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백두산 가는 길
* * *
이민준.
그는 백태양 번호가 핸드폰 위에 표시되자마자 이유를 짐작했다.
'백두산인가.'
빅토리 아카데미는 6월에 개인 훈련 기간을 끝내고 바로 방학에 들어간다.
말이 방학이었지 사실상 훈련 기간 연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기간.
수많은 생도들은 당연히 가장 악명이 높은 백두산 게이트로 향하고 싶어 했다.
'다 똑같구나.'
'6~7월달에 오는 빅토리 생도 전화는 무조건 무시해라'라는 불뮨율이 있을 만큼.
그들의 백두산에 대한 열망은 아주 진했다.
실제로 백태양 전화가 오기 전에 이민준은 이미 여러 차례 생도들의 전화에 시달렸다.
백두산에 가고 싶어요, 저라면 외곽 지역 공략팀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등등.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자만심 가득한 말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1% 중의 1%.
그게 빅토리 아카데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내가 이 정도 급인데 설마 거기 하나 클리어 못하겠어?'라는 근자감.
이민준은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1학년 때 나한테 연락한 건 백태양 헌터가 처음이군.'
생도지만 헌터인 칭호가 부족하지 않은 남자.
단순히 자신감이 아닌 여러 번의 S급 게이트 클리어로 증명한 자.
그게 백태양이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원래라면 생도의 백두산 부탁은 거절하는 게 맞았으나.
이민준은 백태양이기 때문에 팀원들의 의견을 묻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가 전력에 보탬이 된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전 반대입니다."
"왜?"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피력한 건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이름은 박기산, 이민준 헌터팀에서 메인 탱커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가 유능한 건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저희가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만약 백태양 헌터가 클리어 외의 다른 목적이 있다면? 아예 개별 행동을 한다면? 이런 변수가 너무 큽니다."
"아시다시피 백두산은 너무 위험합니다. 실수로 일이 하나가 잘못된다면 전부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박기산이 입을 열자 비슷한 의견을 가진 자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이민준은 반대쪽 의견을 하나하나 들으며 전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이민준 헌터팀이 수많은 게이트를 클리어한 끝에 전원 1급 승급에 성공한 후.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지 더 뼈저리게 느껴서 더 이런 의견이 나온 거겠지.
"대충 반대 의견은 다 나온 것 같고, 찬성쪽도 들어 볼까."
사회자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졸지에 백태양 팀 합류 찬반 토론장을 만든 이민준.
그는 엄숙한 사회자 흉내를 내며 손을 드는 팀원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전 찬성입니다."
"오, 왜지?"
찬성측에서 입을 연 건 까칠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중년남성이었다.
이름은 장임석, 장비를 빼다 박아 놓은 것처럼 생긴 그는 서포터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런 변수가 존재해도 그는 수많은 실전을 겪은 인재입니다. 반대 의견도 이해는 되지만 초점이 '생도'에 맞춰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똑같은 의견입니다. 백태양은 S급 클리어를 그냥 버스 타듯이 한 게 아니라 최대 공헌도를 습득하며 한 자입니다. 놓치기엔 너무 아쉬운 인재죠."
"용병 시장에 나온다면 그 어떤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바로 네임콜이 불릴 정도의 위치입니다. 놓치기엔 너무 아깝죠."
일부러 말을 아꼈구나.
이민준은 장임석의 전략에 속으로 감탄했다.
일부러 반대하는 자들이 단점을 말하게 한 뒤 그 모든 걸 다 안고가도 괜찮다고 말하는 방식.
상대방이 말한 걸 인정하면서 그걸 웃도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 발언.
토론의 정석이었다.
"최근 아무리 완벽하다고 불리는 팀이라고 해도 백두산에 들어갈 땐 용병을 팀에 투입하는 게 추세입니다. 그게 더 안전하고 팀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악명이 높다고 불리는 쿠쿠르 형제가 용병 시장에 나왔을 때 범죄자를 누가 팀원에 들이겠냐는 초기 의견과 달리 수많은 네임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후 의견 피력까지.
장임석은 괜히 팀의 서포터 역할을 맡은 게 아니라는 듯 아주 논리정연하게 쐐기를 박았다.
반대 의견을 모두 수용하며 주장하는 그의 말에 반대 의견을 지닌 자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대충 정해진 것 같네. 그럼 그렇게 한다?"
이견은 없었다.
"여보세요? 백태양 헌터? 무슨 일입니까"
이민준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끊기기 직전, 정말 빠르게 이뤄진 토론이 막을 내렸다.
'이번 백두산 게이트는 조금 더 중심으로 들어가도 되겠군.'
얼른 백두산에 들어가길.
이민준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미래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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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바로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하하, 백태양 헌터한테 팀장 소리도 듣고 저도 출세 했네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넵!"
뚝.
이민준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강태민은 바로 입을 열었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그는 정말로 말이 많았다.
