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다크니스 워리어와 데빌 카오스 울트라 킹
* * *
언제나 사건 사고로 시끌벅적한 경찰서 안.
그곳에서 김민수는 경찰 앞에 앉아 조사받고 있었다.
"진짜 아니라니까요! 다 사정이 있어요! 아니 제가 대체 왜 막 그런 걸 염탐하려고 돌아다니겠냐구요!"
"그러니까 왜 남의 허락도 없이 이 숙소 저 숙소 들쑤시면서 방문을 막 엽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진짜로!!!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 몇 번을 말해요! 그니까 무슨 사정이냐고!"
"...그건...!"
김민수는 경찰의 물음에 차마 제대로 된 대답을 내뱉지 못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들한테 말할 만한 제대로 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태양이 내 여자를 또 뺏어갔다고 말해도... 범인들은 이해조차 못하겠지.'
여기서 범인은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이야.
이건 이해할 수 있으려나, 김민수는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정말 보호자 분 오실 때까지 나가실수 없습니다."
"아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진짜, 저 몰라요? 김민수잖아요! 불굴의 용사 김민수!"
"용사는 백태양 헌터님이지 않습니까. 헛소리 하실 거면 그냥 다시 들어가세요."
"...허 벌써 퇴물 취급을 한다 이거지."
"네?"
"아닙니다. 일단 뭐 들어가 있을게요."
어이가 없어서 진짜.
김민수는 그리 중얼거리며 다시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겠지 하고 넘겨짚어 주면서 풀려났는데.
'이게 다 백태양 때문이야.'
놈이 용사 칭호를 뺏어가고 난 이후부터 마음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걸 만회하고자 고전명작 게이트까지 부탁했지만 결과는 참패.
"뭐야, 진짜 김민수네, 와 빅토리 아카데미 생도도 이런 곳에 들어오나?"
"그래도 사진보단 실물이 낫네."
"나중에 절규하는 거 한 번만 보여달라고 할까?"
참자 참아.
마음이 보살인 내가 참아야지 별수 있나.
각성자의 발달된 신체는 유치장 속 들려오는 잡담을 모두 주워 귀에 넣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드잡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김민수는 구석진 곳으로 가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예전처럼 금방 나갈 수 있겠지.'
난 불굴의 용사고 결국 사람들은 진실을 뒤늦게라도 알아차리기 마련이니까.
민수는 자기 행복 회로가 과부하가 걸린 지 모르고 있었다.
너무 심하게 과열 돼서 까맣게 재가 탈 수준!
슬쩍.
어떤 생각에 의해 민수는 다시 눈을 떴다.
"근데 혹시 영화에서 보면 보통 크림빵 같은 거 넣어 주던데 그런 거 없나요?"
"아 쫌! 김민수씨! 더 이상 진상 피우면 업무 방해죄 추가될 줄 아세요!"
한 마디 했는데, 쩝.
'요즘 사람들이 화가 많고 팍팍해졌다는 게 진짜네.'
지금은 용사가 아니어도, 예전에는 용사였으니 조금은 부드럽게 대해 줘도 괜찮잖아.
민수는 이 이상 대화를 계속하다간 추잡해질수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엇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 그는 정말로 눈을 감았다.
'잠이나 자자.'
눈을 감고 얼마나 흘렀을까.
뚜벅뚜벅 뚜벅뚜벅.
소란스러운 경찰서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정적인 발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뭐야."
기이함을 느끼고 김민수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느꼈던 그대로 정말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어디 갔어."
시끄럽게 전화를 받던 경찰도, 국밥을 달라고 소리 치던 주정뱅이도.
심지어 옆자리에서 수군거리던 유치장 사람들까지.
감쪽같이 사라졌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말이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그리고 그런 요상함을 뚫고 발자국 소리가 점점 유치장 쪽으로 가까워졌다.
'귀신인가? 아냐 귀신일 리는 없고 몬스터? 설마 경찰서 자체가 던전화가 된 건가?'
지금 오고 있는 건 몬스터일 수도 있겠군.
김민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결론은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품 안에 몰래 숨겨놨던 붓검을 꺼내 손에 쥐고 발소리가 더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기다리기를 삼십 초.
"누구냐아아아아아아아!!!"
기습 따위는 남몰라 하는 그야말로 무식한 전사의 함성.
김민수는 철창을 베어 넘기며 바로 발소리가 난 곳을 향해 무작정 붓검을 휘둘렀다.
붓검이 휘둘러질 때 동선에 검은 먹선이 그어진다.
"용!"
먹선은 용으로 변해 휘두른 곳으로 추격타가 날아가려는 그 순간.
"민수야 나야."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모든 공격이 없던 것처럼 초기의 상태로 돌아갔다.
먹선이 용이 되기 전으로, 검을 휘두르기 전으로, 철창이 잘리기 전으로.
모든 게 원상 복귀 된다.
"누...누구...세요?"
"드디어 우리가 이렇게 만났구나."
"...?"
짜리몽땅한 키.
