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극적인 변화
* * *
"난 너 진짜 좋아하는데."
춘향이의 어지러운 말을 무시하고 다시 멜라니한테 집중했다.
"네?"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는 멜라니.
이렇게 상황이 불리할 때 가장 효과적인 건 정공법이었다.
"그, 그 말이 갑자기 왜 나와요!"
"아니 네가 나 진짜 싫다길래, 나도 말해야 하나 싶어서 그랬지."
"그렇다고 무,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역시 예상대로 멜라니는 순식간에 얼굴이 발갛게 익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저번에 가슴 만져 보라고 한 이후부터 스킨쉽에 대담해진 건 줄 알았지만.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생겼다.
'완전 숫기 없는 처녀라니까.'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방치 하지 말라는 멜라니의 말에 따라 아예 몸을 겹쳤다.
"앗흐...흣..응..."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눌리자마자 멜라니는 신음을 내뱉었고.
"안 돼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뭐야 왜 물러나는 거지?
어이없어 하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멜라니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저 오늘 소...속옷 짝짝이예요!"
"...?"
멜라니의 당돌한 말에 방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그리고.
[나으리! 이 계집년 진짜 미친 거 아닐까요? 방치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따져가며 섹스하고 싶어 하다니! 그냥...! 그냥 입고 있는 오피스룩 북북 찢은 다음에 처녀 롤빵 보지에 자지 밀크 쭉쭉 넣어 주면 알아서 암퇘지 마냥 울어댈 게 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답답함을 그대로 속 시원하게 내뱉는 춘향이의 말이 이어졌다.
'그만, 그만해. 미치겠다 넌 진짜 대체 그런 말 어디서 배우는 거야?'
[최근에 음... 소녀 컴퓨터라는 새로운 현대문물을 배우고 있사와요... 예전에는 소설이 많이 없었는데 요즘은 볼 것두 많구... 연재? 를 하는 그런 곳도 많아서 참 좋사와요]
할 말이 없었다.
'내 잘못이잖아.'
요즘 춘향이를 너무 가두는 것 같아서, 아침에 물을 빼고 난 이후 집 안에서 자유롭게 놀게 했는데.
이런 식으로 현대 문물을 재빠르게 습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조차도 써본 적이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발언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다.
"저...아니...제...제가 오늘은! 당신이랑 이렇게 할 줄 모르고... 그냥 편하게 입고와서... 절대 안 돼요!"
평소와 다르게 말을 늘어트리며 어버버 거리는 멜라니.
롤빵 머리를 돌돌 손가락에 말아가며 몸을 배배 꼬는 게 깜찍했다.
'하긴 뭐 지금 만 날이 아니긴 하지.'
유민이랑 수진이, 혜미 같은 경우는 모두 처음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시작해서 괜찮았다지만.
멜라니는 내가 아예 처음부터 각을 잡는 느낌이어서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다기보단 방금은 정말.
'처음 서로 사귄 동정과 처녀가 섹스하는 느낌.'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풋풋한 감정이 마음에 맴돌았다.
처음의 그 간질간질하고 야들야들한 말 못 할 무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후로 잃어 버린 걸 다시 되찾았다.
[절대 안 되긴, 나으리 그냥 이 건방진 계집 말 더 이상 듣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나으리의 농밀한 정액 주유소를 여는 건 어떠실까요?!]
'절대 안 돼.'
정액 주유소라는 말은 대체 어느 나라 말인 거야.
얘가 지금 나랑 똑같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거 맞아?
당분간 춘향이는 컴퓨터와 멀리 떨어트려놔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일단 어... 이제 뭐 할 거야?"
일단 하지 않기로 했으니 사실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멜라니 잔소리도 다 들었고, 입 맞춰서 기분도 풀어줬고.
"갈 거예요!"
정말 뭘 해야 하나 싶을 때 멜라니는 가슴을 꼭 끌어안고 급하게 집 밖으로 나갔다.
"다음에는 꼭 속옷 맞춰서 입고와!"
"시끄러워요 짐승! 진짜 변태야!"
귀에 팍 꽂히는 그녀의 질타를 끝으로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나으리! 소녀를 부르심이 어떠신지요]
멜라니가 나가자마자 침착해지는 춘향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까 입을 맞추면서 그녀가 보였던 반응 때문에 발기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성춘향이 현현합니다!]
춘향이는 소환되자마자 재빠르게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옷이 한 꺼풀씩 사라지는데 저건 또 언제 익힌 재주인지.
진짜 여러모로 골 때리는 소환수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나으리의 정실은 저, 소녀 성춘향 말고는 없는 것 같사와요. 이제 더 이상 하렘 순애는 그만두시고 소녀와 질펀한결혼식을 올리며 떡 케이크 위에서 질펀한 정액 소스를 뿌리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보심이..."