눈치가 없었다면 자칫 짜증 날 수도 있었지만 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켰다.
"뭐랍니까?"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준다고 준비할 거 하라고 하시네요."
"저희가 원래 준비하려고 했던 시간이랑 똑같네요."
"그러게요,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일주일 뒤 백두산.
집합 장소는 하늘우리 공항 3번 출구.
시각은 열 한 시.
"아 그리고 태민 씨도 온다니까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강태민은 전혀 다행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주 당연한 얼굴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비록 한 번 떡락 되긴 했지만, 그는 오프너 중에서도 굉장히 유능한 축에 속한다.
게다가 이번엔 아쉬운 쪽이 우리인 만큼 많은 돈을 요구하기도 힘들 터.
이민준은 가만히 있다가 최고의 공격수와 유능한 오프너를 손쉽게 구한 거였다.
그것도 평소보다 아주 싼 가격에 말이다.
"근데 백두산에 가더라도 바로 김민수와 만나긴 힘들 텐데 말이죠."
"최소 게이트 세 개 정도는 같이 공략하고 그 이후에 단독 행동을 건의해 봐야죠."
"안 된다면요?"
"아마 그러진 않을 겁니다."
이민준은 한때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꼬리를 몇 번 흔든 적이 있는 인물.
그 몇 번 만난 것만으로도 그를 완벽하게 파악한 건 아니지만 성향은 알아낼 수 있었다.
누구보다 건설적으로 보이지만 품 안에 숨겨져 있는 야망은 아주 탐욕적인 남자였다.
세상에 그 어떤 1급 헌터가 유망주랑 연을 쌓겠다고 아부를 떨겠는가.
'매스컴에서도 그렇고... 지지 선언도 해준 거 보면 아직 현재 자리가 만족이 안 되는 사람이야.'
자기 주제를 알기 때문에 한 방에 떡상을 노리진 않지만.
점진적으로 성장을 원하며 비대한 향상심을 가지고 있는 게 이민준이었다.
그런 그와 함께 다니며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사적인 능력을 요구한다면.
그는 곤란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더 높은 곳으로 갈 테니까.
'날 아주 잠깐 날개로 쓰게 해 줄게.'
호랑이는 못 돼도 이민준은 늑대 정도는 됐기에.
어디까지 날아오를 지는 그의 재량이었다.
"그럼 저는 조사 계속하면서 준비하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꼭 저 강태민을 찾아주세요."
흡사 나이트 삐끼처럼 들리는 말.
하지만 너무 진지한 강태민 표정 때문에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강태민도 이민준 못지않게 향상심과 인생 대박을 노리는 사람이니.
아주 야망이 활활 타다 못해 보기만 해도 뜨거울 정도다.
"당연하죠."
"백태양 최고!"
그 말을 끝으로 강태민은 밖으로 나갔다.
"어으...뻐근하네."
그가 나가자마자 난 기지개를 켜며 핸드폰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 남정네랑 집에서 탐색만 해서 그런지 몸이 찌뿌등했다.
'일단은 연락부터.'
(유민이)
>훈련은 잘 돼?
>힘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연락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했다.
기분 전환도 되고 다시 만날 때 설렘도 충전하고 얼마나 좋은가.
(수진이)
>잘 돼 가?
>다친 곳은 없지?
>얼마든지 되지, 사랑해 수진아.
길게 말하지 않아도 적은 힘으로 아주 깊은 관계를 우려낼 수 있다.
'이걸 안 하는 게 바보지.'
(혜미)
> 방학 동안 나 백두산 가서 연락 힘들 거야 미안 해.
>금방 끝내고 갈게, 기다려 줘.
히로인마다 맞춤 대사를 사용해서 최고의 효율을 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백태양의 길이었다.
(멜라니)
>몸은 좀 괜찮아?
>알겠어, 방학 중에 한번 보자.
귀찮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지구에서도 한 번도 이걸 의무로 느낀 적도 없었다.
(리리엘)
>힘은 많이 회복 됐어?
>아아 또 그거 해 줘?
>리리엘.
'얘는 늘 이름 한 번 불러 주면 오타를 잔뜩 내고 사라진단 말이야.'
대체 뭘 하는 건 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바쁜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유이)
>이번에도 나 따라올 거야?
>기대되네, 제모해 둬.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연락 순회 공연을 끝낸 뒤.
찐블이 따라온다는 정보까지 입수한 뒤 난 인벤토리에서 성검을 꺼넀다.
"넌 왜 봉인이 안 깨지는 거야."
주인공 지분율도 역전하고, 소설의 영향에서도 벗어났다고 했다.
그럼 자연스레 성검이 보상처럼 딸려올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위를 콘돔처럼 쓰고 딱 달라붙어 빠져나올 생각을 안 했다.
이번 일주일 동안.
이놈을 공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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