가면을 쓰고 있어도 보이는 도톰하게 접힌 턱살과 출렁거리는 볼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으로 맞춰도 머리 가슴 배로 나뉘는 삼단봉 몸매.
"진짜 누구세요."
"어? 나, 나라니까."
나야나 사기도 아니고 뭐 하는 놈이야.
김민수는 갑자기 친근한 척하는 눈앞의 남자를 경계했다.
당당하게 등장한 거로 봐선 경찰서를 조용하게 만든 범인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체형이 익숙하지.
설마.
"순애일지작가님의... 최측근?"
"맞아. 아무래도 내가 너무 멋진 모습으로 와서 못 알아봤나 보군."
"...그런 건 아닌데... 여기 왜 계신 거예요?"
"용사가 아니게 된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야."
"예?"
우선 여길 나가자.
순애일지작가의 최측근, 그러니까 안뚱땡은 잠겨 있는 유치장 문을 손쉽게 열었다.
민수는 눈앞에 펼쳐지는 급 전개에 아직 뇌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을 끔벅거리며 안뚱땡을 보는 게 전부였다.
"차차 설명해 줄게, 근데 여기서 하기엔 아무래도 폼이 안 살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 어차피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거에 불과하니까.
미리 나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자기 합리화를 끝낸 김민수는 멋쩍게 웃으며 유치장 밖으로 나왔다.
"날 최측근으로 부르지 말고 이제... 음... 데빌 카오스 울트라 킹, 그러니까 데카우킹이라고 불러."
"...데카우킹이요?"
"그래."
센스가 상당하네, 나보다 조금 못 미치는 정도야.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순애일지작가님 최측근인 만큼 감각이 남달랐다.
"...너도 이제 용사가 아니니까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때가 됐잖아."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말투와 눈빛.
비록 눈빛은 가면 속에 숨겨져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느낌은 알 수 있었다.
"나...나는..."
그동안 용사로서 해왔던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느낌.
여태까진 가명으로서 간직해왔던 닉네임을 정말로 꺼내게 된다면.
'이제 끝인 건가.'
놔줄 때가 됐다고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게 지금 당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용사 칭호를 공식적으로 박탈당한 것과 별개로 마음속엔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는데.
"이게...운명인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민수는 결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함께 했던 칭호를 내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김민수는 안뚱땡이 말했던 구원 같은 건 이미 머리 밖으로 뻥 차버린 지 오래였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용사' 칭호의 작별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정 뿐이었다.
"...나는 이제 용사가 아니다."
"그래... 그래...!"
안뚱땡이 목에 겨우 묶어 놨던 검은 망토가 휘황찬란하게 펄럭인다.
망토는 하나의 날개처럼 펼쳐지며 서서히 김민수 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다크니스, 다크니스 워리어로 살겠다."
툭 투두두두둑.
망토가 김민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며 새로운 탄생을 알린다.
김민수는 왜 망토가 자기를 감싸고 있는지 몰랐으나, 멋질 것 같아 냅두기로 했다.
천천히 일어나 '용사'가 아닌 '다크니스 워리어'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김민수.
"으읍...흡...붑...흐픕...!"
그가 최초로 한 일은.
숨을 쉴 때마다 망토가 달라붙어 호흡 곤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제 아카데미에 갈 필요도 없어, 다크니스 워리어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테니 말이야!"
"으븝! 우훕! 풉! 븝!"
당연한 말이지만 안뚱땡은 민수가 망토를 잡아 뜯으려는 걸 눈치채지 못 했다.
김민수 자캐를 만든 장본인답게, 똑같이 민수처럼 뽕에 차 있어서 주변을 제대로 안 봤기 때문이다.
"나 데카우킹과! 다크니스 워리어의 화려한 콤비가 여기서 지금 시작되는 거다!"
"우브븝!!!! 팝!! 흡픕!!!"
안뚱땡과 김민수.
여러 의미에서 최악의 듀오가 유치장 바로 앞에서 탄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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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여느 때처럼 등교를 하며 인터넷 기사를 읽던 중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용사'였던' 김민수, 경찰서에서 사라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스토커. 그의 이름은 김XX]
[빅토리 아카데미 명예 실추? 빅토리 측 "변명 않겠다. 생도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
김민수를 바닷가에 던져 놓은 게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갈 줄이야.
아무리 어디로 튈 지 모른다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했다.
주인공 지분율이 역전 되자마자 바로 이런 꼴을 보이다니.
그동안 대체 안뚱땡이 얼마나 놈을 위해 미친 듯한 수혜를 뿌렸는지 짐작도 안 됐다.
'허 이거 완전 골 때리네.'
그리고 하나 더.
놀랄 만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 태양쨩! 보고 싶었어, 나 보고 싶었지?"
"...오랜만이란 말은 않겠다."
비실이와 모모하라 유이.
자신들을 진짜 노블이라고 부르는 아직 목적을 모르는 집단의 멤버가.
'쟤네가 왜...?'
빅토리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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