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220화 (220/325)

〈 220화 〉 바퀴벌레 사냥

* * *

날 보고 반기는 유이와 똥폼을 잡는 카리스.

저 둘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왜' 있는가였다.

'내가 주인공 지분율을 역전한 거랑 관계가 있는 건가?'

진짜 노블, 그러니까 찐블의 목표는 세상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따끈따끈하게 소설의 영향을 벗어나 있는 상태.

연관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제 김민수 신경 안 써도 되는 건 좋네.'

예전 같았으면 쟤네 감시하랴, 김민수 트롤 막으랴 했겠지만, 이젠 하나만 신경 쓰면 되니 마음은 편했다.

일단 교복을 입고 있는 거로 봐선 싸울 의지는 없어 보여서 난 태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니넨 대체 어떻게 맨날 뿅 하고 나타나는 거야?"

"우린 유능하기 때문이지."

카리스의 말은 당연히 무시했다.

'유능은 개뿔.'

세세하게 따지자면 유틸성'만'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열린 게이트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오프너와 빅토리 아카데미에 편입할 수 있는 잠입성.

이 두 가지는 아무리 하찮게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카리스가 무력파가 아니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예전에 유이의 정보창을 봤을 때 그녀도 사실 무력파쪽보단 잠입, 첩보 쪽이었다.

카리스는 무기를 소환하긴 했지만, 그렇게 강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게 전력이 아니라고 해도 대략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양쨩, 나 보고 싶었냐니까?"

"당연히 보고 싶었지."

찰싹 달라붙는 유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우선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편입 몇 학년으로 했어?"

"난 1학년! 태양쨩이랑 같은 A반!"

"그걸 내가 너한테 왜 말해줘야 하지?"

"어차피 내가 학생 대표라서... 그래 뭐 알아서 알아볼게."

"...나도 유이와 똑같다."

니 얼굴에 일학년이 말이 되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래도 방금 대화에서 간단한 정보 몇 개를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찐블이 아카데미 내부 학생 정보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거다.

내가 몇 학년 몇 반인 지 알 정도니 말 다 한 거겠지.

'아무리 내 정보가 공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몇 반인지는 몰라야 정상이야.'

기자들도 헤드라인을 '1학년 생도로서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정도로만 쓸 뿐.

'1학년 A반의 압도적인 편입생!' 이렇게 쓰지 않는다.

정보를 숨겨 주기 위함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인데, 그걸 얘네들은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두 번째는 잠입을 아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았다고 해서,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두 개는 완전히 다른 문젠데 이걸 자연스럽게 연결할 정도면.

'빅토리 아카데미에 찐블 끄나풀이 있다는 말이겠지.'

확실히 자기들이 진짜라고 말할 만한 행보는 보여주고 있었다.

김민수를 무지성으로 빨아 대던 기존의 노블이 하는 거라곤 남 스킬 뺏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글라디르 대회를 장악해서 의미 없는 성과를 내는 거 정도.

"뭐... 그럼 일단 같이 갈까?"

"그래! 태양쨩이랑 이렇게 등교하니까 좋네."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들어가기로 했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아지네.'

정리 한 번 진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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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편입생이 왔다, 자기소개 하도록."

카리스, 유이와 함께 반에 들어오자마자, 장두철은 입을 열었다.

졸지에 첫날 편입생이 된 기분.

난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고, 카리스와 유이의 소개가 이어졌다.

"난 모모하라 유이, 일본에서 왔어 잘 부탁해!"

"카리스다."

성격을 아주 대놓고 드러내는 자기소개.

'카리스는 내켜서 온 게 아니네.'

아마도 유이를 혼자 내 곁에 보내는 게 걱정돼서 따라온 거겠지.

교문 앞부터 지금 자기소개 시간까지.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에게 슬픈 소식이 하나 있다."

김민수가 자퇴 신청서를 냈다.

처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알고만 있도록.

'뭐?'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어진 장두철의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김민수가 자퇴 신청서를 냈다니.

서사가 변경된다는 게 이런 식으로 바뀌는 거였어?

'그럼 내 NTL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 짐작 되는바는 있었다.

멜라니와 잠자리를 하고 난 이후 주인공 지분율을 확인했을 때.

김민수와 전혀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분율은 상승 했다.

즉 앞으로 히로인들을 공략할 때, 김민수를 굳이 끼워 넣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때문에 '김민수는 이제 무슨 필요가 있는 걸까'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이런 식으로 확인을 시켜 주네.'

소설의 영향에서 벗어난다고 하자마자 바로 자퇴를 하다니.

