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김민수 너 혼자 이런 꿀을 빨았다고?
* * *
"여기서 무슨 승부를 할 건데?"
"게이트다. 여기에 조금 있으면 게이트가 열리니 거기서 누가 더 멋진 클리어를 하는지 승부야."
너무 당당하게 내뱉는 민수의 말에 멜라니는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나도 김민수가 안뚱땡과 접점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거다.
'얘는 숨길 생각이 없나?'
밑도 끝도 없이 성검과 멜라니를 걸고 승부다! 이래 놓고 게이트가 열린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 게이트에서 승부를 보는 거구나'하고 납득할 줄 아는 건가.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에 골이 다 땡겨 왔다.
'수습하자.'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멜라니가 껴있는 상태에서 얼렁뚱땅 전개는 막아야 했기에.
난 어쩔 수 없이 김민수를 위해 나섰다.
"근데 넌 항상 게이트가 열리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어? 어어? 응? 아, 아아 그건 그냥 뭐... 용사...였던 사람의 감? 같은 거지."
감은 무슨.
'딱 봐도 안뚱땡이구만.'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얘는 주인공이면서 왜 대체 스스로 뭘 찾아보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걸까.
갑자기 젊은 꼰대가 빙의된 것처럼 김민수가 더욱더 못마땅스럽게 모였다.
'난 진짜 맨 땅에 대가리 박아가면서 했는데.'
서러웠던 주인공 0% 시절부터 50%로 오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고난과 역경 그리고 난관이 있었는 지 셀 수가 없었다.
근데 이놈은 그냥 작가란 놈이랑 만나서 몇 마디 나누는 걸로 기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성장이 멈췄지.'
안뚱땡이 떠먹여주는 방식으로 김민수를 키우다 보니 놈은 굉장히 수동적으로 변했다.
누가 뭘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본래라면 성장을 시켜 주는 것 플러스 알파로 자기가 뭔가 더 해야 했을 텐데.
김민수가 하는 거라곤 끽해야 빅토리 아카데미 훈련실에 있는 게 전부였다.
'그건 누구나 하는 거고.'
훈련실을 이용하지 않는 생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성적이 낮아도, 의욕을 잃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방문하는 게 훈련실이었다.
노력은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게 바로 빅토리 아카데미였다.
누가 더 효율적으로 훈련하는 지가 승패를 가르는 아주 차가운 곳이었다.
"감은 무슨 너는, 아니다. 그냥, 그래..."
평생 그렇게 살아라.
마음 같아선 뭐라고 더 하고 싶은데 입만 아파질 것 같아서 그만 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못다 한 말을 포함해서 패면 되는 일이었다.
"어...아... 조금 있으면 열린다고 했으니까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있어도 될 것 같아."
핸드폰을 보며 누가 봐도 전달해준 메시지를 그대로 읽는 김민수.
아예 대놓고 그냥 안뚱땡이 대본을 썼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근데 용사는 정말 뭐 그런 감이 있어요?"
멜라니는 그런 김민수를 보고 나에게 의문을 품었다.
당연히 궁금할 질문이었다.
'용사는 앞으로 나올 게이트를 감지할 수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 엄청난 메리트가 될 테니까.
아마 김민수는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도 모를 거다.
"용사마다 다른가 본데? 난 그런 거 없더라고."
용사가 무슨 만능 열쇤 줄 아나.
한평생 그런 식으로 살아온 김민수의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지금 당장 듣고 싶었지만 참았다.
뒷수습을 열심히 하게 될 거라는 루베니아의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 됐다.
"그래요? 용사가 참... 뭐랄까 이런 말 하면 신성 모독 같지만... 편의주의적 설정 같네요."
"동감해."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그게 바로 용사라는 설정이었다.
'용사란 건 대체 뭘까.'
굉장히 두루뭉술한 무언가에 열광하는 꼴이었다.
그저 추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때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온 세계가 존중하고 극진한 대접을 해 주다니.
'루베니아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은데.'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크게 물어볼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주인공 지분율이 반반이 되자 궁금한 점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여...열린다!"
나와 멜라니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소외된 김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 보니, 존재감을 저렇게라도 어필하고 싶은 거겠지.
'안뚱땡이 만드는 게이트도 자연적으로 생기는 거랑 비슷하구나.'
나름 작가가 만들어서 특별한 이펙트가 있을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없었다.
일반적으로 게이트가 생기는 것처럼 허공이 쭉 세로로 찢어진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나는 메시지.
=======================================
게이트 발생! S급 게이트 고전명작[인어 공주]가 오픈됩니다!
=======================================
늘 그렇듯 또전 명작에 S급.
작가라는 놈이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레파토리를 들고 오는지.
'내가 근데 김민수보다 주인공 지분율 높아지면 이 짓거리도 이제 끝인가?'
어차피 이번 게이트에서 지분율을 탈탈 털어먹을 건 확정된 거였다.
그런 생각하며 게이트에 들어가려는 찰나 멜라니가 뒷덜미를 잡았다.
"켁, 엨, 뭐야, 왜 잡어."
"잠깐만요, S급 게이트를 이렇게 딱 세 명 들어간다구요? 아무리 컨셉형이라고 해도 그렇지."
"응?"
"S급이 얼마나 위험한 지 몰라서 그래요?! 아니 이렇게 무슨 소풍 가듯이 게이트를 들어가요?"