"제발, 제발 그만해."
바로 단단했던 자지가 팍 식었다.
"춘향아 오늘은 좀 다른 걸 하자."
"어떤 거요?"
"적절한 언어 선택."
이게 지금은 가장 중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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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네?'
춘향이를 제대로 교육 시키고 나고 이튿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기민스의 즉각적인 보복은 없었다.
두들겨 맞았으면 당연히 뭐가 있을 줄 알았는데.
'기사도 그대로 나와 있고.'
윤산동을 선두로 시작해서 모로스 차일드에 대한 엄청난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왔었다.
원래도 딱히 이미지가 좋았던 편은 아니어서 사람들은 금세 모로스 차일드를 비난했다.
기민스 성격상 이런 기사 한 글자라도 나오는 걸 용서 못할 줄 알았으나, 의외였다.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지.'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어쨌든 좋은 건 좋은걸라는 마음으로 등교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딸깍.
"네, 태민 씨."
아이고 용사님, 여행 피로는 잘 푸셨습니까?
"하하, 너무 안 띄워주셔도 돼요. 부끄럽습니다."
강태민은 첫 만남과는 다르게 굉장히 나에게 많이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최영남은 아무래도 한 기업의 수장이다 보니 추상적인 파급력만 있을 뿐, 실질적인 수발은 강태민 담당이었다.
여전히 겸손하십니다. 아무튼 그 제가 알아본 결과 기민스 쪽에서 경호원들을 통해 태양 씨 뒷조사를 시작했다더군요.
"제 뒷조사요?"
네 가족 관계랑 뭐... 그런 부분들을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신상 정보를 파악하는 모양인데,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예전도 아니고.'
주인공 지분율 50%을 넘은 지금 내 뒷조사해서 유의미한결과를 만들기는 어려울 거다.
어느 소설에서나 뒷조사를 당해서 크게 당황하는 주인공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태양은 원래 등장하지 않아야 했던 인물이다.
'유령을 찾고 있는 느낌이겠지.'
때문에 아무리 꼼꼼하게 조사한다고 해도 먼지 한 톨조차 나오지 않을 터.
기민스는 그냥 헛짓거리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 놈인가.'
정말로 일회용 캐릭터로 잠깐 나타나다가 사라질 운명이었을까.
즉각적인 대응도 없고 이후에도 영양가 없는 행동만 가득했다.
돼지와 고라니의 환상적인 비명 하모니를 기대했던 나로선 굉장히 아쉬웠다.
"일단 그럼 계속 주시만 해주세요. 별다른 움직임 보이면 저한테 연락 부탁하겠습니다."
당연하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른 아침 연락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하셔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넵!
뚝.
서로의 사회성을 충분히 발휘해서 전화를 끊고 곧바로 교실로 향했다.
수진이는 무슨 일인지 교문에서 보이지 않았다.
'뭐지.'
오늘 당번이 아닌 건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반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그래서 성검을 뽑진 못 했지만 용사로서의 그...게 있었잖아, 그러니까 대충 다 사정 보면서 풀어 주더라고."
"와 너 그럼 성기사들이랑도 만났겠네?"
"응, 확실히 합동 교육에서 온 기사 지망생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더라, 압박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뭐 나도 만만치 않았지만."
민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구금 되어 있다고는 해도 오래 박혀 있지 않을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기사 뜨자마자 바로 나올 줄이야.
'진짜 주인공 덕 제대로 보고 살았었구나.'
예전 같았으면 언제 왔는 지부터 시작해서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을 텐데.
이젠 그런 것도 없었다.
어차피 불공평한 대우도 받지 않으니 예의 주시할 필요가 없어진 것.
"자 모두 앉아라."
"옙."
장두철이 들어와서 소란스러운 반을 단번에 정리하고 생도들을 모두 착석시켰다.
난 자리에 앉으며 허전함을 느꼈다.
보통 장두철이 들어오기 전에 유민이가 깊게 뽀뽀해주곤 했다.
근데 오늘은 유민이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수진이가 안 보일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같은 반 유민이도 보이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 한 가지 전달 사항이 있다."
6월부턴 개인 훈련 집중 구간이기 때문에 굳이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외적 훈련하고 싶은 생도는 얼마든지 신청하도록.
"참고로 우리 반 유민이는 미리 신청서를 내고 마탑으로 떠났다."
뭐?
'이게 무슨 급발진이야.'
주인공이 되면 전개 다 따라잡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하며 당황하는 사이 눈앞에 정보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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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지분율이 50%가 됨에 따라 당신의 주변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등장인물들이 더 이상 김민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당신의 영향을 받습니다.
당신과 깊게 관계 되면 될 수록 영향을 받으며, 향상심에 대한 욕구를 지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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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왜 이런걸 한 번에 설명 안 해주는 거야.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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