그래도 네가 주인공이었던 소설의 무대인데.

'뺏기자마자 자퇴는 너무 추하잖아.'

곤란한 건 없었지만 찝찝했다.

눈에 보이던 바퀴벌레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의 불쾌함.

그런 감정이 갑자기 마음속 한구석에서 솟구쳤다.

"아침 전달 사항은 끝이다. 오늘도 수업 잘 듣고, 열심히 훈련받을 수 있도록."

""네""

장두철의 말을 끝으로 반 분위기가 점점 시끌벅적해진다.

수업에 들어가기까지 약 10분 정도 남았으니 활용해야지.

'근데 나 약간 왕따 같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얘들을 왕따 시킨 거긴 한데.

유민이가 없으니 정말로 반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오늘 편입 온 유이와 가장 친하다는 게, 이게 말이야 방구야.

"태양쨩, 보통 학교생활 할 때 뭐 해?"

"나? 나는..."

[섹스한다 이 빽 보지년아!]

'뭐야 너 왜 그렇게 급발진해.'

[나으리한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저 사내새끼가 소녀는 아무 마음에 들지 않사와요! 그리고 이 빽 보지년도 똑같은 집단이면! 아주 그냥 똑같다고 생각하옵니다.]

유이가 초코 모찌 가슴을 내 팔에 끼우는 순간 춘향이가 발끈했다.

딸기 찹쌀떡 가슴을 가지고 있어서 경쟁심을 느끼는 건가.

진짜 얌전하게 넘어가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냥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수업 받고, 개인 훈련하고..."

"남들이랑 똑같이 하는데 그렇게 강하다는 게 말이 되나?"

좋게 좋게 말하고 대충 대화를 끝내려고 했는데, 카리스가 끼어들었다.

"1% 중의 1%로 이름을 알리는 네가, 남들과 똑같다니. 허."

"그래 난 사실 태생부터 다르다, 됐지."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건가.

얘는 옆에서 툴툴거릴 거면 왜 유이를 따라온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카리스는 여자한테 점수 따긴 글렀다 싶었다.

웬만하면 친절한 이미지를 보여야 호감이 되는 건데 참.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카리스가 김민수랑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아무튼 그 이후로 유이와 나는 카리스를 쏙 빼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적인 대화부터 게이트에 관련된 사적인 경험담까지.

정보라고 할 것도 없는 대화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얘들아 이제 앉자."

김석구가 들어왔다.

생도들이 일사불란하게 책상에 앉으며 수업 준비를 마쳤고.

정숙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완성되자 그는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개인 훈련 기간인 만큼 단체 훈련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해서, 내가 1교시 이론 시간에 들어오게 됐다."

개인 훈련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네.

이후에 이어질 김석구의 말은 대부분 귓등으로 들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NTL 퀘스트.'

퀘스트 창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메인 퀘스트가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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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

당신은 [주인공­김민수]의 지분율을 절반 이상 빼앗아 주인공의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아직 표절 작가와 [주인공­김민수]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소설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죠.

언제든지 다시 제대로 펜을 잡을 수 있다면 쓸 수 있는 것이 글이고, 그것이 모인 게 소설이니까요.

단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원래의 세계.

표절 작가는 그걸 거부하며 이 세상의 주인공을 단 한 명으로 응축시켰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소설의 영향에서 벗어나 표절 작가와 [주인공­김민수]의 대척점에 있는지금.

오직 당신만이이야기를 완성 시킬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클리어 목표 :: 주인공

기한 :: D­??? / 보상 :: 완결

페널티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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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는 뭐야.'

자잘한 건 넘어가고 굵직한 것만 살펴보면 일단 기한과 보상, 페널티가 싹 다 변해 있었다.

퀘스트 내용도 그렇고 목표까지 다 두루뭉술 했지만 결국엔.

'맨땅에 대가리 좀 박으란 말을 뭐 이렇게 길게 써놨어.'

뭔가 굉장히 거창하게 쓰여져 있지만 결국 이젠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꾸며두면 모를 줄 아나.

이젠 척하면 척이었다.

'성녀는 아직 힘을 회복 중이니까... 못 만나겠고... 김민수나 찾아볼까.'

과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김민수의 뒤꽁무니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김민수가 혼자서 사라질 놈은 절대 아니니까.'

여자를 그렇게 밝히는 놈이 뜬금없이 자퇴를 하고 사라진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분명히 이 사건에 안뚱땡이 개입 되어 있겠지.

본격적인 바퀴벌레 사냥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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