히 말을 길게 하며 거기에 숨겨진 자기 자랑과 나르시즘을 절대로 숨기지 않는다.
세 번째, 이런 특징들을 나열하다 보면 괜히 명치를 한 대 세게 갈겨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이상 김민수에 대해 다시 한번 짧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 정말 기대되네요."
"그렇죠? 모처럼 대화가 통하시는 분을 만나니 정말 기쁘네요, 제가 예전에 알고 있던 어느 백발은 진짜 어휴..."
이 새끼 지금 내가 못 알아보는 줄 알고 내 뒷담을 나한테 까려는 건가?
진짜 이거 완전 웃긴 놈이네.
'넌 진짜 던전 클리어하고 보자.'
분명 놈을 따라가면 커다란 보상이 딸려올 거기 때문에, 지금은 참교육 시기가 아니었다.
김민수를 조지면서 보상도 먹고 지분율도 올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려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참 김민수만한 황금 고블린이 없었다.
'잘 죽지도 않고... 보상도 주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런 생각하다보니 시각은 금방 흘러서 어느새 회의 시간이 끝나 있었다.
결론은 거미 습지로 지금 바로 가는 것.
더 이상의 정비는 필요 없고 시간 끌어 봤자 더 곤란해진다는 판단이었다.
'괜찮네.'
나 또한 딱히 문제 제기할 만한 게 없었기에 군말없이 팀에 협력했다.
개인 행동을 하겠다고 이민준한테 말해 둔 했지만 글쎄.
막상 던전에 들어가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태양 씨는 뒤에서 휴식을 하고 계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저 검은 검이 맡을 테니까요."
거미 습지에 들어가기 직전 김민수가 염병을 떨며 나한테 붙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존에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 지 말을 나누던 중 피라미드 포지션에 대해 들은 걸로 보였다.
내가 압도적으로 활약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초장부터 견제를 하는 것 같은데.
'중턱 던전에서 미쳤나 이게.'
저 말을 꺼낸 것 자체가 이미 트롤링의 시작이었다.
아직 제대로 하드한 던전 맛을 못 봐서 이러나 본데.
내가 있는 이상 던전이 약해지거나 할 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긴장 좀 하세요 제발."
그 말을 끝으로 포지션대로 내가 가장 먼저 거미 습지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메시지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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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중턱 던전 중 하나, [거미 습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거미 습지]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 지 모르는 거미와 안개로 가득 찬 습지가 함께하는 던전입니다.
당신이 알고 있던 상식은 모두 버리세요, 그 상식이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오직 눈으로 본 것만 판단하세요.
또한 %) _@!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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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이건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여기서 마계가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혹시 거미 습지가 마계와 연관이 있습니까?"
"마계요? 음... 글쎄요 일단 백두산이 그쪽이랑 연관이 있다는 건 못 들어 봤어요.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팀원들이 모두 들어온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 봤으나 역시나.
마계 메시지를 읽은 나뿐인 듯 보였다.
'김민수도 모르고 말이지.'
놈이 읽었다면 있는 척 없는 척 다 하고 싶어서 자랑질을 위해 떠벌거렸을 테니.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걸 말할까 생각도 했지만 불확실한 정보여서 일단은 보류했다.
"지금부터 그럼 지정된 포지션 대로 하겠습니다."
"넵."
거미 습지에 천천히 발을 들일 때마다 안개가 온몸을 천천히 휘감아간다.
눈앞에 있는 동료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믿을 수 있는 오직 사전 작전뿐.
지정된 포지션에 있지 않은 자는 몬스터로 취급하고 베는 게 첫 번째 규칙이었다.
그 이유는 시야가 확보 되지 않은 상황에선 믿을 수 있는 게 작전 말곤 없었기 때문이었다.
"왼쪽 두 번째, 처음 보는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바로 베겠습니다."
"자,잠깐!"
"으아아악!"
하지만.
"뭐...뭐야 왜 네가 여기에...?"
"저는 맞게 걷고 있었습..."
"힐러! 여기 부상자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순식간에 부상자가 속출한다.
눈으로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던전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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