와, 이건 생각 못 했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멜라니.
'이게 너무... 내 입장만 생각했구나.'
생각해 보면 김민수는 믿을 만한 조력자가 만들어 준 게이트여서 걱정이 없었고.
난 당연히 소설 속에 있다는 걸 알기에 어차피 클리어를 할 자신이 있었으나.
멜라니는 지극히 이 세계에 속해서 사는 평범한 아카데미 생도에 불과했다.
즉 그녀는 이 게이트의 위험성과 대책 등을 생각하며 합리적으로 평가를 한 거다.
'그게 우린 안 됐고.'
안뚱땡과 나는 밥 먹듯이 이런 게이트를 들락날락 거렸으니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멜라니는 S급 게이트를 직접 들어가 본 적이 아예 없었다.
그녀가 클리어한 S급은 전부 게이트가 도중에 변형 되거나 납치를 당하는 형식이었던 것.
'골치 아파지는데.'
여기서 그녀가 빅토리 측에 연락이라도 한다면 일이 많이 꼬이게 된다.
아무리 그게 일반적인 상식에서 봤을 때 정답이어도 지금은 무조건 예외로 취급해야 했다.
'야 너 먼저 빨리 들어가.'
난 우선 당황해서 얼 타고 있는 김민수한테 눈짓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놈은 상황이 복잡해지려고 하자 얼른 대피하고 싶었는 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에 들어갔다.
"뭐야! 김민수! 지금 멜라니가 말하는 거 안 들려? 왜 그렇게 먼저 들어가는 거야! 생각해 보니까 나도 이상하다고 느끼던 참이었어!"
너무 연기톤이었나.
하지만 지금은 이런 대사를 내뱉어서 멜라니의 의견에 동조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미 용사가 편의주의적 설정 같다고도 말한 여자인데 뭔들 의심 못할까.
잘못했다간 김민수랑 한패 취급을 받을 지도 몰랐다.
'그런 일인 아주 적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도전장으로 게이트 클리어라길래 뭐 C급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이건 미친 짓이라구요!"
"일단, 김민수가 미쳐서 들어갔으니까 따라서 들어가자. 내가 강태민이랑 도움 요청 다 해둘게, 저러다가 게이트 닫히면 끝이잖아."
내 말을 들은 멜라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이라도 게이트에 들어간 이상 게이트가 폐쇄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알겠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날 철석 같이 믿은 멜라니는 그대로 김민수를 뒤따라 게이트에 들어갔다.
'미안해, 멜라니.'
당연하게도 아무한테도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게이트는 아무 일 없이 클리어가 될 거고, 김민수는 나한테 하루 종일 얻어 터질 거다.
이 미래는 바뀌지 않기에 난 망설임 없이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지분율 50%가 된 후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고전명작이었다.
++++++++++++++++++++++++++++++++
=======================================
S급 게이트 고전명작[인어 공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주인공 지분율을 확인 중입니다.
띠링!
한 게이트에 주인공이 두 명 있는 관계로 그 누구도 특별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주인공김민수]에게 지급된 주연 선택권, 메인 스토리 방향 설정권, 고전명작 내용 요약본을 회수합니다.
서사가 변경됨에 따라 더 이상 주인공 지분율이 더 높게 된 자에게 위의 혜택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새로 등장한 [주인공백태양] 분석 중.
주인공임에도 차등 보상을 받았던 부분을 확인.
차별받았던 시간에 대한 작은 사죄와 보상을 지급합니다.
그동안 [주인공김민수]가 받았던 혜택의 일부를 [주인공백태양]에게 최초 1회에 한하여 지급합니다.
인어 공주 내용 요약본,주연 선택권을 습득합니다.
인어 공주 내용 요약본이 지식으로 변해 그대로 머리에 스며듭니다.
주연 선택권은 현재 [인어 공주]에 나와 있는 주연 중 아무나 조건 없이 역할을 맡게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여태 역할에 자신을 맞춰야 했던 것과 다르게 주연 선택권은 오히려 역할이 선택권 사용자에게 맞춰 변화합니다.
현재 선택 가능한 주연《인어 공주, 왕자, 문어 마녀》
주연을 결정했다면 바로 말해주세요!
결정 후 바로 스토리가 진행 됩니다.
=======================================
'...너무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주인공 지분율 50%가 되자마자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특별 대우에 할 말을 잃었다.
딱 한 번뿐인 특별 대우지만 김민수는 여태 이 꿀을 혼자 빨았다는 말 아닌가.
주연 선택권부터 내용 요약본, 메인 스토리 방향 설정권까지.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미친 듯한 특혜였다.
'이런걸 가지고 나한테 밀렸다고?'
그게 말이 돼? 대체 얼마나 무능해야 하는 거야.
허탈한 웃음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나왔다.
안뚱땡은 대체 얼마나 멍청하길래 자캐딸을 쳐도 김민수란 말인가.
'게다가 내가 스토리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니.'
충분히 게이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아무도 출발 못하게 제지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래서 늘 게이트에 들어간 후 이상한 하얀 공간에서 대기했던 거구나.
의문이 하나 풀렸다.
'난 결정했지만.'
사실 고전명작이 인어 공주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선택할 건 딱 하나였다.
"난..."
기다려 김민수.
특혜를 받은 내가 얼마나 날아다니는 지.
톡톡히 보여 줄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